김태우
경희대 기후-몸연구소,
한의대, 『몸이 기후다』 저자
수정이 필요한 계절의 시간들
이 글을 쓰고 있는 11월 초, 겨울의 길목이며 가을의 마지막 달인 11월인데도 최고 기온은 고공행진을 한다. 11월2일 서울의 최고기온은 섭씨 25.1도를 기록했다. 활엽수들도 11월인 데도 불구하고 낙엽이 떨어진 나무는 거의 없다.
아직 푸른색이 감도는 단풍 전의 나무들도 어렵지 않게 보인다. 사시(四時)가 전과 같지 않다. 다를 뿐만 아니라 순조로운 흐름을 벗어나 있다.
<인류세의 한의학> 연재글에서 “체감기온”과 “체감계절”이라는 제목으로 이전 두 번의 글을 썼다. 공기의 온도라는 기온과는 달리, 체감기온은 그 기온을 경험하는 몸과 기온의 연결성을 같이 말하는 용어다.
기후변화가 심해지고 기후위기가 악화일로에 있는 상황에서 체감온도는 더 중요한 용어가 되고 있다. 체감계절도 비슷한 맥락에서 논의를 했다. 정해 놓은 기간의 계절로서의 봄여름가을겨울은 이제 적합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기후위기 시대는 계절의 기간이 변화하므로, 몸이 경험하는 계절, 즉 체감 계절이 더 적당한 말이 되고 있다.
이제 9월, 10월, 11월 세 달의 가을이라는 계절 구분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3월, 4월, 5월, 세 달의 봄도 이제는 적절하지 않다.
『내경』에서 말하는 봄 석 달, 여름 석 달, 가을 석 달, 겨울 석 달의 표현도(春三月, 夏三月, 秋三月, 冬三月) 이제 수정이 필요한 것이 지금 기후위기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석 달씩 한 계절로 나뉘지 않는다.
통상 9월은 가을이라고 하지만, 이제 9월은 여름의 기간이다. 10월도 낮 기온은 여름에 해당한다. 봄이라고 하지만 5월이면 벌써 폭염이라는 한여름 용어가 회자된다. 4월부터 여름이 시작된다고 할 정도다. 그러니 실제 여름은 다섯 달이 넘어간다. 체감 계절의 여름은 길다. 더운 4월의 기간과 10월의 기간까지 합하면 반년이 여름인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사기조신대론(四氣調神大論)」
봄여름가을겨울의 내용까지 바뀌어야 하는 상황이 지금의 기후위기 시대에 드러나고 있다. 춘하추동을 말하며 『내경』은 생명의 기의 양태를 말하고 있다. 계절 각 세 달을 표현하는 언어는 다양하게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봄에는 꽃이 핀다. 가을에는 낙엽이 진다.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경』의 관심사는 천지의 상황과 생명의 경향성이다. 그리하여 봄에는 ‘천지가 모두 생하고 만물이 이로써 영화롭다’라고 말한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인간의 생활과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봄에는 ‘밤에 자고 일찍 일어난다.’ ‘정원을 넓은 보폭으로 걷는다’와 같이 봄의 기운에 맞는 인간의 행동을 표현하고 있다1).
봄에는 생명들이 움틀움틀 깨어나고 나아간다. 생명의 전체적인 양상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봄은 봄답지 못하므로 “발진(發陳)”도 전과 같지 않다. 하삼월은 “번수(蕃秀)”라기 보다는 극한의 더위가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시기이다. 『내경』에서 발하는 여름 석 달 번수는 더운 시기이기는 하지만, 그 말에 결코 부정적인 뉘앙스가 없다.
번수에 이어지는 말들을 보면 분명하다. ‘천지가 기를 소통하고 만물이 번성하고 실하다.’ 이것은 사시의 흐름에서 당연히 있어야 하는 때이다. 봄이 밀어주고 가을이 받쳐주어서 생명들이 그 생명력을 펼치는 시기다. 하지만 지금의 여름은 길고 위험하다고 해야 할 두려운 기간이다.
여름의 기운이 너무 강력하니 가을의 “용평(容平)”은 쉽지 않다. 여름에 너무 펼쳐놓았으니 그 강한 기운이 잘 수용이 되지 않는다. 9월에도 무더위가 계속되고 11월까지 25도가 넘어간다. ‘추삼월을 일컬어 용평’이라고 한다는 표현도 수정이 필요할 것 같다. ‘계속해서 덥고 그 기간은 짧다’ 정도로 바꾸어야 지금의 상황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동아시아의 체감기후
체감온도, 체감계절과 함께 기후는 체감기후에 관한 것이다. 동아시아의 기후 개념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동아시아의 존재 이해에서 봄여름가을겨울 따로, 천지만물 따로, 인간 따로 있지 않다. 대기 중의 기후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사전에서 기후를 찾아보면 “기온, 비, 눈, 바람 따위의 대기 상태”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는 대기의 상태와 같이 존재들과 분리된 무엇을 말하지 않았다.
또한 기후(氣候)는 열대기후, 온대기후, 한대기후와 같이 위도 상으로 정해지는 기후의 띠가 아니다. 그 기후는 몸들에 관통되어 있는 기후, 몸들의 기후다. 그리하여 동아시아에서는 날씨를 말하는 기후도 있지만, 몸을 말할 때도 기후를 사용하였다. (이전 연재글 <인류세의 한의학>3 “기후의 의미” 참조)
동아시아에서는 항상 관계 속에서 말을 한다. 춘삼월차위발진(春三月此謂發陳)은 ‘봄 석 달의 평균 기온이 15도이다’라는 표현과 다르다. 발진은 천지에 관한 것이고 만물에 관한 것이다. 또한 사람들의 생활에도 일맥상통하다. 봄 석 달을 상황으로 표현했으며, 이것은 천지에, 만물에 그리고 인간의 삶에 다 연결되어 있다. 밖의 기후 따로 몸의 기후 따로가 있을 수 없다.
동아시아에서 기후는 이미 체감기후를 말하고 있다. 이미 몸과 연결되어 있는 기후이므로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체감기후라고 하면 어쩌면 동의반복일 수 있다. 이것은 동아시아 존재론의 세계이해와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원리가 변주하면서 세계를 연결하는 방식이다2). 봄여름가을겨울의 발진, 번수, 용평, 폐장이 그 원리를 표현하고 있다.
봄이 발진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그 기후를 사는 천지, 만물, 인간에 관통되어 있기 때문이다. 발진이 천지에 드러나면 “구생(俱生)”이고, 만물에 드러난 것을 “이영(以榮)”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름의 번수도 천지, 만물, 인간의 삶에서 변주한다. 천지에 드러난 것을 “기교(氣交)”라고 표현하고, 만물에 드러난 것을 “화실(華實)”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의 삶에서는 잠자고 일어나는 행동과 마음가짐에 투과되어 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기후가 관통하는 기후다. 몸의 기후와 날씨의 기후가 같은 기의 맥락을 가진다. 그렇다면 기후가 변화하는 시대는 기후에 대해 달리 말해야 할 것이다. 춘삼월은 이제 발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것은 겨울에 장(藏)하는 기간과 관계되어 있다. 생명이 생명답기에는 겨울이 너무 짧다.
기후위기 시대에 생명들은 겨울에 쉬지 못한다. 11월이 넘어가도록 나뭇잎을 달고 서 있어야 한다. 갈수록 단풍 시기도 늦어진다. 그런데 봄은 일찍 오고 일찍 더워진다. 여름에 기를 펼치는 기간이 너무 길고, 너무 힘들다. 이것은 청장년기에 에너지를 너무 써버린 건강하지 못한 노년을 연상하게 한다. 내경의 언어로 하면 “폐장(閉藏)”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닫고 저장하는 기간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봄에 피어나는 생명이 건강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기후는 안팎으로 체감이다. 날씨 기후가 몸 기후와 조응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후의 양상은 만물에 조응하기 때문이다. 몸 밖의 기의 양태는 만물의 기의 양태에 맞물린다.
그래서 사시는 만물의 근본이라고 하였다. 사시가 발진, 번수, 용평, 폐장으로 순조롭게 흐르는 것은 단지 계절과 기후만 순조롭다는 것이 아니다. 그 순조로움의 내용들이 천지, 만물, 인간의 삶까지 관통되어 있다. 그래서 동아시아에서의 기후는 기본적으로 몸이 경험하는 기후다. 순리의 내용으로 관통되어 있어서 몸과 기후가 따로 일 수 없다. 동아시아의 체감기후는 지금 기후위기 시대에 주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
1) 『내경』 「사기조신대론」
2) 동아시아 존재론을 아날로지즘이라고 명명하고 논의한 프랑스 인류학자 필리프 데스콜라의 논의를 인용했다. 『자연과 문화를 넘어서(Beyond Nature and Culture)』(2013)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