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부족 등으로 대부분 脾胃 계통 질환
힘들지만 단원들 표정엔 항상 밝은 웃음
부산 수려한의원 남영덕 원장
진료 이틀째 저녁 회의시간에 공항에서 통과하지 못한 엑기스제는 베트남 당국이 성분분석을 끝날 때까지 통관시킬 수 없다하여 결국 베트남에서 의료봉사를 행하는 기간 동안에는 사용할 수 없어 베트남을 떠나는 날까지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봉사단에게 안겨주었고, 베트남이 사회주의 관료중심 국가임을 느끼게 하는 사건이었다. 모두 안타까움의 한숨을 내쉬고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다시 논의하게 되었다.
진료를 접고 부산으로 돌아가느냐, 원래 일정대로 엑기스제 없이 진료하느냐, 아니면 일정을 변경하여 캄보디아로 일찍 넘어가서 캄보디아에서 진료하느냐를 놓고 진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단원들 중 단 한명도 진료를 종료하고 부산으로 넘어가자는 의견은 없었으며, 모두 이구동성으로 처음 부산을 떠나올 때 가지고 왔던 마음으로 베트남에서의 진료를 조금 일찍 마치고 남은 기간동안 캄보디아에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발휘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베트남에서의 남은 진료를 마치고 캄보디아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캄보디아 시엔립공항이 내부수리 문제로 하루동안 폐쇄되는 바람에 캄보디아로 향하는 비행기를 결국 다음날 탑승할 수밖에 없었다. 몸보다 마음이 힘들었던 베트남 의료봉사를 마무리하고 오른 캄보디아행 비행기. 호치민국제공항에서 캄보디아 시엔립국제공항까지는 대략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호치민에 도착할 때와는 너무나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었다.
사람의 손길은 찾아보기 힘든 늪지대와 호수만 눈에 들어오고 가로등이나 인공적인 건축물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포장된 도로도 오직 공항에서 앙코르와트사원까지 이어지는 길뿐이고, 나머지는 비포장의 황토길뿐인 캄보디아. 관광객이 보이면 아이들이 달려와 ‘Give me One Dollar’를 외친다.
사실 캄보디아는 푸난왕국(서기 1∼6세기) 시기에는 해상 실크로드를 장악한 왕국이었고, 첸라왕국을 거쳐 앙코르왕국(9∼15세기)에 이르러 태국 미얀마,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의 왕국으로부터 조공을 받은 거대한 왕국이었다. 앙코르왕국 후기 북부에서 일어난 수코타이왕조와 전쟁을 치루고 뒤이어 태국의 아유타야왕조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15세기이후 서서히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앙코르왕국 이후로 캄보디아는 수난의 역사길을 걷게 된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베트남과 태국에 유린당하고 국토를 빼앗겼으며 프랑스의 식민지로 전락했었다. 이후 프랑스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 점령당하고 베트남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동남아시아에서 물러나자 비로소 캄보디아는 독립하게 된다. 하지만 수난의 역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베트남전쟁 당시 월맹에게 캄보디아 동부지역 보급로 설치를 허용해 미국은 월남전을 캄보디아로 확대하여 미국의 폭격으로 캄보디아 국민의 약 60∼80만명이 사망하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미국의 후원을 받은 론놀 정권의 등장과 이후 폴포트가 주도하는 크메르루즈의 무장혁명으로 또다시 100만에 가까운 양민들이 학살당하고 만다. 계속되던 내전 이후 1998년 훈센을 수상으로 하는 신정부가 출범하여 몇 년 전부터 캄보디아의 문호를 개방하여 관광산업을 중심으로 개발에 힘을 싣고 있다.
캄보디아에서의 진료활동은 시엔립 외곽지역과 사원내 사찰에서 이루어졌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환자들…. 사찰 내에서 진료를 하던 중 환자들이 술렁거린다. 할머니 환자들이 화난 표정으로 뭔가를 이야기한다. 할머니 환자 한분을 마침 단 하나있던 침상이 비어 그곳에 눕게 하려는데 대기하던 다른 환자들이 소리까지 지르는 게 아닌가. 스님 한분이 바닥에 누워 치료를 받고 있는데 어찌 일반인을 그보다 상석인 침상에 눕게 하느냐는 항의였던 것이다.
이곳 문화를 제대로 숙지하지 않고 진료에 임한 실수였다. 다른 스님을 침상에 눕게 하자 그제야 모두 웃음을 띠기 시작한다. 순진한 사람들, 그리고 믿음이 강한 사람들….
환자들은 다양한 증상으로 진료진을 찾아왔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복통과 현훈증상을 가지고 있었다. 음식과 영양상태, 열악한 환경으로 주민 대부분이 비위계통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베트남에서 사용하지 못한 엑기스제를 캄보디아 주민들에게 마음껏 사용할 수 있어 나중에는 묘한 행복감마저 들었다.
사찰 진료팀의 진료는 오후 5시경에 끝났지만 외곽지역의 진료는 그 시간에도 거의 전쟁터였다고 한다.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지역 사람들은 오후 5시가 넘어가면 일과를 마치고 활동하지 않는다는데 끝도 없이 밀려드는 환자들로 인해 시 외곽으로 나간 진료팀은 거의 밤이 되어서야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힘들고 많이 지쳤음에도 불구하고 단원 한명 한명의 표정에는 뿌듯함이 베어있는 환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토요일을 마지막으로 모든 진료활동을 끝내고 부산으로 돌아가기전 아시아 최대의 민물 호수인 톤레삽 호수와 앙코르와트 사원에 들러 짧지만 인상 깊은 문화유적을 볼 수 있었다. 톨레삽 호수는 길이 130Km, 폭 30Km에 달하는 거대 호수로 집도, 가계도, 공장 및 교회나 관공서도 모두 호수위에 떠있는 수상가옥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배를 타고 나가다 보면 수평선 위에 뭔가 점처럼 떠다니는 것이 보이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면 아이들이 넓은 양동이를 타고 대나무로 노를 저어 다니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눈을 마주치면 웃어주는 아이들. 앙코르와트 사원은 정말 말이 필요 없는 세계문화 유산이다. 너무나도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고, 사원의 규모 또한 엄청나 한바퀴 둘러보는데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앙코르와트 사원을 뒤로하고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시엔립 공항으로 향했다. 화려하면서도 높은 문화를 일구었던 캄보디아의 선조들, 이들의 후예들이 아픈 역사를 씻고 하루라도 빨리 좀 더 나은 생활을 일궈 나가길 마음깊이 기원했다.
호치민공항에서 야간비행기를 타고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 ‘앞으로 베트남은 어떻게 변화할까? 캄보디아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10년 뒤 이네들의 모습이 궁금하다.
7월11일 월요일 아침 9시경, 김해공항에 도착하자 장맛비가 우리 의료봉사단을 맞이한다. 긴 일정동안 지치지 않고 도와준 자원봉사 학생들에게 특히 고마웠고, 힘든 일이 많아 그만큼 몸고생 마음고생하신 여러 동료 한의사 선배님들께 깊은 감사를 느꼈다. 이번 의료봉사가 베트남과 캄보디아에 조그마한 희망의 씨앗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끝으로 기행문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