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의 시작: 떠남의 무게와 비로소 찾아온 해방감
아홉 날간의 전문 연수를 위해 익숙한 일상을 내려놓는 일을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두 차례의 주말과 다섯 평일을 비우기 위해 환자들의 재진·초진 일정을 조정하고, 시카고-디트로이트 항공편을 예약하는 과정 내내 머릿속에는 기회 비용이 맴돌았다. 그 무렵 트럼프 대통령의 화제성 발언이 연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치솟는 달러 환율은 금전적 부담을 더욱 가중시켰다. 9일간 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사실은 가족과의 이별뿐 아니라 예기치 못한 상황 발생 시 대체 방안이 없다는 현실적 무게까지 안겨줬다.
그럼에도 공항 로비를 지나 여객기에 오르던 순간까지 지우지 못했던 불안은,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이륙하는 찰나 엔진 소리에 묻혀 말끔히 사라졌다. 복잡했던 생각들이 하나, 둘 씻겨 나가며 머릿속은 비워졌고, 새로운 배움에 온전히 집중할 준비가 갖춰졌다.
이후 시카고 도심에서 보낸 이틀간의 일정은 시차 적응과 긴 여정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보약과도 같았다. 진하고 묵직한 딥디쉬 피자 한 조각과 시원한 맥주 한잔은 무거웠던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줬으며, 어렵게 직관한 시카고 컵스 홈구장에서 터진 다섯 번의 홈런은 가슴을 뜨겁게 뛰게 했다. 낯선 땅에서 느끼는 전율과 환희는 출발 전 고민과 피로를 잊게 해 줬다.
이렇게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순간, 진정한 배움의 여정이 비로소 시작됐다.

떠나기 전 인천국제공항에서 (마음을 짐을 아직 다 내려 놓지 못한 듯 얼굴은 웃지만 왠지 무거운 듯 합니다.)

시카코
딥디시 피자와 맥주 한잔(피맥은 미국에서도 지친 몸을 웃게 만든다)
MSU에서의 매일: 학부생으로 돌아간 듯한 활기찬 일상
미시간 주립대학 캠퍼스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마치 학부 시절로 시간여행이라도 온 듯 가슴이 설렜다. 하루는 오전 6시 30분부터 7시 30분까지 제공되는 조식으로 시작됐다. 신선한 과일과 갓 구워낸 빵, 따끈한 커피가 준비된 식당에서 동료들과 담소를 나누며 하루를 준비하는 기쁨은 여느 호텔식 뷔페를 방불케 했다.
7시 45분, 셔틀버스를 기다리며 느껴지는 설렘은 오래전 등굣길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8시부터 정오까지 이어진 오전 수업에서는 교수님의 열정적인 강의와 실습이 쉼 없이 이어져, 마치 지식의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드는 듯한 생동감을 경험했다.
정오가 되면 캠퍼스 중앙의 넓은 학생식당으로 향했다. 한국 대학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메뉴가 갖춰진 뷔페식 식당에서 동료들과 웃으며 즐기는 점심 한 끼는 촘촘한 오전 강의를 거친 후 완벽한 휴식이 됐다.
오후 1시 30분부터 5시까지 이어진 수업을 마치고 강의실 문을 나설 때면, 하교 시간을 기다리던 학창 시절의 묘한 설렘이 다시금 되살아났다.
저녁 식사 후에는 당일 배운 내용을 함께 복습하는 리뷰 세션이 준비돼 있었다. 강의 중 놓쳤던 부분을 동료들과 공유하며 보완하는 시간은 부족함을 채워 주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강의와 식사, 리뷰 사이사이에는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작은 강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와 푸른 잔디밭, 그리고 광활한 농장 부지가 펼쳐져 있었다. 이른 아침 조식 전이나 식사 후 짬이 날 때면 러닝화를 신고 신선한 공기를 가르며 달리는 것이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자 활력소가 됐다.
무엇보다 값진 것은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동료 의료진과의 깊어진 유대감이었다. 강의실에서 토론하고, 식탁에서 웃으며 쌓은 시간은 앞으로 평생 걸어갈 한의사의 길에 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하교 시간(학창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하교길 미소 )

보약
같은 아침 런닝 시간, 함께한 동료들(광활하게 펼쳐진 캠퍼스를
뛰는 아침 런닝은 몸의 컨디션을 끌어 올려주는 보약이었다)
배움의 하이라이트: 깊이 있는 배움과 치료 술기에 대한 새로운 접근
Lisa Destafano 교수님의 강의는 단순한 시연이 아니라, “왜”와 “어떻게”를 모두 채워 주는 충만한 시간이었다. 특히 두개골 요법(cranial therapy)에서는 막연하게만 이해되던 CRI 평가와 각 두개골의 움직임이 발생학·해부학 이론과 더불어 “Nelson”으로 명명된 실제 사람 두개골 표본을 통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생생하게 와 닿았다. 덕분에 각 기법이 왜 그 손 위치와 힘 방향으로 적용되어야 하는지 명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통역을 맡아 주신 김원식 원장님이 발생학 강의 도입에 살짝 당황해하시던 모습도 하나의 재미였지만, 그만큼 교육의 깊이가 남달랐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Lisa 교수님이 실습 테이블을 일일이 순회하며 직접 손을 얹어 교정해 주실 때마다 이론이 손끝으로 곧장 전해져왔다. 그 열정과 정성 덕분에 “과연 내가 골반부 강의할 때 이정도로 헌신했을까?”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흉추·늑골 파트에서는 정규 과정보다 한층 심화된 접근법들이 소개됐다. △흉추의 기능장애와 연결된 골반요소를 평가하는 방법·Scouring Test·상지 외전검사 △기존의 2분절 평가를 넘어 3분절(ERS·FRS) 변위를 평가하는 기법 △T-L junction 변위의 MET 시 변위 지점에서 바로 치료를 시작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접근 등과 함께 특히 상부 흉추 병변 치료에서는 체간을 전방으로 병진 후 체간의 안정성을 확보한 후 경추의 과한 움직임 없이 MET를 진행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또한 ‘PA glide’로 facet 관절을 직접 열고 닫아주는 기법, 앙와위 고속·저진폭 교정을 통해 병변 facet을 조절하는 방법은 환자에게 부담을 줄이면서도 즉각적인 효과를 선사했다.
처음엔 “시작점이 달라?” 싶어 충격을 받았지만, 충분한 이론적 설명 후 직접 확인해 보니 오히려 몸에 무리가 덜 가는 더 안전한 방법이었다. 끊임없이 술기를 연구·보완하시는 Lisa 교수님의 모습은 깊은 울림과 함께 앞으로의 임상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줬다.

두개골기법의 시연(테이블
마다 직접 시연과 설명을 해주는 Lisa 교수님)

실습시간(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모든 집중을 쏟는 연수단원들)

열정이 끝난 시간, 그
자리를 채우는 환한 미소(수업이 종료 후 교수님과 같이. 모든
열정을 쏟은 자리에는 환한 미소가 피어 올랐습니다)
여정을 마무리하며: 열정이 모여 빚어낸 값진 시간
연수기간 내내 한 치의 나태함 없이 전 과정을 열정적으로 달려온 일행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매 수업마다 에너지 넘치는 토론과 실습에 몰입하시는 모습을 통해, 나 역시 더 깊이 배우고 성찰할 수 있었다.
수년에 걸쳐 다듬어 온 ‘척추신경추나의학회 MSU OMM Exchange Program’은 여러 차례 변화와 시행착오를 겪으며 발전해 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연수에서는 단 한순간도 부족함을 느낄 틈이 없었으며, 그 이면에 숨겨진 수고와 헌신이 얼마나 컸을지 감히 헤아리기조차 어려웠다.
매년 치열하게 헌신해 오신 모든 분들께 깊은 경의를 표한다. 특히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양회천 회장님과 양재원 총무님을 비롯한 모든 실무진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밤늦도록 한 치 흐트러짐 없이 리뷰 세션을 이끌어 주신 송경송 단장님, 그리고 수업 전후 거의 모든 순간을 AI를 능가하는 통역으로 메워 주신 김원식 원장님께도 깊은 경의를 표한다. 또한 두개골 파트를 A부터 Z까지 체계적으로 정리해 주시고, 강의 전반에 걸쳐 귀중한 통찰을 제공해 주신 ‘척추신경추나의학회 두개골분과위원회’에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처럼 뜨거운 열정과 헌신이 모여 척추신경추나의학회가 앞으로 더욱 빛나고 발전해 나갈 것임을 확신한다. 이번 연수에서 얻은 배움과 인연은 평생토록 소중한 자산으로 남을 것이며, 모두 수고 많으셨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MSU로 떠나기 전에는 여러 고민이 많았지만, 다녀온 지금 이 순간에는 벌써 내년의 연수를 기대하게 된다.

모든 수업 종료 후 다같이(무사히 잘 연수를 마친 기념. 몸은 피곤하지만, 미소는 진짜)

함께한 파트너 원장님과(연수기간
내내 마루타 역할을 공유한 파트너 박지훈원장님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