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원 원장
대구광역시 비엠한방내과한의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방내과 전문의인 이제원 비엠한방내과한의원장으로부터 한의사가 전공하는 내과학에 대해 들어본다. 이 원장은 내과학이란 단순히 몸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질환의 내면을 탐구하는 분야이며, 한의학의 근간이 곧 내과학이라면서, 한방내과적으로 환자를 어떻게 진료할 것인가의 해답을 제시해 나갈 예정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의학’은 인체의 구조와 기능을 조사하여 인체의 보건, 질병이나 상해의 치료 및 예방에 관한 방법과 기술을 연구하는 학문, 그리고 ‘한의학’은 중국에서 전래하여 우리나라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한 전통 의학으로 기술되어 있다. 한의사는 우리나라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한 의학을 이용하여 국민의 보건, 질병이나 상해의 치료 및 예방, 보건지도를 임무로 하는 의사라고 할 수 있다.
“두통, 혈압 상승, 구역 및 구토, 시야장애 증상으로 대학병원 응급실을 세 차례나 다녀왔습니다.”
50대 남성 환자가 내원했다. 약 열흘 전 퇴근길, 갑자기 두통 및 구역이 발생하여 가까운 병원으로 급히 내원했고, 수축기 혈압이 210mmHg 이상 측정돼 상급종합병원 응급실로 전원 됐다고 했다.
응급실에서 뇌 전산화 단층촬영(brain CT) 및 진단의학검사를 시행했으나 이상 소견은 발견되지 않았다(그림 1). 다행히 약물 투여 후 두통이 완화되고 혈압이 안정돼 귀가했다. 하지만 다음 날 점심 식사 후 구역 및 구토가 발생했고, 오후에는 약한 두통과 함께 구토를 한 번 더하여 다시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을 내원했다.
이번에는 뇌 자기공명영상(brain MRI), 뇌 자기공명혈관조영술(brain MRA) 검사를 시행했으나 이상 소견이 발견되지 않았다(그림 2, 3). 약물을 처방받아 귀가했으나, 약물을 복용하면 잠시 증상이 괜찮아졌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악화했다.
결국, 이틀 후 소화불량 및 구역 증상과 함께 눈이 침침하고 사물이 흐릿하게 보이는 시야장애까지 나타나 다시 응급실을 내원했다. 응급의학과에서 신경과와 협진을 했으나 이상 소견이 발견되지 않아 다음 날 새벽까지 응급실에 있다가 귀가했다.
유수의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받았지만 증상의 정확한 원인을 찾을 수 없었기에 환자는 다른 종합병원, 유명하다는 양방내과 의원 등을 전전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답답한 마음에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한의학, 한방내과의 문을 한 번 두드려 본 것이다.
내원 시 환자의 증상은 시야장애, 소화불량, 혈압상승, 어지럼이었다. 조금 더 자세한 병력청취와 검사를 시행했다. 그리고 최근 건강검진 결과, 상급종합병원에서 시행한 brain CT, MRI 및 MRA, 진단의학검사 결과와 함께 다른 병의원의 검사 기록 및 처방전 등을 의무기록을 통해 재검토했다.
환자는 적어도 5년 동안, 만성적인 소화불량으로 증상이 심할 때마다 양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발병 열흘 전에도 위식도 역류질환으로 진단받고, 란소프라졸을 처방받았다. 1년 반 전에 시행한 건강검진에서 중성지방 상승(172.0 mg/dL), 경한 지방간, 작은 간낭종 소견이 관찰됐고, 위내시경상 특이 소견은 없었다. 6개월 전 경추통증 때문에 진통제, 근이완제를 3개월간 복용한 적이 있었고, 발병 2주 전에 코로나19 예방접종(3차)을 받았었다.
현재 상급종합병원 외 다른 종합병원과 양방내과 의원에서 약물을 추가 처방받아 에날라프릴, 디멘히드리네이트, 라베프라졸, 테고프라잔, 테프레논, 모사프리드, 티아넵틴, 아세트아미노펜 등의 고혈압 치료제, 항히스타민제, 소화성궤양 치료제, 위장관 운동 조절제, 항우울제, 중추성진통제 등 다양한 범주의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다.
양의학적 관점으로는 상급종합병원에서도 정확한 원인을 찾을 수 없는 환자였기에 한의학적 이론을 통한 변증 진단에 초점을 맞췄다. 환자의 症狀 및 徵候와 함께 榮•淡紅한 舌質, 白•厚•燥한 舌苔, 沈•遲•虛•緩한 脈象 등을 바탕으로 心脾兩虛證으로 진단하고 歸脾湯에 聰明湯을 합한 처방으로 치료를 시작했다.
이와 함께 현재 복용 중인 약물 중에서 디멘히드리네이트와 티아넵틴만 복용하고 다른 약물은 모두 중단할 것을 권고했다. 남은 두 약물은 치료 경과를 살펴서 점진적 감량(tapering off)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약 복용과 함께 증상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이에 디멘히드리네이트와 티아넵틴도 서서히 중단하여 치료 8일 차부터는 歸脾湯 合 聰明湯 외 다른 약물은 전혀 사용하지 않아도 됐다. 치료 2주 후에는 소화 기능이 개선돼 식사량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시야장애, 어지러움 등의 증상도 현저히 호전됐다. 혈압도 정상 범위에서 잘 유지됐다. 결과적으로 치료 4개월 후 모든 증상이 호전됐으며, 오랫동안 지속됐던 소화불량 및 위식도 역류 증상도 크게 개선됐다.
한의학은 중국 중심의 동양 문화권에서 시작돼 우리나라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의학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의학의 대척점에서 다른 관점으로 국민의 보건 향상과 건강한 생활 확보를 위한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다. 내과 분야에서 한방내과와 양방내과가 있듯, 산부인과 분야에서는 한방부인과와 양방산부인과, 소아과 분야에서는 한방소아과와 양방소아청소년과 등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의사는 한의사대로 양의사는 양의사대로 각자의 이론과 관점에 따라 국민의 질병 치료 및 보건 향상을 위해 맡은 소임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