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하대학교 대학원 융합고고학과 주최로 지난 23일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남대문 호텔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한 한의사들의 삶'을 주제로 학술세미나가 개최된 가운데 첫번째 세션에서는 자생한방병원 설립자 신준식 박사와 자생의료재단 신민식 사회공헌위원장(잠실자생한방병원 병원장)의 숙조부 신홍균 선생과 선친 신광렬 선생의 독립운동사를 주제로 발표가 진행됐다.
이날 이계형 교수(국민대학교 교양대학 특임)는 ‘월남 유서를 통해 본 신광렬의 생애와 독립운동’이라는 주제의 발표를 통해 신광렬 선생의 일대기를 소개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신광렬 선생(독립운동 당시 ‘신호’)은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한의사로, 1926년 북청으로 이주해 한의학을 배웠다. 이후 1930년 북간도에서 광주학생운동 전개했으며, 간도에서 3·1절 11주년 만세시위에 참여하면서 당시 일본 조계지 철조망 앞에 서서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는 구호를 외치다 시위 후 주동자로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석방된 후 의사시험에 합격해 만주에 광생의원을 개업하고 비밀리에 부상 당한 독립운동가들의 치료를 도왔다. 이같은 독립운동을 펼친 신광렬 선생은 지난 15일 정부로부터 업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이 서훈됐다.
이와 관련 이계형 교수는 "신광렬 선생을 비롯해 당시 수많은 한의사들이 독립운동이라는 고난의 길을 걸으셨다는 점에서 후세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써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며 "앞으로 선현들의 독립정신을 이어받아 사회에 이바지하는 한의사로 보다 자리매김하는 것이 후학들이 해야 할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진 두 번째 강의는 복기대 교수(인하대학교 융합고고학과)가 ‘간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란 주제로 우리민족과 간도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설명했다.
중국에서 '연길도'라고 불리는 ‘간도(間島)’는 두만강 북쪽 일대 ‘북간도’를 의미하며 조선인들이 많이 살았던 땅으로, 1945년에 연변 조선족 자치구로 바뀌었다.
직접 간도를 답사했던 복 교수는 간도협정문과 정조실록 등을 근거로 제시하며, “간도는 청나라 땅이 아닌 조선 국경이었다”고 강조했다.
실제 정조실록 52권 정조 23권에 따르면 ‘서쪽으로 발해를 연결하고 슬해(동해의 북부)까지 우리땅’이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또한 고종실록에서는 ‘이토히로부미가 1909년 간도협정 후 슬해를 중국에 줬다’고 명시돼 있다.
복 교수는 “우리 민족이 살았던 땅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인의 중국침범으로 오해할 수 있어 그동안 주장하지 못했다”며 “우리나라 국경사는 냉정하게 재조명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세 번째 강의에서는 한태일 연구원(인하대학교 융합고고학과)이 ‘신홍균 한의사의 항일 독립운동 사상적 배경 연구’라는 주제의 논문에 대해 소개했다. 이 논문은 신광렬 선생의 숙부이자 독립군 군의관이었던 신홍균 선생의 독립운동사와 그 배경을 토대로 진행됐다.
논문에 따르면 신홍균 선생은 한의사로서 경술국치 직후 독립운동을 위해 가족을 데리고 만주로 망명했다. 이후 김중건 선생을 만나 '원종교'(元倧敎)에 가담해 독립운동단체인 '대진단'(大震團) 간부로 활동한 신홍균 선생은 교육 및 독립 운동에 매진했다.
특히 원종교도 중심의 항일조직 '진우회'(震友會)의 간부로 한국독립군의 군의관/지휘관으로 활동하며 ‘사도하자전투’, ‘동경성전투’ 등에 참가한 것은 물론 동만주 일대에서도 한국독립군 지휘관으로 활약하며 한중 반일회 및 동북항일연군과 연계해 항일투쟁을 지속했다.
이와 관련 한태일 연구원은 "이번 연구논문을 통해 원종교와 신홍균 선생의 사상적 기저에는 동학, 천도교, 원종주의가 공통된 요소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독립운동 활동도 이같은 사상의 바탕에서 연계되어진 것이라고 생각된다"며 "앞으로도 이같은 한의사들의 독립운동사들이 더욱 연구돼 나라를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한 많은 한의사들이 재조명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