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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20일 (토)

[시선나누기-14] 이것은 사람의 아이다

[시선나누기-14] 이것은 사람의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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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저온 보리한의원장


 

[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공연 현장에서 느낀 바를 에세이 형태로 쓴 ‘시선나누기’ 연재를 싣습니다. 문저온 보리한의원장은 자신의 시집 ‘치병소요록’(治病逍遙錄)을 연극으로 표현한 ‘생존신고요’, ‘모든 사람은 아프다’ 등의 공연에서 한의사가 자침하는 역할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한 장의 사진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열 마디 백 마디 말이 필요 없어지는 때가 있는데, 이 사진을 보았을 때가 그러하였다.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무대(?)의 뒷면을 죄다 노출 시켜 찍은 사진 속 장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 생겨난 무대와 객석과 관객의 차마 어찌할 수 없는 생생한 예술 현장을 그대로 전달한다. 

극단 동숭무대의 ‘고도’를 관람하고 난 뒤풀이에서였다. 말하자면 모든 것은 ‘고도’ 때문이었는데,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이제 예술의 한 원형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고도’는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손끝에서 놓아버릴 수는 없는 희미한 희망 같은 것이겠는데, 뜻도 형체도 없는 그것을, 막연히 올 것이라고만 믿는, 믿을 수밖에 없는 그것을 인류가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는 묘한 슬픔을 느끼게 한다. 


◇사라예보에서 고도를 기다리며…


그것의 상징은 깊고도 커서 여러 작품을 잉태하는 자궁과 같았는데, 철학자이자 예술가인 수잔 손택은 1993년 직접 보스니아 내전의 한복판으로 들어가 사라예보에서 연극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일명 ‘사라예보에서 고도를 기다리며’. 

극단 동숭무대는 수잔 손택의 실화를 바탕으로 다시 작품을 만들었는데, 전장 한복판에서 연극을 올리는(물론,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극단의 두 배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포성이 울리고 전기 공급이 끊기는 폐허의 공간에서 바닥 모를 허무와 싸우는 주인공은 그럼에도 상대역의 배우를 독려하며 연극을 계속해 나갈 것을 권한다. 공연이 끝나고 목을 매려는 그 앞에 실종되었던 아내가 임신한 몸으로 나타난다. 

전쟁으로 아이를 잃은 골 깊은 원망과 분노의 폭발 끝에 아내는 극장을 벗어나며 피 토하듯 외친다. ‘이것은 사람의 아이다!’ ‘이것은 사람의 아이다!’

적군에게 강간을 당하고 아이를 배고 자살을 기도하지만 그것마저 실패해서 생명의 버둥거림을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는 여자의 외침. 비유인 듯하지만 사실의 적시이기도 한 말. 관객이 듣기에 그럴싸한 말장난이 될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쓴 말. 여성에게는 더욱 예민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말. 그러나 배우는 깊은 내공으로 작품 속에 누적된 고뇌와 시간을 축약해서 그 대사를 토해낸다. 

그 말은 얼핏 ‘나는 사람이다!’라고 외치는 소리 같다. ‘우리는 사람이다!’라고 외치는 소리 같다. ‘사람’이라는 단어가 생경하게 가슴을 울린다. 사람은 무엇인가? 죽음과 삶을 양손에 그러쥔 채 전쟁터를 기어서 살아남은 자가 외칠 수 있는 숭고한 경지. 여자가 스스로의 목숨을 부지할 변명으로써 저 말을 외친다 한들, 누가 그 말에 반박할 것인가?

 

문저온2.jpg

◇예술이란, 전쟁이란 무엇인가?


폐허에서도 작품을 올리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사진 속 황량한 돌 더미 사이에서 판자 하나로 무대를 만들고 아이들에게 인형극을 보여주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그렇게 하찮은 조건에서도 태어나고야 마는 예술이란 무엇인가? 

굶주림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아이들이 보고 들어야 할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평화란 무엇인가? 아무 일 없음이란 무엇인가? 어른이란 무엇인가? 사람이란 무엇인가?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올해 밴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우리나라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후보로 언급되던 드미트로 쵸니는 동메달을 수상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사람이다. 커튼콜에서 우크라이나의 상징인 해바라기 꽃다발을 받아 안았다. 그는 ‘이 전쟁에는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은메달은 안나 게니쉬네에게 돌아갔다. 러시아 출신인 그는 ‘우리는 국제적인 음악가들이고, 서로를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기자회견에서 조국의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분명히 했다.

시상식 무대에서는 우크라이나 출신이자 2013년 우승자인 바딤 콜로덴코가 엄숙하고도 절절하게 우크라이나 국가를 연주했다. 


◇사람들은 포탄을 피해 몸을 숨긴 채…


콩쿠르 영상에는 무수한 댓글이 달렸는데, 누군가 이렇게 썼다. ‘1위:휴전 국가. 2,3위:전쟁 국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전쟁이란 무엇인가? 

사라예보에서는 1992년 5월 27일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시민들 22명이 포탄에 목숨을 잃고 100여 명이 다치는 일이 발생했다. 

사라예보 필하모닉 첼로 연주자 베드란 스마일로비치는 22명의 사람들을 기억하며 22일 동안 그곳에 나와 첼로를 연주했다. 사람들은 포탄을 피해 몸을 숨긴 채 그가 연주하는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를 들었다. 

영국의 작곡가 데이비드 와일드는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라는 무반주 첼로곡을 작곡했다. 첼리스트 요요마는 1994년 맨체스터 국제 첼로 페스티벌에서 그 곡을 연주했다. 그리고 객석에 있던 스마일로비치와 깊게 포옹했다. 캐나다 출신 소설가 스티븐 갤러웨이는 사라예보의 폐허에서 아다지오를 연주한 스마일로비치에 관한 기사를 읽은 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라는 소설을 집필했다.

 

2019년 3월 27일 시리아 북서부 사라키브에서 아이들이 폐허가 된 건물 잔해에 앉아 인형극을 보고 있다. 이 공연은 시리아 예술가 왈리드 아부 라쉬드가 2013년부터 시리아 난민촌을 돌며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인형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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