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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 좀 잘 죽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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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 좀 잘 죽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말기 암 환자 만나며 ‘잘 죽는 것’ 무엇일까 고민 시작
한의학 웰빙 & 웰다잉 1

김은혜 (1).jpg

김은혜 임상교수

(강동경희대한방병원)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 주] 화가 베이먼은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죽는다고 믿던 이웃을 위해 나뭇가지에 직접 잎새를 그렸다. 이웃은 이 잎새를 보며 생의 의지를 다잡았다. 오 헨리의 소설 ‘마지막 잎새’ 이야기다. 본란에서는 죽음을 눈앞에 둔 말기 암 환자에게 한의사로서 희망을 주고자 한 김은혜 임상교수(강동경희대한방병원)의 원고를 싣는다.


말기 암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서면 항상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곤 했다. 환자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며 “그냥 집에 가자”라는 말만 반복하면서 가족의 부탁에 못내 어쩔 수 없이 병원에 온 듯 행동한다.

 

그럼에도 보호자가 내 가운을 붙잡으며 뭐라도 할 게 없겠느냐고 물어서 내가 입을 떼려 하면, 순간 환자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며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과연 저 사람이 정말로 그냥 집에 갈 준비가, 다르게 말하면, 다가오고 있는 본인의 죽음에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내가 건넬 수 있는 말 또한 어떤 상황에서든 비슷하다. 지금부터는 더 오래 살 수 있게 하는 ‘치료’는 무의미하며 가시기 전까지 고통 없이 편안하게 계실 수 있도록 ‘관리’를 받으셔야 하는 시기임을 설명하는 말들이다. 혹여 이 사람들의 기저 속 두려움을 너무 잔인하게 들쑤시게 될까 염려하며 최대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지만, 내 말이 끝나면 보호자의 눈에는 어김없이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나의 대답에 환자는 한숨을 한 번 푹 쉬고는 혼자서 진료실을 벗어난다. 그러고 나서야 보호자는 그간 억누르고 있던 눈물을 쏟아내며 말한다. “사실 이번 달을 넘기지 못 할 거라는 얘기를 듣고 왔다고, 근데 본인한테는 아직 말을 못 전하고 벼랑 끝에 선 마음으로 나를 찾아와 봤다.”

 

한의사라서 잘 모르시나 본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의학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이 병에 대해, 이 병의 잔인함에 대해 모르지 않을 분들이 한의사인 내가 당신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길 원하는 건지. 혼자서는 생리식염수 하나 처방하지 못하는 체제 속에서 이번 달도 넘기기 힘든 상태의 환자를 일부러 모셔 와서 나에게 어떤 말을 듣고 싶은 건지.

 

어떤 분에게는 무작정 희망을 가지라는 투의 말을 건네 보았었다. 그러자 내 응원을 듣고 계시던 그 분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더니 “한의사라서 잘 모르시나 본데…”로 시작하는 문장과 함께 한탄이 들려왔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사람한테 의사 가운을 입은 양반이 건넬 말은 아니지 않느냐는 게 핵심이었다.

 

또 다른 분에게는 정말 사실에만 근거해서 암의 상태를 말해주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완화의료이며 우리 한방병원에서도 관리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덧붙였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며 잠자코 내 설명을 듣고 있던 환자와 보호자들은 확실하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호스피스(hospice) 전문 의료기관으로 전원했다.

 

이렇게 시행착오는 이어졌다. 나름대로 임종까지의 과정에서 정확하고 믿음직한 길잡이의 역할을 하면서도 위로를 줄 수 있는 의료진이 되고 싶은데, 그들의 수요와 내 공급의 표현에 대한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이 몇 달 지나지 않아 한 환자의 가르침 덕에 그들의 표현 속 숨은 뜻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떻게 죽는 게 잘 죽는 건지 알 수 없어  

 

오래 알고 지내던 유방암 환자였다. 성격이 무던한 사람이어서 항암치료가 많이 힘들 텐데도 꾸역꾸역 참아내며 겉으로 티를 내지 않으려 하는 것이 안쓰러웠다. 보호자도 없이 항상 혼자 병원에 다녔던 환자였다.

 

몇 년간의 투병 생활 중 잠깐 암이 검사 상에 보이지 않는다는 소견을 들었을 때도 나와 단 둘이서 조촐한 축하 파티를 보냈었다. 끝없는 희망과 두려움의 싸움을 반복하던 어느 날, 더 이상 시도할 수 있는 표준치료가 없으며 남은 여명은 평균 1년 정도라는 소견을 들은 그 날, 환자가 나를 찾아와서 말했다.

 

“선생님, 저 좀 잘 죽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의료인이 아닌 그 누구더라도 몇 년간 알고 지내던 사람이 건네는 그 부탁 아닌 부탁을 가벼이 여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지난 시간 동안 내 진료실을 거쳐 간 말기 암 환자와 보호자들 역시 궁극적으로 나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동일했음을 깨달았다.

 

“어떻게 죽는 게 잘 죽는 건지 알 수 없어서 죽음이 두렵다. 우리보다는 경험이 많은 당신이 도와 달라.”

 

잘 죽는다는 것. 누군가는 신체적 고통 없이 죽는 것이 잘 죽는 것이라고 하였고, 또 누군가는 가족들에게 더 이상 짐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고, 또 다른 이는 당신이 세상을 떠나도 남은 이들이 일상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잘 죽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분들을 옆에서 지켜보다 보니, 일상을 지키기 위해 일생에서 포기한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잘 죽고 싶다는 소망을 더 간절하게 품곤 했다.

 

잘 죽는다는 것의 구체적인 의미는 모두가 다르겠지만, 나는 암 환자들이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두려움을 호소할 때면 이런 말을 전하곤 한다. ‘늦지 않았으니, 일생을 돌이켜 보았을 때 그 때 못 해본 게 지금까지 아쉬움으로 남은 기억이 있다면 지금 하시라고. 그것이 잘 죽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대부분은 이런 의미를 담은 말을 전하면 각자의 추억 속에 새겨져 있던 결핍들을 채우기 위한 첫 걸음을 잘 떼곤 했다.

 

그것은 가족일 때도 있었고, 돈일 때도 있었으며, 못 다한 여가 생활이기도 했고, 어릴 적 어머니가 사주셨던 그 때 그 곳의 간식을 다시 먹어보는 것이기도 했다. 그 여정의 시작에서 한의사인 내가 할 일은 적어도 육체적 고통 때문에 길이 막히는 일은 없도록 통증을 조절해주고 삶의 질을 보존해주는 치료를 해주는 것이었다.

 

김은혜 (2).jpg

 

죄책감을 가지지 마세요  

 

환자의 진정한 ‘웰다잉’(well-dying)을 위해서는 본인의 준비만큼 중요한 것이 보호자의 준비이기도 하다. 다양한 가정사가 있지만 일반적인 보호자를 떠올렸을 때, 그들이 잘 죽기 위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의 옆에서 준비해야 하는 것은 단 하나인 것 같다.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것.’

 

가족의 한 구성원이 암이라는 병으로 인해 예상보다 빠른 임종을 맞이하게 되면 그 주변에서 가지는 죄책감은 생각보다도 더 컸었다. 간병기간이 길어지면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육체적·감정적 피로감으로 또 다른 면에서의 죄책감마저 더 커지는 걸 많이 보아왔다.

 

그 죄책감이 환자 본인에게는 위로로 다가갈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내가 본 암 환자들 중 그 누구도 남은 이들이 본인으로 인해 느끼는 죄책감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투병하는 누군가의 보호자로 고군분투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죄책감을 가지지 말고 남은 이로서 한 사람이 부재한 일상을 적응해나가는 준비를 잘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잘 죽는 것은 결국 잘 사는 것  

 

세간에 웰다잉에 대한 강의가 정말 많지만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로 통일된다. 잘 죽기 위한 준비는 결국 잘 사는 것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결론이 다소 모호하나 개인적으로 나는 일상에서의 크고 작은 고난들은 긍정적으로 해소해 나가는 습관을 연습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본인만의 긍정적인 해소법이 몸에 배어있는 암 환자는 웰다잉의 여정을 보다 담담히 걸어 나갔다. 미리 경험할 수가 없어서 더 두려운 ‘죽음’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게 해주신 모든 나의 환자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길고 짧은 글들을 거듭 적어나가며 그들의 가르침을 끊임없이 기록해 나가는 것이 결국은 그 분들을 추억하며 안녕을 기원하기 위함임을 하늘에서도 알고 계실 거라고 믿는다. 어떤 고난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마음에 새기면 별 일이 아니게 될 거라는 어느 환자분의 말을 마지막으로 빌리며 글을 마친다.

김은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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