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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30일 (화)

인류세의 한의학<9>

인류세의 한의학<9>

자연과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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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한의원의 인류학 : 몸-마음-자연을 연결하는 사유와 치유> 저자

 

말은 강력하다. 자연(自然)이 자연(Nature)이 되고부터(<인류세의 한의학 8> “자연(自然)과 자연(Nature)” 참조), 인간과 자연의 거리를 좁히는 것은 지난한 일이 되었다. “자연”이라고 말할 때 자연은 이미 저만큼 떨어져 있다. 자연에 가까이 가려고 하면 자연은 또 저만큼 물러난다. TV프로 <나는 자연인이다>에서도 자연과 인간의 거리는 여전하다. “자연” 속에서 나름의 “문화” 생활을 하는 숲속 거주자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번역어 자연이 일상어가 되고부터, 우리는 “자연”을 말하며 자연과 인간의 분리를 실천한다. 자연이라는 말은 강력하다. 자연이라는 말을 통해 이미 인간사회와 분리된 자연이 우리의 관념 속에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말의 강력함은 이것만이 다가 아니다. 말의 강력함은 그 이상이다.


말뿐이지 않은 말

말이 강력한 것은, 말이 말뿐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이 예시하듯이, 말만하는 것이 아니라, 말은 우리의 생각과 관념의 경향성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또한, 말이 강력한 것은 우리의 행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말은 말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말은 생각이고, 또한 말은 바로 우리의 행위를 추동하고, 어떤 방향으로 틀을 잡는다.

인공, 인위적인 것의 대표적 예시인 “도시”라는 말은, 자연과 떨어진 인간사회의 영역으로 이해된다. “도시”는 자연과 인간을 떨어뜨리는 생각과 관념을 만들어 내면서, 또한 그 관념을 실천한 도시 속에 우리는 산다. 도시를 건설하고 도시에 살면서, “도시”라는 말을 실천한다. 그럼으로써 도시와 분리된 자연은 말뿐이지 않고, 실재가 된다.

이제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은 도시에 산다. 군읍면리마을과 시구동통반의 구분은 예전 같지 않다. 특별시, 광역시, 특례시, 중소도시 등 다양한 도시의 분류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은 더 많은, 더 넓은 도시가 건설되고 있는 도시화 진행형의 현장이다. 가속화 하는 농촌과 지방의 인구 감소는 대한민국을 사람이 있는 도시와 사람이 없는 비도시로 나누려 하고 있다.

“도시(都市)”는 글자 그대로 하면, 정치의 의미를 가진 도읍[都]과 경제의 의미의 시장[市]이 합쳐져 만들어진 말이지만,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근대 이후의 도시 개념은 자연과 분리된 인위, 인공의 영역의 의미가 두드러진다. 도시란 말이 자연과 분리되면서부터 우리는 더 열심히 자연과 분리된 도시를 건설한다. 아파트 30만호의 신도시가 건설되고, 행정기능을 위한 신도시가 또 건설된다.

도시에 공원도 있지만, 자연과 인간의 분리가 무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원과 비공원이 구획되면서 그 분리는 강화된다. 공원은 자연을 재현하려 하지만, 도시의 일부로서의 재현이다. 호수가 아름답게 펼쳐진 도시의 공원도 있지만, 그 호수는 곧잘 “인공”호다. 공원뿐만 아니라, 도시에는 곳곳에 자연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 사이 분리의 표식이 있다. 가로수에도 테두리가 쳐져있어서 그 두 영역을 경계짓는다.

어떤 지자체에서는, 가로수의 냄새나는 열매가 인간의 영역에 떨어지지 않게 망을 설치하기도 한다. 자연과 분리되어 있고, 또한 그 속에 그 분할의 프렉탈들이 도처에 있는 장소가 도시다. 이 도시를 건설하며 우리는 도시라는 말을, 개념을 실천한다. 그리고 그 말이 실재화된 도시에서 우리는 일상을 산다. 우리 몸이 그 말을 산다(물론, 필자가 이 글을 통해 도시의 공원과 가로수가 불필요하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공간 배치와 표식들이 분리의 관념과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할 뿐이다. 말과 관념과 행위가 연결되어 있음을 도시의 예시를 통해 말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말은 실재적이고, 물질적이다.1) 자연과 인간 사이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자연과 인간의 연결보다는 분리를 강조하는 자연 개념은 그 차이와 다르다. 자연과 인간의 분리를 규정하는 자연 개념은 관계를 어렵게 만든다. 기후위기에 관한 많은 논자들이 이 분리의 자연 개념에 주목하고 있다.

분리를 의미화하는 언어가 지금의 기후위기의 기저에 놓여 있다. 인간 따로 자연 따로가 여전히 건재한 상황에서 이 위기의 극복도 지난할 수밖에 없다. 말은 말뿐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이 가진 의미화의 힘과 실재화의 힘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가, 그 극복을 위한 작지만 중요한 시작일 수 있다. “자연”과 “인간-몸”에 대해 논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이다. 도시에 몸이 기거하면서 자연과 멀어지고, 분리의 자연 개념이 실재화하는 데에는 의료도 연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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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의료, 몸

자연이라는 말은 실재적이고 물질적이어서, 거기에 자연과 인간사회의 배치를 재구성하고 유지하기 위한 인간의 활동이 관계된다. 개념은 인간의 활동과 장소에 영향을 주고 그 활동과 장소가 만드는 세계가 다시 자연과 인간이 나누어진 땅을 만든다. 이 말과 개념과 행위의 관계에 의료가 연결되어 있다. 의료에서 다루는 몸이 이미 자연의 개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의료가 구축하는 몸과 자연의 의미를 가시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대처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이 “분리”이다. 팬데믹 기간 동안 우리는 “격리”라는 말을 통해 “분리”를 의미화하고 실재화 해왔다.

주지하다시피, 지금의 주된 방역의 방법론은 바이러스와 인간의 분리이다. 여기에는 자연(바이러스)과 인간의 분리의 관념이 기저에 놓여 있다. 그 위에서 방역의 분리는 다양하게 실천된다. 먼저 가시적인 것은 국경과 국경의 분리이다.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왕래가 많았었지만,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국경이라는 분명한 선을 우리는 다시 인지하고 있다. 한국은 국경이 폐쇄되지 않은 매우 드문 경우이지만, 코로나 이후 우리가 가지 못한 나라들이 이 분리를 가시화한다. 국경 폐쇄뿐만 아니라 락다운, 자가격리 등이 이러한 분리의 개념 위에 있고, 그 개념 위에서 실천된다. PCR 검사는 자연의 영역에 있는 바이러스를 확인하여 분리의 대상과 범위를 규정하는 대표적 방식이다.

이 글은 방역의 방법론을 비판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이 글이 도시의 공원과 가로수를 비판할 목적이 없는 것과 같다. 하지만 격리의 관념과 행위들이 만들어 내는 분리의 실재화에 대해, 그 분절의 서사가 구축하는 몸의 이해와 자연 개념에 대해 말할 필요는 있다.

이러한 말을 해야 하는 것은 그 분리가 역사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자연과 도시의 분리와 자연과 몸의 분리는 연결되어 있다. 유럽의 근대 도시는 감염병 방역의 개념 위에서 건설되었다. 도시방역은, 근대 이후 도시의 역사에 있어 핵심적 부분이다. 유럽의 도시방역의 역사에 크게 영향을 미친 질병은 한센병과 흑사병이었다.2)

도시와 비도시를 나누고, 비감염과 감염의 영역을 나누려고 한 것은 근대 도시의 개념과 실재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자연과 몸의 관념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의료가 연결되어 있다. 도시-인간의 영역이 한편에 자연-비인간(바이러스, 박테리아와 같은)의 영역이 한편을 차지하는 도식이 의료를 통해 재규정되고, 실천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금 격리가 방역의 동의어로 사용되는 것도 역사적 현상이다. 격리는 인위적 분리 단절을 통해 접촉불가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방역은 감염병을 막는다는 의미다. 이 두 말의 의미가 일치하지 않는다. “방역”이 훨씬 포괄적이다. 하지만 지금의 방역 방법론에서 방역과 격리는 동의어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구축된 의미의 축소이고, 그 위에서 우리는 자연과 몸을 개념화하고, 행동하고, 실재화한다.

동아시아의 입장에서 이러한 의미화와 실재화는 더더욱 역사적이다. 근대적 자연(Nature), 근대적 도시, 위생 개념은 비슷한 시기에 한꺼번에 동아시아로 들어온다. 그와 함께 분리의 개념과 관념도 유입된다. 이들 개념과 행위와 장소들이 모여 우리를 지금의 몸-존재로 만들고 있다. 견고한 분리의 관념 속에서 도시에 살고, 격리도하고, 캠핑도 간다.

그 행위들을 통해, 또한 인간-몸과 떨어진 자연 개념은 실재화된다. 이 분리의 개념과 장소와 존재들의 세계에서 자연을 다시 연결의 자연으로 돌리는 것은 지난한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지난함을 넘어서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 지금의 기후위기다. 희망의 싹이 보이는 것은, 하나가 아닌 복수의 자연들에 대한 논의가 최근 가시적으로 대두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 연재글에서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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