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연구실의 서가에 오랫동안 꽂혀 있었던 『靈素鍼灸經』이란 제목을 발견했다. 뒤에 적힌 소유자의 이름을 보니 故임일규 선배님(전 강원도한의사회 회장)께서 소장하시던 것을 필자에게 10여년 전 기증한 것이었다.
표지에 東隱先生著로 되어 있고 제목 위에 작은 글씨로 “精解圖入”이라고 적혀 있다. 아마도 『精解圖入 靈素鍼灸經』이 원래 이 책 제목으로 삼고 있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 옆에는 부제처럼 “經絡經穴, 補瀉手法, 臨床 各篇”이라고 책제목 오른편에 더 작은 글씨로 덧붙여져 있다. 저자로 적혀 있는 東隱先生은 한때 경희대 침구학교실에 근무했던 權寧俊 敎授의 호이다.
한편 이 책의 앞에는 鳳岡 田光玉의 자서가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무릇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진실로 침구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옛 선배들이 이로부터 각 시대에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신묘한 방법은 보사와 수기법의 잘함과 못함에 달려 있는 것이니, 즉 의학을 어찌 급히 강구하지 않을 것인가. 그러므로 내가 나의 보잘 것 없는 학식으로 하나의 책을 만들어 영추와 소문의 보사법과 관침 및 온갖 학자들의 경험된 보사수법을 통털어 넣어서 영소침구경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것으로서 후학들이 임상에서 시험해보게 할 것이니, 오직 이를 잘 활용하는 사람들이 빠진 것을 보충하는데에 활용하기만을 바랄 뿐이다.”(甲申 正月 20日에 月山醫院에서 작성하였다고 쓰여 있음)
여기에 등장하는 ‘鳳岡 田光玉’은 근현대 한의학에서 손꼽히는 한의학자이다. 田光玉(1871∼1945)은 諸醫書에 博通한 한의학 교육자이다. 그는 황해도 태생으로 京城에서 醫生으로 활동하면서 한의학을 살리기 위한 활동을 전개한 인물이었다.
이종형의 연구에 의하면, 田光玉은 1904년 洪哲普의 노력과 고종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한의과대학 同濟醫學校의 敎授로 金永勳과 함께 선발되어 한의학 교육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학교는 헤이그밀사사건을 트집잡아 日帝에 의해 고종이 퇴위되게 됨에 따라 개교 후 3년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모처럼의 한의학 교육의 기회가 상실되게 된 셈이었다. 이에 田光玉은 1905년부터 결성돼 한의학의 부흥에 노력한 八家一志會에서 趙炳瑾, 金永勳(서울), 朴爀東(江原), 張起學(平安), 李喜豊(忠淸), 徐丙琳(大邱), 李炳厚(東萊) 등과 함께 회원으로 참여해 힘을 모아 사설강습소를 만들어 한의학 교육의 명맥을 이어가고자 했다.
한편 1956년 작성돼 이 책의 앞에 있는 동양의약대학(경희대 한의대 전신)의 金長憲 敎授의 序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발견하게 된다.
“故 鳳岡 田光玉 先生의 門人이며 나의 오래 전부터 동지인 東隱 權寧俊 先生이 나를 찾아와서 선생의 원저 靈素鍼灸의 釋義를 뵈이며 그 序를 講하매 나는 실로 感激不堪하는 바 있었다. 하나는 한의학 중 秘中의 秘書가 현대적으로 闡明된다는 점에서 그렇고, 하나는 鳳岡 田光玉 先生은 나의 가장 敬慕하는 恩師인 한 점에서이다. 지금으로부터 이십년 전 나는 선생으로 師事할 기회를 갖었든 것이니, 나의 일생을 통하여 잊지 못할 감격의 시절이었던 것이다.
선생은 한의학계의 거성으로 京鄕에 그의 명성이 높았고 더욱이 鍼灸에 있어서는 당대 제일자로 그 조예가 깊었으니 世人이 活佛로 敬仰하였던 것이다. 선생은 능히 안즐뱅이를 걷게 하였고 꼽새를 허리펴게 하였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며 당시 日人의 著名한 醫師들을 驚愕케 했음은 우리들이 目睹한 바이며, 유명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鍼灸의 오랜 秘法이 先生을 통하여 現世의 暗黑에 다시 큰 濟世의 炬火로 나타난 感이 있었던 것이다.”
『靈素鍼灸經』은 전광옥 선생이 평생동안 연구한 침구학의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그의 비법과 현대적인 도해와 해부학적 면모를 첨가하여 만든 현대인들의 활용도를 극대화시킨 침구학 전문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