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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이 있는 5월이면…“雲溪 김정제 학장님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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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이 있는 5월이면…“雲溪 김정제 학장님이 그립다”

김정제1(김병운 썸네일).jpg

김병운 

유성당한의원장(前 경희대 한의대학장)


스승의 날이 있는 5월이면 여러 스승님들이 떠오르지만, 그 중에서도 가신지 33주년이 지난 운계 김정제 선생님이 더욱 그립다. 돌이켜 60년 전 내가 학생 때 의료법 14조 2항의 재개정을 위해 애태울 때 김정제 회장님과의 만남과 간절하고 절박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 때 의료법 재개정과 폐교된 학교의 재건을 위해 한의계가 2년여 동안 많은 노력을 계속 했지만 달성치 못해 1963년 9월 중순 한의학과 전학생이 ‘의료법 재개정 촉구 단식투쟁’을 결행했다. 단식 2일째 보사부장관이 내교해 국립의대에 편입시켜 주겠다던 제안도 거절하고 계속 단식 중 부산에 콜레라가 번지면서 강제 해산됐다. 14조 2항은 한의사의 면허 취득 조항으로 국립 의과대학에서 한의학을 전공 이수한 자만이 한의사 면허 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했고, 국립 의대에는 한의학과 설치가 없었으므로 결국은 한의사의 양성을 폐지시키려는 양의학계의 작용이 군사정권의 최고 회의에 반영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었다.

 

김정제2.jpg

 

 ‘국립’ 자구 수정해 개정안 통과  

맥이 풀려 지내던 중 한의사협회장에 새로 추대된 김정제 회장님을 혹시나 하고 성제국한의원으로 찾아가 뵈었다. 진료 중이시던 김 회장님은 “학생대표가 무슨 용건인가”하고 물으시고 단식 후의 소식과 어떤 해결책이 있는지 물으셨다. 나는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의료법 14조2항 중 국립이란 자구를 삭제하는 재개정안이 통과돼야만 한의과대학이 재인가될 수 있고 문사위 소관이며 홍종철 장군이 상임위원장인걸 말씀드렸더니, 홍 장군과는 특별한 친분이 있으니 상의해 보겠다며 1주일 후 다시 오라고 하셨다.

 

1주일 후 김 회장님은 홍 장군댁을 방문해 상담을 했고, 홍 장군이 난처해 하는 속내와 뭐라도 해보겠다는 의지를 은연 중에 느꼈으니 일단은 기다려 보자면서 다시 한달 후에 오라 하셨다. 반신반의 기다리다 한달 후 다시 찾아 뵈었더니 가슴뛰는 소식을 들려 주셨다. 문사분과위에서 ‘국립’이라는 자구를 삭제한 채 개정안을 심의 통과시켰고, 본회의에 상정했으니 며칠 더 기다려 보자 하셨다. 그 후 며칠이 지나 본회의도 통과되고 1963년 12월 16일 문교부에서 시설 보안을 조건으로 6년제 동양의과대학 인가를 결정했다.


 ‘동의보감’ 전체 내용을 암송  

정말 꿈같은 쾌거였고, 눈물 겹도록 고마웠다. 그렇게 2년여를 한의학계가 애태워도 불가했던 일들이 단 2개월만에 법을 고치게 하고, 1개월만에 대학 인가를 받아낸 기적이 이뤄진 것이다. 없어진다고 누구나 생각했던 한의과대학이 기적처럼 살아났고, 나를 포함해 모든 한의계가 이 때의 이 분에게 받은 은혜는 적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는 김 회장님이 동양의과대학과 경희대학교를 병합할 때의 일이다. 재단을 합병하고 부속 한의원 원장으로 오전만 근무하고 남는 시간은 임상강의로 동의보감 강의를 해보겠다는 허락을 받아 내었다. 대학 강의는 해본 적이 없다며 절레절레 사양하시는 것을 겨우겨우 우겨서 시작한 강의였지만, 동의보감 25권 전권을 순수한 암송으로만 했던 그 강의는 신기(神技), 그 자체였다. 그 분의 강의는 1966년 4월부터 1967년 11월 말까지 2년간 이어졌다. 아마 동의보감을 편찬하신 허준 선생도 그 강의 모습을 보셨다면 깜짝 놀라셨으리라! 비록 자신의 저서일지라도 누가 그 많은 내용 전부를 암송해 낼 수 있을까?

 

우리는 김정제 교수님을 허준 선생 이상으로 추앙했다. 2년만의 강의만으론 교수님의 의술을 다 전수받을 수 없어서 새로운 한의학 의서 저술을 간곡히 부탁드렸다. ‘진료요감’의 간행도 정작 당신은 의불저서(醫不著書)라는 선인의 가르침이 엄연한데 본인이 어떻게 책을 쓰느냐며 극구 사양하느라 7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그렇게 어렵게 나온 진료요감은 한글로 된 최초의 종합 한의서로 동의보감과 역대 중의학서를 참조 고증했고, 평생 진료 환자의 수증과 변증에 따른 효험이 검증된 130여 운계방을 등재하셨다. 또한 약물편에 각 약물의 용량 폭을 크게 늘려 당귀 1회 용량을 50∼60g, 천궁은 20∼40g, 인진을 3∼15g, 인삼을 75∼110g 등 약물의 효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어느 정도까지 쓸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지금의 임상가들도 참고할 만한 자료라고 확신한다. 


 경희대 한방병원 시설 확장

세 번째는 경희한의대 간계내과 교수 시절에 그 분을 모실 때의 일이다. 김정제 원장님은 조영식 총장님으로부터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확충을 위해 김정제 원장님을 한의대 초대학장으로 모셨고, 진료는 간계내과 소속이었다. 초대 학장과 부속한방병원장 부임 후 한방병원을 크게 신축해 입원 병실과 외래진료실을 확장시켰으며, 엑기스제제 시설을 완성했다. 그때 나는 황달을 수반한 B형간염 환자에 인진·택사 각 15g씩을 증량해 1일 3회씩 복용시켜 현대의학적 검진 결과 뚜렷한 개선 효과를 얻었고, 황달이 아닌 B형간염인 경우에도 같이 투여해 획기적인 결과를 얻어 生肝建脾湯을 만들었는데, 당시 김정제 학장님께서 이 처방을 ‘생간건비탕’이라고 이름 지어주시면서, “황달이 아닌데 인진을 써도 되겠냐?”고 걱정해 주시던 말씀이 새삼 떠오른다

 

김정제3.JPG

 

 “늘 고맙고, 늘 죄송하다” 

좋은 일이든 싫은 일이든 내가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이제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적고 좋은 일이든 싫은 일이든 내가 영향을 준 사람은 손으로 셀 수 없을 만큼의 나이가 되어서도 나는 김정제 학장님이 늘 생각난다. 늘 고맙고, 늘 죄송하고, 늘 부끄럽다. 

 

돌이켜 보니 雲溪 김정제 학장님은 나의 학생 때부터 스승이셨고, 교수 시절의 스승이셨으며, 그 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나 혼자 남았을 때도 스승이셨다. 아마도 내가 생을 다하는 순간까지 그 분은 나의 영원한 스승이실 것이다. .

김병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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