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은 세명대 한의학과 본과 3학년
본란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장기화 상황에서도 학업을 이어가고 있는 전국한의과대학·한의학전문대학원학생회연합 소속 한의대 학생들에게 코로나19 상황에서의 학업 및 대학 생활의 이야기를 듣는 ‘한의대에 안부를 묻다’를 게재한다.
지난 2년 동안의 비대면수업은 20대 초중반의 터닝포인트였다. 코로나 이전의 예과 생활은 평일엔 학교에 있고 금요일 밤에 본가인 서울에 돌아와서 일요일 저녁에 다시 학교로 가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어릴 때부터 작가를 꿈꿨고 나만의 경험을 글로 옮기면서 좋은 글의 바탕은 풍부한 경험임을 깨달았다.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하고 후회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할 수 있는 데도 하지 않는다면 후회가 필연적으로 찾아옴을 잘 알고 있었기에 대학교에 와서도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흥미 있는 프로그램이 열리는 장소는 대부분 수도권이어서 답답함을 느꼈다. 나름대로 토요일을 이용해 독서토론 모임인 트레바리에 참여했다. 방학에는 공동 출판 프로젝트로 소설을 내기도 했고 경제금융캠프 등 대외활동에도 참여했다.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했다. 본과에 가면 개인 시간이 훨씬 줄어든다는 선배들의 말을 듣고, 예과 시절을 날려버린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 셈이다. 그럼에도 몰려드는 아쉬움은 막을 수 없었다.
본과 진입 직전에도 대외활동 모음 사이트를 들락날락거렸다. 대기업에서 진행하는 유명한 대외활동이 눈에 밟혔다.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서 알아가는 일을 더 하고 싶었다. 아직 한의학을 진정한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일반 대학생들보다 식견이 좁아지면 안 된다는 강박도 있었다. 하지만 세명대학교의 본과 1학년은 본과 3학년과 더불어 힘든 학년으로 손꼽힌다. 해부학 실습은 물론이고 각 과목 수시 고사 일정들이 빡빡하다.
무조건 기숙사에 합격해야 하는 상황이라 학점은 중요했고, 완수하지 못할 수도 있는 활동은 시작조차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지원서를 끄적이고도 휴지통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
글쓰기 좋아해 세명대 홍보기자단 활동
그런데 본과 1학년 1학기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됐다. 1교시 수업을 위해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어졌고, 1시간 안에 서둘러 점심을 먹지 않아도 됐다. 시간이 늘어난 상태에서 제일 먼저 지원한 활동은 세명대학교 공식 기자단이다. 사실 학사 일정을 따라가다 보면 취미를 즐길 여유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기자단이 되면 의무적으로라도 주기적으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지원했다. 평소 조선일보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시리즈 기사를 좋아해서 더욱 기대가 됐다. 매주 1회 ZOOM으로 기사 아이템 회의를 진행했고, 학기당 10편의 기사를 발행했다. 그동안은 개인적인 만족을 위한 글을 썼다면, 홍보 기자단으로서는 ‘나는 무엇을 잘 아는가?’와 ‘다른 사람들은 무엇이 궁금할까?’의 교집합을 찾으려 노력했다.
예를 들어 한의대 편입정보 접근이 어렵다는 문제를 느껴 편입생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2년이 지난 지금도 개인 이메일로 문의 및 감사 메일이 온다. 대표적인 아이패드 필기 어플 2개를 직접 써보고 비교한 기사 또한 발행 이후부터 현재까지 세명대 공식블로그에서 제일 높은 월간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평소 세상 알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뉴스레터를 30개 정도 구독하고 있는데 자주 읽게 되는 것들만 추천하는 기사도 써서 학교 홍보 외의 영역도 넓히려고 했다.
본1부터 본2까지 2년 동안의 기자단 활동을 마치고 한의대생 진로 고민 상담소 ‘대신 만나드립니다’에 지원하고 합격했다. 세명대 학생 최초로 ‘대만드’ 일원이 됐다는 점에서 뿌듯함과 책임감을 느끼고 인터뷰 참여와 더불어 책 ‘한의원 밖으로 나간 한의사들’의 2쇄 교정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단념하기보다는 주어진 환경 안에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치열하게 찾아가야 함을 배웠다.
코로나 한의진료센터 및 보건소 역학조사 보조업무 ‘참여’
코로나19 한의진료센터 봉사에도 참여했다. 원래 교내 의료봉사동아리에 속했으나 코로나 때문에 봉사활동을 할 수 없어서 아쉽기도 했고, 팬데믹 상황에 한의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도 궁금했다. 직접적인 진료과정에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환자분에게 전화를 걸어 한약 복용 후 어땠는지 여쭤보는 것만으로도 한약의 효과를 느낄 수 있었다.
2020년 겨울방학에는 보건소에서 코로나 역학조사 보조 활동에 참여했다. 아침에 확진자에게 전화를 걸어 확진 사실을 알려야 했는데, 내가 왜 코로나냐고 묻는 원망의 목소리가 기억에 남는다. 확진자의 진술과 GPS/카드 기록의 일치 여부를 확인하고, 동선을 따서 엑셀로 정리하고, 기저질환을 묻는 모든 과정은 예방의학을 배우기 전에 역학이 무엇인지 현장에서 몸소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본과 2학년 때 제일 재미있게 공부한 과목 역시 예방의학이었고 지금도 관심있는 분야 중 하나가 역학과 건강 형평성이다.
본과 2학년에는 남는 시간에 본가 근처 코로나 예방접종센터에서 봉사를 했다. 학창 시절에도 장애인에 관심이 많아 200시간 넘게 봉사를 하긴 했지만, 봉사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것만 같아서 한다’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잘하는 분야가 타인을 돕고 싶은 선량하고도 당연한 욕구와 합쳐진다면 봉사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충남대·가천대서 인턴생활…진로 고민 해결에 큰 도움
본과 2학년 상반기, 진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증폭됐다. 직업이란 것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그때그때 가슴이 뛰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점은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랬다. 20대에 사회를 이롭게 바꿨거나 전문가로 인정받는 사람들이 부러웠지만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마음. 일단 대만드 블로그에서 다양한 진로를 참고했다. 원래부터 사람을 대하는 쪽보다는 방구석에서 머리를 짜내는 일과 잘 맞겠다는 오만한 생각을 했다.
시험을 보고 합격을 하는 것을 넘어서 무언가에 대해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배우는 것이 공부라고 생각했기에 대학원이 궁금해졌고 학부생 인턴 프로그램에 닥치는 대로 다 지원했다. 그런데 20개 넘는 지원서가 거의 다 무용지물이 되었다. 각가의론 시험 전날에도 자기소개서를 2개나 썼는데 말이다. 종강하고도 어떤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아 잠시 방황했지만, 충남대학교 인턴 프로그램에 합격해서 혈관염증을 연구하는 생리학교실에서 7월 한 달 동안 인턴을 했다.
Wet Lab과 실험이 잘 맞는지, 의학 및 신약 연구는 어떻게 이뤄지는지가 궁금했다. 동물실험에 익숙해졌고 랩미팅에서 발표도 해보고 의학 논문과도 친해졌다. 난치병 연구를 이어가는 교수님을 보면서 어떤 일을 하게 되든 건강하기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8, 9월에는 가천대학교 NNSM lab에서 인턴을 했다.
메디스트림 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지원 조건에 완벽하게 맞지는 않았지만 일단 지원 메일을 썼고 감사하게도 합격하게 됐다. Dry Lab에서는 파이썬, 선형대수학 스터디에 참여했고 데이터 전처리와 차원축소 PCA를 해봤다. 복잡계과학 논문에 직접 참여하여 논문을 쓰는 과정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기존 한의학의 영역을 넘으려는 교수님과 선생님들의 모습에서 많은 자극을 받았다. 지금도 부족했던 나를 뽑아주신 전병화 교수님과 김창업 교수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코로나로 인한 실습수업 위축…결코 조급해 하지 않을 것
톨스토이의 명작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제목처럼,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통해 나 자신을 사랑하고 이 마음을 키워 타인을 사랑한다는 기본적이지만 그만큼 어려운 대전제를 실천하기 위해서 우리는 일상 속 여러 시련을 겪어낸다.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시련을 견뎌내고, 나의 부족으로 인한 실수를 인정하되 과한 자책을 하지 않는 자세. 이것이 코로나 후 늘어난 여유시간으로 다양한 교내/외 경험들을 통해 제일 값지게 얻어낸 바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해부학 카데바 실습을 제외한 대부분의 실습 활동이 코로나 전에 비해서 축소된 경향이 있어 본과 3학년인데도 한의학이 조금 아득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조급함을 적절한 밀도의 연료로 전환하는 방법을 지금까지 잘 다져왔으니까. 좌절하지 않고, 잠시 호흡을 고르고 미소를 지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