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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나누기-7] 숨을 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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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나누기-7] 숨을 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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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저온 보리한의원장


 

[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공연 현장에서 느낀 바를 에세이 형태로 쓴 ‘시선나누기’ 연재를 싣습니다. 문저온 보리한의원장은 최근 자신의 시집 ‘치병소요록’(治病逍遙錄)을 연극으로 표현한 ‘생존신고요’, ‘모든 사람은 아프다’ 등의 공연에서 한의사가 자침하는 역할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꽃잎

그는 태아처럼 웅크려 있다. 

두 다리를 뻗은 태아란 없지. 봉오리 속에 꽃잎이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작고 작은 손수건처럼 나름의 질서로 개켜져 있는 것처럼. 그는 그에게 있는 마디들을 그러모은 채 고요한 자세로 구겨져 있다.

태아의 방은 바다. 시리도록 푸른 조명이 무대를 차갑고 신비롭게 만든다. 잉크를 풀어 놓은 것 같은 푸른 빛. 푸른 빛은 안개 입자처럼 서늘한 물기를 머금고 있는 것 같다. 무대와 극장을 가득 메우고 물 속 깊이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아늑하고 아득한 기분이 들게 한다. 

밤을 지나 다리를 건너 짙은 안개 속을 걸었을 때, 살갗의 솜털 하나하나마다 자디잔 물방울이 들러붙어 있던 것처럼, 숨을 들이마시면 숨을 따라 코로 목으로 안개가 몸속까지 밀려들던 새벽처럼, 무대는 푸른 안개 바다로 가득 차 있다. 나는 태어날 때 젖어 있었다고, 바다가 온몸을 에워싸고 말한다. 

어떤 시원 같은 곳에 그는 태아처럼 누워 있다. 다리를 접고, 등을 말고, 무대 위에, 바닷속에. 바다 너머에 있을 높은 곳을 향하여. 

그는 곧 다리를 뻗는 태아가 되겠지. 접힌 선을 따라 몸을 꺼내 펼치는 봉오리 속 꽃잎처럼 방향과 움직임을 갖게 되겠지. 발아하는 씨앗처럼 발가락을 꺼내겠지. 그리고 그에게는 숨소리. 그리고 그에게는 울음소리.  


◇깃털

고래 울음소리가 길게 무대를 가른다. 고래 울음소리는 휘파람 같다. 멜로디를 얹지 않은 높고 가느다란 휘파람 소리. 

휘파람 소리를 따라 웅크린 그가 숨을 쉰다. 길게 숨을 내쉴 때 그의 손에 들린 하얀 깃털이 파르르르 떨리며 올라간다. 숨을 길게 밀어서 그는 하얀 깃털을 공중으로 들어 올린다. 깃털은 춤추듯 부유하듯 그의 입술 끝에서 공중으로 떠오른다. 

그가 숨을 들이마시자 깃털은 조용히 가라앉는다. 깃털은 그의 손에 들려 있지만, 그의 숨을 따라 오르내리는 하얀 깃털을 보고 있자면 오로지 그의 길고 가느다란 숨만이 저 깃털을 밀어 올리는 것 같다. 온몸으로 그는 숨을 밀어 깃털 하나를 들어 올리는 것 같다. 전력을 다해 숨을 내쉬고, 그의 숨은 깃털을 향해서만 뻗어 나가는 것 같다. 

숨은 밀어낼 수만은 없어서, 진공이 된 것처럼 납작해진 그의 몸이 다시 깊숙이 숨을 들이쉴 때 깃털은 여지없이 가라앉는다. 깃털이 가라앉아 바닥에 닿기 전에 어서 다시 밀어 올려야 한다는 듯이 그는 숨을 그러모아 다시 길게 길게 내쉰다. 깃털이 떠오른다. 

그럴 때 그의 숨은 그가 살아가는 생명 장치라기보다 오직 깃털 하나를 띄우기 위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커다랗고 하얗게 너울거리는 깃털의 갈래갈래.

깃털을 감싸고 그의 숨을 에워싸고 고래 울음소리가 무대를 가른다. 높고 길고 가느다란 휘파람 소리. 다시, 길고 높고 가느다란 휘파람 소리. 고래는 울고 있나, 숨 쉬고 있나. 말하고 있나. 깃털이 떠오른다.

그럴 때 그의 숨은 마치 고래의 휘파람 같다. 그럴 때 깃털은 고래의 숨을 따라 오르내리는 것 같다. 시리게 파란 바닷속에서 고래 한 마리가 작고 하얀 깃털 하나를 띄워 올리고 있는 것 같다. 

고래의 숨도 내쉴 수만은 없는 것이어서, 한 번 뱉고 길게 숨을 들이마실 때 작고 하얀 깃털이 하염없이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깃털이 바닥으로 꺼지기 전에 고래는 그러모은 숨을 토해 다시 애타게 깃털을 밀어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예 깃털은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문저온2.jpg

        

◇춤

그는 깃털과 함께 스르륵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몸을 옆으로 돌려 누이며 고요하게 웅크려 가라앉는다. 그리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손짓으로 몸짓으로 깃털을 밀어 올린다. 깃털과 함께 일어난 그가 깃털과 함께 춤춘다. 깃털은 팔랑대고 깃털은 나부끼고 깃털은 그와 함께 달려가고 솟구친다. 바이올린 소리가 깃털을 쓰다듬고 깃털과 함께 달리는 그를 쓰다듬는다. 깃털과 함께 그는 깃털처럼 나부낀다. 

한 장 소지를 올리듯이 공중을 밀며 당기며 그는 깃털 하나의 춤을 하늘에 올린다. 깃털은 이제 그의 입술 끝에 있지 않다. 그의 들숨 날숨에 있지 않다. 고래의 울음에 달려 있지 않다. 깃털은 떨며 춤추며 수직으로 솟구치다가 마침내 그의 손끝마저 떠나 홀로 공중에서 유유히 낙하한다. 

우리는 깃털 하나와 작별한다. 

 

고래의 이름은 J35. J35는 새끼를 낳고, 새끼는 나서 삼십 분을 살다 죽었대. 죽은 새끼는 자꾸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대. 가라앉는 새끼를 어미는 자꾸 물 위로 띄웠대. J35는 열이레 동안 죽은 새끼를 끌고 천 마일을 이동했대. 새끼는 열이레 동안 어미와 살다 죽었대.

문저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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