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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숙 여의도책방-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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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숙 여의도책방-22

항문침 유감(肛門針 遺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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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국정감사의 계절이 가고, 예산 심의의 긴 밤이 시작되었다. 국회의 11월은 각 위원회별로, 의원실별로, 지역별로, 현안별로 정해진 예산을 놓고 타협이 불가능해 보이는 논쟁과 우열을 다투기 어려운 눈치싸움 전장터이다. 환자로 가끔 자주 들르시던 기재부 직원들이 드디어(!) 세종으로 복귀하는 시점인 12월 초의 어느 날 직감하게 된다. ‘예산도 거의 마무리된 모양이네…. 또 한 해가 이렇게 가는군…’하고 말이다. 

국회밥을 8년 먹다보니 1년이라는 시간이 대강 어떤 스케쥴로 흘러가는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고 핑핑 놀고 국민 세금 따박따박 받아가는 도둑놈들(!) 소리 듣는 국회의원들이 결코 한가하게 놀지 않는다는 사실도, 또한 기재부 공무원들이 코피 터져가고 허리 망쳐가며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도 내 눈으로 똑똑하게 목격했다. ‘알기 전에 욕하지 말자!!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편견으로 사람을 대하지 말자!!’ 다짐해도 나이가 들면서 가장 하기 쉬운 실수가 나만의 판단으로 굳어진 선입견으로 사람을 초고속으로 재단하고 그보다 더 빠르게 손절을 감행한다는 것이다. 이런 성급함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내쳤던가... 생각하면 아쉬움도 간혹 느끼지만 상대방도 나에게 이런 비슷한 기류를 내보였기에 상호차단을 한 셈이니 뭐 결국은 케미가 맞지 않았던 것으로 결론을 내리면 다시금 마음은 편안해진다.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항문침 문제 ‘눈길’

국정감사의 여러 장면들이 뉴스에 보도되었고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특정 사안들이 포착되었겠지만 내 경우에는 지난 10월 14일 오전 보건복지위원회 국감에서 ‘항문침 전문가’ 이모씨의 의료법 위반 문제를 제기했었던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전남목포시, 초선)의 질의장면에 유독 눈길이 갔다. 이는 『김원이 “항문침 효과 있냐”..한의학계 “의료법 위반”』 (머니투데이, 이정현 기자, 정세진 기자. 2021. 10. 14.)이라는 기사로 자세히 보도되기도 했다. 

김 의원은 정창현 한국한의약진흥원장을 향해 “난데없이 항문침 시술 이야기가 국민의 관심을 사고 있다. 이씨의 말대로 항문침이 뇌신경 및 중증치매 치료에 효과가 있느냐?”고 물었고, 정 원장은 임상적으로 검증이 안된 상태에서 운운하긴 곤란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또한 김 의원은 “이씨는 스스로 세계보건기구 세계침구의학 전문의라고 하는데 실제로 이런 제도가 있느냐? 우리나라에서 의료활동이 가능하냐?”고도 물었다. 정 원장은 현재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세계침구의학 전문의라는 자격증을 발급하지는 않는다고 답하며 이러한 의료 활동은 의료법 위반이라고 했다. 김 의원은 이씨의 사진을 제시하며 “본인 스스로 이렇게 의사 가운을 입고 뇌신경 및 중증치매 전문의라고 하고 다니는데 이게 가능하냐”고 다시 물었고, 정 원장은 “현재 한의학과에 뇌신경 및 중증치매 전문이라는 명칭의 전문과목은 없다”고 대답했다.

항문침 이모씨와 관련해서는 오탈자 한가득인 자화자찬 기사 몇 건과 최근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거론된 사실보도와 한의협의 고소보도 등 몇 개의 기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국민의당 국민통합위 부산시 선대본부장에 이** 선임』

(일요신문. 송기평기자. 2017.04.26.) 


『무료 인술을 펼치는 현대판 ‘허준선생’으로 불리는 ‘이**’ 원장! 그는 누구인가?』

(선데이저널. 김쌍수주간. 2017.10.23.)


『세계침구의학 전문의 이** 원장 ‘항문침’ 특허개발』 

(YBC연합방송. 정종암기자. 2019.5.10.)


『국민의힘 토론회가 만든 스타(?) ‘항문침사’ 이**, 비디오머그가 인터뷰했습니다』

(SBS뉴스. 조도혜PD, 김정윤기자. 2021.10.07.)


『한의사협회, 항문침 이** 무면허 혐의로 고소』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 2021.10.12.)


[단독] ‘윤** 수행 논란 항문침’ , “중풍·치매예방? 특허 이미 소멸· 한의학계에서는 난센스“

(헤럴드경제. 김태열기자. 2021.10.12.)


위 기사에 실린 이씨의 면허와 활동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세계보건기구 세계침구의사면허, 중국 중의학관리국 A급 침구의사면허, 필리핀 침구전문의면허, 세계침구의학 전문의, 뇌신경 및 중풍치매 전문의, 대한침구사협회 치유원장, 중풍치매 예방 및 치료 전문 의료봉사단장, 국제침구의사 밝은 세상봉사단과 국제의료봉사단 부산 사하지구 봉사단 단장. 낙후된 지역에서 복지관이나 노인정,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의료사각지대 등지를 다니면서 아무런 대가 없이 정성껏 치료를 해 주어서 현대판 허준 선생으로 불리우고 있는 그는 고향인 부산 사하구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인 인물의 반열에 올랐다는 주변 사람들의 평가가 있다. 지속적인 의료봉사활동으로 폭넓게 지지를 받고 있어서 정치권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얼굴로 선거 때만 되면 지역의 국회의원이나 구청장 후보자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는 인물로서 2013년 4월 세계 최초로 항문침 특허를 취득하여 항문을 통하여 중추신경에 접근해 해당 신경에 시침하는 치료법으로 중풍, 치매, 뇌혈관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연 신의(神醫)로도 평가된다.” 

대강 훑어만 봐도 느낌이 팍 올 것이다. 입도 쩍 벌어질 것이다.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올지도 모른다. 여기에 나의 느낌까지 보태진 않겠다. 하지만 자칭타칭 의료봉사단장이라는 타이틀로 지난 2017년 대선정국에서 제3지대, 극중주의를 표방하는 모 정당의 선대본부장에 선임되었다는 기사를 접하고서는 깊은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법원, 침구사 봉사활동은 의료봉사 아니다 ‘판시’

『법원, “침구사의 봉사활동은 의료봉사가 아니다”』 (청년의사. 김지환 기자. 2012.10.08.) 기사에 의하면 서울고등법원 제9행정부(재판장 조인호)는 지난 2012년 10월 8일 세계침구학회연합회 대한침구사협회(이하 침구사협회)가 보건복지부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국내의료봉사활동 승인거부처분 취소’ 항소심에 대해 1심 판결을 그대로 인용해 항소를 기각 판결했다. 법원이 침구사들의 봉사활동은 의료봉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말이다. “의료법의 각 규정에 따르면 의료인이란 복지부로부터 면허를 받은 의사·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간호사만을 의미한다”면서 “의료인만 면허된 범위 내에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고 그 명칭을 사용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침구술을 포함해 비의료인의 의료행위를 전면적으로 금지한 것은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보호하고 국민의 보건에 관한 국가의 보호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적합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랬던 이씨는 2021년에 들어서는 야권의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특정 부위에 침 놓는 사람’이라는 키워드로 등장했고 그 중 특정 후보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듯한 영상이 공개되면서 두 사람이 서로 아는 사이 아니냐는 다른 후보의 질문공세를 받아야만 했다. 그 다음 날엔 바로 어제 질문공세를 퍼붓던 그 후보와 찍은 사진까지 공개되면서 이씨는 그냥 유명 정치권 인사들과 기념 사진 열심히 찍고 다니는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 법한 사람류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았지만 가장 최근에는 여권의 유력 대권후보의 대한노인회 방문행사에도 나타나서 노인회 간부진들 옆에서 포즈를 취하는 뉴스화면을 보고 있자니 또 다른 제2의 허경* 대선후보 프로출마러 경쟁자 탄생 임박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사짜의 영역에서는 특이한 이력으로라도 관종만 될 수 있다면 그래서, 전국적인 인지도만 획득할 수 있다면 일반인들을 그러모으기에는 유명 정치인들과의 인증샷보다 더 훌륭한 광고를 찾기는 힘들 것이다. 

의료인이 아닌 자의 의료행위와 가운입은 일반인들이 북적대는 의료봉사단이 허준이나 신의로 추앙되며 지역 정치권을 넘어 차기 대선을 준비하는 유력 정치인들 근처까지 닿아있는 이씨의 모습을 순수한 봉사심의 발로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기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여든 야든 제3지대든 차기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이름 세 글자가 하사하신 선대본부장 임명장을 머리에 이고 전국을 들쑤시고 활보할 수백, 수천명의 선거운동원들을 생각하니 아찔해진다. 

시술.jpg

수련의 시절, 엉덩방아를 찧어서 미골(coccyx)의 마지막 마디가 안쪽으로 말리는 감입골절(impacted fracture) 진단서를 들고 입원했었던 여환이 있었다. 환자는 정형외과를 이미 경유했고 수술이나 기브스 고정이 불필요한 애매한 부위였기에 진통제만 며칠 복용하다가 상태가 여전해서 한방병원으로 왔다고 말했다. 외상으로 인한 요통, 미골통이 문제가 아니었다. 며칠간 식사를 못한 데다가 미골이 저 지경이 되었으니 배와 항문에 힘을 줄 수 없었기에 일차적으로는 변비가 심각했다. 용수관장(finger enema)과 미골교정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했다. 수련의용 추나교육을 막 끝낸 싱싱한 용감함에 겁이 없을 때이기도 했다. 손가락을 항문으로 넣어 안쪽으로 말린 미골의 마지막 마디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종의 관절 정복술(reduction)을 곧바로 실시했다. 항문에 가해진 물리적인 자극의 후유증으로 항문 주위의 작열감을 하루 정도 호소했으나 며칠간 배변은 아예 불가했고 방귀만 수시로 배출하던 환자가 나의 지력(指力)으로 상당히 빠른 회복을 보였다. 다시 평화를 되찾은 환자의 항문건강은 수련의시절 내게 큰 성취감을 안겨주었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고마운 케이스이다. 


미개척된 한의치료 분야의 선택과 집중 필요

어디 이 뿐인가?! 실연으로 수일간 금식을 이어오던 젊은 여환이 배가 만삭녀처럼 불러오는 복통과 만성변비로 입원을 했었다. Plain abdominal x-ray를 보던 선배가 내게 “신 선생, 여기 봐봐. 이 뭉게구름 같은 거 보이지?” “네.” “뭘로 보여?” “가스가 찬 것 같네요.” “맞아. 가스도 똥도 많이 차 있네. 자네가 해결해 줘야겠어?” “네??” “똥 빼라고...” 와일드 짱이었던 그 때 그 여선배는 내게 글리세린 관장을 시켰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던 가련한 인턴인 나는 선배가 시키는 대로 1인실의 그녀를 위해 관장키트를 들고 터벅터벅 용감하게 들어갔으나 그 결과는 참혹했다. 관장(enema)이라는 고결한 단어를 쓸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그야말로 환자의 다량다종의 형태의 dung을 치우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은 성격 더럽기로 유명한 그날의 나이트 근무 간호사였다. SOS를 요청했더니 그녀는 새 시트를 들고 코를 찡그린 채로 병실문 틈새에서 나를 힐끗 바라보며 그냥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보통 사람 이상의 강력한 비위(脾胃)와 체력을 가진 나를 존경하게 되었는지를 따로 묻지는 않았으나 그 날을 기점으로 나에게만큼은 꼬장을 부리지 않고 항상 웃는 얼굴로 잘 대해주었다. 다시 떠올려보아도 이번 케이스는 더러울 뻔 했지만 결과는 유쾌상쾌통쾌 그 자체였다. 물론 그 여환의 실연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그 후에 어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수차례의 쾌변으로 인해 복부팽만과 변비는 말끔히 해소된 것으로 확신한다. 목격자들이 여럿이다. 

 

똥꼬박사.jpg

합정역에는 『urban plant』라는 식물원 카페가 있다. 제주도 여미지식물원까지 날아가지 않아도 피톤치드향에 샤워를 하며 브런치를 즐길 수 있는 아주 멋진 곳이다. 이 곳을 지나칠 때마다 마주치는 병원이 다름 아닌 『혜당한방병원』이다. 동문 선배들이 수련의 생활을 했었던 곳이라 늘 정감이 갔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 병원의 설립자가 다름 아닌 『똥꼬박사』(박영엽. 도서출판 함께. 2005년 5월)의 저자이시다. 

지금의 한의사들은 다양한 적응증에 매선을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매선요법이 생소한 시절부터 치질, 치핵, 탈항, 치열, 치루, 항문주위 농양, 항문소양증을 아우르는 여러 항문질환에 매선시술을 선구자적으로 시작하셨던 분이 바로 박 원장님이다. 동신목동한방병원에서 박 원장님을 모시고 매선특강을 진행했을 땐 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이론강의와 실습 시연으로 후배 한의사들에게 엄청난 열정을 보여주시기도 했다. 흔한 질환이 아닌 특수 질환에 관련된 구체적인 도해를 실은 한의학 치료서를 출간한다는 것, 기존의 치료방법이 아니지만 응용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치료법을 적극 도입하고 후학들과 나눈다는 것의 가치와 어려움을 이제야 살짝 알 것 같다. 박 원장님께서 항문질환에 집중하셨던 것처럼 미개척 분야의 개별 질환에의 선택과 집중이 『똥꼬박사』와 같은 저작물로, 임상실기로, 공개강의로 이어진다면 이러한 활약이 들불처럼 전국 임상가로 번져간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즐거운 상상을 해보게 된다. 치료의학으로서의 한의학의 위치가 보다 단단해지기 위해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한의사, 과연 어떤 칼라의 직능집단일까?

여권의 유력 대선후보는 지난 11월 17일 마포의 한 공공야간약국에 들러서 약국은 공공의료의 일부이며 약사회는 착한 직능집단이라고 평가했다. 국민들이 받는 혜택이나 공공 이익과 견주어 보았을 때 약국 관련 예산이 적은 편이라며 국회 보건복지위원들이 공공약국 관련 예산이라면 앞으로는 별 이견 없이 다 증액할 거라는 약속도 덧붙였다. 여권의 대선후보가 공공의료의 영역에 종사하고 있는 한의사를 찾아간다면 공식 방문할 곳은 어디일까? 그리고 한의사회는 어떤 칼라의 직능집단이라고 평가할까? 이는 대만민국 사회에서 한의사의 정체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질문이며 이 응답에 따라 아직 오지 않은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도 작은 부분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음식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음식이 있다. 신중하라. 그대를 썩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있고 그대를 익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있다.” 이외수님의 『하악하악』에 실려있는 내가 좋아하는 글귀이다. 주렁주렁 열매를 맺는 계절을 지나 이제 낙엽으로 떨어질 놈들은 거의 다 떨어져 나가고 거리의 가로수들은 겨울의 절정을 이겨내기 위해 단단한 앙상함으로 무장이라도 하고 있는 모습이다. 2021년을 떠나보내며 스스로에게 회초리같은 질문하나 던져본다. ‘너는 과연, 썩어가고 있느냐? 익어가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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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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