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윤미 한의사
[편집자주]
이번호부터 육아와 한의학, 인문학 등의 분야를 오가며 느꼈던 점을 소개하는 ‘육아에서 찾은 소우주’를 연재합니다. 대전시 중구 보건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저자 박윤미 한의사는 서울대학교 수학교육과를 졸업한 후 뒤늦게 대전대 한의대를 졸업하고 중고등학생에게 한의 인문학을 강의하며 생명과 건강의 중요성을 나누고 있습니다.
나는 2남1녀의 엄마이다. 이 자체가 내겐 뜻밖의 사건이다. 왜냐하면 20대 시절, 나는 결혼에 대해 회의적이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너무 소중했고, 여성에게 결혼과 육아는 감옥이라고 믿었다. 결혼을 일찍 하려는 친구들에게 그렇게 서둘러 네 인생을 결혼에 내던지지 말라는 조언을 틈틈이 했을 정도였다. 나름 시대를 앞서나갔던 것 같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대학 신입생 때 만난 첫사랑과 결혼해서 곧 엄마가 되어 버린 것이다. 사실, 자녀는 갖지 않고 각자의 일에 매진하면서 둘만 살자고 혼전에 남편과 약속했었다. 막상 결혼하고 보니, 시댁 친정 할 것 없이 모두 이제나저제나 하면서 내 임신을 기다리는 눈치였고, 분위기에 약한 나는 곧 첫아이를 갖게 되었다.
지금도 첫 아이에게 미안한 점은 태교를 제대로 못한 점이다. 간절히 원했던 지점에서 찾아 온 게 아니었고, 불확실한 내 미래에 대한 우려가 더 컸기 때문이었다. 대신, 양가 할머니들의 태교는 특급이었다. 특히, 우리 시어머님께선 연신내에서 개포동까지 먼 길을 마다치 않고, 수시로 최상급 꽃등심, 꽃게장, 자연산 송이버섯 등을 수시로 배달하셨다.
어쨌든 10개월을 채우고 무사히 첫 아이를 만났다. 밤샘 진통 끝에 새벽녘에 세상 밖으로 나온 존재를 마주하는 순간, 나는 심장이 멎는 기분이었다. 아기에게 첫눈에 반해버렸고, 그동안 노심초사했던 내 미래에 대한 걱정은 신기루같이 사라져버렸다. 이후, 나는 회복되지 않는 몸으로 신생아실에 수도 없이 들락거렸고, 모유 수유에 목숨을 걸었다. 영양분 가득한 모유를 만들기 위해 좋다는 음식을 과식하는 바람에, 고도 비만 상태를 1년간 유지했다. 아기에게 몰입하다 보니, 내 몸매 따윈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차갑던 나를 뜨겁게 바꾼 아이들의 사랑
이렇게 시작된 육아는 여전히 현재진행 중이다. 첫아들 이후, 딸과 아들이 계속 태어났기 때문이다. 하나면 외로울 것 같아 둘째를 가졌고, 이만하면 됐다 싶어 방심하던 차에 뒤늦게 셋째가 찾아왔다. 이제 내 일 좀 해볼까 하던 차에 찾아온 막내, 매우 기뻐하시던 시어머님과 달리 내 마음은 무겁게 내려앉았다. 40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이라니…. 그러나 사랑스러운 셋째는 온 가족을 육아 공동체로 묶어버렸고, 내 삶을 더욱더 풍요롭게 만들어주었다.
첫사랑 남편과의 추억은 너무 오래전이라 그런지 별 기억이 없다. 그렇지만 아이들과 함께 했던 장면들은 새록새록 하다. 아이들은 한결 같이 태어나면서부터 무조건 나를 사랑해주었다. 사실, 알고 보면 난 결함투성이인데, 무얼 믿고 내게 자기 인생을 다 맡기고 사랑을 퍼붓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난 태생적으로 따지기 좋아하고 차가운 편인데, 아이들은 자꾸 내게 뜨거운 사랑을 쏟아 부으며 내 변화를 유도했다. 덕분에 내 가슴은 서서히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결혼 전에 귀찮게 느껴졌던 남의 아이들도 다 예쁘게 보였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과거에 누군가의 소중한 아기였을 거라고 생각하니, 귀한 존재로 보였다. 무엇보다 이러한 변화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늘 나와 같이 다니는 내 마음이 밝고 따뜻해졌기 때문이다.
◇육아와 한의학 만나며 변화한 가치관 독자들과 나누고파
아이 셋을 키우며 늘 희희낙락 즐겁진 않았다. 맞고 들어오는 아이, 때리고 들어오는 아이, 아토피, 사춘기, 진로문제 등등,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일상을 전투병처럼 기민하게 대처해야 했다. 인내와 이해심이 필요했고, 때로는 사과하거나 설득해야 할 일도 있었다. 간혹, 내 능력 밖의 문제가 발생하여, 사면초가에 갇힌 듯한 심정으로 날밤을 지새우며 눈물 흘렸던 날도 있었다. 그럴 땐, 기도와 염불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깊이 사색하면서 돌파구를 찾곤 했다.
사랑받으며, 사랑하고 살아온 육아라는 바다에서 만났던 풍랑과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엄마일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남성이거나 비혼 일지라도, 혹은 직접 낳지 않았다 해도, 나보다 어리고 무력한 누군가의 따뜻한 의지처가 돼줄 수 있지 않은가.
이렇듯 육아는 차가웠던 나의 삶을 따뜻하게, 건조했던 일상을 풍요롭게 바꿔줬다. 앞으로 이 지면에서 육아를 하며 변화한 나의 삶과 한의학이 내게 전해 준 통찰을 접목해 좀 더 온전하고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느낀 바를 독자 분들과 나누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