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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한의원의 인류학’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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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한의원의 인류학’을 읽고

몸-마음-자연 연결하는 사유와 치유: 그 인류학적 탐험과 여정에 대한 보고서
한의학 언어로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에게 당당한 정체성·자존감 갖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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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욱 교수

(전북대·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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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원의 인류학’ 제목부터 흥미롭다. 의료인류학 방법론으로 오랫동안 한국 한의학의 진료 프랙티스 연구에 천착해온 김태우 교수(경희대 한의학과)가 그간 연구 결과를 책자 하나에 오롯이 담아냈다. 책을 들면 단숨에 읽어내려갈 만큼 그의 문장은 맛깔스럽고 정제되어 있다. 

메를로 퐁티, 들뢰즈, 푸코가 굽이마다 소환되어도 어지럽지 않다. 평소 말할 때에도 적실한 언어 선택을 신중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자주 보아왔기에, 자신의 연구를 처음으로 종합하여 간결한 철학노트의 형태로 만들어 내는 과정에 어떤 공력과 잠심이 구석구석 스며 들어갔을지 짐작되고도 남았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장절 하나마다 치밀한 의도와 기획 아래 촘촘히 엮여 있어 필자는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눈을 감고 감탄했다.  

 

인류학자로서 그가 본 의료는 병원과 한의원이 서로가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 역할을 하는 것이었고, 하나의 의료만 연구했다면 결코 주목하지 못했을 소중한 인사이트를 끊임없이 드러내주는 것이었다. 두 체계의 의료가 공존하는 독특한 제도를 가진, 한국에서만 누릴 수 있는 환경이다. 

그는 몸의 이해방식은 하나가 아니라는 논의를 비단 의료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미술 음악 같은 예술에서부터 ‘현상학’이라는 서양철학, 이기론과 사단론의 성리학, 상징과 비상징 기호를 탐구하는 언어학 등의 다양한 층위에서 전개하면서 종횡무진 설파하고 있다. 마치 흑백 사진처럼 단조로운 일양 세계에서 발랄한 천연색이 약동하는 다양 세계를 다시 소생시키려는 손길을 보는 듯했다.   

생의학, 근대의학이 가지는 특징을 공간화, 물체화, 지시화라는 철학용어로 포획하여 그들이 가진 장점과 성취의 기반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은 서구철학의 한 반성이면서, 저자의 전공(인류학박사, 학부전공은 화학)을 살린 특기다. 

 

동시에 그 업적의 한계를 또렷이 부각했다. 이런 탄탄한 근본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는 몸과 세계를 이해하고 기술하는 다양한 관점과 언어를 진지하고도 재치 있게 해명하고 있다. 마침내 그 중 하나로서 한의학의 관점과 언어로서 실제 환자를 치료해내는 과정, 그 리얼한 작동 방식을 영상을 보는 것처럼 드러내준다.

이 책의 부제가 “몸-마음-자연을 연결하는 사유와 치유”라고 한 이유다. 숱한 고난을 거치면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한의학의 유산과 프랙티스를 새롭고 설득력 있는 언어로 재구성하여 ‘다시’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책은 일상 루틴에 지친 로컬 한의원장님들께 색다른 활력을 준다. 오늘도 갖가지 질병으로 찾아오는 환자를 직접 대하는 ‘의사’들이 이렇게 다시 비추어 본다면 스스로 매일매일 진료 활동에 대한 큰 프라이드를 얻지 않을까.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사람을 접(接·만남, 나와 세계 또는 주체와 객체의 만남. 이 책에는 유난히 接이라는 용어가 중시된다) 하면서 얻어낸 정보로 독특한 진료를 행하는 이 해묵은 방식에 대해 현대적 ‘까방권’을 획득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제 철학과 인류학에서 통용되는 보편적 언어를 기반으로 생의학과 한의학, 전통의학과 근대의학의 장단득실을 더욱 선명하게 형량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이 책이 코로나 이후 뉴노멀을 고민하는 인류에게 기여할 수 있는 구체적 경로를 찾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밝혔다. 인류사의 현재 좌표와 미래 향방을 가늠케 해주는 요소가 알알이 들어찬 책이라는 자부다. 그렇다면 우리는 저자의 눈을 통해, 하루하루 한의진료 모습 속에 배어있는 그 귀중한 단서를 찾아내는 비범한 경험도 할 수 있는 것일까? 

저자는 환자를 오랜 기간 접하고, 의사의 오관을 활용하며 병의 포인트를 읽어내는 능력이 중요한 것이라는, 한의 진료의 핵심을 짚어내고 있다. 늘 행하던 진료 방식에 전과는 다른 새로운 의미부여를 해 준다.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생의학, 근대의학의 언어와 마찬가지로 한의학의 언어에도 역시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민다. 

“서양은 물질, 동양은 정신” 같은 진부한 이야기에 의미를 두는 시절은 이미 벗어났겠지만, 서양은 기계적이고 동양은 정감적이라는 말 역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저자는 한의학적 진료 방식이 더 인간적이어서, 더 따뜻한 의학이어서 옹호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환자를 보고 진단하는 의사 자신의 도덕적 선택이 아니라, 학문을 구성하는 형이상학적 기반 자체의 근본 속성이 달라 그렇다는 말이다. 그 의학이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책 전체에서 이 부분이 무엇보다 깊이 와 닿는다. 

 

언어가 다르다는 것은 곧 세계를 보는 철학적 기반이 다른 것이고, 그런 사유방식으로 필연적 으로 전개될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이 둘의 대화를 어떻게 볼까? 각각의 장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새로운 진지한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나은 진료, 지금보다 나은 의료사회를 전망해볼 수 있을까? 현재 한의학의 발전 방향과 관련된 여러 논의가 개입될 소지가 있지만, 나는 그 전에 선결작업도 필요하지 않나 자문해본다.  

저자가 설득력 있게 제시한 그 한의학적 언어의 술어들로 이루어진 체제는 매력적이다. 그런데 그 체제는 과연 자체 완결적인가? 비유적, 은유적, 시적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언어는 어떻게 비판되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 책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서양에서도 고대의학, 예를 들어 갈렌의 4체액설 같은 것은 오히려 한의학의 언어와 가깝게 여겨진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이전의 언어를 폐기하고 새롭게 현대의학의 언어로 갈아타게 되었는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발전하고 진보하는 것인가?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한의학의 전통에서는 어째서 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지금까지 면면히 『동의보감』의 구절을 되뇌이고 있는 걸까? 『황제내경』에서 『동의보감』, 그리고 현재 한의학까지 발전과 진보의 측면을 무엇으로 평가하고 형량할 수 있을까? 

김태우 교수의 입론에 따르면 오히려 고대가 더 나았고, 현대가 더 못한 것일까? 오행의 배열과 오장의 우선순위, 정기신혈의 우선순위 같은 논쟁에서 갈라져 나오는 수많은 학파가 이런 언어 그룹의 발전상을 대표하는가? 사상의학이 한의 역사 2천년에 한 번 나온 유일한 발전의 모습일까? 이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기존에 이미 한의학사에서 제출한 답이 있는 질문이겠지만, 저자의 방식으로 새로운 답을 찾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 동시에 이런 의문을 촉발시키고 의학을 매개로 인류역사를 다시 전관해야 한다는 신선한 자극을 준 이 책과 저자에 다시 한 번 감사한다.

전종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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