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1973년 2월17일 경상북도한의사회에서는 『한의학회보』 제43호를 간행한다. 뒤쪽에 발행자가 경상북도한의사회와 대구시한의사회 공동명의로 기재돼 있는 것은 당시 대구시가 현재와 같은 대구광역시의 형태가 아니라 경상북도의 도청소재지였기에 경상북도한의사회는 전체 경상북도 한의사 전체를 대표하는 한의사회이고, 대구시한의사회는 도청소재지로서의 대구시만의 한의사들을 대표하는 한의사회라는 구분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잡지는 1959년 창간호가 나온 후 1968년 12월1일 경상북도한의사회(당시 회장 여원현)가 『경상북도한의사회지』 제2호를 간행한 다음 『한의학회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제43호의 출간을 보게 된 것이다.
당시 경상북도한의사회 趙璟濟 會長은 新年辭를 통해 “…하루 빨리 한의학을 현대화, 과학화하기 위한 연구를 거듭하여 대중화내지 세계화에 힘써야 하리라 생각된다.…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성현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능히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인내를 부여할 것임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라고 한의계의 분발을 촉구했다.
당시 대구시한의사회 黃奎植 會長은 年頭辭 ‘團合된 힘을 誇示하자’를 통해 하반기에 예정돼 있는 제3차 세계침구학술대회를 통해 한국 한의학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를 갖자는 격문을 올렸다. 당시 경상북도한의사회 朴淳達 副會長은 이어서 한의사회의 내적 충실에 대한 노력, 회관의 개선 등에 대해 언급했다. 당시 경상북도한의사회 학술위원장 許溢 先生은 ‘한의학의 발전과 우리들의 자세’라는 글을 통해 회원들의 醫道의 확립을 위한 노력을 촉구하였다.
이어서 5편의 학술논문이 이어진다.
문성한의원 徐文敎 先生은 「三七根의 效能에 驚歎한 實例」에서 三七根의 효과를 보았던 치료경험을 소개하고 있다.
영산한의원 許溢 先生은 「임상으로 본 산후부종에 대하여」를 통해 산후부종의 원인과 증상과 치료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특히 産後浮腫과 乳汁不通에 대한 임상실례를 들어 산후부종의 治療醫案을 제시하고 있다.
淸和한의원 구자도 선생은 임신과 출산에 대한 방안을 제시하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제한한의원 이두영 선생은 「解表劑의 小考」를 통해 해표제의 정의, 응용범위, 전탕할 때 주의할 문제, 복용시 주의할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그는 본 논문에서 麻黃湯, 麻黃薏甘湯, 三拗湯, 華盖散, 麻黃附子甘草湯, 麻黃附子細辛湯, 麻杏甘石湯, 麻黃杏仁飮, 麻黃連翹赤小豆湯, 麻黃甘草湯, 麻黃佐經湯, 麻黃赤芍湯, 麻桂飮, 大靑龍湯, 九味羌活湯 등을 다루고 있다.
남덕한의원 정명호 선생은 「對應經穴에 關한 小考」를 통해 불의의 사고, 화상, 자상, 전쟁, 동상, 내외인 등으로 인해 인체의 특정 부위가 절단되어 經穴을 찾아 시치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인 환자의 치료를 위해 사용할 대용혈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
이어서 수광산의원 車天一 先生은 ‘老生壯氣’, 숭덕한의원의 李鍾壽 先生은 ‘觀光鬱陵島’라는 제목의 자작 漢詩를 각각 소개하고 있다. 車天一 先生의 ‘老生壯氣’은 다음과 같다.
“怒號一聲瀝忠肝, 擧目何多鼠輩奸, 大廈將傾嗟一木, 蒼生莫療願神丹, 龍潛虎隱難時用, 雲怪風妖作嶭端, 千里雷驚眞號令, 萬人戰慄有誰謾.” 숭덕한의원 李鍾壽 先生의 ‘觀光鬱陵島’는 다음과 같다. “滄瀛無際浩洋洋, 一汎遠風水路長, 運樹霧山皆活畵, 烟波雪浪自生凉, 奇巖萬像歸神造, 落島千年護石岡, 暫借扁舟探勝景, 壯觀疑是海金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