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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 09일 (월)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166)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166)

尹淮의 銅人鍼灸圖論
“銅人鍼灸圖으로 만백성을 건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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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尹淮(1380∼1436)는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서 1401년(태종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좌정언, 이조·병조 좌랑 등을 역임하고, 1417년에는 승정원의 대언(代言)이 되어 왕을 보좌했다. 저서로는 『청경집』이 있다. 

1478년 서거정에 의해 간행된 『東文選』 93권에서 銅人鍼灸圖小序라는 尹淮의 서문을 발견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신(臣)이 삼가 살펴보니, 《명당정경(明堂正經)》은 황제(黃帝)와 기백(岐伯)이 천하 사람을 살리던 것인데, 그 뒤에 동인(銅人)에다 침(鍼) 구멍을 만들어 놓은 것은 그 뜻을 근본으로 하여 만든 것이다. 대개 백성이란 나라의 원기(元氣)이니, 원기가 병들면 몸도 위태롭게 되기 때문이다. 상고 시대에 성인이 예의(禮義)로 가르쳐서 그 마음을 기르고, 의식을 마련하여 그 몸을 기르며, 또 의약을 가지고 피와 기운을 길러서 원기를 보호하고, 국맥을 오래 가게 하던 것이니, 그렇다면 침놓고 뜸뜨는 법은 또한 어진 정사의 한 가지 일이다. 삼가 생각해 보니, 금상 전하께서 살리기를 좋아하는 어진 덕은 옛 성인과 똑같고, 백성을 교양하는 도(道)는 이미 지극한 곳에 이르렀는데도 오히려 부족하게 여겨 백성이 병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면 자기 몸의 병과 같이 애처롭게 여겨 밤낮으로 마음을 놓지 못하였다. 우리나라가 바다 한 모퉁이에 끼어 있어, 용한 의원을 쉽사리 만나기 어렵고 도(圖)와 경(經)은 혹 진본과 틀리며, 침놓는 법은 완전한 것을 보기 어렵다. 그래서 영락(永樂) 을미년 여름에, 〈동인침구도(銅人針灸圖)〉를 내려 줄 것을 청하였더니 천자가 옳게 여기고 태의원(太醫院)에 명하여 향도(向圖)와 배도(背圖) 두 폭을 그려 보내게 하였으니, 그 그림의 정밀함은 털끝 하나 틀림이 없어 마치 의화(醫和)와 편작(扁鵲)을 면대하여 직접 가르침을 듣는 것 같으니, 참으로 사람을 살리는 지침이었다. 전하가 즉시 명하여 그 그림을 떠서 목판에 새겨 내외에 반포하여 자손만대에 혜택을 주게 하였으니, 그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국맥(國脈)을 안보하려는 생각이 구비하여, 장차 이 세상을 오랜 태평성대의 지역으로 끌어올리게 되었다. 아, 참 거룩한 일이다.(臣謹按明堂正經。 黃帝歧伯。 所以活天下也。 後之爲銅人腧穴者。 祖其意而述之。 夫民者。國之元氣也。 元氣病則身且危矣。 上古聖神。敎之禮義。 以養其心志。 爲之衣食。 以養其口體。 申之醫藥。 以調其榮衛。 于以保元氣而壽國脉。 然則鍼灸之術。 斯亦仁政之一端也。 恭惟主上殿下好生之德。 同符前聖。 敎養之道。 旣臻其極。 猶且嫌然。 視民之疾痛痾痒。 擧切吾身。 而夙夜于懷。 以吾東方介居海隅。 良醫之不易得也。 圖經之或失其眞也。 鍼砭之罕見其全也。 永樂乙未夏。 奏請給降銅人。 天子是之。 勑大醫院。 繪畫仰伏二軸以賜。 圖之精密。 毫髮不差。 若目見和扁而耳承師授。 誠活人之指南也。 殿下卽命模本鏤板。 頒布中外。 以惠萬世。 其仁民濟衆之念。 調保國脉之慮。 本末備具。 固將擧斯世而躋之仁壽之域。 吁盛矣哉。)”(번역은 한국고전번역원의 것을 따옴) 

안타깝게도 서문이 『東文選』에만 남아 있고 두 폭의 銅人鍼灸圖는 남아 있지 않기에 그림 자체에 대한 평가는 불가능하다. 아마도 向圖, 背圖의 두 폭의 그림을 담고 앞에 서문을 붙인 畫帖의 형식을 띤 책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 화첩의 간행에 대한 기사를 『太宗實錄』에서 네 군데나 발견되는 것을 보면(1415년 4월, 10월, 11월, 12월) 당시 銅人鍼灸圖의 간행은 국가적 관심사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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