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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20일 (토)

손홍열 허준학회 회장

손홍열 허준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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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언



한국 의학 발달에 커다란 자취를 남긴 허준은 조선 중기 다사다난했던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었다. 따라서 지금까지 허준 또는 『東醫寶鑑』에 관한 연구는 한의학계 또는 역사학계에서 계속되어 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연구는 주로 『東醫寶鑑』에 관한 것이었는데 비해 여기에서는 『東醫寶鑑』은 물론 『諺解救急方』, 『諺解胎産集要』 등 許浚의 저서를 모두 간략하게 살펴봄으로써 그의 의학사상과 학문적 업적을 살펴보고자 한다.



허준은 醫科를 거치지 않았으나 그 의술을 인정받아 內醫로 활동하였으며, 임진왜란 때는 왕을 扈從하여 忠勤貞亮扈聖功臣 3등이 되고, 1606년에는 陽平君에 봉해지고 뒤에는 崇祿大夫(從1品)에 오르는 등 의관으로는 드물게 顯職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의술에 정통했음은 물론 학문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여 여럿이 함께 편찬하려던 『東醫寶鑑』을 정유재란을 계기로 14년 동안 단독으로 연구하여 완성하는 등 학자로서의 능력도 갖춘 인물이었다.



2. 허준의 醫書와 그 학문적 가치



㈀ 생애

허준의 의서와 그의 업적에 대하여 논하기 전에 허준은 어떤 인물인가를 먼저 살펴보기로 하겠다. 허준은 陽川 허씨 시조 許宣文의 20세손으로서 아버지는 종성부사를 지낸 론( )이다. 자는 淸源이고 호는 龜岩이다. 차남이었지만 庶子였기 때문에 문무과에는 응시할 수 없어서 의관이 되는 길을 택하였다.



허준은 과거를 거치지 않고 천거로 내의원에 들어가 내의로 활동하였으며, 僉正을 거쳐 뒤에 正에 이르렀다. 선조 34년(1601) 御醫로서 정2품 正憲大夫 知中樞府事에 올랐고, 동 37년(1604)에는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한 공으로 忠勤貞亮扈聖功臣 3등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陽平君에 봉해졌으며, 이어 정1품 輔國崇祿大夫를 제수받았으나 사간원과 사헌부의 끈질긴 반대로 종1품 崇祿大夫에 그치고 말았다.



선생이 최초로 편찬한 책은 『纂圖方論 訣集成』인데 이 책은 당대 저명한 의원들의 학설과 각종 의서를 참고하여 편찬한 진맥서이다. 다음에는 선조 29년(1596) 왕명으로 儒醫 정작(鄭 ) 太醫 양예수 등과 함께 편찬을 시작하였다가 이듬해 정유재란으로 중단된 뒤 단독으로 편찬을 계속하여 14년 만인 광해군 2년(1610) 모두 25권 25책으로 완성한 『東醫寶鑑』이 있다.



이 책은 86종의 중국과 조선의 의서를 참고하여 편찬한 백과사전적 실용의서로서 대중의 질병 치료에 큰 업적을 이룩한 것이었다. 이 책의 실용성과 의서로서의 眞價가 널리 알려지자 뒤에 중국과 일본에서도 여러 차례 간행되어 동양 3국의 의학 발달에 기여하였으며, 지금도 질병 치료와 의학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또 선조 34년(1601) 왕명을 받아 『諺解救急方』, 『諺解胎産集要』, 『諺解痘瘡集要』 등 세 가지 의서를 편찬 언해하여 간행하였다. 이것은 임진왜란 후 창궐한 전염병을 치료하고 인구의 증가를 도모하기 위해 편찬한 책들이며, 『新纂 瘟方』은 광해군 4년(1612) 악성 전염병의 치료를 위해 편찬한 것이었고, 『 疫神方』은 광해군 5년(1613) 전국에 큰 인명피해를 준 唐毒疫의 치료서로 편찬한 것인데 매우 탁월한 과학적 의서로 평가되고 있다. 『臘藥證治方』은 어의로서 연말에 궁중의 상비약을 준비하기 위해 편찬한 것인데, 이 책은 영조 때 한글로 번역하여 내의원에서 간행하였다.



선생이 광해군 7년(1615) 79세를 일기로 별세하자, 조정에서는 정1품 輔國崇祿大夫 영의정을 추증하여 업적을 기렸다. 선생은 이러한 공적으로 인해 醫聖으로 추앙받고 있다. 묘소는 한국전쟁으로 찾지 못하고 있다가, 1991년 파주시 하포리 산129번지인 이곳에 소재한 것을 발견한 후, 1995년 묘소 주변을 성역화 하였다. 配位는 貞敬夫人 안동 김씨이며, 아들은 坡州牧使 巴陵君 謙이다.



허준은 기술관이었지만 의원으로서 그리고 학자로서 뛰어난 자질을 갖춘 인물이었던 데다가 특히 선조와 광해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기 때문에 남다른 업적을 이룩할 수가 있었다. 즉 의원으로서는 『東醫寶鑑』 등 한국을 대표하는 의서를 편찬하는 학문적·기술적 업적을 이룩하였고, 官人으로서는 崇祿大夫(從1品)에 오르고 陽平君에 봉해지는 영예를 얻었다. 그의 이러한 업적 중에 가장 큰 것은 역시 『東醫寶鑑』의 편찬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허준은 그의 대표적 저서인 『東醫寶鑑』뿐만 아니라 다른 저술들도 모두 상당한 학문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이 판명됨으로써 한국의학사에 있어서 許浚醫學은 더욱 큰 의미가 부여되어야 할 것이다.



····· 孫 弘烈 약력 ····



·고려대학교 사학과

·경희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문학박사)



·청주대학교 사학과 교수

·청주대학교 교수협의회 회장

·구암학회 부회장

·사)의성허준기념사업회 이사(현재)

·허준학회 회장(현재)

·사)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사무총장(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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