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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20일 (토)

김남일의 儒醫列傳 125

김남일의 儒醫列傳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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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南一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효종이 죽게 되는 과정에 대한 기사가 기록되어 있는 ‘朝鮮王朝實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가귀에게 침을 잡으라고 명하고 이어 제조 한 사람을 입시하게 하라고 하니, 도제조 원두표가 먼저 殿內로 들어가고 제조 홍명하, 도승지 조형이 뒤따라 곧바로 들어갔다. 상이 침을 맞고 나서 침구멍으로 피가 나오니 상이 이르기를, ‘신가귀가 아니었더라면 병이 위태로울 뻔하였다’ 하였다. 피가 계속 그치지 않고 솟아 나왔는데, 이는 鍼이 血絡을 범했기 때문이었다. 제조 이하에게 물러나가라고 명하고 나서 빨리 피를 멈추게 하는 약을 바르게 하였는데도 피가 그치지 않으니, 제조와 의관들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상의 증후가 점점 위급한 상황으로 치달으니, 약방에서 淸心元과 獨參湯을 올렸다. 백관들은 놀라서 황급하게 모두 閤門 밖에 모였는데, 이윽고 상이 三公과 宋時烈, 宋浚吉, 약방제조를 부르라고 명하였다. 승지, 史官과 諸臣들도 뒤따라 들어가 御床 아래 부복하였는데, 상은 이미 승하하였고 왕세자가 楹外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다. 승하한 시간은 巳時에서 午時 사이였다.”



이 기록에 申可貴라는 御醫가 나온다. 申可貴는 鍼專門醫로서 인조 때부터 이미 뛰어난 의술로 상을 여러 차례 받았던 당시 최고의 名醫였다. 그럼에도 이 시기 年老하여 病患으로 집에서 요양 중이었고 게다가 手顫症까지 있어서 침을 시술하기에 여의치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이 당시 효종은 申可貴를 신뢰하여 침 치료를 종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신뢰에도 불구하고 申可貴는 手顫症으로 인하여 효종의 얼굴에 있는 핏줄을 잘못 건드려 과다출혈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다.



효종의 사망원인에 대해 암살설을 주장하는 측의 주장에서 이 부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의문은 효종 얼굴에서 나온 출혈을 과연 막을 수 없었는가 하는 의혹에서 출발한다. 효종의 북벌론을 감당하기 어려운 중신들의 부담감이 효종을 죽게 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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