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영종
㈜메디라운드 대표이사
의료서비스는 특별하다. 그런데 그 특별함은 의료인만이 제공할 수 있다는 공급자의 제한성이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는 분야이기 때문은 아니다.
앞으로 30초 동안, 머릿속에서 코끼리를 지워보자. 1초, 2초, 3초…성공했는가? 이번엔 질문을 바꿔 ‘의료서비스’를 떠올려보자.
코끼리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긴 코에 커다란 귀를 가진 동물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반면 ‘의료서비스’는 우리의 머릿속에서 모두 각양각색일 것이다.
해외에 있는 외국인에게 “잘 들어보세요. 이것은 동물인데요. 코가 길고, 귀도 커요”라고 말하면 “코끼리”라는 답변을 듣기 쉽다. 형체가 있고,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서비스는 형체가 없다. 형체가 있고, 소비자에게 인식된 개념이 있는 상품이라면, 그 형체를 갖추고, 소비자의 인식에 맞추어 판매하면 된다. 하지만 의료서비스는 ‘무형(無形)’이기 때문에 이게 어렵다.
해외에 있는 외국인에게 우리의 의료서비스를 외국어로 설명하다 보면, 마치 어린왕자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우리는 ‘보아뱀이 삼킨 코끼리’를 설명했는데, 외국인은 ‘모자’라고 답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게다가 한의약은 우리나라의 전통의학이기 때문에 해외에서는 비교하며 설명할 대상조차 별로 없다. 굳이 비교를 시작하면 중의학과 무엇이 다르냐는 껄끄러운 질문만 되돌아올 뿐이다.
우리의 소비자들, 즉 외국인환자들은 형체가 없는 의료서비스를 ‘경험’을 통해 하나의 상품으로 인지한다. 그리고 ‘경험’에 가치를 부여하고, 자신이 지불한 가격이 적당한지를 판단한다. 외국인환자 유치사업에서 한의약이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외국인에게 한의약에 대한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외국인환자와 의료인이 생각하는 의료서비스의 범위가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의료인은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행위를 의료서비스로 생각한다. 하지만 외국인환자에게는 예약에서 진료, 사후관리까지가 의료서비스다. 외국인환자는 한의사의 진료를 한의약 의료서비스의 일부분으로 생각할 뿐이다.
사업의 성패는 고객이 결정한다. 그러므로 한의약을 이용하는 외국인환자를 늘리기 위해서 누구의 생각에 맞춰야 하는가는 이미 분명하다.
서비스업에서 MOT 관리라고 하는 고객접점 관리는 필수가 된지 오래다.1) 하지만 아직 한의약에서는 MOT 관리가 미숙하다. 올해 한국한의약진흥원의 한의약 외국인환자유치지원센터를 운영하면서 외국인환자를 유치하려는 한의의료기관의 인프라를 확인했는데, 외국인을 위한 외국어 웹사이트나 소개 자료를 제대로 갖춘 곳은 10곳 중 1곳 정도에 불과했다.
기존에 외국인환자를 진료했던 의료기관들은 외국인환자 귀국 후의 사후관리를 안하고 있었다. 외국인환자가 한의 의료기관을 이용하고 싶어도 정보파악 단계부터 불편했고, 불편을 감수하고 한의약을 이용했더라도 귀국 후에는 잊혀졌다. 이런 상황이라면 외국인환자가 한의약에 대해 좋은 경험을 간직하고, 훌륭한 서비스라고 인식할 리가 만무하다.
한의약 자체는 훌륭하다. 우리나라 보건의료시스템을 담당하는 한 축이고,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가 가진 명품 아이템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는 세계를 대상으로 한의약을 명품처럼 팔지 못하고 있다. 기존의 외국인환자도 한의약 이용 경험을 명품처럼 간직하지 않는다.
필자가 여러분에게 명품가방을 사라는 조건으로 1000만 원을 준다고 가정해보자. 어디서 구매를 하던 가격이 동일하고, 정품이라면 여러분은 백화점 명품관과 온라인 쇼핑몰 중 어디에서 구매하겠는가? 아마 대부분 백화점 명품관에서 구매할 것이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매하면 바로 집 앞에서 편리하게 받아볼 수 있는데도, 우리는 기꺼이 백화점으로 향한다.
백화점 명품관을 가거나, 온라인 쇼핑몰 이용하거나 1000만 원을 지불하고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명품가방 하나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백화점 명품관에 가서 구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둑한 현금을 가지고 백화점 명품관을 들어설 때의 설렘, 명품관직원들이 나에게 해주는 서비스, 명품가방을 손에 쥐고 나올 때 백화점의 다른 고객들의 시선 등등이 그 이유일 것이다. 이처럼 우리 자신도 경험적 요소를 지불하는 비용의 가치에 포함한다. 그게 신체적 경험이든, 정신적 만족감이든 말이다.
오늘날 한의약을 이용하는 외국인환자는 오프라인 명품관에서 덜렁 명품가방만 받고 나오는 꼴이다. 명품가방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외국인 소비자의 신체적 경험과 정신적 만족감을 높여줄 요소가 부족하다. 이렇게 되면 외국인 소비자는 명품관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과거에는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이 있고, 가격이 합리적이고, 적당한 장소에서 판촉행위를 하면 판매할 수 있었다. 이를 마케팅에서는 ‘4P Mix’라고 한다.2) 하지만 이제는 고객이 선택할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가 넘쳐난다.
우리나라 한의약의 진료수준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증처럼 생사에 직접 연관된 질환이 아닌 이상 우리의 고객인 외국인환자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너무나도 많다. 외국인환자 유치사업은 미국 같은 의료선진국뿐만 아니라, 태국이나 인도처럼 의료기술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가격경쟁력이 높은 나라와도 경쟁하는 글로벌 비즈니스다.
한의약은 이제 ‘고객가치(Customer Value)’, ‘고객비용(Cost to customer)’, ‘편리성(Convenience)’,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를 추가로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서비스가 제공되는 ‘과정(Process)’, ‘환경(Physical Evidence)’, ‘인력(People)’을 개선해야 한다.

물론 이를 모두 갖추려면 한의 의료기관의 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외국인환자가 오기 시작하면 투자하겠다는 생각이면 곤란하다. 우리 스스로도 명품가방을 살 때면 온라인 쇼핑몰보다는 백화점 명품관을 가지 않는가. 백화점 명품관이 일단 가방이 팔리면 그때서야 인테리어와 서비스 인력을 갖추겠다고 하면 우리는 그곳을 방문할까?
우리가 고객일 때는 당연히 원하는 것들을 제공자가 되는 순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한의약이 한국의 명품이라고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명품을 명품답게 팔 준비를 함께 해야 한다.
1) The Moment of Truth : 진실의 순간 혹은 결정적인 순간이라는 뜻으로, 고객이 서비스를 접하는 15초 정도의 짧은 순간에 고객이 생각하는 서비스의 가치가 결정된다는 의미
2) 제품(Product), 가격(Price), 장소 및 유통(Place), 홍보와 같은 판매촉진 활동(Promo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