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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9일 (금)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44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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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趙憲泳에 의해 제기된 “通俗漢醫學”論



‘通俗’이란 사전적으로 “널리 통하는 풍속”, “일반 대중에게 널리 쉽게 통하는” 것을 뜻하고, ‘通俗的’이라는 말은 “대중적이며 보편적인”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通俗漢醫學”이란 용어는 “일반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한의학”이란 의미가 된다.



1934년에는 한의학의 역사에서 획을 긋는 책 『通俗漢醫學原論』이 나오게 된다. 이 책은 지금도 한의대에 입학하는 예과 1년생들이 선배들로부터 추천받는 필독서로도 통하는 스테디셀러이다.



당시 이 책이 출간되어 형성된 반향이 컸던 것은 이 책에서 주창하는 通俗漢醫學이란 개념의 무게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당시 趙憲泳이 35세의 나이였음을 감안할 때 이것은 매우 대단한 일이었다. 이러한 젊은 나이에 만들어낸 책이 어떻게 당시에 그렇게 큰 반향을 일으켰고 지금까지도 계속 읽히는 책이 될 수 있게 된 것일까?



해방 후인 1949년 이 책을 다시 간행하면서 붙인 서문에서 趙憲泳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가 漢醫學에 關한 著書를 한다는 것은 나 自身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三十이 되어서 漢醫學書를 처음 펴 보게 된 것은 그때 우리의 處地가 남달랐고, 大衆醫療가 實로 悲慘한 狀態에 있었으며, 이 大衆醫療에 가장 貢獻이 많고 偉大한 功效가 있는 漢醫學이 날로 衰頹해가는 것이 愛惜하고 憂慮되어 그 復興에 微力을 보태려고 한 것이며, 그 結果가 이 冊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 拙著가 漢醫學硏究의 態度와 方法에 있어서 中國이나 日本에도 없는 全然 새로운 面을 開拓했다는 것을 스스로 믿는 바이나, 처음 일인 것인만큼 잘못되고 不足한 점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니, 이는 大方의 叱正과 新進 斯學徒의 硏究, 補充을 期待하는 바이다.”



이 글에서 通俗漢醫學이라는 개념의 실체가 엿보인다. “大衆醫療가 實로 悲慘한 狀態에 있다”는 시대적 문제와 “이 大衆醫療에 가장 貢獻이 많고 偉大한 功效가 있는 漢醫學이 날로 衰頹해가는 것이 愛惜하고 憂慮되어 그 復興에 微力을 보태고자”라는 학문적 목적으로 “通俗漢醫學”이라는 개념이 설정된 것이다.



일제가 한국을 침범하여 한국의 의료제도를 서양의학 위주로 재편한 후 오랜 기간이 지난 이 시기에 한의학자들은 어떤 식으로든지 한의학의 자생적 갱생을 엿보지 않을 수 없었고 이에 따라 東西醫學의 비교를 통한 한의학의 정체성 확보라는 대안적 방안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趙憲泳은 1934년 5월3일 朝鮮日報에 “東西醫學의 比較批判의 必要”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는데, 그는 東西醫學의 비교와 비판의 의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東西醫學의 比較, 批判에 의하여 漢醫學을 正當히 理解하고 그 醫學的 價値를 明確히 認知한 뒤에, 이것을 社會에 알려서 一般的으로 漢醫學의 社會的 存立의 意義가 크다는 것을 힘있게 믿도록 하여야 한다. 거기에 民衆의 要求가 생기고 社會의 支持와 政治的 後援을 얻게 되는 것인즉, 그때는 硏究所, 講習所, 學校, 病院 등 여러 가지 필요한 機關을 設立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東西醫學의 비교와 비판을 통해서 한의학의 사회적 존립가치를 획득하고자 하는 것으로서 이를 민중과 사회의 도움 그리고 이로부터 획득된 정치적 후원 등을 통해 관철해내고자 하는 것이었다.



같은 글에서 趙憲泳은 한의학을 民衆에게 제대로 알려야 할 때가 왔음을, “한의학의 미신과 전설의 옷을 벗기고 그 원리를 민중에게 알려서, 민중을 구제하는 진정한 인술이 되게 할 시기가 왔다”고 하는 말로서 표현하고 있다. “미신과 전설의 옷”은 한의학에 대한 민중들의 오해의 외피로서 벗어 던져야 할 구각이었던 것이다.



“通俗漢醫學”이란 용어는 1936, 1939년 대중을 위한 강연회에서 “通俗漢醫學講演”이라는 제목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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