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동안 세계 오지서 15차례 봉사 ‘구슬 땀’
‘사랑이 사랑을 낳는다’ 지속적 의료봉사 다짐
“의료봉사는 내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베푸는 것이 아니다. 단지 병들고 아픈 사람들과 함께 작은 사랑을 나누는 행위다. 그러나 그 행위로부터 나는 더욱 행복해 질 수 있다. 너무도 큰 사랑을 얻고 돌아오기 때문이다.”
지난 95년 8월 러시아의 사할린을 시작으로 지난 4월 필리핀의 마카티까지 10년에 걸쳐 15차례의 해외의료봉사 발자취를 남긴 강원도한의사회 임일규 명예회장.
강원도의 슈바이처 ‘맞습니다’
이와함께 국내에서도 한약분쟁이 한창이던 지난 1993년 의료사각지대인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 마을과 자매결연을 맺고 한해도 빠지지 않은 채 지속적인 의료봉사로 ‘강원도의 슈바이처’로 통하는 임 회장.
그는 의료봉사에 대해 ‘쉬우면서도 매우 어려운 것’이라고 말한다. “촛불이 스스로의 몸을 태워 어두운 곳을 밝혀주듯이 의료봉사는 소극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의에 의해 행할 때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임 회장.
임 회장이 이처럼 의료봉사의 첨병에 설 수 있었던 데에는 1960년대, 그의 30대 청년 한의사로서 느끼는 한의학의 현실이 큰 몫을 했다.
당시만 해도 의료봉사는 양방에서나 가능한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을 때다. 한의사의 의료봉사 활동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부족했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우수한 치험례를 지니고 있는 한의학을 통해 한의사의 위상을 높이고 싶었던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
또한 국경을 넘나드는 그의 해외 의료봉사는 깊은 인간 사랑으로부터 출발한다. “국내·외를 떠나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웃들의 아픔은 모두가 같다. 그들에게 작은 사랑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나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든 시간이 됐다”는 임 회장.
그는 또 한의학의 세계화를 실천하는 것을 큰 일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해외의료봉사와 같은 작지만 소중한데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국민과 함께 하는 한의학, 시대에 앞서가는 세계속의 한의학으로 발전하기 위한 디딤돌로서 의료봉사만큼 빠르게 가시적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것도 드물다”는 임 회장은, 사람과 사람끼리 부딪치며 사랑을 전할 때 국경없는 한의학의 가치를 발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그는 이디오피아에서의 해외의료봉사를 잊지 못한다고 한다. 한국 전쟁 당시 26일간의 항해를 통해 한국에 도착, 포연속으로 사라져간 이디오피아 젊은 군인들의 산화(散花).
그들을 진료할 때 느낀 깊은 눈 속의 그리움과 정겨움. 그들이 목숨걸고 지키고자 했던 자유와 평화가 한의학으로 새롭게 태어나 자신들에게 인술(仁術)을 펼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가슴속으로 전해질 때 의료봉사하게 된 것을 너무도 감사하게 생각했다는 그.
깊은 사랑 종소리처럼 퍼져 나가
이런 인연은 매년 6.25때가 되면 춘천시에 소재한 이디오피아 참전용사 기념탑을 찾는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때가 되면 양말 한 켤레, 식사 한끼 대접하는 소박한 정을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는 임 회장.
그는 의료봉사의 보람과 기쁨이 보다 많은 이 땅의 젊은 한의사들에게 전해졌으면 한단다. “세상은 정말 넓고 할 일이 많다. 21세기는 문화 중심의 시대다. 한의학이란 우수한 문화상품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는 해외의료봉사 현장에 서 있게 되면 큰 감동으로 다가섬을 느끼게 된다”는 그.
최근 그는 그동안의 의료봉사 발자취를 담은 ‘고희기념·해외의료봉사 10주년 기념집’ 출판기념회를 개최한 바 있다. 의료봉사로 대변되는 그의 삶의 궤적에 대해 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KOMSTA) 김호순 단장은 ‘사랑의 종(鐘)’이라고 말한다.
임 회장은 지난 2002년 KOMSTA 창립 10주년을 맞이해 자신이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사랑의 종’을 봉사단에 기증한 바 있다.
우리의 이웃 모두에게 베푸는 깊은 사랑이 은은한 종 소리로 널리 퍼져 나가 아름다운 메아리를 남길 것이란게 그가 걸어온 길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