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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20일 (토)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96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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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을 맞이하여 한의사들은 새로운 희망에 부풀어 한의사단체를 구성하여 학문을 소생시킬 궁리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해 10월에 京畿道醫生會 간부들이 한의사단체를 만들 것을 논의하여 창립준비위원회를 만들게 되었고, 11월3일에 한의사단체인 朝鮮醫士會가 결성되게 되었다.



한의사들의 모임인 朝鮮醫士會는 1947년 5월에 학술 진작을 위해 東洋醫學會를 결성하게 된다. 이때 會長에 李炳天, 副會長은 金東薰과 南台元이었다. 이들은 같은 해 12월에 기관지인 ‘東洋醫學’을 창간하게 된다. 본 창간호에서 東洋醫學會 부회장 南台元은 창간사에서 다음과 같이 감회를 기록하고 있다.



“半萬年의 歷史를 가진 東洋醫學. 歷代의 神醫·聖醫·明醫의 發明·硏究·經驗을 蓄積해온 象牙塔의 東洋醫學. 亞細亞民族의 保健을 當하야 燦爛한 功績이 萬年不變하는 東洋醫學. 倭賊 壓迫下에 殺시키려는 그 險惡한 속에서도 꾸준히 싸워오며 우리 배달族의 生命을 救해낸 東洋醫學. 日帝의 鐵鎖를 完全히 除去한지 거의 三年이된 오날날도 大衆의 渴望이 日高함에도 不拘하고 健全한 土臺가 確立치 못함은 어찌된 일인가? 여기에는 勿論若干의 現下 조선 情勢의 特殊現象도 있겠지만 民衆의 與論을 指導하는 言論界의 無批判과 民衆의 保健을 當한 當務者의 曖昧한 主見에 附隨되는 無誠意의 産物이 않일 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東洋醫學’은 勇敢하게 出陣하 다.

모든 反民族的·謀利的 惡質要素를 肅淸하고 民衆의 福利와 保健을 爲하야 東洋醫學의 萬年大計를 爲하야 迷論과 謀略을 排擊하고 正當한 路線을 明確하게 그의 方向을 現實的으로 提示하며 四十年間 日政下에서 거의 泯滅되얏든 東洋醫藥에 對한 一般의 常識을 啓發함이 重大使命이다. 우리 東洋醫學은 新國家建設을 爲하야 醫藥의 向上發展을 爲하야 嚴正한 與論과 公正한 批判으로써 여러분 앞에 서서 百折不屈의 精神으로 勇敢히 싸워나가기를 여려분께 盟誓한다.”



위의 글은 당시 한의사들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한의학에 대한 일제의 압정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안도와 함께 해방 3년이 지났음에도 특별한 발전적 진보가 없이 세월만 흘러가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해방 이후 무정부 상태에서 한의학이 국민보건에 이바지할 의학으로서 강구되어야 할 방안 등에 대한 고민들이 배여 있는 것이다.



‘東洋醫學’창간호에는 金永勳(1882~ 1974)의 揮毫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쓰여 있다.



“全生意於風霜之下, 冀敷榮於陽春, 專心力於螢雪之餘, 拯沈淪於苦海”



이에 이어서 南台元의 창간사, 金奎植·李正馥·崔羲楹·吳鎭燮의 축사가 이어진다. 그 뒤로는 각종 논문과 좌담회 기록, 치험례, 평론 등이 실려 있다.



당시 東洋醫學會 委員長이었던 李炳天은 ‘東西醫學의 任務’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서 동서의학 각각의 장단점을 잘 헤아려서 국민보건에 이바지하자고 하였다. 姜弼模는 ‘한의학의 再認識과 科學化’라는 글에서 “한의학은 임상방면에서 보아야 하며 진단방법과 치료방식이 크게 다른 한의학 특유의 이념을 먼저 파악하고 거기에 의한 치료법을 과학적 검토를 통해서 연구해야 할 것이다”라고 한의학의 과학화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申佶求의 ‘丁香과 肉荳 의 史的考察’은 정향과 육두구의 역사적 기원과 산지, 의서의 기록 등을 분석한 약물학의 역사이다. 인용하고 있는 내용은 동서양의 각종 자료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朱弘濟의 ‘張氏類經演譯’은 張介賓의 ‘類經’의 원문에 句義, 附演, 節旨를 붙여 풀이한 것이다.



이렇듯 1947년 간행된 ‘東洋醫學’창간호에는 일제시대의 좌절을 딛고 일어나 한의학의 신체계를 만들어내고자 고민한 한의사들의 고뇌가 배어 있다.



1947년 간행된 ‘동양의학’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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