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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20일 (토)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99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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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尹用彬이 1961년 한의대 재학시절에 가졌던 한의학의 미래에 대한 비전

한의학과 저널리즘



임일규 강원도한의사회 명예회장께서 경희대학교 한의학역사박물관에 기증한 자료 가운데 1961년 동양의약대학 학생한의학회의 명의로 간행된 『東醫會誌』 제4호가 들어 있다. 이 잡지에는 당시 4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尹用彬의 ‘「저널리즘」史上에 나타난 東洋醫學과 大衆化의 重要性’이라는 글이 게재되어 있다.



尹用彬은 이 글에서 다음과 같이 저널리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오늘날과 같이 人口密度의 膨脹, 利己的 分難, 經濟的 窮乏에서 오는 精神的 苦痛, 弱少 國民들의 精神不安과 精神的 銳敏 등으로 因한 複雜한 社會에선 그만치 慾求를 滿足시켜 줄만한 需要量의 「저널리즘」 卽 自己 存立을 爲한 手段方法에 의한 「저널리즘」이 必要한 것이며, 大量供給치 않으면 않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大衆的인 「저널리즘」을 仲媒로 하여 우리의 獨特性을 通俗化시키지 않으면 않되는 것인데, 卽 우리가 所有한 學問이 眞價의 價値를 保存하였다고 하드라도 一般化되지 않으면 그 效用의 價値를 喪失하게 되고 孤立되기 쉬우며 退弊되기 容易한 것이다. 이제 우리 東洋醫學이 三千年의 歷史를 持續해온 眞寶의 學問이라고 自處하기엔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詭言이요 誇大妄想의 失言이 되고만 것이다. 西洋醫學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後 漸次的으로 普遍化되어 그 勢力이 膨大되어감에 逆比例的으로 東洋醫學은 壓縮되어 結局엔 格下乃至 抹殺論까지 들어야만 되었다. 그렇다고 辯名아닌 辯名으로 國民앞에서 否當性을 指摘하는 사람도 別로 없었다. 이는 決코 누구에게 罪過를 轉嫁시키기 보단 全 한의사들이 「저널리즘」을 利用할줄 몰랐다고 斷言하고 싶은 것이다.”



尹用彬은 한의학이 퇴보하는 원인이 저널리즘을 활용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한의사들 자신에게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1961년 당시는 5.16 혁명이 일어나 혁명정부에 의해 정국이 이끌어가고 있었던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이러한 변화의 시기에 외부적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면 학문의 위기가 찾아오게 되는 것은 자명한 것이었다. 尹用彬이 저널리즘을 활용하여 한의학에 대한 인식을 높여나가자고 한 것은 변혁의 시기인 당시에 한의학의 부흥과 발전을 위한 하나의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이 글에서 尹用彬이 예시한 과거 한의사들이 저널리즘을 활용한 예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 1934년 2월16일 조선일보에 張基茂가 「한방의약부흥책」을 논하였고, 3월15일자에 李乙浩가 「한방의학부흥에 대하여」를 기재함. 4월19일자에 張基茂가 양의측 鄭槿陽의 공박문을 반박하는 「鄭槿陽씨 提言에 答함」을 투고함. 이후로 5월3일자에 趙憲泳이 「東西醫學의 比較批判의 必要」를 투고함. 이후 鄭槿陽의 비판이 나옴에 이를 반박하는 글을 게재함.

○ 1935년 3월 동아일보에 趙憲泳이 「陰陽五行說에 對하여 天台山人에게 寄함」기고.

○ 1936년 동아일보에 신길구가 「漢方學界의 新機運」기고.

○ 1937년 중앙일보에 조헌영이 「新醫學의 發展과 漢醫學의 今後」를 발표함.

○ 1935년 신동아잡지에 「한방의학의 위기를 앞두고」를 조헌영이 기고함. 1940년 2월 20일에서 23일 최초로 조헌영이 「과학적으로 본 한방의학」을 방송하여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 1957년 12월20일 「東洋醫藥大學報」가 당시 한의대생 金中圭에 의해 창간됨. 다음해 9월에 순수학술연구지인 「東醫會誌」가 학생한의학회에서 발간됨.

○ 1954년 11월1일에 裵元植에 의해 「醫林」이 창간됨.

○ 1955년 4월1일 대한한의사협회에서 「東洋醫藥」을 창간함.

○ 1958년 2월8일에 裵元植이 「국민보건과 한의학」을 라디오 방송인 HLKA 서울방송에서 강연함. 그 후에 盧正祐도 「유행독감에 관한 한방적 치료법」을 방송함.



<- 1961년 동의회지 제4호에 나오는 윤용빈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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