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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20일 (토)

김남일 교수의 儒醫列傳 147

김남일 교수의 儒醫列傳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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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醫術로 堂上醫官이 된 儒醫



『承政院日記』 인조4년(1626년) 7월17일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삼가 들으니, 前 仁城君 李珙이 疾을 앓고 있는데 매우 위중하므로 특별히 申得一에게 달려가서 간병하라고 명하셨다고 하였습니다. 內局의 의원 중에 오직 趙興男과 申得一만이 醫術에 능숙하여 議藥을 전담시키고 있는데, 지금 만약 외방에 나갔다가 돌아오기 전에 혹 의약할 일이 있을까 지극히 염려스러우니, 다른 御醫를 대신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전교하였다.”



이 기록에 趙興男이라는 御醫가 나온다. 위의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趙興男은 申得一과 함께 인조시기 궁중에서 자리를 비우면 공백이 생긴다고 여겨질 만큼 의술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趙興男은 『조선시대잡과합격자총람』에 따르면 宣祖 3년인 1570년 醫科 式年試에 1위로 급재하였으며, 아버지는 龍 衛副司果였던 趙終孫이었다고 기재되어 있다. 조흥남은 선조시기부터 인조시기까지 御醫로서 수많은 공적을 남겨 상을 받고 관직이 상승하였다.



그는 허준, 이명원 등과 함께 선조의 질병을 같이 진찰하였다. 특히 광해군 2년 3월5일에는 광해군이 왕세자 시절에 천연두를 앓을 때 병간호를 잘해준 것에 대해 熟馬 1필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인조시기의 기록을 보면 趙興男을 ‘堂上醫官’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이미 의관 출신임에도 堂上官으로 승진해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궁중에서의 공적을 인정한 것이다.



<- 조흥남의 기록이 나오는 승정원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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