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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20일 (토)

윤지연 원장

윤지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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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아과 떤땡님(선생님)…

개원가 일기





“다다다다다…” 복도 끝에서 뛰어오던 발자국 소리가 멈추더니 진료실 입구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떤땡님(선생님)!”



“떵준이 왔구나(성준이 왔구나)!”



나는 아이들을 진료하는 한방소아과 떤땡님(선생님)이다. 아직 발음이 제대로 잘 안 되는 아이들은 서투른 발음으로 나를 꼬박꼬박 ‘떤땡님’이라고 불러준다. 이런 아이들과 하루 종일 만나고 있어서 그런지 대화를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 아이들과 말투가 비슷해져서 발음도 서툴러지고 맞지 않는 조사를 사용하기도 한다. “떤땡님이 준 한약 잘 먹고 왔어요?”, “떤땡님이가 귀 사진 찍어 줄게요”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유치하겠지만 나에게는 아이들과 통할 수 있는 눈높이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과 지내는 나는 예쁘고 소중한 기억들이 많다.

어느 날은 아이 하나가 나에게 만원짜리 지폐를 주면서 과자를 사먹으라는 것이다. 너무 놀라서 자세히 지폐를 살펴보니 은행놀이를 할 때 사용하는 크기가 작은 가짜지폐였는데 아직 그런 개념이 없는 아이는 만원이라는 돈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른 채 자기에게 돈이 생겼다고 하면서 병원까지 들고 와서 선생님을 챙겨주는 것이었다. 그 아이의 마음이 너무 예뻐서 정말 간식을 먹은 것처럼 배가 불렀다. 그리고 그 지폐는 아직도 내 책상에 있다.



최근 월드컵 때문에 온 나라가 들썩였는데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며칠 전 아이 하나가 붉은색 체육복을 입고 등에는 ‘안정환’이라고 쓰고 목에는 종이로 만든 메달을 단 채 진료실에 뛰어 들어오더니 무작정 메달을 내 눈 앞에 내미는 것이었다. 놀라서 쳐다보는 나에게 아이는 무작정 “나는 안정환인데, 내가 골을 많이 넣었어요”라고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어린이집에서 가상 월드컵을 개최했는데 이 아이는 안정환 선수 역할을 맡았고 경기를 하면서 골을 넣은 아이들에게 주는 메달을 타서 소아과 선생님에게 자랑을 한다고 옷도 안 갈아입고 바로 병원으로 왔다는 것이다. “우와~우리 안정환 선수 너무 멋있다!!”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아이들에게 배우는 경우도 많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한창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보고 배우는 시기의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짧은 진료시간에도 그 말이 의미를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어린 아이라고 해도 자기의 증상을 곧잘 표현해주는 경우가 많아서 나는 진료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직접 증상을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이 때 내가 아이들에게 “에취했어요?”, “아야했어요?” 이렇게 존댓말을 써서 물어보면 아이들은 “네”, “아니오”이렇게 대답을 하는데, 내가 “에취했어?”, “아야했어?”하면서 존댓말을 쓰지 않으면 아이들은 바로 “응”, “아니”라고 대답을 해버린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빠이빠이’와 ‘배꼽인사’라는 인사법을 하는데 ‘빠이빠이’는 말 그대로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것이고, ‘배꼽인사’란 배꼽에 손을 올리고 머리가 땅에 닿을 때까지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하는 것으로 어떤 아이들은 거의 큰절 수준으로 하기도 한다. 아이들도 나름 공손한 인사법이 배꼽인사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진료가 끝난 후 잘 가라는 인사를 할 때, 내가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를 하면 머리를 땅에 닿을 때까지 허리를 굽히고 배꼽인사를 하면서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를 하는데, 내가 “안녕~”하고 인사를 하면 그 아이들도 “안녕~”하면서 ‘빠이빠이’를 한다.



아이들 앞에서 무심코 한 말 때문에 부끄러웠던 기억도 있다. 언제인가부터 TV매체나 주변 사람들이 ‘최고다’라는 말 대신 ‘짱이다’라는 말을 대신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청소년기의 아이들과 대화를 할 때는 자기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자기들끼리 통하는 말을 알고 있어서 아는 체를 해주면 마음을 열어 대화가 잘 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 아이들과 진료할 때 ‘짱이다’라는 단어를 여러 번 사용한 것 같다. 어느 날 어린 아이 하나가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캐릭터 카드를 많이 가지고 와서 진료책상에 올려놓고는 나에게 자랑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가 으쓱할 수 있도록 부러움에 섞인 말을 한다는 것이 무심코 “우와~카드 정말 많다! 짱이다~”라고 말해버린 것이다. 내가 말하고 약간 놀라기는 했는데 바로 진료를 보느라 금방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다음 진료시간에 아이 엄마가 오셔서 집에서 아이가 “짱이다”라고 말을 하는데 집에서는 사용한 적이 없다고 얘기를 하시는 것이었다. 아이 엄마는 조심스레 본인이 미안한 듯 말씀하셨는데 나는 너무 죄송하고 부끄러워서 정말 진료실 책상 밑에라도 가서 숨고 싶었다. 그 날 진료시간에 나는 ‘최고다’라는 말을 10번 넘게 계속 아이에게 사용했고 그 후로 ‘짱이다’라는 말 대신 ‘최고다’라는 말을 간신히 아이의 기억 속에 심어줄 수 있었다. 나는 그 후로는 진료할 때 ‘짱이다’라는 말을 절대 하지 않고 대신 ‘최고다’라는 말을 열심히 사용하고 있다.



잠깐 만나는 나의 행동과 말을 보고 그대로 따라하는 아이들……. 내가 무심코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니 한 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바짝 든다. ‘아이들이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는 사람인데 아이들 앞에서 모범을 보여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진료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자세를 가다듬게 된다.



학생 시절 한방소아과를 처음 배우던 날 들었던 내용처럼 소아를 진료하는 것은 어른들을 진료하는 것보다 10배, 아니 그 이상 힘들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10배, 아니 힘든 것보다 더 많은 보람과 기쁨이 있어 지금 이렇게 소아과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 한비야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기는 신명이 나는 일을 하고 싶은데, 예전에는 여행을 하는 것이었고, 지금은 구호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힘든 걸 알면서도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다고…….



그럼 나는 언제 신명이 날까? 나는 진료실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 힘들어도 가장 신명이 나는 어쩔 수 없는 소아과 ‘떤땡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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