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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7월 10일 (금)

이수진 교수

이수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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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전쟁 속의 한의학



몇 년 전 개봉해서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그러나 흥행 성적이 그리 좋지는 못했던 마술사에 관한 영화가 있다. 19세기 말 런던을 배경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가면서 필사적으로 경쟁했던 두 마술사에 관한 영화 ‘프레스티지’이다. 영화의 신비롭고 환상적이면서도 어두운 분위기와 줄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인물인 ‘니콜라 테슬라’라고 하는 과학자가 나온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름인데 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위인전도 찾아보기 어렵지만 사실 과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교류전기를 개발한 사람이며, 700여 개 이상의 특허를 가지고 있어 천재과학자라 불렸고, 미국 과학자들의 상당수가 테슬라의 전기를 읽고 과학자로서의 꿈을 키웠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다. ‘전기’라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발명의 아버지라 불리는 ‘토머스 에디슨’을 떠올리지만 현재 발전소에서 일반적으로 만들어지는 전기는 테슬라가 고안한 교류이며, 에디슨과 테슬라, 바로 이 두 사람이 이른바 최초의 표준전쟁이라 일컬어지는 교류와 직류의 전기전쟁을 치렀던 사람들이다. 두 사람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당시 실험을 위해 희생된 동물만도 수십 마리에 이른다고 하며, 1915년 두 사람이 노벨 물리학상 공동 수상자로 결정되었으나 두 사람 모두 함께 상 받기를 거부하여 결국 둘 다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니 표준전쟁을 가히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일컬을 만하다.



이러한 표준화 경쟁이 현대사회에서는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표준을 선점하는 자는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고, 전 세계가 경제적으로 하나로 연결되는 현대사회에서 시장의 선점이 가지는 의미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기에 표준에 관한 논의는 총성이 없고 피만 흘리지 않는다 뿐이지 ‘전쟁’이라 일컬음에 부족함이 없다. 표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진시황이 최초의 고대 중국 통일 국가를 세울 수 있었던 것도 마차바퀴나 무기의 표준 제정 등의 덕분이었다고 하며, 통일 후에는 도량형이나 화폐의 표준 등을 통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할 수 있었다고 한다.



출발선도 경쟁에 대한 제한도 없는 국제표준전쟁에서 한의학 분야 역시 예외가 있을 수 없다. 현재 전통의학 및 보완대체의학에 대한 표준 논의가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WHO에서는 ICD(국제질병사인분류)-11 개정판에 전통의학 분야를 삽입하기 위한 ICTM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며, 1년에 몇 회씩 ISO(세계 표준기구)의 전통의학 분야 회의가 개최되고 있다.



ISO 회의에 몇 차례 참석해 본 바로는 중국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몇 년 동안 국가프로젝트 수행 등을 통하여 국내표준 제정, 국제표준을 위한 전략 수립 등의 준비과정을 거쳐 ‘중의학이 곧 세계전통의학’이라는 명제를 달성하고자 하고 있다. 며칠 전에도 북경에서 열린 ISO/TC249의 전통의학 정보 분야의 분과회의에 참석하였는데 중국은 중국의 용어표준, 한약재명 표준 등을 국제표준으로 만들고자 제시하였고, 중의학의 세계통일을 바라지 않는 한국의 입장에서 ISO 회의장에서의 분위기는 늘 에디슨과 테슬라의 전기전쟁 당시 못지않게 치열하다. 1박2일 동안 회의가 진행되었는데 첫날, 둘째 날 모두 1시간가량 늦게까지 회의가 진행되었고 시간이 모자라 둘째 날은 아침에 예정시간보다 일찍 모여서 논의를 더 진행하기도 할 정도였다.



사실 한의학 분야는 표준에 대한 대응이 많이 뒤처졌던 게 사실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 한의학에 관한 이렇다할 표준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사실 한의학 분야에 표준이 필요하다는 인식조차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중국이 이미 국가의 지원을 통해 제정한 표준을 들고 나올 때, 거기다가 그러한 표준들의 상당수는 이미 다국어버전을 가지고, 중의학에 익숙해져 있는 다른 나라들이 표준의 필요성에 동감하고 찬성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침이나 의료기기 분야에서는 한국이 국제표준을 제안하기도 하였고 5월에 열릴 ISO/IC249 3차 총회에서 일부는 국제표준으로 제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기본이 되는 용어나 교육 분야에서는 아직 한국의 국내표준 제정 작업 등이 마무리되지 않아 국제적인 대응에의 자료가 부족한 것이 안타깝다.



그렇다면 이제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의학 표준화 및 국제표준화 대응을 위하여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다양한 국내표준의 제정이다. 한의학회 산하의 한의학용어 및 표준화위원회에서 시행하고 있는 표준한의학용어집 개정작업이나 기술표준원 과제로 제정된 침, 뜸 등에 대한 KS 표준 제정 등 많은 국내표준을 준비하여 가지고 있을수록 국제표준작업에의 대응이 원활할 수 있다.



두 번째로 현재 수행 중인 기술표준원 과제는 일부 표준 개발도 수행하고 있으나 장기적인 로드맵 개발이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로드맵을 개발하더라도 로드맵에서 제안한 내용들이 실제로 시행될 수 있도록 인식 전환 및 지원이 없다면 아무런 쓸모없는 서류작업에 불과하게 된다. 아직 한의학계 및 유관 정부기관, 단체의 한의학 표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인지 국제적인 변화를 인지하고 제안한 내용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인 양 취급당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관련 기관 및 단체의 인식의 전환, 국제적인 한의학 표준의 중요성 인지를 촉구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로드맵 및 콘텐츠 개발 등을 위해서는 한의학 분야 국제표준화대책위원회를 만들어 한의학계뿐 아니라 보건복지부, 기표원, 식약청, 농림청, 환경부 등 정부기관과 그 밖의 관련된 산업체, 학계 등을 총망라한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것을 제안해 본다. 현재 기술표준원 산하에 ISO/TC249 대응을 위한 한의약전문위원회가 있고, 보건복지부 주도로 WHO ICTM 대응을 위한 ICTM 위원회가 만들어졌으나 한의학 분야의 국제표준을 위해서는 힘을 모아야 할 관련 분야가 너무나 많다.



표준화는 당장 눈앞에서 이익을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그 결과물은 몇 년, 몇 십 년 후에 나타나게 되고 우리 후손들이 그 이익을 가져가게 되는 것이다.



한의학이 한국 내의 전통의학으로 남느냐, 세계 속의 한의학으로 자리매김하느냐는 지금 진행되는 국제표준활동에 달려있을 수 있다. 한의학계 내부에서의 역할뿐 아니라 관련 기관들의 관심과 협조가 절실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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