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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7월 10일 (금)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250)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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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설립된 동양의학연구소 및 부속병원



1949년 간행된 『東洋醫學』 제3권 제3호에는 이 잡지사 기자인 金仁和가 쓴 ‘東洋醫學硏究所와 同附屬病院 訪問記’라는 글이 나온다.



취재와 인터뷰가 병행된 형태로 글이 작성되어 있었다. 이 취재 기사에는 이 연구소의 南台元 소장의 사진, 강필모 부소장의 진료 광경, 한의사 의료진의 진맥 광경을 담은 3장의 사진도 담겨있어 자료적 가치가 높다.



이 글의 서두에 다음과 같이 감회를 적고 있다.



“새로운 것이 오고 낡은 것이 가려는 과도기적인 형상 속에서는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쓰라린 진통기를 겪어야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위대한 역사의 분수령을 넘으려는 우리나라의 모든 부문이 쓰라린 진통을 맛보고 있다는 사실을 누가 부인하리요마는 이 중에서도 수천여년의 장구한 역사와 이 나라 민족을 수호해온 동양의학은 찬란한 이십세기 과학에서 뒤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신구대사의 갈등 속에서 장구한 앞날을 약속하고 있으면서도 남모르는 고통을 뼈아프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진통기는 결코 장시일을 약속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동양의학연구소와 부속병원은 당시 탑골공원 뒤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당시 연구소장은 南台元이었다. 이 연구소는 1949년 6월 설립되게 되는데, 설립 목적은 ‘동양의학의 과학적인 연구와 의료 향상을 도모함’에 있다고 하였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동양의학의 문헌적 연구, 한약의 본초학적 연구와 분석,화학적 생리실험적 연구 그리고 제약기술의 연구 향상 및 한약 응용의 임상적 연구 등을 주요한 사업으로 삼고 있다.



이 연구소의 운영은 동양의학회의 직속으로 이 회에서 선출된 운영이사회가 일체의 운영을 책임지며 부서장과 직원은 소장 밑에 부소장 1인, 서무부장, 경리부, 사업부, 제약연구부, 생약연구부, 약리연구부, 임상연구부의 7개의 부가 있었다. 소장은 南台元, 부소장은 姜弼模였다. 서무부장은 박대서, 경리부장은 이광희, 사업부장은 이만규, 임상연구부장은 강필모 부소장이 겸임하였다. 생약연구소는 신길구 선생이 부장, 제약연구소는 이상인 선생이 부장을 하였다.



부속병원은 한의사 4명, 양의사 3명, 약제사 1명, 한약조제사 2명 그리고 간호사가 1명, 견습간호사가 2명 근무하고 있었다. 이 병원에서는 양방으로 진단하고 한방으로 처방을 내게 되어 있는데, 특히 영세민을 위해서는 실비로 진료해 주었다.



姜弼模 부소장은 취재 중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직 탄생한지 불과 3개월에 지나지 못해서 세인에게 자랑할만한 설비를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병원의 특색은 보신바와 같이 진찰은 동서양방으로 하고 치료는 한방으로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마는 때로는 양방으로도 합니다. 앞으로 한의학의 과학화에 조금이라도 이 병원이 공헌된다면 대단히 기쁘겠습니다.”



南台元 소장 인터뷰 가운데 특별히 당시 全社會的으로 만연되어 있었던 賣藥廣告를 크게 비판하면서 “우리는 이러한 악질업자들을 타도하기 위하여 가일층 연구하여 학문적으로 허위 선전이라는 것을 대중 앞에 폭로하여 주겠다”, “영리주의로 제약하는데에 이유가 있다고 본다. 앞으로 우리 연구소는 진정한 민족보건을 위하여 품질주의로 연구하여 일반에 공표함으로써 자연히 그러한 악질약품은 소멸될 것을 믿는 바이다”라고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이 연구소와 부속병원은 해방 이후 한의사들이 한의학을 과학화·현대화하여 대중들에게 더 가까이 가겠다는 의지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한의계의 열망을 담고 있었던 합작품이었다.



<- 1949년 동양의학 제3권 제3호에 나오는 동양의학연구소 및 부속병원 취재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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