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정민준 학생은 동국대 한의과대학 본과 2학년에 재학 중으로, 현재는 동의대 CIM Lab에서 학부생 인턴으로 참여하며 장동엽 교수의 지도를 받아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달 미국 워싱턴 D.C.에서 개최된 ‘ISMB(Intelligent Systems for Molecular Biology)’에 참가했다. ISMB는 국제계산생물학회(International Society for Computational Biology, ISCB)가 주최하는 생명정보학 분야의 대표적인 국제학술대회로 네트워크 생물학, 인공지능·머신러닝, 유전체학, 마이크로바이옴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생명과학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한 최신 방법론과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다.
필자는 한의학의 복합적인 치료 원리와 변증 체계를 보다 정밀하게 설명하기 위해 생명정보학 분야의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번 학회에 참가하게 됐다. 예컨데 한약의 여러 성분이 체내에서 어떤 변화를 거쳐 어느 표적과 경로에 작용하는지, 한의학적 변증과 같이 동일 질환으로 진단된 환자들이 서로 다른 증상과 경과를 보이고 각기 다른 치료 전략을 필요로 하는지 등을 연구하기 위해선 결국 데이터로 접근하여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연구자들은 어떤 임상 및 생체 데이터를 다루고 어떻게 활용하는지 배우고 싶었고, 임상적 질문들을 어떻게 연구 가능한 형태로 구체화하여 실제 분석과 검증으로 이어가는지를 학회에서 배우고자 했다.
학회는 분야별 튜토리얼과 학생 심포지엄을 시작으로 기조강연, 주제별 구두발표와 포스터 세션 등으로 구성됐으며, 참가자들은 관심 분야에 따라 각 세션을 선택해 들을 수 있었다.
생명정보학 분야의 최신 연구 방법론, 한의약에서의 활용은?
필자가 ISMB에 참가한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교수님의 지도 아래 수행해 온 연구를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과 공유하고, 발표 과정에서 얻은 의견을 연구의 보완과 후속 연구에 반영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생명정보학 분야의 최신 연구 방법론을 직접 접하고, 이를 한의학 연구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것이었다.
필자는 한약재 원성분과 장내미생물 유래 대사체의 예측 표적 및 생물학적 경로를 비교하는 인실리코(in silico) 연구를 주제로 NetBio 트랙에서 포스터 발표를 진행했다. 포스터를 설치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세계 각국 연구자들의 최신 연구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고, 그 수준에 자연스럽게 긴장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발표가 시작되자 다양한 연구자들이 연구의 의의와 한계, 앞으로의 발전 방향에 대해 자유롭게 질문을 던졌고, 연구는 논문을 발표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질문과 토론을 통해 끊임없이 발전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현장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발표 과정에서는 연구 방법뿐 아니라 예측 결과를 실제 생물학적 현상과 어떻게 연결하고 검증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다. 이러한 질의를 통해 연구 결과를 제시하는 것만큼이나 연구의 가정과 한계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후속 검증 계획을 함께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배울 수 있었다.
한약 관련 지식, 인공지능 모델이 학습할 수 있는 형태로 구조화
학회 첫날 튜토리얼 세션에서는 평소 연구에 활용해 온 네트워크 분석 도구인 Cytoscape의 개발에 참여한 연구진으로부터 네트워크 시각화와 분석, 자동화 방법을 직접 배울 수 있었다. 기존에는 완성된 프로그램을 연구에 활용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번 튜토리얼을 통해 연구 목적에 맞게 분석 과정을 설계하고 자동화하는 방법까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Cytoscape를 이용한 생물학적 네트워크 시각화 예시. 노드와 엣지로 구성된 상호작용 네트워크를 시각화하여 분자 간 연결 구조와 기능적 관계를 분석할 수 있다(출처: Cytoscape 공식 튜토리얼).
본 학회에서는 게놈 분석과 단일세포 전사체 분석(Single-cell RNA sequencing) 등 기초생명과학 연구가 주를 이뤘다. 처음에는 이러한 연구들이 한의학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교수님께서는 이러한 기술들이 질병의 발생 과정과 환자 간 생물학적 차이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연구 방법이며, 앞으로 한의학 연구에서도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는 새로운 분석 기술 자체를 익히는 데 그치지 않고, 각각의 방법이 어떤 연구 질문에 답할 수 있으며 한의학의 임상적 문제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발표를 듣게 됐다.
한약재와 천연물, 임상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 등 한의학과의 접점을 생각해볼 수 있는 발표도 접할 수 있었다. 특히 천연물에 관한 생물학적 지식을 인공지능 모델에 사전학습시킨 뒤 한약과 질병의 연관성을 예측한 연구가 인상 깊었다. 한약 관련 지식을 단순히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공지능 모델이 학습할 수 있는 형태로 구조화 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연구 방향을 생각해보게 했다.
인공지능, 연구 과정 자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발전
또 하나 인상 깊었던 흐름은 인공지능이 단순한 문헌 검색이나 데이터 정리를 넘어 연구 과정 자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부 연구에서는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생체 데이터의 특성에 맞는 머신러닝 전략을 설계하고, 코드를 실행·수정하며 예측 모델을 개발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다른 연구에서는 실제 단일세포 전사체 데이터를 이용해 AI Scientist의 분석능력을 평가했다. 연구 내용에 따르면 인공지능은 표준화된 분석과 반복적인 모델 개발에서는 상당한 가능성을 보였지만, 생물학적 맥락을 세밀하게 해석하고 결과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과정에서는 여전히 한계가 있었다.
이를 통해 인공지능은 연구자를 완전히 대체하는 존재라기보다, 반복적인 분석과 가설 생성을 지원하는 도구에 가깝다고 느꼈다. 결국 인공지능이 제시한 결과가 생물학적으로 타당한지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검증하는 일은 연구자의 역할로 남아 있다고 느꼈다. 정보학적 기술뿐 아니라 생물학적 배경지식과 연구 질문을 명확하게 설정하는 능력도 함께 갖춰야 한다는 점을 실감했다.
Agentomics의 연구 수행 과정. 데이터를 입력하면,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모델 설계, 학습, 예측, 성능 평가까지 각 단계를 순차적으로 수행한다(출처: Martinek et al., Bioinformatics, 2026).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강연 중 하나는 단일 질환을 환자마다 서로 다른 임상 증상과 생물학적 특성을 세분화하여 이해하려는 연구였다. 발표에서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예로 들어 사회성, 의사소통, 감각 특성, 인지 기능, 동반질환 등 다양한 임상표현형과 생물학적 데이터를 함께 분석해 질환의 이질성을 규명하려는 접근을 소개했다. 또한 이러한 다양한 데이터를 인공지능 기반의 네트워크 분석과 예측 모델을 활용해 통합적으로 분석하고, 환자별 특성을 보다 정밀하게 이해하려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최근 생명정보학은 환자 간의 다양성을 객관적인 데이터로 분석하여 정밀의학으로 연결하려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의학과 최근 정밀의학 연구와의 접점 모색
이러한 연구들을 접하며 한의학 임상에서 관찰되는 환자별 증상과 소견, 치료 반응의 차이를 객관적인 데이터와 연결하는 연구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진단과 치료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한의학은 최근의 정밀의학 연구와 접점을 모색할 수 있다. 임상에서 관찰되는 표현형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생물학적 지표 및 치료 반응과의 관계를 단계적으로 검증하게 된다면, 생명정보학과 인공지능은 가설을 구체화하고 복잡한 데이터를 해석하기 위한 유용한 연구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느꼈다.
학회 기간 동안 국내외 여러 대학의 교수님들과 연구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박사과정 연구자들과 연구와 진로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며 생명정보학 연구가 다양한 분야와 사람들의 협력을 통해 발전하고 있다는 점도 느낄 수 있었다.
CIM Lab에서 이번 학회에 참가한 필자, 장동엽 교수, 동의대 한의학과 2학년 김영찬 학생(왼쪽부터).
학회가 끝나고도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연구와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함께 월드컵 경기를 보며 자연스럽게 교류를 이어갔다. 발표장 밖에서도 학문적 교류가 계속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번 ISMB 참가는 생명정보학의 최신 연구를 접한 경험을 넘어, 한의학에서 제기되는 임상적 질문을 어떻게 객관적 데이터와 생명정보학의 방법으로 탐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앞으로도 생명정보학의 다양한 방법론을 꾸준히 익히며, 한의학의 임상적 관찰과 객관적 데이터를 연결할 수 있는 연구를 이어가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학회 포스터 발표기회 및 참가를 재정적으로 지원해주신 지도교수님이신 장동엽 교수님께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한편 이번 학회 참석 및 발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재원으로 정보통신기획평가원-지역지능화혁신인재양성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했다(IITP-2026-RS-2020-II2017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