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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18일 (월)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318)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318)

AI 시대 한의학 학습론
“한의인문학적 입장에서 살펴본 AI 시대 한의학 학습법”

김남일.jpg

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최근 한의학계의 학술 동향을 살펴보면, 진단과 치료에 있어 정밀한 의료기기를 활용하고 근거 중심의 임상 테크닉을 다루는 강좌와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임상 현장의 객관성을 높이고 치료의 재현성을 확보하기 위한 이러한 노력은 현대 한의학이 나아가야 할 당연하고도 중요한 시대적 흐름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술과 술기(術技)에 대한 논의가 가속화될수록, 한의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품고 있는 거대한 사유의 숲을 거니는 본연의 학습이 다소 뒤로 물러나 있는 것은 아닌지, 학문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자로서 깊은 상념에 잠기게 된다.


한의학은 단순한 의료 기술의 집합체가 아니다. 인간과 자연, 생명과 질병의 관계를 통찰해 온 거대한 인문학적 축적물이다. 진정한 醫道를 세우기 위해서는 시대의 변천을 읽어내는 醫史學, 다양한 학파의 치열한 논쟁과 철학을 담은 各家學說, 그리고 역사를 수놓은 한의학 인물들의 삶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東醫寶鑑』과 『方藥合編』 같은 불멸의 한의학 서적들, 선배 의가들이 남긴 치열한 고민의 흔적인 醫案과 개인 경험방, 나아가 민간의 삶과 함께 호흡해 온 의료 문화와 정교한 시스템을 갖추었던 궁중의료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탐구하고 학습해야 할 ‘한의인문학(韓醫人文學)’의 핵심 자산들이다.


그렇다면 이 방대한 한의학의 바다를 어떻게 항해할 것인가?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도구를 주목해야 한다. AI를 단순히 최신 유행 기술이나 서양의학의 전유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한의학의 본질에 더 깊이 다가가고 지식을 확장하기 위한 강력한 ‘학습의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

 

김남일.png
나노 바나나로 구현해 본 AI를 활용한 한의학 학습.

 


AI의 기초적인 작동 원리를 살펴보면, 최근 각광받는 거대언어모델(LLM)이나 딥러닝 기반의 자연어 처리(NLP) 기술은 방대한 양의 텍스트 데이터를 순식간에 학습하고 그 안에서 유의미한 패턴과 맥락을 찾아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과거에는 한자(漢字)와 고문에 대한 깊은 조예, 그리고 평생에 걸친 독서가 있어야만 가능했던 문헌 간의 교차 검증과 개념의 연결이 이제는 AI의 보조를 통해 훨씬 입체적이고 다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방대한 고문헌 속에서 내가 원하는 지혜를 찾아내 줄 지치지 않는 ‘디지털 書童’을 곁에 두는 것과 같다.


AI를 활용한 효과적인 한의학 학습법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될 수 있을까? 첫째, 문헌의 입체적이고 융합적인 독해다. 예를 들어 특정 병증을 학습할 때, AI 프롬프트를 활용하여 『동의보감』에 나타난 철학적 병리기전과 『방약합편』의 실용적 투약 지침을 동시에 비교 분석하게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학습자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한의학이 어떻게 실용적으로 변화해 왔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둘째, 숨겨진 지식의 발굴과 치료술의 재발견이다. 과거 문집이나 야사 속에 흩어져 있는 조선 시대의 의안들이나 궁중의료의 기록, 그리고 명의들의 개인 경험방 데이터들을 AI에 학습시키고 분석하면, 육안으로는 쉽게 발견하기 어려웠던 특정 본초의 배합 비율이나 숨겨진 치료술의 패턴을 도출해 낼 수 있다. 이는 곧 죽어있는 활자를 살아있는 임상 지식으로 치환하는 과정이다.


셋째, 대화형 AI를 통한 한의인문학적 사유의 확장이다. AI는 질문하는 만큼 답을 준다. 특정 각가학설이나 한의학 인물의 학술적 계보에 대해 AI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답을 주고받다 보면, 학습자는 단순한 암기를 넘어 스스로 질문을 정교화하게 된다. “조선 후기 실학의 발달이 의학 인물들의 사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와 같은 거시적인 질문을 던지고 AI와 토론하는 과정 자체가 곧 한의학적 사고력을 기르는 훌륭한 훈련이 된다.


첨단 진단 기기가 우리의 눈을 밝게 해준다면, 의사학과 한의 문헌에 대한 깊이 있는 학습은 그 진단을 해석하고 생명을 다루는 의사의 중심(中心)을 단단하게 잡아준다. 기술의 발전이 한의학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미처 다 읽어내지 못했던 선조들의 지혜를 더욱 선명하게 밝혀주는 등불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AI 시대, 한의학의 위기는 기술에 뒤처지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고유한 인문학적 사유의 깊이를 잃어버리는 데서 올 것이다. 후학들이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지혜롭게 활용하여, 파편화된 지식을 넘어 한의학의 거대한 숲을 조망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는 융합형 인재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이 눈부신 기술의 시대에 한의학이 생명력을 잃지 않고 더욱 찬란하게 진화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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