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현 원장(부산시 미로한의원)
[한의신문] 우토로 마을, 아픈 역사의 현장을 찾다
지난달 2일부터 5일까지 일본 교토부 우지시에 위치한 우토로 마을을 다녀왔다. 그곳은 일제강점기 일본 정부가 추진한 군 비행장 건설에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함바 터에 형성된 마을이다.
당시 재일조선인들은 징용과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행장 건설의 가혹한 노동에 종사하였으나 일본의 패전으로 공사가 중단되자 그 자리에 방치된 노동자와 가족들은 스스로의 손으로 불모의 땅을 개척하여 살아왔다.
해방 후 가혹한 차별과 빈곤 속에서도 민족학교를 개설하여 빼앗긴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되찾기 위한 교육도 했다.
재일조선인들의 슬럼으로 멸시되었던 우토로 마을은 상하수도 등의 생활 인프라가 정비되지 않아 큰비가 오면 심각한 수해에 고통받았으며 지하수를 끌어올려 사용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활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일본 시민들이 우토로 사람들과 힘을 합쳐 마을의 생활 개선을 요구하는 운동이 1986년부터 시작되었으며 1988년에 상수도가 설치됐다.
그러나 토지를 인수한 회사에 의해 강제 철거 위기에 몰리고 되고 주민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식민지 지배와 전쟁에 기인하는 우토로 문제의 본질은 고려되지 않은 채 명도소송에서 패소하여 불법 점거자가 됐다.
수도 문제 때부터 지원해 온 일본인 시민단체의 국내외 홍보활동으로 2001년에는 유엔 권고를 이끌어냈으며 우토로의 호소가 한국에 전달된 2005년에는 지구촌동포연대(KIN)를 중심으로 ‘우토로 국제대책회의’가 결성돼 우토로의 토지 구매를 위한 시민 모금 운동이 대대적으로 시작되었다.
우토로 마을은 어려움에 직면하면서도 곁을 지켜 온 일본 시민들, 재일동포, 한국 시민들이 협력하고 힘을 합쳐 거주권을 지켜낸 역사적 공간으로 지역 사회에서 ‘작은 통일’을 만듦으로써 새로운 사회와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 건립된 우토로평화기념관은 역사를 계승할 뿐만 아니라 우토로 주민들을 비롯한 지역 사람들에게도 열려 있는 커뮤니티의 거점으로서 일본과 한반도의 미래를 짊어진 사람들의 만남과 교류의 장이 되고 있다.
기억과 연대를 전한 한의 의료봉사
투쟁의 역사 끝에 쟁취한 시영주택에 정착한 동포들이 살고 있는 그곳에 미로한의원 의료봉사단원인 금손한의원 박수진 원장, 장문기 실장과 함께 기억과 위로와 연대의 마음을 전하고자 의료봉사를 다녀왔다.
다큐멘터리 ‘차별’의 김도희 감독이 이 여정을 영상으로 기록하기 위해 동행했다.
과거 MBC ‘무한도전’을 통해 알려졌던 1세대 어르신들은 이제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 후손인 2세대 동포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우리 동포들과 우토로평화기념관의 자원봉사자들을 대상으로 한의진료를 펼쳤다.
한국 한의학의 힘을 보여준 진료 현장
이번 진료 현장에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일본 현지 침구사 두 분도 참관했다.
그들은 환자가 허리가 아프면 허리에, 어깨가 아프면 어깨에 침을 놓는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달랐다. 오른쪽이 아프면 왼쪽에, 왼쪽이 아프면 오른쪽에 침을 놓았습니다.
통증이 느껴지는 부위 그 자체가 아니라 통증의 근본 원인을 오장육부 기운의 성쇠에서 찾아내어 한국 한의학의 정수인 사암침법으로 약해진 장부의 기운을 보강하는 원인 치료에 집중하였으며 대증치료는 동씨침법으로 하였다.
아픈 곳이 아닌 반대편 혈 자리에 침을 놓는 것을 의아해하던 환자들과 일본 침구사들은 침을 놓자마자 통증이 즉각적으로 호전되는 모습에 감탄했다.
이것이 바로 동의보감을 기본으로 한의학의 원형을 보존하고 발전시켜 온 한국 한의학의 힘이라는 설명에 그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우토로 사람들이 건넨 따뜻한 환대
우토로 마을은 식당 하나 찾기 힘든 외진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풍족한 대접을 받았다.
우토로평화기념관의 김수환 부관장이 정성껏 차려준 점심과 저녁 식사는 봉사단의 기운을 북돋워 주었다.
숙소 또한 마을 동포 자매 중 언니분이 동생 집으로 거처를 옮기면서까지 자신의 집을 통째로 내어주신 덕분에 편안히 쉴 수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기념관을 지키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단 3명의 사무국 직원 외에도 수많은 자원봉사자가 활동하고 있었다.
우리 동포뿐만 아니라 일본인들까지 가세해 기념관 운영을 돕고 있었으며 진료 중에도 사무국 직원과 자원봉사자가 통역을 맡아 환자와의 소통을 완벽하게 지원해 주었다.
치유의 온기가 이어지기를 바라며
척박한 땅에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싸워온 우토로 동포들의 삶은 그 자체로 눈물겨운 역사이다.
이번 의료봉사는 단순한 진료를 넘어 소외된 곳에서 역사를 이어가는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한국 한의학의 우수성을 현지에 각인시킨 귀한 시간이었다.
비록 몸은 고됐지만 환하게 웃으며 배웅해 주던 동포들의 눈빛과 한의학의 신비에 놀라던 일본 침구사들의 표정이 여전히 선하다.
우토로에 피어난 치유의 온기가 앞으로도 우리 동포들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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