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혜 임상교수
(강동경희대한방병원)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 주] 화가 베이먼은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죽는다고 믿던 이웃을 위해 나뭇가지에 직접 잎새를 그렸다. 이웃은 이 잎새를 보며 생의 의지를 다잡았다. 오 헨리의 소설 ‘마지막 잎새’ 이야기다. 본란에서는 죽음을 눈앞에 둔 말기 암 환자에게 한의사로서 희망을 주고자 한 김은혜 임상 교수(강동경희대한방병원)의 원고를 싣는다.
암 환자, 특히 말기 암 환자 위주로 진료를 하면서 심적으로 힘들지는 않았냐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한다. 여러 차례 얘기했듯 임종을 준비해 나가시는 분들에게 한의사라는 직업으로 큰 도움을 줄 수 없을 때가 많다. 솔직히 말하면, ‘이제 더 이상 암 치료의 의미가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오신 그 분들에게 “고통 없이 잘 돌아가실 수 있도록 도와 드리겠다”라는 말만 반복해야 하는 운명은 매 순간 버거웠다. 그럼에도 임종의 존엄한 순간을 옆에서 볼 수 있는 것 자체가 내 삶을 준비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임을 알게 되면서 버거움 또한 감사히 감당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 경험으로 깨달아진 것을 통해, 임종을 준비하는 또 다른 환자에게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잘 해드리고 나면 앞선 환자들의 가르침에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일상’
그 경험 속에는 조금은 의아한 깨달음도 있었다. 임종이 목전임에도 가정 속에 다툼이 반복되는 경우는 보통은 돈 때문이라는 것, 그렇기에 생각보다 죽음 앞에서도 돈이라는 존재는 작지 않은 의미를 가진다는 것, ‘사람은 안 변한다’라는 말이 누군가의 죽음을 앞둔 공동체 안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공식이라는 것, 그리고 이별은 떠나는 이가 아닌 남는 사람들이 온전히 감당해내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
그 중 내 삶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깨달음은 동시에 내가 이것만큼은 모두에게 적용될 거라고 확언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바로 우리 인생에서 잃고 나서야 너무나도 소중했음을 알게 되는 것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존재가 ‘일상’이라는 사실이다. ‘일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현실에 치여 가며 살아가는 보통의 우리들은 평범하고 지루한 느낌을 받곤 한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 ‘소확행’을 외치며 작은 변화들을 일으키며 자극을 받으려고 하지만 그것마저도 이내 지루해지고 만다. 하지만 그러한 작은 도전들의 반복이 인생의 긴 여정에서는 큰 동기였음을, 나는 일상의 낙을 빼앗긴 환자들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이에 이번 글에서는,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라는 뜻의 일상(日常)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게 될 것이 분명한 끝을 앞두고 병원을 나섰던 한 환자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같은 이야기 속에서 각자가 깨달을 바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글 속의 환자분께는 존중이 담긴 안녕을 보내주길 바란다.
노령의 할아버지가 딸들의 손에 이끌려 진료실을 찾아왔다.
“아버지, 진짜 마지막으로 방사선 치료만 딱 받고! 그때부터는 하시고 싶은 거 다 하시게 해 드릴게요.”
환자를 달래며 진료실로 들어오는 딸들의 목소리였다.
“싫다. 지금 말만 그렇게 하고 죽을 때까지 안 놓아주겠지.”
폐암이 쇄골에 있는 림프절에 전이되어 방사선 치료를 받고자 온 환자였다. 이미 받을 수 있는 치료는 다 받은 상태인데 최근에 새로운 전이가 또 발견되어서 온 것이었다. 쇄골 위에 움푹 파여 있어야 할 곳이 오히려 불룩 솟아오른 게 확연히 보였기에 상태가 자못 심각해 보였다. 부녀 간의 대화를 잠깐 들어보니 어르신이 원해서 온 것은 아닌 게 분명했다. 그 연세에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적용되는지, 딸들의 부추김을 결국 이기지 못한 할아버지는 한참을 투덜거리다 설렁설렁 입원할 채비를 갖췄다. 하지만 입원한 이후에도 할아버지는 여전히 치료에 큰 관심이 없는 듯했다.
“방사선 치료 언제 끝나요? 빨리 퇴원했으면 하는데.”
“쇄골 쪽은 2주 정도 입원할 생각 하셔야 해요. 퇴원해서 뭐 하시려고 그렇게 빨리 가려 하세요.”
할아버지의 마음속에 병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어 보이기에 가볍게 던진 질문이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갑자기 헛기침을 하며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이 생각보다 진지한 대답을 내놓을 눈치였다. 그 모습에서 암 환자답지 않은 형형한 자신감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오토바이 타야지요!”
응급실 의사가 가장 무서워하는 바퀴 달린 물건이 오토바이라는 사실은 이미 대외적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오토바이요? 그 위험한 걸요?”
“에잇! 하나도 안 위험합니다! 그거 다 아마추어들이 위험하게 달려서 생긴 편견이지! 우리 같은 베테랑은 얼마나 안전하게 타는데!”
“그런 말씀하시는 분들이 제일 위험해요…….”
“에잇! 선생님이 노인네한테 장난을 거네! 내가 미국에서 오토바이를 10살 때부터 탔는데요. 원래 오토바이가 전쟁에서 안전하고 빠르다고 군인들이 제일 많이 타던……”
병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세상 무관심한 표정으로 있던 할아버지는 오토바이 이야기를 시작하자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늘어놓았다. 오토바이와 함께한 나날들을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로 추억하고 있음이 분명한 반짝임이었다. 한동안 말을 이어 나가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왼쪽 소매를 걷더니 내게 내밀었다. 어르신들에게는 드문 커다란 문신이 어깨를 덮고 있었다.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오토바이 동호회 회원들끼리 젊을 적 한 문신이라고 했다. 6명의 팔이 합쳐지면 동호회를 상징하는 무늬가 만들어진단다. 알고 지내던 응급실 선생님이 “오토바이가 제일 무섭다”고 말하며 덧붙였던, “그런데, 유독 오토바이 타시는 분들은 절대 못 말리는 것 같아. 매번 타다가 사고 나셨던 분이 또 다치셔서 오거든”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오토바이’ 얘기 꺼내며 눈 빛내던 한 어르신이었는데…
“2주 뒤에 퇴원시켜 주겠다고 딱 약속하면 치료받겠습니다.”
이날 30분이 넘는 대화에 치료에 대한 얘기는 단 두 문장이었다. 2주가 지났다. 방사선 치료는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계획대로 치료는 마쳤지만 방사선 치료를 하는 중에도 쇄골 위에 솟아오른 ‘그것’은 점점 커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염증이나 일시적인 출혈 같은 다른 원인을 의심했지만 결국은 방사선 치료를 담당한 교수님도 병이 진행되고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시도할 수 있는 치료가 없는 상황에서 새롭게 생긴 부분에만 마지막으로 방사선 치료를 한 것이라서, 2주라는 짧은 시간 만에 할아버지는 더 악화된 말기 폐암 환자가 되어버렸다. 차근차근 설명을 해드렸다. 이제 정말 당신은 말기 암 환자가 되셨다고. 할아버지는 개의치 않아 하셨다. 보통은 겉으로만 괜찮은 척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분은 정말 치료의 경과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런 기대는 지난 경험을 통해 벌써 접고 오셨던 것 같다.
“퇴원시켜 주겠다는 약속 지킬 거지요?”
“댁에 계시다가 갑자기 안 좋아지시면 어떡해요.”
“그럼 죽는 거지요. 살려고 삽니까? 하고 싶은 거 하려고 사는 거지. 그러니깐 오토바이 타러 갈 겁니다.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은데, 나는 하늘로 승천할 때도 오토바이 타고 갈 겁니다. 내 영혼의 단짝이니까!”
기회가 되었다면 오토바이에 빠지게 되신 계기를 듣고 싶었는데, 얘기를 들을 새도 없이 할아버지는 그날 바로 퇴원하셨다. ‘더 이상의 입원은 자기를 더 가두기만 하는 것 같다’는 말을 남긴 채. 할아버지에게 오토바이는 당신이 암 환자라는 사실에 매몰되지 않게 해주는 고마운 물건이었을 것이다. 그저, 그가 끝까지 안전하게 타면서 하늘로 떠났기를 염원한다.
*상기 원고는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의 일부를 각색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