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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9일 (월)

한의대에 안부를 묻다-13

한의대에 안부를 묻다-13

"한의학의 역할과 필요한 잣대는 따로 존재"
"한의학 존재 의의는 서양의학의 ‘자연과학’ 관점으로 찾기 어려워"

이재혁.jpg

이재혁

동신대 한의대 예과 2학년


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학업을 이어가고 있는 전국한의과대학·한의학전문대학원학생회연합 소속 한의대 학생들에게 학업 및 대학 생활의 이야기를 듣는 ‘한의대에 안부를 묻다’를 게재한다. 이번 호에서는 동신대학교 한의과대학 예과 2학년 이재혁 학생에게 한의학 과학화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필자가 한의과대학에 처음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직면하는 하나의 주요 관심거리는 ‘한의학의 과학화’였다. 실제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엔데믹 시기에 이른 현재, 의료계에서 한의학의 과학화 이슈는 가장 뜨거운 감자가 아닐까 싶다.

 

코로나19 시기 동안 한의사들과 한의학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고,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필요했다.

 

실제로 내가 속한 한의대에서도 예과 2학년 한 학기 동안 이 주제를 가지고 심도 있는 학문적 논의가 오갔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해봐야할 것은 무엇인가?


◇한의학은 과학의 범주에 포함되는가?

 

먼저 한의학의 과학화라는 이슈가 촉발된 것을 생각해보면, 한의대 교육 편제와 의약 분업 도입이라는 제도적 측면에서 볼 수 있다. 한의학은 과학의 범주에 포함이 되느냐는 비판에서 몇 십 년째 자유롭지 못하다.

 

이 비판에 대한 대처도 아직까지 적확하지 못한 느낌이다. 더욱이 팬데믹 사태를 거치며 대한민국 국민들은 전염병 국가 비상사태에서 의료인으로서 소외된 한의사의 역할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많은 한의계 관련 사람들은 이런 비판에 맞서 자연과학적인 방법으로 한의학을 입증하고 합리적인 데이터와 수치를 수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한의학의 비판에 대한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역(周易)의 기본이치는 한 마디로 ‘불변응만변’(不變應萬變), 즉 만물은 변화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올라간다면 내려가기 마련이고, 내려간다면 다시 올라가기 마련이다.


◇한의학의 잣대는 다르다

 

현대 사회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헤게모니는 ‘자연과학’이다. 자연과학이 현대 사회를 지배하기에 이에 상응하는 서양의학이 의료계의 주도권을 쥐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서양의학이 절대적으로 옳고 비판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아니고, 한의학이 절대적으로 그르고 비판 받아야 마땅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연과학이라는 하나의 잣대, 그것조차 절대적이지 않은 하나의 기준인데 이 기준을 한의학에 들이대는 것 일뿐이다. 왜 남들이 모두 따른다고 우리 역시 같은 방향만 바라보아야 할까?

 

한의학 경전인 ‘황제내경’을 보면 가장 먼저 ‘상고천진론’(上古天眞論)이 나오고 ‘사기조신대론’(四氣調神大論)이 그 뒤를 따른다. 고대의 저서들은 편차(編次)를 할 때 저자가 생각하는 중요성에 따라 순서를 배분하곤 했다.

 

마치 사마천이 ‘사기 열전’을 저술할 때 백이의 청렴함을 가장 높게 사서 열전의 앞머리에, 부자들의 이야기 화식열전을 가장 뒤에 놓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는 한의학이 단순히 사기를 질병으로 보고 그것을 공격하는 것을 의학으로 여기기보단 평소의 예방을 통해 건강을 지키는 것을 질병 치료보다 높은 가치로 둔 것이 아닐까?

 

이재혁2.jpg

 

동의보감 서문에도 ‘수양위선 약석차지’(修養爲先 藥石次之), 몸과 정신을 수양하는 것이 우선이요 치료는 그 다음 일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질병을 데이터화해서 마치 수학 공식처럼 치료하는 것이 한의사의 역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자의 ‘소요유’ 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매미나 작은 비둘기가 붕새를 비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재빠르게 솟아 날아도 겨우 느릅나무나 박달나무의 가지에 다다를 뿐인데, 그것도 때에 따라서는 이르지 못하고 땅바닥에 떨어지건만, 무엇 때문에 붕새는 구만 리 꼭대기까지 올라 남쪽으로 가려 하는가?”

그러자 붕새는, “근교의 들판에 가려는 사람은 세 끼 먹을 음식만 가지고 가도 집에 돌아올 때까지 배가 부르겠지만, 백 리 길을 가려는 사람은 전날 밤부터 미리 양식을 준비해야 갈 수 있고, 천 리 길을 가는 사람은 석 달 전부터 미리 양식을 준비해야 갈 수 있으니, 이 두 마리의 벌레와 새가 또한 무엇을 알겠는가?”라고 답한다.

 

얼핏 보면 비둘기 따위가 어찌 붕새의 큰 뜻을 알겠냐는 식의 해석을 할 수 있지만, 장자가 말하고자 한 것은 두 존재의 가치는 동등하고 서로 존중받아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서양의학의 역할과 그들에게 필요한 잣대가 있고, 한의학의 역할과 필요한 잣대는 따로 존재한다. 서양의학이 요구하는 그들의 잣대는 그들에게 놔두고, 한의학의 잣대는 다르다는 것을 명확히 하면 된다.

 

◇한의학 교육이 바뀔 필요가 있다

 

미래 한의사들을 위해서 교육이 바뀔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의과대학을 다니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서양의학의 기준에 맞춘 수업은 많으나 한문교육과 한학교육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침을 잘 놓는 것, 다양한 약을 잘 사용하는 것, 의가들의 이론을 적재적소에 잘 이용하는 것, 서양의학적 지식으로 질병을 이해하는 것 등 모두 한의사의 역량이다.

 

하지만 한의학은 앞서 말했듯 단순한 질병치료를 통해 건강을 되찾는 의학이라기보다 개개인의 수양과 조섭을 통해 신체의 중용을 지키는 것 역시 중요시한다.

그것을 환자들에게 적용하고자 한다면 마 땅히 자신의 신체와 정신부터 다스릴 줄 알아야할 것이며, 이를 위해선 동양의가들의 이론뿐만 아니라 동양철학자들과 문호들의 다양한 글들을 통해 사색하며 자신의 생각을 바로 세워야한다.

 

조선 22대왕 정조는 조선 후기에 천주교가 들어오자 다른 왕들과 달리 대놓고 배척하지 않았다. 그가 그랬던 것은 ‘정도’(正道)가 바로 서면 ‘사도’(邪道)는 자연히 물러갈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실제 정조는 조선의 마지막으로 유학에 통달한 통치자였고, 그의 묘지문에서는 그를 유교적 성인으로 추앙하기까지 한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철학에 대해 자신이 있었고, 어떤 주변의 위협이 들어와도 흔들리지 않을 불굴의 정신을 소유했다.

 

우리 한의계가 현대화 혹은 과학화라는 하나의 흐름에 대해 더욱 더 의연하게 대처하고, 우리의 뜻이 제대로 선다면 어떤 무의미한 비판이 들어와도 꿋꿋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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