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속초20.0℃
  • 흐림25.4℃
  • 흐림철원26.0℃
  • 흐림동두천26.5℃
  • 맑음파주27.7℃
  • 흐림대관령17.2℃
  • 흐림춘천26.1℃
  • 구름많음백령도24.4℃
  • 흐림북강릉20.6℃
  • 흐림강릉20.8℃
  • 흐림동해20.8℃
  • 흐림서울27.4℃
  • 구름많음인천27.1℃
  • 흐림원주25.5℃
  • 흐림울릉도19.5℃
  • 구름많음수원27.4℃
  • 흐림영월24.5℃
  • 흐림충주25.5℃
  • 구름많음서산28.4℃
  • 구름많음울진23.4℃
  • 구름많음청주28.0℃
  • 흐림대전26.7℃
  • 흐림추풍령25.3℃
  • 흐림안동25.6℃
  • 구름많음상주27.2℃
  • 구름많음포항23.9℃
  • 흐림군산25.7℃
  • 흐림대구27.8℃
  • 흐림전주27.6℃
  • 구름많음울산24.6℃
  • 구름많음창원24.0℃
  • 구름많음광주28.8℃
  • 구름많음부산24.8℃
  • 구름많음통영27.1℃
  • 구름많음목포26.1℃
  • 흐림여수26.6℃
  • 구름많음흑산도25.0℃
  • 흐림완도27.2℃
  • 구름많음고창27.5℃
  • 흐림순천27.5℃
  • 구름많음홍성(예)28.0℃
  • 구름많음26.4℃
  • 흐림제주27.5℃
  • 구름많음고산23.1℃
  • 맑음성산25.2℃
  • 구름많음서귀포27.0℃
  • 흐림진주26.7℃
  • 구름많음강화26.2℃
  • 흐림양평25.6℃
  • 흐림이천26.6℃
  • 구름많음인제24.7℃
  • 흐림홍천25.6℃
  • 흐림태백17.8℃
  • 흐림정선군20.5℃
  • 흐림제천23.4℃
  • 흐림보은26.5℃
  • 구름많음천안26.7℃
  • 흐림보령27.4℃
  • 흐림부여26.9℃
  • 흐림금산26.5℃
  • 구름많음26.9℃
  • 흐림부안25.6℃
  • 구름많음임실28.1℃
  • 구름많음정읍27.3℃
  • 구름많음남원28.6℃
  • 구름많음장수26.5℃
  • 구름많음고창군26.5℃
  • 구름많음영광군26.2℃
  • 구름많음김해시26.7℃
  • 구름많음순창군27.7℃
  • 구름많음북창원27.9℃
  • 구름많음양산시27.4℃
  • 구름많음보성군27.6℃
  • 구름많음강진군27.3℃
  • 흐림장흥27.4℃
  • 구름많음해남27.5℃
  • 흐림고흥26.0℃
  • 흐림의령군29.0℃
  • 흐림함양군29.4℃
  • 구름많음광양시27.7℃
  • 구름많음진도군25.5℃
  • 흐림봉화24.2℃
  • 구름많음영주24.2℃
  • 흐림문경25.6℃
  • 흐림청송군26.3℃
  • 흐림영덕22.3℃
  • 흐림의성27.1℃
  • 구름많음구미29.2℃
  • 흐림영천26.5℃
  • 구름많음경주시28.0℃
  • 흐림거창27.8℃
  • 구름많음합천29.0℃
  • 구름많음밀양27.3℃
  • 흐림산청27.8℃
  • 구름많음거제24.4℃
  • 구름많음남해25.5℃
  • 구름많음26.8℃
기상청 제공

2026년 06월 21일 (일)

김남일 교수의 儒醫列傳 153

김남일 교수의 儒醫列傳 153

B0042010100532824-2.jpg

B0042010100532824-1.jpg

조선 초기 의관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전범을 만든 儒醫



역사상 형제가 모두 의원으로 활약하여 당대에 가문의 이름을 떨친 경우가 있다. 바로 楊弘達과 楊弘迪 형제이다. 형인 양홍달은 태조·정종·태종 3대에 걸쳐 35년간 典醫로 활동하면서 의사로 이름을 떨쳤다.



여러 차례 인생의 역경을 겪기도 하였지만, 그 때마다 주위의 도움으로 이를 극복하고 관직이 2품인 검교승녕부윤에 이르게 되었다. 1397년(태조 6년)에 왕의 질병에 신속히 입궐하지 않았다는 죄명으로 축산에 유배되기도 하였고, 1405년에는 賤女의 소생이라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한때 해직되기도 하였다.



또한 1417년에는 왕의 병환을 치료하면서 제대로 여쭈어보지 않았다는 명목으로 門外黜送 당하기도 하였다. 1418년 성녕대군의 질환을 오진하여 죽게 했다고 하여 庶人으로 폐할 것을 刑曹에서 여러 차례 청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太宗이 이를 만류하여 위기를 넘기기도 하였다.



동생인 楊弘迪도 풍파를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1399년(정종 1)에 朝士와 같이 벼슬이 허용되었으며, 1408년(태종 8) 御府醫員으로 왕의 鍼灸에 착오가 있다 하여 순금부(巡禁府)에 갇힌 것이다. 그러나 이내 얼마 후에 다시 석방되었다. 1412년에는 檢校參議로서 공이 있다 하여 쌀 열석을 하사받았고, 이어서 檢校工曹參議가 되었으며, 原從功臣에 녹훈되어 田結을 상으로 받았다.



조선 초기 국가의 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양홍적의 행적은 이 시기 의관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에 대한 하나의 전범으로서의 역할을 하여 이후 조선의학의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되었다.



<- 양홍적의 행적이 나오는 ‘태종실록’.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