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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22일 (월)

김남일 교수의 儒醫列傳 152

김남일 교수의 儒醫列傳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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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사화로 화를 입은 儒醫



조선 중기 중종년간에 궁중에서 어의로 활동한 安瓚은 의관 출신임에도 정치적 소용돌이에 사로잡혀 불행한 인생을 마감한 인물이다.



순흥이 본관이며 자가 黃中인 安瓚은 1517년 典醫監 安 의 추천으로 典醫監主簿가 되었고 그 다음해에는 의학교수가 되어 의학생도들을 지도하였다.



그의 치료 행적에 대한 기록이 있다. 『己卯錄補遺』의 ‘醫師安瓚傳’에 따르면 安瓚이 눈이 감겨져 풀로 붙인 것처럼 뜨지 못하는 어떤 남자를 “눈은 肺에 속한다. 肺가 병을 받았기 때문에 눈이 반드시 막히게 된 것이다(眼者屬於肺. 肺受病故眼必閉)”라고 말하고는 肺를 치료하는 약을 사용해서 완쾌시켰고, 생식기가 갑자기 아파오면서 물이 용출하고 짐승처럼 몸에서 털이 나는 여자를 “털은 피의 나머지이다. 피가 병을 받아서 이와 같은 괴이한 병이 된 것이다. 가히 먼저 피를 치료하면 된다(毛者血之餘. 血受病故有此怪也. 可先治血)”고 하고는 血藥을 복용시켜 치료해내었다.



이러한 기이한 질병을 치료해낸 것에 대해 『紀年便攷』, 『國朝人物志』, 『寒 觀外史』, 『海東雜錄』 등에서도 논하는 바이니, 아마도 이 시기 安瓚의 치료 이적은 장안의 화제였던 것 같다.



그는 조광조와 개인적 친분이 두터웠고 산수화에도 능력이 있었으나 1519년 기묘사화로 화를 입은 유림들의 신원을 상소했다가 장류되던 중 延曙驛에서 죽고 말았다.



<- 안찬에 대한 기사가 나오는 ‘국조인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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