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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21일 (일)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117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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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일원화 논쟁

살얼음판 위를 달려온 생존의 역사



1951년 국민의료법이 공포되어 한의사제도가 탄생된 이래로 한의사제도의 존립에 대한 문제 - 소위 의료일원화 논쟁 - 가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다.



이를 살펴본다면 첫째, 한의학은 학술적 근거도 없는 민간요법 수준의 의학이므로 일원화시킬 가치도 없기에 한의사제도를 폐지시켜 서양의사만을 존립시켜야 한다는 ‘한의사제도 폐지론’이 우세하였던 1950, 60년대의 논쟁, 둘째, 한의학의 치료효과는 인정하지만 비과학적·비합리적 요소를 해결하고 이원화된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서양의학의 하나의 분과 정도로 인정하는 수준에서 일원화하여야 한다는 ‘의료제도상의 일원화론’이 우세하였던 1970년대 이후의 논쟁으로 나뉜다.



1961년 10월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의료법 중 한의사제도를 삭제시키는 안을 통과시켜 버린다. 이와 함께 한의과대학의 폐쇄도 결의되어 한의사의 신규배출이 저지되고 말았다. 한의계는 이에 반대운동과 끊임없는 건의로 同年 12월 최고회의로부터 긍정적인 회답이 왔고, 이듬해인 1962년에는 한의사제도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신의료법안이 통과되어 한의사제도가 유지되게 되었다.



1970년대 들어오면서 의료일원화 논쟁은 이전과는 달리 양의학계가 일방적인 한의학 비판을 포기하고 의료제도의 효율화, 한의학에 대한 학술적 연구, 체계적인 제도화를 모색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의료일원화를 주장하기 시작함에 따라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1974년 대한의학협회는 집행진을 중심으로 의료일원화위원회를 구성하여 의료일원화를 체계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러한 위원회의 구성은 의료일원화에 대한 양의계의 새로운 입장을 대변해 주는 것이었다. 1977년 대한의학협회와 대한약사회는 공동명의로 의료제도일원화에 관한 건의서를 보사부와 문교부에 제출한다. 이 건의서에는 의료이원화는 의학과 약학의 발전을 위해서나 국민보건 향상에 바람직하지 못하다,



의료이원화제도 상에서는 환자가 병의원과 한의원을 방황하는 가운데 치료의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여 경제적 손실이 막중하다, 전세계에서 의료이원화제도를 행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등의 주장이 적혀 있다.



이에 대해 대한한의사협회 회장 오승환은 “한의학은 한의학적인 견지에서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하고, 끝까지 투쟁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회장 오승환, 경희대 한의대학장 김정제, 원광대 한의대학장 이창빈 등의 공동명의로 된 반대성명서를 보사부와 각계요로에 제출하였다. 이 성명서에는 이원화제도가 성립된 지난 시기의 과정을 설명하고 한의계의 자발적인 노력을 상기시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와 함께 ‘동서의학의 비교연구·비교치료, 국가적인 차원에서 국공립한의대, 국공립한방병원의 설립’을 정부에 요청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저항에 부딪친 정부는 의료일원화 논의를 폐기시켰다.



의료일원화가 대한의사협회나 대한약사회에 의해 기도되었던 이전의 양상과 달리 1980년대에 들어서는 의료일원화가 정부에 의해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1981년 천병태 보사부장관에 의해 제기된 의료일원화방안이 그러한 예이다. 이 방안은 한의계의 반대에 부딪쳐 곧 저지되었지만, 이후 의료일원화 논쟁은 한의계의 골칫거리가 되고 말았다.



1990년에 보사부와 양의계에 의해 추진된 의료일원화도 깊은 파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당시 서울시한의사회부회장이었던 최환영, 경희대교수 박찬국 등은 지면을 통해 그 문제점을 논박하고 그 문제점을 제시하였다. 박찬국은 同年 11월16일 경희한의대 학생회 주최로 열린 “한의학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의료일원화 기도를 “국민선호를 외면한 의사들 이익이나 위정자를 위한 발상”이라고 주장하고 이에 적극 반대하였다. 이와 같은 반대에 힘입어 의료일원화 논의는 다시 주춤하게 되었다.



1993년 한약분쟁이 시작되면서 약사회와 보건복지부의 단골메뉴는 의료일원화를 시켜 의료제도를 체계화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한의사회와 전국한의과대학학생회연합의 비타협적 투쟁으로 인하여 저지되었다.



<- 1990년 11월에 발표된 박찬국 교수의 의료일원화 반대 토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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