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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20일 (토)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67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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都鎭羽의 東西醫學折衷論

한의학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한 저항적 절충론



都鎭羽는 일제시대에 동서의학의 절충에 노력한 한의사이다. 함경남도 출신인 그는 대대로 한의학을 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새로운 문물인 서양의학과의 절충을 위해서 노력하였다. 그의 아버지 都殷珪도 한의사로서 일제시대를 통털어 활발한 학술활동으로 이름이 있었다. 都殷珪는 『東西醫學硏究會月報』에 四象醫學 관련 연구를 많이 게재하였다.



이와 같은 한의학 가문에서 자라난 都鎭羽는 1922년 東西醫學硏究會라는 한의사 단체가 결성되면서 醫生試驗을 대비하기 위한 교재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진행된 醫生試驗의 내용이 문제였다. 시험 내용의 대부분이 서양의학 위주의 것이었기에 큰 문제였다.



1917년에 朝鮮總督府 警務 당국이 醫生에게 서양의료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목적을 내걸고 『醫方綱要』를 간행하게 되었다. 이 책은 실제로 醫生이 되고자 하는 자들의 우선적 참고자료가 되었고 이에 따라 이 책의 수요가 많아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 때 나온 『醫方綱要』는 복사가 금지되었기에 醫生이 되고자 한 사람들에게 이와 유사한 책의 간행이 절실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1920년대에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東西醫學硏究會에서는 이를 기화로 醫生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입문서가 되고 이미 醫生이 된 자들에게는 참고자료가 될 책의 편찬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都鎭羽가 그 중책을 맡은 것이다. 都鎭羽가 이미 이와 관련된 연구를 10여년간 진행하여 왔기 때문이다.

都鎭羽는 1924년 『東西醫學要義』를 출간하게 되는데, 여기에 서문이 여러개 붙어 있다.



먼저 당시 동서의학연구회 회장 金性璂의 서문이 있다. 이 서문에서 金性璂는 10여년간 東西醫學 연구에 절치부심한 都鎭羽의 노고에 감격하는 멘트를 하고 있다. 또한 부회장 李乙雨의 서문이 있는데, 李乙雨는 朝鮮總督府 警務 당국에서 1917년 『醫方綱要』와 『衛生要義』를 간행하여 의생시험의 교과서로 활용하였지만 이 책들의 복재를 못하게 하여 都鎭羽가 칠팔년간의 노력 끝에 이 책을 만들게 되었음을 說하고 있다. 또 다른 서문은 東西醫學硏究會 庶務部長 吳泰遊가 쓴 것으로서 이 곳에서도 都鎭羽의 노고를 치하하고 있다.



都鎭羽는 『醫方綱要』의 복재가 불허한 당시 상황을 기화로 서양의학 내용만 들어가 있고 한의학이 완벽하게 소외되어 있는 『醫方綱要』라는 책을 대치할 새로운 서적을 생각해낸 것이다. 서양의학만 공부하고 한의학을 전혀 접하지 않고서도 醫生이 될 수 있게 기도하고 있는 『醫方綱要』는 日帝의 한의학을 말살시키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都鎭羽는 日帝의 이러한 의도를 간파하고 醫生試驗을 패스하기 위한 서양의학적 지식에 과감하게 한의학의 내용을 병기하는 식으로 한의학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한의학의 내용 가운데 많은 내용들은 『東醫寶鑑』에서 따오고 있다.

이 책의 凡例에 해당하는 例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책이름은 『東西醫學要義』이지만 일제에 의해 강요된 『醫方綱要』를 대치하여 한의학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자 의도한 都鎭羽의 의도를 짚어 본다면 이 책의 정당한 이름은 “『東醫學要義』”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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