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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20일 (토)

이광현 한의사

이광현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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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다는 가장 자연스러운 행위를 하는 가운데

스스로 순수해지며 마음도 열리는 것이 아닐까”



‘카미노 데 프란시스’. 프랑스에서 시작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이 길은 수많은 순례자 길 중에서도 단연 대표적이고,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 길 위에는 인생의 막바지에 자신을 정리하기 위해 오신 분부터, 중·고등학교 체험학습의 일환으로 한 반 친구들과 함께 걷고 있는 아이들, 독실한 가톨릭 신자, 그리고 단지 레저를 즐기기 위해 온 사람들까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이 길을 걷는 것은 곧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행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거의 매일 다른 도시로 이동해서, 호스텔에 들어가면 항상 새로운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길을 걷는 사람들에겐 그들만의 또 다른 느낌이 있었다. 우선 순례여행이라는 ‘고생’을 함께 한다는 생각이 있어선지 왠지 모를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일반 여행처럼 모두들 자기의 길을 가고 있지만, 서로에게 기본적으로 마음이 열려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인 것 같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도, 때로는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도, 그리고 걷는 사람들끼리는 당연히 서로 눈을 마주치고 ‘올라!’(스페인 인사말)를 외친다. ‘인사’라는 것이 언뜻 생각하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모든 인간관계가 그곳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하루에 수십 번도 더 ‘안녕’을 외쳤던 그 때 느꼈던 친밀감은 그곳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일반적으로 말하는 여행을 시작한 지금 과연 하루에 몇 번이나 눈을 마주치며 웃으며 인사를 하는지 생각하면 그 시절이 새삼 그리워진다.



한편으로 길 위에서는 내 마음을 부끄럼 없이 털어놓을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사실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서 이것저것 진지한 이야기, 고민을 이야기하기는 쉽지가 않다. 내가 마음을 열었던 것인지,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도 많은 가슴 속에 있는 순수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던 것 같다.



길을 걷는 동안, 그리고 도착해서 알베르게 숙소 화장실에서 빨래를 하면서, 그리고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바에서 저녁식사와 함께 생맥주를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이렇게 열어주었을까? 순례자들은 많은 군더더기를 떼어버리고 꼭 필요한 것만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가지고 온다. 가장 자신다운 짐을 메고, 걷는다는 가장 자연스러운 행위를 하는 가운데 스스로 순수해지며 마음도 열리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길을 걸으면서 사람들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았다. 순례길에서 필수품과 같은 순례 지팡이,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어 곤란했던 날 발견한 앞서간 이의 파스타 재료 등 생각해보면 알게 모르게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 같다. 이런 물질적인 것들뿐만 아니라 그들이 준 많은 깨달음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항상 웃으면서 길을 걷던 아주머니가 한 분 계셨다. 모두가 질색하던 힘든 길도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있었다며 즐거워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힘들다니까 나도 그냥 힘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좋고 나쁨이란 없고 단지 다를 뿐이라는 아주머니의 말씀은 앞으로 내 인생길에서 많은 힘이 될 것 같다. 때로는 힘들어도 그 나름의 기쁨을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마음 든든한 일인지 가르쳐 준 사람들도 만났다. 이제까지 마음 속 깊이 사람을 생각하고 믿어본 적이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해 주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알게 되었고,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순례길은 끝났지만 동시에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 모두들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항상 먼저 웃어주고 인사해 주던 사람들은 더 이상 내 곁에 없지만, 내 주위 환경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앞으로 내가 먼저 웃고 나눈다면 항상 순례길을 걷듯이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아직 많이 모자라지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 길도 걸어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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