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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20일 (토)

김남일 교수 儒醫列傳 126

김남일 교수 儒醫列傳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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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에 걸쳐 御醫로 성공한 醫門名家



金龍善의 『高麗墓誌銘集成』(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간행, 2001)에는 尹應瞻이라는 고려시대 御醫의 묘지명을 판독한 기록이 나온다.



그 기록에 따르면 尹應瞻은 고려 신종 때부터 御醫를 하면서 1208년(희종 4) 工部侍郞, 1211년 戶部侍郞, 1213년(강종 2) 兵部侍郎 兼知茶房事를 거쳐 고종 때에 判太醫監事 知茶房事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의 檢校詹事였던 尹候肅의 증손이며, 祖父 尹殷錫과 父親 尹公補는 모두 醫官으로서 3대에 걸쳐 醫業을 한 가문에서 태어나 御醫로 활동하였다. 묘지가 마멸이 심해서 모두 판독이 되지 않지만 그는 資儉이라는 이름을 가진 御醫의 사위가 되어 1남1녀를 낳아 기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는 당시 御醫로서 겸손한 자세로 진료에 전념하여 名醫로 칭송을 받았고 벼슬도 높이 올라가게 되었다.



우리는 尹應瞻을 통해 高麗時代 醫家의 일면을 엿보게 된다.

첫째, 醫業을 계승한 家門의 실체이다. 이것은 “醫不三世不服其藥”이라는 醫家의 격언은 경험이 많은 집안의 의가를 우대한 역사적 사실에서도 검증되는 것이다. 둘째, 高官의 후손으로서 醫業을 하고 있는 점이다. 고려시대 醫業은 賤業이 아니며 고관출신의 자재들도 선호하는 직업이었다. 셋째, 醫官出身으로 醫業以外의 높은 관직을 이어갔다는 점이다.



우리는 尹應瞻의 墓誌銘을 분석한 내용을 통해 그가 고려시대 御醫로서 높은 관직에까지 올라갔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앞으로 墓誌銘에 대한 분석 자료들 속에서 더 많은 고려시대 醫家의 실체에 대한 발견을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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