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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9일 (금)

김남일의 儒醫列傳 104

김남일의 儒醫列傳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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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의술로 堂上官이 된 儒醫



연산군 대에 한명의 御醫의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는 연산군 초기부터 치료에 공로를 세워 여러 차례 상을 받고 관직이 상승한 河宗海이다.



연산군 3년인 1497년에는 元子가 안전하게 출산한 것을 공으로 인정하여 연산군에게서 상을 받았고, 1501년에는 元子의 疫疾을 치료한 공로로 품계가 올라가게 되었다. 이 때 正三品 堂上官으로 진급시키려고 하였지만 醫官을 堂山官으로 승급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중신들의 반대로 올리지는 못하였다.



河宗海가 당시 궁중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 있다. 1505년 喪中임에도 벼슬을 종용받아 궁중으로 들어온 것이 그것이다. 궁중에서는 그의 뛰어난 의술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이 무렵 河宗海는 堂上官으로 승급되어 있었다.



중종이 등극한 후에도 河宗海의 관직은 상승하였다. 중종원년인 1506년에는 嘉善大夫에 올라가고, 1514년에는 醫官出身으로는 파격적으로 惠民署提調로 승급되게 되었다. 이에 신하들은 提調는 재상으로 임명되는 것이 전례임을 들어 반대하였으나 왕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1517년 7월 元子의 瘡疹을 치료하여 상을 받았고, 1530년 7월 內醫院提調가 되고 1533년까지 內醫院醫官으로 왕실에 질병이 있을 때마다 診候하였다.



이렇듯 河宗海는 연산군, 중종 년간에 궁중의술의 중심리더로서 활동하면서 의관출신으로는 파격적으로 堂上官까지 올라가는 신화를 남겼다. 그의 노력으로 醫官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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