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속초23.6℃
  • 소나기26.8℃
  • 흐림철원25.8℃
  • 흐림동두천22.6℃
  • 흐림파주22.2℃
  • 흐림대관령19.5℃
  • 흐림춘천28.5℃
  • 흐림백령도21.7℃
  • 흐림북강릉23.6℃
  • 흐림강릉24.4℃
  • 흐림동해23.3℃
  • 비서울24.8℃
  • 소나기인천24.2℃
  • 흐림원주27.6℃
  • 구름많음울릉도24.3℃
  • 흐림수원26.2℃
  • 흐림영월28.2℃
  • 흐림충주25.7℃
  • 흐림서산25.7℃
  • 흐림울진23.3℃
  • 비청주29.2℃
  • 흐림대전27.6℃
  • 흐림추풍령24.2℃
  • 비안동26.0℃
  • 흐림상주24.3℃
  • 비포항24.6℃
  • 흐림군산26.1℃
  • 흐림대구25.9℃
  • 비전주27.0℃
  • 비울산23.4℃
  • 흐림창원24.3℃
  • 흐림광주26.7℃
  • 비부산23.2℃
  • 흐림통영23.4℃
  • 비목포23.8℃
  • 흐림여수23.1℃
  • 비흑산도19.5℃
  • 흐림완도22.6℃
  • 흐림고창26.7℃
  • 흐림순천23.7℃
  • 비홍성(예)26.7℃
  • 흐림28.0℃
  • 흐림제주24.9℃
  • 흐림고산23.0℃
  • 흐림성산23.3℃
  • 흐림서귀포23.9℃
  • 흐림진주24.5℃
  • 흐림강화24.1℃
  • 흐림양평26.3℃
  • 흐림이천28.5℃
  • 흐림인제26.7℃
  • 흐림홍천25.8℃
  • 흐림태백23.5℃
  • 흐림정선군25.1℃
  • 흐림제천26.4℃
  • 흐림보은25.9℃
  • 흐림천안27.7℃
  • 흐림보령25.3℃
  • 흐림부여24.6℃
  • 흐림금산25.5℃
  • 흐림27.0℃
  • 흐림부안26.2℃
  • 흐림임실26.2℃
  • 흐림정읍27.2℃
  • 흐림남원26.8℃
  • 흐림장수24.2℃
  • 흐림고창군27.4℃
  • 흐림영광군26.6℃
  • 흐림김해시25.0℃
  • 흐림순창군26.7℃
  • 흐림북창원26.6℃
  • 흐림양산시25.6℃
  • 흐림보성군24.0℃
  • 흐림강진군23.6℃
  • 흐림장흥23.5℃
  • 흐림해남23.0℃
  • 흐림고흥23.3℃
  • 흐림의령군25.8℃
  • 흐림함양군26.1℃
  • 흐림광양시24.1℃
  • 흐림진도군22.8℃
  • 흐림봉화25.8℃
  • 흐림영주26.2℃
  • 흐림문경22.0℃
  • 흐림청송군24.7℃
  • 흐림영덕23.4℃
  • 흐림의성25.9℃
  • 흐림구미26.1℃
  • 흐림영천24.8℃
  • 흐림경주시25.0℃
  • 흐림거창25.0℃
  • 흐림합천25.9℃
  • 흐림밀양26.9℃
  • 흐림산청25.1℃
  • 흐림거제22.9℃
  • 흐림남해23.9℃
  • 비25.2℃
기상청 제공

2026년 06월 19일 (금)

김남일의 儒醫列傳 101

김남일의 儒醫列傳 101

B0112008042235508-1.jpg

父親의 질병치료 위해 儒醫의 길로



유학자가 醫學을 연구하여 儒醫가 된 원인으로 부모의 질병 때문인 경우로 洪仁祐를 꼽을 수 있다.



부모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의학을 시작하게 된 경우는 중국에서도 왕왕 보인다. 금원사대가의 한 사람인 李 가 잘못된 치료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한스러워 의학을 시작하게 된 것이나 朱震亨이 어머니가 脾臟의 질병을 앓게 되자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 의학연구를 시작한 것이나 모두 유학자로서의 孝心에 근원한 것이다.



張從正이 ‘儒門事親’이란 의서를 지을 때 그 책이름에 대해서 “儒門事親이라고 말한 것은, 오직 儒學을 하는 사람이라야 능히 그 이치를 밝힐 수 있고 부모를 섬기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의학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은 유학자의 책무와 의학이 밀접하게 관련지워져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洪仁祐는 조선시대 儒醫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간 인물이다. 그의 스승 李滉은 이미 의학에 깊이 침잠되어 있던 인물이었기에 의학에 대해 평소부터 널리 연구하여 왔던 것으로 사료되며, 이러한 연구 경험은 부친의 질병을 치료할 때 발휘되었던 것이다.



‘心經’, ‘近思錄’, ‘中庸’, ‘大學’ 등을 깊이 있게 연구한 洪仁祐는 1537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당대 지식인으로 거보를 내딛기 시작하였다. 그는 당시 유명학자인 盧守愼, 金安國과 학문적인 교우가 있었다. 그의 저서로 ‘恥齋日記’와 ‘關東日錄’ 등이 있다.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 오늘 인기기사
  • 주간 인기기사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