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미숙 여의도 책방-70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편집자주] 『신미숙의 여의도 책방』은 각 회마다 1개의 키워드에 5권의 도서를 추천하는 형식으로 이어갑니다. ‘11월 괴담’이라는 게 있다. 유명한 가수들의 죽음이 우연히 11월에 집중되어 있어서 그 쪽 계통 종사자들의 사건 사고가 두어개라도 연달아 터지면 “올해도 어김 없이 11월 괴담이 현실화되는 걸까요?”로 시작되는 뉴스가 들려온다. 11월 괴담설의 이면에는 연말이 본격화되는 12월 바로 직전이라 별다른 기삿거리가 없어서 뭐라도 끌어와서 사건화·기사화 시켜야 하는 절박함에 내몰린 기자들이 만들어낸 억지 아니냐는 의심도 있다. 느닷없고 어이없는 사건들이 끊임없는 발생하는 ‘A whole new world’에 ‘11월 괴담’이 희미해질 날도 멀지 않았다. 증상의 발병 과정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우연의 반복을 징크스로 규정하거나 정신적인 충격을 포비아로 과장하고 트라우마나 PTSD라는 단어를 익숙하게 사용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자신만이 온전하게 경험했고 관련된 기억 또한 또렷하다며 그래서 그들이 쌓아올린 개별적인 병인론은 꽤 설득력도 갖추고 있다. “행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구두를 신고 출근하는 날이면 꼭 발을 밟혀요. 그것도 자주 삐끗했던 왼쪽 발이요. 구두가 불편해서 민첩성이 떨어지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다른 구두 신을 때는 안 그러거든요. 징크스가 된 것 같아요.”, “술 마시고 자전거 타면 안 되는거 알면서 몇 주 전에 진짜 딱 한 잔 마셨거든요. 가벼운 마음으로 자전거로 퇴근하는데 앞바퀴가 이상하다 싶은 순간 전봇대 들이박고 안경 날아가고. 이제 로드 바이크 포비아가 생길 지경입니다.” 트라우마, 징크스·포비아와 달리 쉽게 다뤄져선 안돼 희박한 인과 관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징크스나 특정한 상황에만 과도한 공포감을 느끼는 포비아와 달리 트라우마는 한 번이든 반복적이든 분명한 원인으로서의 사건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 결과로서 뇌와 몸에 깊게 각인된 상처가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 그 범주가 넓고 무거우며 그래서 쉽게 다뤄져서는 안 되는 경우가 많다. 한의사들이 임상에서 자주 접하는 트라우마는 신체적 질환에서 유발된 만성 통증 환자들이 절대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다음으로는 큰 사고 이후의 화병, 우울감 등을 호소하는 환자들일 것이다. 정신과 몸을 한 순간에 경직시키는, 그래서 잘 해소되지 않는 만성 통증과 다양한 불편감의 끊임없는 습격과 반복. “교통사고후유증이 이렇게 길게 갈지 몰랐어요. 다들 나이롱 나이롱 하죠. 진짜 나이롱 아니라니까요. 뼈만 안 부러졌지, 지금도 악몽을 꾸고 자다 깨면 한동안 목을 좌우 어디로도 움직이지도 못하고요. 가위눌림을 한 30분 당해보세요. 낮잠을 자도 가위 눌릴까봐 제대로 못 자요. 밤에는 더하고요.” 한방병원에 입원 중인 교통사고 환자들 모두를 경증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 보좌진들을 가까이에서 자주 접하다보니 의원과의 성향 차이로 의원실을 옮기는 일이 꽤 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의원님이 분노가 예상치를 벗어난 수준이라거나 기존 의원실 직원들과의 갈등이 심각한 경우 그 때 느끼는 고립감이나 스트레스가 상당했다고 다들 입을 모아 말한다. 의도적으로 몇 달의 간격을 두고 새 의원실로 근무를 개시했는 데도 직전 근무했었던 의원실 문앞만 지나가도 혹은 그 의원 이름 세 글자만 봐도 뒷목이 굳어오더라는 등의 공포심을 호소하며 “이거이거 000의원 트라우마 맞죠?”라고 질문을 해오면 즉각적으로 그들이 만족할 만한 대답을 해주기는 어려웠다. 대신, 정신적 스트레스가 몸의 통증으로 세력을 확장하여 자리를 잡으면 이번에는 몸의 통증이 정신을 갉아먹을 수도 있으니 그 단계까지 가면 안 된다고 몇 가지 솔루션을 제시하는 선에서 대화를 마무리하곤 했다. 심신의학이라는 용어는 환자들의 살아숨쉬는 스토리 속에서 구체화되고 현실화된다. 몸은 맘이다. 맘은 몸이다. 몸과 맘은 하나이다. 트라우마는 통증을 유발하고 통증은 트라우마를 강화한다. 이는 명명백백한 사실이다. 『뇌과학으로 읽는 트라우마와 통증』 (스티브 헤인스, 푸른지식, 2016년 7월) - 우리는 삶의 날카로움에 자주 상처를 입는다. 이들이 마음에 남으면 트라우마가 되고, 신체에 새겨지면 통증이 된다. - 일상의 스트레스는 삶의 항해에서 바람과 같은 존재인 반면, 트라우마는 마음의 항해를 뒤흔드는 폭풍이다. - 트라우마의 정의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전부 일정 시간 이상 정신적으로 압박을 받는 경험이 쌓이는 것으로 규정된다. -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은 스트레스 요인 그 자체보다 피해를 많이 일으킬 수 있다. - 무심코 인생 초기의 사건에 첫 대응을 어떻게 했는지가 미래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정하는 기본값이 된다. 사람의 두뇌는 이처럼 단순하다. - 트라우마로 촉발되는 강렬한 기억을 제어하는 것뿐 아니라, 몸과 마음의 주인이 되어 몰두하고 헌신하며 직접 작용하는 힘을 회복하는 데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 - 조직병리학이 만성 통증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증거는 압도적이다. 『몸은 기억한다』 (베셀 반 데어 콜크, 을유문화사, 2020년 10월) - 서양의 주류 정신의학계와 심리학계에서는 전통적으로 치료 과정에서 자기 관리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 서구 사회가 약물과 면담 치료에 의존한 반면, 전 세계 다른 문화권에서는 전통적으로 마음챙김과 운동, 리듬, 활동에 중점을 두었다. - 회복의 핵심은 자각이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견디기 힘든 감각 속에서 살아간다. - 오늘날 정신과 의사들은 공장 조립 라인처럼 구성된 병원 진료실 안에 앉아서 환자들과 채 15분도 대화를 나누지 않고는 통증이며 불안감, 우울증을 완화시켜 주는 약을 나눠 준다. -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람들에게는 어떤 건 너무 적게 기억하고 어떤 건 너무 과하게 기억하는 특징이 동시에 나타난다. -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무언가를 느끼는 일 자체를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는 가해자보다 자신의 신체 감각이 훨씬 더 무서운 적이 된다. - 트라우마는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지만 정서적 뇌는 희생자가 겁먹고 무기력해지게 만드는 감각을 계속해서 만들어 낸다. - 신체의 지각은 시간 감각도 변화시킨다. 트라우마는 무기력하게 두려움을 느끼던 상태가 영원히 굳어 버린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최악을 극복하는 힘』 (엘리자베스 스탠리, 로크미디어, 2021년 7월) - 트라우마 사건의 기억은 강렬한 감정, 기괴한 행동, 참을 수 없는 신체감각, 이미지, 파편화된 생각 등 작은 조각들로 나뉜다. - 스트레스와 트라우마 속에서도 잘 살아가며 효과적 선택을 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길은 결국 자기 계발보다는 자기 이해에 있다. - 만성 스트레스는 면역계에 후생유전학적 변화를 초래해 심신 체계에 만성 염증을 일으킨다. - 사고 뇌와 생존 뇌의 대립 관계를 치유하는 첫걸음은 그 존재를 자각하는 것이다. 신경생물학적 역할을 이해함으로써 시간이 흐를수록 생존 뇌가 완전한 회복을 이루고 양 뇌의 대립 관계가 소멸하도록 지원할 수 있다. - 충분히 좋은 부모들은 자녀들이 관계의 유연성과 회복탄력성뿐 아니라 자기 조절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돕는다. - 자동차 사고를 당한 5.000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해온 신경학자 로버트 스캐어는 결국 채찍 증후군이 생기는 사람과 이전 발달 및 관계 트라우마 사이에서 강한 연관성을 발견했다. - 우리는 외로움이나 사회적 고립 때문에도 만성 스트레스와 관계 트라우마를 경험할 수 있다. - 도전을 경험하고 난 후에 완전히 회복하는 것은 생존에 이롭다. 회복탄력성을 얻으려면 고난과 도전, 때로는 실패까지 경험해야 한다. 몸을 사려서는 회복탄력성을 얻을 수 없다. 『트라우마는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가』 (폴 콘티, 푸른숲, 2022년 6월) - 인간의 회복력은 보통 상당하지만, 많은 사람은 상상 이상의 방식으로 오랜 기간 동안 트라우마로 인한 변화로 고통을 겪는다. - 트라우마에 갇히면 자신의 가치, 꿈, 재능, 염원을 잊게 되는 것이다. - 만성 트라우마는 한 번의 큰 사건이 아닌, 해로운 상황과 사람들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발생한다. - 우리 내면을 차지하고 있는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일이 중요하긴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트라우마를 미리 저지하는 것이다. -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환경이 문제가 되는 상황인데도 여기에 대한 개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채 환자는 병원만 왔다 갔다 한다. - 사회가 의료 서비스 시스템을 제대로 고치지 않는 한, 이 시스템은 사회를 절대로 고쳐줄 수 없다. 또 거세지는 트라우마의 물결도 막아낼 재간이 없다. - 트라우마는 우리의 정서를 바꾸고, 바뀐 정서는 우리의 결정을 지배한다. 『트라우마의 도』 (알레인 던컨, 캐시 케인, 삶과 지식, 2024년 12월) - 2006년 정신과 의사이자 침술 전문의인 마이클 홀리필드는 PTSD를 치료하기 위한 침술의 잠재력에 대한 첫 번째 연구를 발표했다. - 침술 및 동양의학을 PTSD 치료에 통합하면, 치료자는 전신의 균형과 조절, 시스템 간의 역동적인 조화를 중시하게 된다. - 우리의 접근 방식의 근본은 인간의 뇌와 몸, 마음과 영혼의 회복탄력성과 유연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 트라우마에 의한 스트레스는 음과 양이 제공하는 필수적인 조절을 중단시킨다. - 다행히도 신경과학은 침술 및 동양의학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즉, 치유는 언제나 가능하다. 우리의 뇌는 가소성이 있으며 순응성이 있고 변화하고 치유될 수 있다. - 특정한 체질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생각은 동양의학의 기반에 널리 퍼져 있다. - 트라우마 생존자를 치료할 때 침술 사례 연구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이 일관되고 예측할 수 있는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 긴장된 외상성 스트레스의 비활성화는 종종 경락 경로를 따라 미세한 반짝임이나 파동으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움직임을 침, 뜸 또는 지압으로 지원하는 것은 더욱 깊은 해방을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지난 10월26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정신병원 내 한의과 설치법’이 통과되었다. 의료법 제43조(진료과목 등) “병원·치과병원 또는 종합병원은 한의사를 두어 한의과 진료과목을 추가로 설치·운영할 수 있다”는 조문에 ‘정신병원’이 추가된 것이다. 내년 1월1일부터 정신병원에 한의과를 설치하여 정신질환 분야에서 의과-한의과 협진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과연 한의사를 고용하여 한의과를 설치할 기존의 정신병원이 많을까? 여기저기에 꾸려지는 트라우마 센터에 한의사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의료법 개정안이 정신질환의 협진에 어느 정도의 실효를 거두었는지 평가할 날이 과연 올까? 미약하지만 일단은 법안 통과의 상징성에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이 오늘의 최선일 듯하다. “자신을 감싸고 있는 상처 조용히 들여다 보는 시간 필요” 심리인지치료학 석사에 상담심리사 2급을 취득하신 한의사 선배님 한 분을 알고 있다. 심리공부와는 별도로 ‘기승전턱’이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턱관절을 통해 전신질환을 진단, 치료하는 분이다. 스스로가 턱치료로 만성 두통과 비염을 해결했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본인만의 치료 세계를 단단하게 구축해가고 계신다. 환자들에게 식생활, 올바른 자세, 턱관절의 중요성에 관하여 조근조근 잔소리하기를 멈추지 않으시는 모습에 ‘이토록 환자의 전신 그리고 심신을 동시에 개선시키는 통합의학적 접근을 끈질기게 유지하는 임상가가 또 있을까?’라고 감탄을 한 게 한두번이 아니다. “환자들을 이렇게까지 상담하고 거기에 근본적인 치료를 해낼 수 있는 건 오직 한의사만 할 수 있는 거야!”라는 선배님의 자신감은 내게 부러움과 동시에 든든함을 안겨준다. 지난 11월16일 오후 2시 국회 앞에서는 의협 집행부 포함 500여 명의 의사들이 모여 ‘국민건강수호 및 의료악법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 대표자 궐기대회’를 개최했다. 물러나지도 굴복하지도 않겠다며 발표한 결의문에는 한의사의 X-ray 허용 움직임에 대한 강력한 반대도 포함되어 있다. “X-ray 영상 판독과 방사선 안전 관리는 현대의학의 고유 영역이며, 비전문가인 한의사의 무면허 의료행위를 방조하며,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입법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며 입법 강행시 총력 투쟁이 불가피하다는 식으로 엄포를 놓았다. 전 정부에서의 의정갈등이 현 정부에서는 또 어떤 갈등으로 이어질까? 그 안에서 한의사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는 또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까? 의-한 갈등은 결론 없는 평행선을 수십년째 유지 중이고, 정신 차려보면 이러한 갈등의 후유증을 집단적으로 떠안고 버텨야 하는 건 늘 한의사들의 몫이었다. 이제 막 개원했다는 후배, 제자들의 소식이 가끔 들려온다. 잘 된다는 수준과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환자 보는 것도 즐겁고, 내 공간에서 내 돈 버는 것도 재미있다”는 소식이 가장 반갑다. “죽을 맛이다. 환자가 없다, 하루 종일 논다”는 불평은 부디 엄살이기를 바란다. 우리가 상처를 감싸지 않으면 상처가 우리를 감싸게 되는 법이다. 나를 감싸고 있는 상처를 조용히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가져야 겠다. 올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
신미숙 여의도 책방-69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편집자주] 『신미숙의 여의도 책방』은 각 회마다 1개의 키워드에 5권의 도서를 추천하는 형식으로 이어갑니다. ‘나무를 심기에 가장 좋은 때가 20년 전이었다면 그 다음으로 좋은 때는 바로 지금’이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 배우 조승우의 목소리로 수백번도 더 들어본 뮤지컬곡이자 나의 노래방 애창곡인 『지금 이 순간』을 좋아하는 이유는 “참아온 나날 힘겹던 날/ 다 사라져간다 연기처럼 멀리/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날 묶어왔던 사슬을 벗어던진다”라는 가사에서 느껴지듯이 힘든 시기 이후에 찾아오는 희망의 기운 때문이다. ‘그 때 그 종목을 사 두었어야 했었는데’, ‘그 때 그 집을 팔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때 그 사람을 멀리해야 했었는데’, ‘그 때 한의대를 안 갔었어야 했는데’ 등등 5060의 후회는 때로는 20대 초반이었던 그 시절로 우리의 손목을 끌어 당기기도 한다. ‘만약에…’라는 무의미하고 비생산적인 상상이 정신건강에 나쁘다는 것과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잘 하면 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이 어렵다보니 『죽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류의 책들이 저자 이름만 바꿔가며 지속적으로 출판되고 있는 모양이다. 모든 책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지금 이 순간을 후회없이 살아라”이다. 아버지께서는 생전에 적적하실 때마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셨던 동료분들에게 안부 전화를 자주 하셨다. “별일 없지요? 식사는 하셨고?” 아버지의 오프닝 멘트는 늘 동일했다. 별일 없다는 건 심심하고 따분한 일상과 특별히 나쁠 것도 좋을 것도 없는 수평선같은 평화를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어르신들에게 별일 없다는 것은 최상의 컨디션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었겠다. 행복이란 플러스도 마이너스도 아닌 零에 수렴하는 가치 그래서 다시 들어보면 장기하의 『별일 없이 산다』가 대단한 노래이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로 시작했다가 “하루하루 즐거웁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매일매일 신난다”로 끝난다. ‘별일 없이 산다’는 경지에의 도달과 이 ‘별일 없이 산다’는 모드의 안정적인 유지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행복은 어쩌면 플러스도 마이너스도 아닌 영(零)에 수렴하는 가치일 수도 있다. 있고 없음이 아닌, 많고 적음도 아닌 제로의 상태 말이다. 올해 초 달력을 받자마자 10월의 빨간색 숫자들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결심했다. ‘가자, 치앙마이!’ 작년 겨울에 여고 동창들과 맛집 투어를 다녀온 언니가 치앙마이 여행책자를 건네주며 “치앙마이야말로 너가 딱 좋아할 분위기더라. 꼭 다녀와라”라고 등을 떠밀기도 했고 치앙마이 한두달 살이를 경험하고 돌아온 지인들이 전해준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칭찬 일색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치앙마이에서의 여행은 심플 그 자체로 진행되었다. 식사, 커피, 망고 아사이볼, 산책 그리고 마사지를 한 세트로 설정하고 여행 내내 시간과 장소만 바꿔가며 이 세트를 무한반복하는 방식으로! 치앙마이 카페의 시그니춰 메뉴로 알려진 더티라테와 나의 최애메뉴인 아이스라테를 동시에 시켜 카페마다의 특징을 비교해가며 커피를 맛보았다. 하루 몇 잔을 마셨는지 카운트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원없이 커피를 마신 것 같다. 카페인 과다 복용에도 나의 수면과 위장의 루틴은 유지되었다. 긴 연휴를 보내고 있다는 행복감이 모든 이슈를 압도해버린 느낌이랄까?! “치앙마이에서 딱 하나의 카페를 고르라면 저는 이 곳입니다”라는 구글 한줄평을 읽고 귀국날 아침 방문할 마지막 카페를 결정했다. 걸어가기에는 거리가 좀 있어서 볼트앱으로 택시를 호출해서 오전 8시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한 Asama coffee & Roastery라는 카페는 레이크랜드 빌리지라는 주택단지 안에 위치해 있었다. 택시에서 내려 카페 안으로 들어서니 호젓한 호수, 호수 중앙의 과하지 않은 분수대, 호수 건너편의 울창한 숲 그리고 띄엄띄엄 놓여진 테이블까지 한 폭의 수채화가 완벽하게 현실로 구현된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밀크푸딩 위에 쌉싸름한 에스프레소가 곁들여져 있는 대표 메뉴를 입에 머금은 채 눈으로는 초록뷰를, 이마로는 바람을 느끼며 귀로는 장기하의 『별일 없이 산다』를 들으니 술맛보다 커피맛이 좋음을 깨달았다. 치앙마이에서의 마지막 커피를 음미하며 지난 며칠간의 여행을 복기해 보았다. 이 행복을 그 어떤 문장으로 감히 표현할 수 있으랴? 『백만장자와 승려』 (비보르 쿠마르 싱, 다산초당, 2022년 2월) - 비영속성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본질이다. 우리는 거대한 영혼으로부터 태어나지만, 오로지 한정된 시간 동안만 세상을 살아가며 감각을 통해 존재를 경험한다. - 행복으로 가는 본질적인 방법은 중요한 것에 생각을 집중하는 것이다. - 자연과 대면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을 다양한 행복의 색채로 채워준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 행복과 아름다움은 외로운 고요함 속에서만 느껴질 수 있는 법이다. - 본인 인생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남을 탓하기 시작하는 순간, 통제력을 타인에게 넘겨주고 행복해질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는 직업적인 목표를 행복과 일치시키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 행복은 단순 도달할 수 있는 수량적인 목표가 아니라 스스로 얻어내야 하는 삶의 질적 상태이다. - 깊은 행복이란 감사한 마음으로 잘 보낸 하루하루 속에서 평범한 요소들이 만들어낸 총합일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긴 행복 탐구 보고서』 (로버트 윌딩거, 비즈니스 북스, 2023년 10월) - 우리 삶에서는 우연한 만남과 뜻밖의 사건이 늘 일어난다. - 다른 사람과의 접촉 빈도와 그 질이 행복을 예측하는 두 가지 주요 변수이다. -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항상 있을 거라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현재의 순간만 있다. - 에우다이모니아(eudai monia)라는 용어는 사람이 자신의 삶에 의미와 목적이 있다고 느끼는 깊은 행복 상태를 말한다. -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더 고립된 사람은 다른 이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사람보다 건강이 빨리 나빠진다. 외로운 사람은 수명도 짧다. - 좋은 인생은 바로 눈앞에 있고 때로는 팔만 뻗으면 닿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부터 시작된다. - 평생에 걸친 종단 연구의 장점 중 하나는 한 사람이 평생 걸은 모든 길을 지도로 그릴 수 있다는 점이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리처드 J. 라이더, 북플레저, 2024년 3월) - 사람들은 활기와 행복에 꼭 필요한 미묘하고도 결정적인 요소를 잃어버렸다. 그것은 바로 독창성이다. - 사람들이 대부분 겪는 비애는 자기만의 성공관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 바람직한 삶은 여행과 같다. 그것은 한번 성취하면 평생 고이 모셔두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끝없이 변하는 것이다. - 인생의 중반기에 이르면 대부분 꿈을 이루었거나 이루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의 상태가 된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문제는 생기기 마련이다. - 삶에는 우리가 위기라 부르는 순간을 포함하여 변화가 필요한 여러 국면이 있다. - 바람직한 삶을 찾아가는 여정은 일상과 꿈의 합작품이다. 하지만 그런 삶을 살 수 있으려면 바깥세상으로 눈길을 돌려야 한다. 『행복은 발가락 사이로』(이광이, 삐삐북스, 2024년 10월) - 인간사 행이며 불행이며, 즐거움이며 노여움은 무엇이냐? 나고 죽음까지 다 뜬구름 같은 것이로되! - 공자는 함[爲]으로 이루고, 노자는 하지 않음[無爲]으로 이룬다. 둘은 함과 하지 않음에서 다른 듯하지만 긴 시간 끝에 이르러 같아진다. - 공자는 계곡과 비탈을 걸어 다니고, 노자는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날아 다닌다. 전에는 공자가 좋더니, 무릎이 아픈 뒤로는 노자가 좋다. - 반야는 지혜다. 지혜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 속에 있다. 금도끼, 은도끼를 봤으면서 무심코 쇠도끼를 집는 사람에게 행복과 불행이 따로 있겠는가! - 불가역, 퇴행성 이런 말들은 과거로는 못 간다는 뜻이다. 몸이 조금 더 좋았던 어제 혹은 그제, 그러니까 내가 태어나던 방향 쪽으로는 못가고 몸이 점점 더 나빠질 내일과 모레, 그러니까 죽음 쪽의 방향으로 밖에 못 간다는 뜻이다. - 세상에 깨달음이 따로 있지 않고, 행복과 불행이 다름 아니며, 기쁨과 고통 또한 그러하니, 헛것 좆지 말고 바로 지금 곁을 돌아보라. - 세월은 아침에 세수하는 손가락 사이로 왔다가 저녁에 양말을 벗는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고 없다. 『만약 우리가 천국에 산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토마스 힐란드 에릭센, 레디투다이브, 2025년 3월) -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밋밋하고 지루한 일일지도 모른다. 또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새롭게 불평할 거리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 적당한 시간 내에 적절한 선택의 자유를 경험하게 될 때 사람들은 만족감을 얻는다. -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를 손에 넣게 되면, 사람들은 무언가 다른 의미 있는 일이나 활동에 눈을 돌리기 마련이다. - 만족과 실망의 반복 속에 행복이 있다. -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중요한 것은 여행지가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다. - 관광지의 매력은 실제 경험이 10퍼센트이고 우리의 기대감에 나머지 90퍼센트가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기대의 힘은 경험의 힘보다 강하다. - 실현할 수 없는 야망과 그 어떤 야망도 찾아볼 수 없는 무덤덤함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그 부분에서 1인자가 되지 않더라도 그 삶은 얼마든지 가치있는 삶이 될 수 있다. - 행복이란 다른 어떤 일을 하던 중에 얻을 수 있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긍정적 부작용 같은 것이다. 관심있는 감독들 혹은 배우들의 작품들은 개봉 예정일을 메모해 두었다가 개봉 당일날 보는 것이 나의 영화 관람 원칙이다. 스포 영상을 접하지 않고 개봉 첫날 영화를 관람하면 최대한 싱싱한 상태의 작품에 보다 몰입할 수 있어서 좋고 관람 후 평론 영상 두세개를 연달아 학습하고 나면 그제서야 영화를 완전히 이해하게 된다. 지난 9월24일 문화의 날 개봉한 『어쩔수가없다』는 영화 산업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영화관람 할인권 발급까지 더해져서 1000원이면 볼 수 있다는 광고 덕분인지 개봉일 영화관은 빈 좌석이 거의 없었다. 이런 풍경은 『기생충』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조용필의 『고추잠자리』가 흐르던 처절한 싸움씬과 생경했던 가면무도회의 춤씬 그리고 “어쩔 수가 없다”를 랩처럼 무한반복하며 이마를 두들기던 클로즈업된 이병헌의 얼굴 등 시각적으로 또렷하게 기억되는 선명한 장면들이 유독 많았다. 흘러간 옛 가요를 OST에 꼭 등장시키고 영화 미술에 조예가 남다른 박찬욱 감독의 취향이 장면 하나하나에 묵직하게 배어들어 있었다. 『어쩔수가없다』 제목에 띄어쓰기를 안 한 이유에 대해서 감독은 하나의 감탄사처럼 보이기를 원해서 일부러 그렇게 했다고 설명했다. 붙여서 발음해보니 숨 쉴 틈도 없는 절박함을 표현하는 감탄사로 느껴지기도 한다. ‘어쩔 수가 없다’…행복의 다른 이름은 아닐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경우에 “어쩔 수가 없다”라고 말하는가? 피할 수 없고 외면할 수 없고 되돌릴 수 없는, 누릴 것보다 책임질 일이 더 많은 어른의 삶은 막다른 골목처럼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개는 절망적인 기운을 품은 절박함 일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삶을 사는 이들을 위로하는 의미로 ‘받아들임’ 또는 ‘내려놓음’의 희망적인 의미로는 해석될 수는 없을까? 좌절이 아닌 자족의 애티튜드. 억지스럽게 일부러라도 ‘어쩔 수가 없다’는 행복의 다른 이름이 되어야 한다는 자기암시를 시도해본다. 지난 10월10일 서영석 의원 등 51명의 국회의원이 한의사에게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 사용을 허용하는 취지의 의료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지난 1월 수원지방법원에서 받은 엑스레이 골밀도 측정기 사용을 한 한의사의 무죄 판결이 개정 추진 이유 중 하나로 언급되었다. 의협은 의원들이 한의사들에게 속아서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이자 국민건강에 위험천만한 법안 발의라며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한의사 엑스레이 사용, 국민 대상 실험과 다를 바 없다』 병원신문, 2025년 10월20일 /『한의계, 엑스레이 사용 시도.. 한의사 정체성 포기하나』 메디컬타임즈, 2025년 10월23일) 정체성마저 의심 받아야 하는 한의사들은 2025년 지금 이 순간 과연 무사한가? 대세를 거스르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동작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요구된다. 그래도 튼튼한 튜브 하나 부여잡고 있으면 물살이 아무리 거세도 살아 돌아갈 방향을 찾으며 잠시 숨을 돌릴 여유가 생긴다. 어쩔 수 없이 선택했고 그렇게 운명지워진 삶이라도 끝까지 멋지게 살아내고 싶다. 버티고 버티다보니 파란색이었던 주식창이 최근 드디어 붉게 타오르고 있다. 행복이 뭐 별건가?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나는 사는게 재밌다/ 매일매일 하루하루 아주 그냥” -
신미숙 여의도 책방-68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편집자주] 『신미숙의 여의도 책방』은 각 회마다 1개의 키워드에 5권의 도서를 추천하는 형식으로 이어갑니다. 오십견으로 2주일에 한 번 오실까 말까 하셨던 국회 파견 외부 공무원 한 분이 “이번에는 종목이 바뀌었어요, 오늘은 허리입니다. 원장님”하고 인사를 하시며 오랜만에 내원하셨다. 언젠가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한 분은 뇌졸중 후유증으로, 다른 한 분은 척추수술 후유증으로 휠체어 생활을 하고 계셔서 두 분 모시고 어디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본인과 아내분이 각각 휠체어를 밀어야 해서 어깨가 아프고 보니 이런 일상 생활도 많이 힘들더라고 말씀하셨던 게 생각났다. 요통의 경위와 함께 두 어르신들 안부를 여쭈려던 찰라, 먼저 털어놓으신 요통의 히스토리는 다음과 같았다. 그 대단한 병들도 다 이겨내신 분들이 지난 초여름 차례로 폐렴을 앓으시더니 최근 한 달 간격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두 어르신들의 장례를 치루고 이런 저런 절차 다 밟고 나니 이번에는 두 분이 30년 넘게 사셨던 아파트 짐 정리가 남아 있더란다. 그 다음 입주민들의 이사 날짜가 정해진 터라 먼저 외부 청소업체를 부르고 온 식구들이 붙어서 같이 작업을 했지만 그 긴 시간 한 가족의 추억과 역사가 뒤섞여 있는 공간이었던 지라 당근 거래용과 폐기용으로의 버릴 것의 분류와 최종으로 남길 것의 선정에 있어서 가족들간의 의견이 엇갈렸으며 남길 것 중에서도 내 것이냐, 네 것이냐의 작은 갈등까지 조정하고 정리하자니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고 한다. 두 어르신의 짐정리를 하며 미니멀리스트를 결심하지 않기가 힘들더라는 이야기도 덧붙이신다. 세상을 떠난 이들과의 소중한 추억 포장지만 살짝 뜯어서 선물 내용만 확인하신 듯한 수년 전 어버이날 선물해드린 속옷박스하며 세탁소 택도 뜯지 않은 드라이 완료된 패딩에 코트에 한 번도 신지 않으신 어르신용 운동화, 간편화가 들어있는 신발 박스들, 그 많은 화장품 세트는 왜 뜯지도 않으신 건지? 휠체어 타시느라 흙 한 톨 묻어있지 않은 꽤 비싸 보이는 지팡이 개수를 세며 ‘휴우, 이 많은 걸 다 어떻게 이고지고 사신 걸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더란다. 어찌어찌해서 청소에 이사에 작은 집수리까지 그나마 어깨가 도와줘서 일 잘 마무리했다 생각했었는데, 앉았다가 섰다가를 수백번 하고 나니 한 번도 겪지 않았던 견디기 힘든 허리 통증이 발생했다는 기나긴 스토리. “큰 일 하셨어요. 장례에서 짐정리까지 만만치 않은 과정이셨겠지만 아내분이 얼마나 든든하셨을까요? 정말 귀한 일 하신 거예요. 이 요통은 좋은 일 하시다가 발생한 거라, 오래 안 갈 겁니다. 며칠 입원하셨다 생각하시고 중요한 업무만 처리하시고 바로바로 퇴근하셔서 댁에서 누워서 많이 쉬셔요. 며칠간은 날마다 제 진료실 들르십쇼.” 생각해보니 친정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한참 전에 이런 상황을 미리 상상이라도 하셨는지 다섯 딸들 불러 놓으시고 당신이 수집하신 모든 애장품들을 공평하게 나눠주셨다. 수십권의 앨범도 한 곳에 쌓아두시고는 사진 한 장 또 한 장 꼼꼼히 들여다 보시며 각자의 독사진은 당사자들에게로 또한 서로 가져가겠다는 사진에 대해서는 토론을 붙이거나 가위바위보를 시키기도 하셨다. 그리고 선물받고 개시도 못한 셔츠들, 넥타이, 지갑과 벨트 세트, 카메라, 기타, 장구, 북과 북채도 사위들과 손자 손녀들에게 골고루 나눠주셨다. “죽은 뒤에는 죽은 사람 짐 처리하기가 애매해진다고 하더라. 버릴지 말지 너희들 마음 심난할까봐 미리미리 적재적소로 위치 이동시키는 거다. 아버지 죽을 준비하는 거 아니다. 지금 해둬야 내 마음이 좋을 것 같아서 그런다.” 아버지의 실행력 덕분에 돌아가신 후 우리 가족들이 따로 정리할 짐은 거의 없었다. 아버지 것이라고 부를 만한 게 이렇게도 없었나... 너무도 깔끔해서 뭔지 모르게 죄송했고 뒤이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잔물결처럼 몰려들었다.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케이틀린 도티, 반비, 2020년 1월) - 나처럼 멋진 여자가 시체를 처리하는 이런 창고에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스물세 살 여성이 장례업에 종사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어딘지 수상쩍었다. - 심박조율기 속에 든 리튬 배터리를 화장 전에 미리 빼놓지 않으면 화장로 속에서 그것이 폭발한다고 한다. - 집에서 죽은 사람을 데려오는 일을‘하우스 콜’이라고 부른다. 의사는 더 이상 어쩌지 못해도, 장의사 직원들은 밤이든 낮이든 기꺼이 간다. - 이제는 환자의 마지막 순간에 입회하는 사람은 의사이다. 생사 문제를 하늘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의학이 다루게 된 것이다. -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안다면, 옛날에 적대시했던 사람을 용서하고 일을 덜 하고 여행을 더 하고 사랑에 빠지고 싶어질 것이다. - 늘어나는 노인 인구를 적절히 돌볼 만한 자원이 우리에게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의학적으로 개입하여 그 노인들을 살리려고 한다. - 죽음은 우리 삶에서 의미를 없애기 위해 나타날 수도 있지만 사실 그것은 바로 우리 창조성의 원천이기도 하다.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줄리언 반스, 다산책방, 2023년 10월) - 아버지는 현대식으로 죽었다. 의학이 생명을 연장해 주었으나 그렇게 얻게 된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질 때까지 몇 달을 살다가 병원에서, 가족 없이, 어느 간호사가 최후의 몇 분을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 현대 의학은 죽어가는 기간을 늘리는 것으로 유명한 유언을 양산하는 데 일조해 왔다. - 몽테뉴는 죽음을 물리칠 수 없는 우리가 죽음에 반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한시도 놓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다. - 나는 인생의 의미가 죽음에 달려 있음을 이해한다. 먼저 붕괴하는 별들이 죽지 않는다면 우리에겐 행성도 없다. - 우리는, 당신과 나는 아마 병원에서 죽을 것이다. 현대적인 죽음이며, 전통적인 관례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다. - 우리는 살고, 우리는 죽고, 우리는 기억되고, 우리는 잊힌다. 『수명이 다하느냐, 돈이 다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코가지 사라, 윌스타일, 2025년 7월) - 왜 아버지는 이렇게나 제멋대로이고 자기중심적일까... 지금 여기서 요구를 다 들어준다면 더 안하무인으로 나올 것도 예상이 됐다. - 노인 돌봄에 지쳐 일어난 사건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술렁인다. - 노인 돌봄 문제는 가족 혼자 끌어안고 있으면 금방 탈이 난다. - “감정 제어를 못 하고 같이 사는 가족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도 전형적인 치매 증상입니다.”의사는 치매 환자 가족이 놓여 있는 상황을 숙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곧바로 내 심정을 이해해 주었다. - 어느새 딸인 나보다 덩치가 작아진 늙은 아버지의 굽은 등을 보고 있자니, 어쩌면 자신의 노화에 제일 당황하고 있는 건 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돌봄 생활이 길어질수록 젊은 시절의 부모님 모습은 귀찮은 노인의 노습으로 바뀌어 즐거웠던 기억도 흐려지게 될 것이다. - 나이 많은 노인들로 넘쳐나는 병원 대기실에 발을 들일 때마다, 이 사람들은 정말로 치료가 필요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 아버지 역시 딸이 종이 기저귀를 채워줄 때까지 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죽는 날』(애니타 해닉, 수오서재, 2025년 7월) - 호스피스와 완화 의료가 죽음을 생각하고 관리하는 방식을 바꿔놓은 건 분명하다. - 환자는 일방적인 침습 의료 단계에 따라 움직이는“빠른 의료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워졌다. - 삶이 끝나가는 환자가 스스로 어떻게 임종할지 결정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 의사와 의료 기관 개입은 의료 조력 사망에 사회적,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척도다. - 현대 의학의 경이로운 연명 능력에도 불구하고 좋은 죽음을 바라는 마음은 여전히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 의료 조력 사망은 인간이 삶의 마지막을 직접 결정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 삶의 마지막을 앞당기는 것은 의지력과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본인의 죽음이라는 냉혹한 진실을 받아들이고 눈을 똑바로 뜬 채 죽음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 삶의 마지막이 의료화되면서 죽음은 종종 삶의 당연한 단계가 아니라 실패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당신에게 끝까지 다정하기로 했다』 (폴커 키츠, 김영사, 2025년 8월) - 모든 질병은 항상 언젠가는 발생한다. 그러나 치매는 교활하다. 피해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는 방심한 상태에서 공격을 당한다. - 최근 몇 년 동안‘요양의 필요성’이라는 개념이 좀 더 광범위해졌다. 이제는 침대에만 누워 있거나 겉으로 보기에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정도의 치매 환자만 요양 대상에 포함해서는 안 된다고 여기게 되었다. - 고령자를 돕고 싶은 사람들이 해야 할 과제는 남은 시간 동안 그들이 과거를 정리할 수 있게 돕는 것이라고 노인학자 나오미 페일은 말한다. -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는 살이 점점 빠졌다. 체중이 급격하게 줄어들어 사람들이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아버지의 변화는 나를 두렵게 했다. - 아버지와 함께 걸었던 길을 혼자 걷는다. 한때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길 바라도 되는 건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나중에는 아직 한동안 더 살아 있기를 바라도 되는 일인지 고민했다. - 병이 진행될수록, 아버지가 우리의 세계에서 멀어져 자신만의 세계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우리는 모두 더 잘 지내게 되었다. 몇 주 전, 친정 아버지의 기일이었다. 벌써 2년 전의 일이라니... 시간은 늘 마음의 그것과는 다른 속도로 흐르는 모양이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기 전후의 많은 일들을 떠올려본다. 언니와 나는 세 동생들을 대신해 더 자주 만나 장례 관련 절차들을 미리 학습해야 했다. 전남 장성에 집안의 장지가 있지만 우리들이 모두 수도권에 생활하고 있기에 멀리 모시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가장 먼저 내렸다. 그 후 납골당과 수목장을 몇 군데 둘러보는데 이 분야도 장삿속으로 무장된 영업력 최강자들에게 이미 잡혀먹은 듯하다. 봉안 기간의 상한선이 30년이냐 그 이상이냐에 따라서, 납골당 공간이 얼마나 넓냐에 따라서, 로얄층에 해당하는 눈높이 안치단이냐 발밑이냐에 따라서 가격은 참으로 꼼꼼하게도 세분되어 있었다. 그저 흙에 묻히고자 하는 소박하고 친환경적인 마인드를 가진 분들이 주로 찾으실 수목장 또한 중대형 소나무에 돗자리를 깔 수 있는 절할 공간이 확보된, 주차장으로부터 멀지 않은 평지에 위치한 곳은 5천만원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언제까지 보존 가능하냐는 질문에 초기 관리비 5년치만 선납이고 그 이후는 어차피 흙과 섞이는 거라 저 나무 밑에 아니 이 산 속에 부모님이 계신다 맘 편히 잡수시면 된단다. 물론 비석이나 표지석 같은 걸 따로 하고 싶으면 그 비용은 추가라며 옵션에 대해서는 더욱더 친절한 안내를 곁들였다. 초고령화로 인한 多死 시대 도래…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납골당도 수목장도 아니면서 가까이에 모시는 방법을 모색하던 중 한 의원님께서 하셨던 “우리는 일본 사람들이 집안에 작고한 가족들의 위패나 영정을 모시는 방식으로 몇 해 전 돌아가신 선친을 집안에 모셨다”는 말씀이 떠올랐다. 다름 아닌 “가정 봉안”이었다. “언니야, 우리도 아버지 집에 모시자”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검색해보니 화장한 유골분을 스톤으로 만드는 장례는 처음에는 주로 반려 동물을 잃은 슬픔을 치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사람에게도 적용되어 추모석, 영혼석, 유골 보석, 메모리 스톤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고 가정 봉안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과정으로 고려되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경우 예약이 가능할 것으로 추정되는 화장장 근처에 관련 업체가 몇 군데 있었고 우리는 그 중 가장 가까운 곳으로 미리 마음을 정해 두었다. 그 결과, 아버지는 현재 당신이 평소에 자주 계시던 서재방의 책상 위에 생몰년도가 표기된 작은 이름표와 함께 교사 시절의 사진 속에서 우리를 향해 늘 웃고 계신다. 이런 저런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은 꽤 고통스러웠으나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또 있었을까?’ 생각하며 부모님 임종 이후의 절차를 미리 준비하고 있다는 지인들이 고민을 털어놓는 경우, 내가 겪었던 2년 전의 경험들과 그 결과로서의 가정봉안의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공유하곤 한다. 2025년 1월 24일 ‘장사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 개정안에 따라 기존의 매장, 화장, 자연장(수목장)에 이어 산분장이 드디어 합법화되었다. 산분장(散粉葬)이란 바다와 육지의 일부 장소에 화장한 유골의 뼛가루를 뿌리는 장례이다. 『제 죽음에 동의합니다, 끝없는 안락사 논쟁』(KBS, 2024년 4월), 『봉안 시설까지 포화, 장례 문화 완전히 바뀌어야』(조선일보, 2024년 10월),『화장장 못 구해서 3일장 힘든 시대... 부산 21%, 서울 46% 그쳐』(동아일보, 2025년 4월) 등등 죽는 과정과 죽음 이후의 처리 방식에 대한 논의와 보도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다. 진정 초고령화로 인한 다사(多死)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아버지의 두 번째 기일을 보내며 인간은 결국 죽는 존재라는 엄중한 사실을 다시 한 번 되뇌어본다.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는 에밀 쿠에의 자기암시 글귀가 문득 신선하게 느껴진다. 가을을 머금은 선선한 바람 덕분이다. 짧아서 소중한 것은 인생일까? 아니면 가을 바람일까? -
신미숙 여의도 책방-67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편집자주] 『신미숙의 여의도 책방』은 각 회마다 1개의 키워드에 5권의 도서를 추천하는 형식으로 이어갑니다. ‘대한이 살았다’라는 광복 80주년 전야제가 국회의사당 잔디마당에서 개최되었다. 거미, 다듀, 강산에, 싸이까지 출동한 콘서트와 독립운동가들의 얼굴을 담은 드론쇼를 준비하는 다수의 관계자들이 무대 설치와 좌석 배치 그리고 공연 리허설을 하느라 행사 직전까지 빗속을 열심히 달려다녔다. 관련 부서도 아니면서 이런 국회 행사가 있으면 소풍을 앞둔 초등학생처럼 마음이 폴짝거린다. 나로서는 그 다음 날의 여행 덕분이기도 했다. 연가를 따로 내지 않아도 2박3일 일정이 딱 떨어지는 광복절 포함의 금토일 3일은 ‘어디라도 떠나라! 힘들게 일한 당신! 놀아라!’라고 8월 달력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던 올해 초부터 나를 지속적으로 채근하는 듯했다. 연말까지 중국이 무비자라 최근 다녀온 상하이가 아닌 중국의 다른 도시를 물색하고 있던 와중에 언젠가 칭다오 맥주 박물관을 다녀온 지인의 선물로 마셨던 위엔쟝(原漿) 맥주가 생각났다. ‘좋다. 이번에 칭다오에 가서 위엔쟝 생맥주를 라이브로 마시고 오는 거야!’라는 단 하나의 숭고한(!) 목표를 위해 5월 초 칭다오 왕복 티켓을 예매해 두었다. 그렇게 칭다오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7월 어느 날, 해당 비행기가 결항이 되었다는 슬픈 알림톡을 받았다. 마음이 급해졌다. 바로 차선책을 떠올려야 했고 그 순간 세계 3대 산악철도 중 하나로 꼽히는 대만의 아리산 삼림열차가 생각났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2024년 아리산 열차와 트래킹을 결합한 패키지가 대대적으로 개편이 되어 현재로서는 대만 현지인들도 예약이 힘들다는 카페글이 검색되었다. 내가 갈 수 있는 날짜의 기차편은 당연히 판매완료. 아리산을 가려면 타이중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는 여행사의 안내문을 읽고 아리산은 다음으로 미루고 사전답사의 느낌으로 이번 여행지는 타이중으로 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만의 대전에 해당하는 타이중이니 여기에도 성심당같은 숨겨진 로컬 맛집들이 많을 것 같다는 즐거운 상상도 동시에 들었다. 위엔장 맥주에 대한 아쉬움의 자리를 채울 목적으로 바쁜 대학생 딸냄에게 일정을 문의하니 마침 선약이 없다며 합류를 선언한다. 이렇게 급하게 모녀여행이 성사되었다. 술이 술을 부른다(?)…당신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가 이어지듯이 어느 한 분야의 공부는 가까운 주제 혹은 밑도 끝도 없이 완벽하게 다른 주제로도 왕왕 이어지곤 한다. 공부는 공부를 부르고 여행은 여행을 부르며 술은 술을 부른다. 대입 수험생이던 시절 딸에게 공부 잔소리를 따로 했던 기억은 거의 없다. 대신 어서 대학생이 되어 와인 한 잔 정도는 혹은 맥주 한 잔 정도는 어머니랑 나눌 수 있는 낭만을 즐길 줄 아는 대학생이 되어달라고 부탁한 적은 있다. 기왕 하는 대입 준비, 즐거울 수 없는 그 고난의 시기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 주려고 등 토닥거리며 했던 최선의 격려 코멘트였다. 우리는 아주 무난하고도 겸손한 그리고 실현 가능한 진학 목표를 세웠고 다행히 재수반수 혹은 삼수반수가 필수인 대한민국 입시판의 루틴 루트를 벗어나 고2 때 시험삼아 치룬 수시로 모 대학에 척 붙어 버렸으니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었다. 합격 직후 이모들과 떠난 겨울 캠핑의 어느 날 칭다오 캔맥주를 입에 물고 찍은 사진 속 딸은 눈코입을 최대한 못생기게 만드는 방식으로 인상을 쓰고 있다. 요즘도 자주 들여다 보는 재미있는 사진이다. 이렇게 캔맥 하나 못 마시던 그녀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급속도로 술맛을 알아버렸다. 그것도 종목은 소주이다. 딸냄은 어느 덧 ‘공릉동 참이슬녀’로 등극하였고 아이의 자취방은 동기들의 아지트이자 소주방이 되어가고 있었다. 술이란 게 그렇다. 한 입도 못 대던 이도 어느 순간 그 둑이 무너지면서 술이 술을 부르게 되는 경지를 넘어서게 된다. 또한 달력의 숫자들은 점점 술을 마신 날과 그렇지 않은 날로 구분이 된다. 술독에 빠져 헤롱거리던 낭만 넘치던 날들도 처음의 신선함과 상콤함은 사라지고 술자리의 빈도와 즐거움의 강도 또한 급격히 시들해지는 수순을 밟게 되는데 그 즈음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면 대개 그 때가 새내기 1학년의 겨울방학을 알리는 첫눈이 내리는 시기이다. 와인 한 잔, 맥주 한 잔 딱 그 정도의 소소한 낭만적 대학생활 대신 화끈한 술자리를 과도하게 만끽했던 딸냄이 3학년 2학기를 앞둔 최근 드디어 절주를 선언했다. “3년간 많이 마셨데이..”라면서 지난 즐거웠던 자취방에서의 음주 라이프를 여행길 내내 들려주었다. 『술 취한 원숭이』 (로버트 더들리, 궁리, 2019년 3월) -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를 둔 불행한 가족력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알코올 중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 독성학 분야에는 호르메시스(hormesis)라는 중요한 개념이 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을 소량씩 투여하면 건강에 이롭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전혀 노출되지 않거나 비정상적으로 과도하게 노출되는 경우에는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난다. - 오늘날에도 뭔가 치료를 받은 환자 중 90퍼센트가 다시 술을 찾고 그 수치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 알코올 중독과 같이 복잡한 행동 장애를 목표로 하는 개별 약물의 작용을 예측한다는 것은 현재 우리가 이해하는 뇌 기능의 수준을 쉽게 넘어선다. - 알코올 소비를 줄이는 가장 좋은 정책 중 하나는 물리적으로 아예 술에 접근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는 방법도 여전히 지지부진한 것을 보면 역설적으로 알코올 노출에 관한 광범위한 비교생물학 연구가 얼마나 절실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중독에 빠진 뇌 과학자』 (주디스 그리셀, 심심, 2021년 12월) - 사회적 관습 곳곳은 알코올 음료에 푹 절여져 있다. - 모든 중독성 약물과 마찬가지로 알코올 역시 행복감이나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비롯해 중변연계가 활성화되면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급격한 기분 변화들을 야기한다. - 가족 중에 알코올중독을 경험한 인물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알코올중독에 빠지게 될 확률이 세 배에서 다섯 배나 높다. - 혈중 알코올농도가 법적 기준치에 다다르면 행동이 나른해지고 언어 및 신체 협응능력이 손상된다. 거기서 더 마실 경우에는 의식을 잃을 수도 있다. 이러한 효과들로 인해 알코올은 수면진정제로 분류된다. - 암울한 결과가 뻔히 보이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점점 더 많은 술을 점점 더 빨리 마셔대고 있다. 폭음은 누구에게나 위험하지만 아직 뇌가 발달 중인 이들에게는 특히 더 위험하다. - 기업은 심리적 학습 원리를 잘 알고 있으며 이를 이용해 다양한 맥락들과 알코올을 연합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 우선 첫걸음으로 술을 마시지 않는 행동을 불편하지만 참는 정도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알코올 중독자의 회복과 성장』 (문봉규 외, 학지사, 2023년 1월) - 단주와 그 이후 마주치는 현실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 회복의 시작이다. 술을 끊는 것은 그저 시작일 뿐 끝이 아니다. - 회복의 과정에서 중독자는 한 사람의 가족 구성원,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자리와 얼굴을 찾아가야 한다. - 중독자에게 단주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다. 술을 끊지 못한 중독자는 질병, 사고, 자살 등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 열등감은 단주를 시작하고 자신의 실체와 현실을 직시하면서 오히려 더 예민하게 감지될 수 있다. - 평생 평온함을 경험해 본 적이 별로 없는 중독자에게 평온함은 오히려 낯설고 불편한 권태로 다가온다. 이러한 권태는 회복을 지루하게 만든다. - 술에 취하지 않은 맑은 몸이 경험하는 새로운 오감은 세상을 새롭게 만나게 한다. - 회복을 하는 과정에서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관계의 회복이다. 『술의 배신』(제이슨 베일, 에디터, 2024년 9월) - 도대체 누가 술이 이롭다고 말할까? 자신도 알코올 중독자인 소위 ‘전문가들’이다. - 아무리 오랜 세월 술을 많이 마셨다 해도 우리 몸은 술을 갈망하지 않는다. 술을 갈망하는 것은 마음이다. - 알코올에 대한 화학적 중독은 그 자체가 질병이다. - 의지력을 사용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은 술을 끊는 사람이 스스로 큰 희생을 감수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 문제는 사회가 술을 끊는 사람에게 삶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큰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인상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 금주자들이 겪는 트라우마는 알코올의 독소가 몸에서 빠져나가는 신체적 고통이나 유전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신적 박탈감에서 비롯된다. - 주류업계는 세계적으로 매년 100만명 이상의 고객을 잃는다. 술 때문에 생명을 잃는 사람들을 말한다. 『중독의 신경과학』(프란체스카 마푸아 필비, 에코리브르, 2025년 7월) - 중독은 한 번 시작하면 평생 이어지는 만성 뇌 질환이다. 만성이라는 용어는 병리학적 특성이 오래 지속되며, 금단 상태에서도 중독 증상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 다른 만성 질환들과 비교해보면 중독의 재발률은 당뇨병, 고혈압, 천식 같은 다른 만성 질환과 유사하다. - 치료 전략에서 중독의 악영향이 개인의 의학적, 심리적, 사회적, 직업적 측면 등에 광범위하게 미친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치료 프로그램은 이런 다양한 필요를 충족할 수 있도록 종합적 재활 서비스를 포함한다. - 알코올을 소비한다고 해서 모두 중독의 길을 걷지는 않는다. 음주자의 약 15퍼센트 정도만 알코올에 의존하게 된다. 중독에 대한 취약성에 영향을 미치는 개인적 요인은 복잡하며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 신경 발달에 중요한 인생 초기에 스트레스를 경험하면 이후 중독이 발생할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 - 신경과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치료법을 설계하면 뇌의 특정 경로를 표적으로 삼거나 유익한 것으로 판명된 행동적, 약리학적 접근을 통해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 타이중 시내를 걸으며 드물지 않게 보이던 중의진소(中醫診所)와 약행(藥行) 간판이 왜이리 반갑던지!! 우리의 한의원과 한약방에 해당되는 곳이라 그런지 내적 친밀감을 감추지 못하고 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투명창 안으로 보이는 환자들로 북적이는 대기실을 흐뭇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針灸推拿” “中醫婦科” “轉骨長高” 진료과목을 내건 곳도 있었고 관절질환, 추간판질환, 신진대사질환, 좌골신경질환, 월경통, 과민성 비염, 간신증후군 등의 개별 질환을 광고하는 곳도 있었다. 출입문 앞에 입간판용으로 PC 모니터를 연결하여 삼복첩(三伏貼)과 여름용 기력보강 한약처방 그리고 각종 척추관절 예방운동 영상을 보여주는 곳은 주 5일 야간진료를 실시하는 듯했다. 또한 타이중역 앞의 중약방은 제약회사의 완제품으로 보이는 健步虎潛丸, 龜鹿補腎丸의 입고와 자체 제작한 特製減肥茶, 中藥痱子粉의 판매개시를 알리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있었다. 통유리에 붙어있던 “科學中醫” “科學中藥” 붉은 색의 여덟 글자가 강렬한 햇볕을 못 이기고 희미하게 변색이 된 지는 꽤 오래되어 보였다. 좁아지는 한의약 영역…더 이상 부릴 여유 없다 알코올중독 치료전문 병원을 운영하는 한의사 한 분이 떠오른다. 기억하고 있는 병원 이름을 검색해보니 다수의 정신과, 내과 전문의들과의 협진으로 병원은 여전히 잘 운영되고 있는 것 같다. 내년 3월 돌봄통합지원법이 시행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에서 통합판정 도구를 도입하게 되면 요양병원 내 경증, 선택 입원 환자는 사실상 배제될 수도 있어서 요양병원들의 생존이 또 한 번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 같다. 교통사고 12∼14등급 교통사고 피해환자 한의 치료비 증가세에 따라 국토교통부가 이들 피해환자가 8주 이상 진료를 받으려면 보험사에 상해 정도와 치료 경과 자료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한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자 교통사고 입원전문 한방병원들을 위시한 한의협은 한의대 폐지와 한의사 면허 반납 등을 표어로까지 내세우며 시위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이에 의료계는 “오히려 좋아”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라며 강도 높은 비판 논조에 뼈 때리는 조롱까지 보태고 있는 실정이다. 술이 술을 부른다고 주먹에 주먹을 날릴 수는 없다. 조롱을 해학으로 놀림을 유머로 승화시킬 여유 또한 필요하다. 한의계에 이럴 여유부릴 시간이 남아있는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도 협회 차원에서도 자문해 볼 시점이다. 여행의 마법은 평범하게 반복되는 모든 순간들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있는 것 같다. 평소 같으면 아무것도 아닐 아침식사 사진을 왜 찍으며 주말 아침 호텔 앞을 떼지어 지나가는 골목의 오토바이 행렬을 그토록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을 이유는 바로 ‘나는 지금 여행 중이다’라는 자각 덕분이기도 하다. 나름의 유명세가 있는 정치 예능 유투버가 최근 두 번째 음주운전으로 기약을 알 수 없는 강제 자숙기간에 들어간 것 같다. 언제 다시 얼굴을 내밀지는 알 수 없으나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 동시에 잘 나갈 때 몸 조심하라는 말은 어쩜 이렇게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 것일까? ‘한의계도 한 때, 잘 나갈 때가 있기는 있었던가?’라는 추억을 곱씹으며 아직도 식을 줄 모르는 폭염 그 자체였던 2025년의 여름에 작별을 고하는 바이다. -
신미숙 여의도 책방-66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편집자주] 『신미숙의 여의도 책방』은 각 회마다 1개의 키워드에 5권의 도서를 추천하는 형식으로 이어갑니다. 지난 7월8일은 질병관리청이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를 운영해 온 2011년 이래 가장 이른 시기에 응급실에 방문한 누적환수가 1000명에 도달한 날이다. 구미 공사장 노동자와 경북 팔각산 등산객, 전북 구봉산 등산객의 안타까운 사망 뉴스도 이날 전후로 들려왔다. 더위 만큼이나 진땀을 유발하는 기사들이다. “열대야 2주차, 올들어 낮기온 최고 갱신”, “100년만의 찜통 더위, 습도와 불쾌지수 최고조” 등의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듯한 날씨 기사의 경쟁적으로 붉은 제목들은 글자를 읽는 것만으로도 이글대는 아스팔트 위에 맨발로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실감시키는 위력이 분명히 있다. “동남아 여행갈 필요가 있나? 서울이 방콕인 걸!” 올 여름 태국이나 베트남보다 한국이 더 덥다는 것은 느낌이 아닌 실제 기록으로 확인된다. 이런 날씨 관련 사건사고의 사회면 바로 뒷 페이지에 실려있는 힙하다는 국내외의 피서지 정보와 최고급 호텔들의 애플망고빙수가 얼마나 비싼지에 관한 비교 리포트는 사람들의 마음에 또 다른 불을 지핀다.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사정과 함께 ‘뭐 한 번 먹어주지. 그깟 호텔 망고빙수, 나를 위한 스몰 럭셔리’라고 마음 먹었다가도 ‘그래도 빙수 한 그릇에 10만원은 좀 너무하지 않나?’라는 내적 갈등을 겪고나면 ‘집 앞 저가커피숍의 4000원짜리 컵빙수라도 사수하자’는 결심을 슬그머니 실천에 옮기게 된다. 일사병과 열사병의 계절에 화(火)를 떠올리는 것은 이열치열의 정신이기도 하고 난데없이 진료실에 크리스마스 캐롤을 틀어보는 엉뚱한 짓과 비슷한 시도이다. 또한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2018)라는 서울대 정치학과 김영민 교수의 책 제목에 부합되는 사유를 흉내내기 위함이다. 폭염도 괴로운데 이 폭염의 일상에 화병을 굳이 떠올리는 이유는 딱히 없다. 덥기 때문이다. 더위를 덜 타기 위한 몸부림에 특별한 이유가 따로 있겠는가? 새 정부 출범 후 국회의 여러 모습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야당 의원들은 체력단련실과 사우나에서 건강관리와 힐링을 챙기시며 후일을 도모하고 있는 반면에 여당 의원들은 대통령실에서 전화가 걸려올까봐 하루 종일 노심초사 전화기를 노려보고 계시는 분들이 다수라는 꽤 믿을만한 소식통의 제보를 접했다. ‘누구는 장관 후보도 되고 또 다른 누구는 대통령 곁으로도 불려가는데 왜 나에게는 아무런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다는 말인가?’ 절망감 혹은 배신감 혹은 가슴앓이 혹은 그로 인한 불안초조? 이 모든 증상이 한꺼번에 나타난다면 다름 아닌 화병(火病)이다. 정치인들의 화(火)를 떠올리니 근본은 질투요, 껍질은 감투다. 비슷하게 정치를 시작해도 중간 경로에 따라 종국에 처한 자리는 천양지차다. 명함도 인기도 영향력도 각기 다른 포물선을 그릴 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 현직에 있을 때 다음 번 총선까지 염두해 가며 본인의 입지를 지속적으로 비교, 분석, 계산해야 하니 이보다 더 피곤한 자리도 없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국회의원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다”라는 씁쓸한 문장이 있다. 총선 낙선자에 대한 조롱을 담은 풍자적 문장이다. 이는 냉정한 현실이기도 하다. 그렇게도 전국민적인 욕을 먹는 자리가 뭐가 좋다고 의원 한 번 해 보겠다고 저리도 별의별 수를 다 쓰나 싶겠지만 국회의원은 얻어먹는 욕 만큼의 무게감으로 동시에 입법에 영향력을 미치고 그로 인한 유명세를 얻는 일종의 정치 셀럽이다. 뺏지를 달고 있는 현직 때와 뺏지 떨어진 전직 의원, 이 두 그룹 사이에 부여되는 권리와 의무 무엇보다도 중요도나 주목도에 따른 바쁨의 정도가 하늘과 땅 차이이기 때문에 후자 그룹에 속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한동안 괴로워하는 분들이 꽤 많다. 이 모든 것을 쉼 없이 멀티태스킹 해내는 의원들의 체력과 멘탈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모두 슈퍼맨인 것만은 틀림 없다. 현재를 살아가는 한의사들의 마음은? 2025년을 살아가는 현직 한의사들의 마음 속에도 불덩어리 한두개씩 있을 것이다. ‘내가 미쳤다고 의대 등록을 포기하고 한의대를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다니’ 혹은 ‘그 때 수련의를 그만 두고 나가서 선배가 하던 요양병원을 이어서 했었더라면 지금쯤 은퇴자금 확보하고 동네 할매할배들 비위는 더 이상 안 맞춰도 되었을텐데’ 등등 이불킥에 머리쿵을 해 보아도 이미 늦었다. 물은 엎질러졌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한의계에 몸과 맘을 담근 지 수십년이 지나버려 한의사 팔자임을, 이생망 운명임을 받아들인 채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자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눈팅만 하는 모 정치 커뮤니티에 난데없이 “2025년에 한의사가 왜 필요하죠?”라는 게시글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글 내용도 댓글도 뻔할 듯하여 건너뛰었다. 열 받는다. 요즘 말로 킹 받는다. 대학병원 경유해서 초재진으로 내원하는 모든 환자들은 하나같이 “교수님이 침 맞지 말라던데요”, “담당 교수가 한약 먹지 말라는데요” 합창을 한다. “여긴 한의원인데 그럼 뭘 해 드릴까요?” 로마 시대의 스토아 철학자인 세네카는 일찍이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와 더불어 『분노에 대하여』라는 그의 저작물을 통해 아래와 같이 조언한 바 있다. 『세네카의 화 다스리기』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메이트 북스, 2019년 4월) - 화라는 녀석이 일단 밖으로 표출되기 시작하면 화의 노예가 되기 쉽다. - 일단 화를 내는 것에 성공하면 의기양양해지지만 실패하면 광기에 미쳐 날뛴다. - 화는 내가 상처를 입었다는 믿음에서 시작된다. - 화를 잘 내는 성격은 다양한 결함을 가지고 있으며 타의에 의해 좌우되는 것을 싫어한다. - 충동은 단순한 행동에 불과하지만 화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결합된 복잡한 감정이다. - 두려움은 회피하려는 마음을 낳고, 화는 돌진하려는 마음을 가져온다. - 화라는 지독한 병은 불평불만과 함께 시작된다. - 화를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잠시 멈추는 것이다. - 사람들은 각기 다른 것에 화를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취약한 부분이 어디인지 잘 알고 있어야만 그 부분을 특별히 보호할 수 있다. 『화병의 인문학, 근현대편』 (박성호, 최성민, 모시는 사람들, 2020년 9월) -한의학에서 ‘화병’은 화(火)의 개념에서 나왔지만 단일한 병인을 가진 병명으로 보지는 않는다. 화병은 증상적으로는 광범위하고, 사회문화적으로는 국지적이라 할 수 있다. - 우리에게 화병은 그저 질병으로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화병은 하나의 문화다. - 현대 한의학에서 화병의 원인으로 손꼽는 것은 대체로 가족 내에서의 갈등 내지는 가족을 잃은 슬픔 등이다. - “간은 녹는 듯, 염통은 서는 듯, 창자는 끊어지는 듯, 가슴은 칼로 어이는 듯”하는 마음의 병은 신체로까지 파급된다. - 말하자면 마음(心)의 병이 몸(身)으로 발현되었다가 다시 정신, 즉 마음(心)으로 회귀하는 셈이다. - 화병에 대한 임상연구에서는 분노, 억울, 불안, 초조, 우울, 의욕상실 등의 정서적인 증상과 함께 답답함, 두근거림, 치밀어 오름 등의 다양한 신체적 증상이 거론된다. - 울화가 몸과 마음의 병을 낳기에 신체 증상과 동반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던 화병은, 신경쇠약의 맥락에서는 과도한 자극으로 인해 소모된 신경이 육체까지도 소모시킨다는 형태로 재배치 되었다. - 화병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불가항력적 충격이 영문을 알 수 없게 다가올 때, 합리적인 이성으로 자신이 처한 고통스런 상황이 이해되지 않을 때 찾아온다. 분노와 억울함, 답답함이 뒤섞여서 나타나는 심리적 질병이다. 『화병의 인문학, 전통편』 (김양진, 염원희, 모시는 사람들, 2020년 10월) - 공식 기록상으로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화병을 앓은 이는 선조이다. 선조가 스스로 자신이 앓고 있는 병을‘화병’으로 언급한 이래 이 병은 조선 왕실의 누적된 유전병이 되어 버린다. - “나는 화병을 앓는 것이라서 계사(啓辭)를 보고부터는 심기가 더욱 상하여 후문(喉門)이 더욱 폐색되고 담기(痰氣)가 더욱 성한데 이것은 좌우의 환시(宦寺)가 다 알고 있는 바이다“ - 가부장제적 질서 안에서 남녀 차별이나 적서 차별 등에 의해 누적된 화병은 사회생활로 이어지면서 더 큰 차별과 원망으로 확산되어 사회 전반으로 퍼져 있다. - 화병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분노이다. 물론 분노만이 화병의 원인이 되는 감정은 아니지만, 화병은 일차적으로 분노와 관련된다. 억울함이 쌓여 바깥으로 폭발하면 분노가 된다. - 중년 여성의 화병 증상은 각각 울구화화(鬱久化火), 심신불교(心身不交)와 같은 한의학 용어로 설명할 수 있다. 『욱하는 마음 다스리기』 (알루보물레 스마나사라, 밀라그로, 2020년 11월) - 화는 맹독이다. 마음이 화에 물들면 인간의 성장은 멈춰버린다. - 화라는 것은 자신을 스스로 화염에 휩싸이게 하는 것이다. - 화내지 않는 사람이 모두의 고삐를 쥐고 있는 것이다. - ‘화가 없다’라는 것은 화를 낼 조건이 갖춰져 있어도 화를 내지 않는 것이다. - 화를 다스리는 방법은 바로 자신의 마음을 보는 것이다. - 지혜의 개발이 화를 극복하는 지름길이다. - 화를 내는 사람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약하다. 『한국인의 울분과 외상 후 울분장애』 (채정호 외, 군자출판사, 2021년 3월) - 영어로 Hwabyeong 혹은 Hwabyung이라는 단어로 구글 검색이 가능할 정도로 화병은 한국인의 독특한 문화증후군으로 서양에서는 관찰되지 않는 역기능적 분노(dysfunctional anger)이다. - 화병은 정신의학적 용어로 바꿔 말하면, 심한 신체증상을 동반한 우울증이라고 할 수 있다. - 화병의 유병률은 일반 인구집단의 3-5%에 달하며 외래를 방문하는 신경증 환자들의 20-30%가 화병에 해당된다. - 화병에 대한 연구는 국내 정신의학회에서는 많지 않지만 한방정신의학에서 비교적 활발하고 한동안 심리학, 사회복지학, 상담학 등에서 활발하였다. - 화병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어떤 방어기제를 선택하는가에 따라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또는 정신병적 장애로 분화, 발달할 수 있다. - 화병 치료의 일차적 목적은 당연히 분노의 감소이다. 화병 치료의 원칙은 다른 정신장애에서와 같이 통합적이고 전인적인 접근이어야 한다. 새 정부의 인사청문회 시즌이다. 슈퍼위크라고도 불리운다. 아마 이 글이 실릴 즈음이면 청문회는 마무리되고 야당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각 부서의 장관 후보들은 임명장을 수령했거나 수령 준비 중일 것이다. 장관 후보에 지명이 되자마자 모 의원의 보좌진 상대 갑질 의혹 뉴스가 떴다. 진위를 떠나 갑질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히 존재하고 그 양측의 입장이 완벽하게 다르다는 게 쟁점이다. 가장 큰 문제는 갑질의 가해자는 대부분 그 행위가 상대방에게 해가 되는지를 아예 모른다는 것이다. 갑질 피해자에 대한 감수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반대로, 갑질의 피해자 대부분은 이미 화병이 진행된 중증 환자이다. 가해자에 대한 증오심을 품게 되고 실직이라도 되면 본인 처지를 심하게 비관하게 된다. 이직에 성공해도 전 직장에서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라면 새 직장에서도 더딘 적응력으로 이중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과거의 화병이 주로 가족 안에서의 관계에서 유래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 요즘의 화병은 남녀를 불문하고 직장 내에서의 갑을관계에서 파생된 여러 갈등의 결과로 발생된다. 성별과 세대에 따른 화병의 변천사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 전체 구성원들의 마음 건강을 돌아보게 만든다. ‘너만 귀하냐? 나도 귀하다?’, ‘나는 귀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똑같이 귀한 사람입니다’ 진료실에 입장하는 모든 이들을 대하며 속으로 반복해서 외우는 주문이다. ‘화’라는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단단한 지혜 절실 최근 넷플릭스에서 화제중인 애니메니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초반에 난데 없이 한의원과 한의사가 등장한다. 보컬 루미가 갑자기 컨디션 난조로 목소리에 문제가 생기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다른 멤버 조이가 한의원을 추천하고 나머지 멤버 미라까지 다같이 한의원을 방문한다. 한의원을 들어서며 미라가 내뱉는 말 “사짜 냄새가 풀풀 나는구만” 한의사가 진료실로 들어서자 멤버들은 효과가 직방인 한약을 받으려고 왔고 빨리 나을수록 좋다고 약처방을 재촉하지만 느긋한 한의사는 부분을 치료하려면 전체를 이해해야 하는 법이라며 진찰이라기보다는 관상을 본다. 루미는 벽이 너무 많고 한 부분에만 집중하고 있으며 그러다보니 분열되고 고립되고 감정을 숨기며 다른 멤버들과 목욕탕도 같이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얼굴만 보고 이 모든 것을 귀신처럼 맞춘 한의사의 신통함에 조이는 감탄하지만 루미는 좋은 말씀이기는 한데 한약만 받으면 되니 어서 목소리 치료제나 달라고 다시 한 번 채근한다. 마침 딱 맞는 게 있다며 ‘몸에 좋은 한약’이라고 기재된 한약박스를 멤버들에게 내어 주는데, 나중에 한약 파우치 껍질이 벗겨지면서 한약은 포도 에이드로 밝혀진다. 한국 문화에 대한 현실 고증을 깨알 디테일까지 잘 살렸다고 칭찬 세례를 받고 있는 작품에 한의원과 한의사가 등장하여 나름 반갑기도 했지만 관상으로 진찰을 하는 장면이나 포도 에이드를 표지갈이 하여 한약이라고 판매한 행위는 해외에서도 대체보완의학 분야 종사자들을 사기꾼 기질을 가진 정통 의사의 격에는 미치지 못하는 부류로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진행 중인 3특검의 지난주 주요 뉴스 한 토막은 누군가의 격노가 있었냐 없었냐 들었냐 말았냐에 관한 것이었다. 윗 사람의 분노는 아랫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정책을 급변시키며 인사를 꼬이에 만든다. 화라는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단단한 지혜가 절실한 시절이다. 화를 내지 않아야 진정한 리더라는 인용 서적의 한 문장을 떠올려 본다. -
신미숙 여의도 책방 <65>[편집자주] 『신미숙의 여의도 책방』은 각 회마다 1개의 키워드에 5권의 도서를 추천하는 형식으로 이어갑니다. 지난 3월 중순 단식을 시작하셨다가 8일만에 병원으로 이송되셨던 모 의원님께서 오랜만에 진료실을 방문하셨다. 그 당시, 보식기도 잘 보냈고 체중도 거의 회복이 되어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여름이 가까워지는 요즘 유난히 기운이 없고 변비가 자주 오며 묵직한 두통이 한번씩 느껴진다는 것이다. 단식기간 동안 혈당 저하와 탈수는 두통을 유발하고, 줄어든 수분 섭취는 변비를 가져온다. 평소에 여름철 필수 코스로 냉방병과 콧물 감기 그리고 복통, 설사도 잦은 예민한 분이신데 단식 후유증이 오래 가는 것 같다고 이미 스트레스를 받고 계신 듯했다. “단식을 종료하고도 경미한 증상의 완전 소실은 사람마다 차이가 크며, 이 모든 게 체질의 강약이니 너무 걱정은 마시라고. 그리고 보식기와 유사한 식이요법 실천과 모임이 많으셔서 힘드시더라도 상당 기간은 더 금주하셔서 의원님 여름 건강을 미리 챙기신다 여기시면 어떨까요”라고 말씀드렸다. 또 “근력이 떨어졌다고 생각되시면 체력단련실 자주 방문하셔서 가벼운 아령운동이나 러닝머신 병행하시고 이전처럼 또 테니스 강행하시면 팔꿈치 통증 재발하니 무리는 마시고 무탈한 여름 보내는 것을 목표로 하시라”고 첨언했다. 의원님의 단식 뉴스에 많은 사람들이 걱정과 응원을 동시에 보냈을 거라는 의례적인 코멘트를 끝으로 배웅을 나서려는데 의원님께서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잘 안 낫고 있던 이명 있잖아요. 그게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라고 하신다. “의원님께서 단식을 통한 특정 질병의 호전을 경험하셨네요. 이명이 호전되셨으니 다른 증상들도 서서히 나아지실 겁니다.” 단식의 의학적 치료 효과는 광범위한 대신 상당히 개별적이다. 좋아지셨다니 그저 다행스런 일이다. 선거운동 기간에 거의 모든 의원실의 보좌진들은 소속 정당의 선거를 돕느라 국회를 떠나 전국의 방방곡곡으로 흩어진다. 큰 선거가 있는 해마다 거리에서는 치열한 선거운동이 절정에 치닫는 그 시기, 대조적으로 여의도에 남아있는 사무처 직원들은 달디단 망중한의 짧은 몇 주를 보내게 된다. 대선 직후부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선거운동의 후유증으로 추정되는 각종 증상을 온 몸에 들쳐업은 의원실 직원들이 끝없이 진료실로 입장 중이다. 술병이 난 분들도 많고, 화병이 난 분들도 더러 있었다. 몸이 아픈 것도 맘이 멍든 것도 힘든 건 매 한가지다. 목, 허리, 무릎, 발목통증 모두 선거운동 중 많이 먹어서 살이 쪄서 아픈 것 같다고 말한다. 이제 선거도 끝났으니 술도 끊고 다가오는 여름을 위해서라도 살을 빼겠다는 분들이 여기저기서 의지를 불태운다. 나라의 판이 바뀌었으니 몸의 판도 이참에 바꾸겠다는 어느 보좌관님의 배둘레를 보고 속으로 피식 웃었다. 수년째 뵙고 있는 이 분은 키도 키지만 매년 인바디 측정을 하겠다고 주 1회 프린트를 해 가시기를 1∼2개월 열심히 해가다가 세자리 숫자가 두 자리 숫자로 넘어가기 일보직전에 다이어트를 포기하고 사라지기를 반복 중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6월이 되자 다시 나타나서 여야교체에 따라 본인몸 판갈이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이상한 이론을 설파하고 인바디 결과지를 프린트한 후 퇴장하셨다. 역시 체중은 세자리 숫자이다. 과연 올해는 어쩌면 해피엔딩? 해마다 결심하는 다이어트…올해는 성공할까?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더니 전국 수석을 했더라는 특급 수험생의 뻔한 인터뷰 내용처럼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했더니 살이 쭉쭉 빠지더라는 그 많은 유투버들의 체중감량 감동서사는 왜 화면 너머에만 있는 건데?! 우리도 해봐서 안다. 저녁식사만 생략하는 것도 간헐적 단식의 원칙대로 16시간 금식하고 8시간 안에서만 먹는 것도 날마다 5km씩 꾸준히 달리는 일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우리는 안다. 러닝화 언박싱을 한 날은 때마침 비가 와서 로드러닝을 방해하고 간헐적 단식 개시하여 2∼3일 잘하나 싶었는데 거절 불가능한 와인 번개모임 공지가 뜬다. 이번 한 주는 저녁식사 생략의 한 주를 보낼거라고 굳게 다짐한 후 귀가해 보면 그 날은 꼭 친정 어머니께서 갓 담은 새김치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가신 날이다. 우리의 일상이 늘 먹고 마시고 굶고 덜 먹고 빼고 또다시 찌고의 반복이기에 이 일상생활을 엄격한 규칙과 금기로 제어한다는 것은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건조하며 노잼이며 살벌한가? 이 모든 것이 자유의지의 내재적 허약함 덕분이겠지만 그래서일까? 보톡스 열풍의 딱 그 강도와 유행속도로 요즘 가장 핫한 의료계의 키워드는 의정갈등 봉합이 아닌 위고비인 듯하다. 의사 면허만 가지고 있으면 전문분과 상관없이 어느 병의원에서든 주사처방이 가능하다. 그래서 집앞 정형외과에도 길건너 이비인후과에서도 “위고비 개시” 광고판을 내걸었다. 무릎통증도 비만으로 인한 것이고 수면중무호흡증도 과체중으로 인한 것이다. 위고비든 위고비 열풍에 밀려 대중들의 선택지에서 더더 후순위로 밀려날 게 뻔한 비만한약이든 결국에는 먹는 양을 조절해 준다는 최종 목적지는 동일하다. 먹느냐? 굶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먹어야 살도 빼고 건강도 유지하며 치매 없이 장수하다가 죽는단 말인가? 『어떻게 먹을 것인가』(캐롤린 스틸, 메디치, 2022년 11월) - 음식은 자아의식과 밀접하게 이어져 있어서 사실상 서로 분간하기 힘들다. 음식 문화는 삶의 핵심에 자리한다. 음식은 삶의 본질이자 삶의 깊은 은유다. - 전통적인 음식 문화가 계속 해체되는 지금, 곧잘 속아 넘어가는 대중에게 판매할 식이법이 있다면 누구에게든 기회는 열려 있다. - 삶의 우주적 측면과 길들여진 측면을 음식만큼 강력하게 결합하는 것은 없었다. - 영양학은 비교적 새로운 분야로, 앞서 보았듯 지난 세기에는 유명 인사나 돌팔이 의사, 괴짜 및 식품 산업이 지배해왔다. - 그동안 우리가 식품 및 다이어트 산업이 퍼뜨리는 유행에 곧잘 속아 넘어가며 희생양에 머물던 시대는 끝났다. - 인간과 인간을, 인간과 세상을 이어주는 물질인 음식은 궁극적인 시간 기록기다. 삶의 우주적 측면과 길들여진 측면을 음식만큼 강력하게 결합하는 것은 없었다. 『그레인 브레인』(데이비드 펄머터, 시공사, 2023년 1월) - 얼마 전부터 연구자들은 뇌 질환을 비롯한 모든 퇴행성 질환의 밑바탕에 염증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게 됐다. 염증은 그저 무릎을 시큰거리게 만드는 원인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라 뇌 퇴행 과정 자체와도 관련이 있다. - 식생활과 운동은 우리 몸의 타고난 염증 관리 메커니즘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 셀리악병 환자들을 연구함으로써 우리는 오랫동안 침묵 속에 가려져 있었던 글루텐의 진정한 위험을 확대해서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 나는 사람들이 글루텐이 가득 든 탄수화물을 폭식하는 것을 보면 마치 그 사람들이 담배를 피워 물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글루텐은 우리 세대의 담배라 할 수 있다. - 치매 외에 다른 신경학적 문제도 지방 섭취 저하, 특히 콜레스테롤 수치 저하와 관련이 있다. 어쩐 일인지 우리는 지방을 먹으면 콜레스테롤이 높아지고 이것이 심장마비와 뇌졸중의 위험을 높인다고 믿게 됐다. - 복부지방이 많아질수록 두통의 위험도 커진다. 체중감량, 글루텐 제거,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단, 건강한 혈당 균형 관리 등으로 염증의 근원을 줄일 수 있다면 두통을 통제할 수 있다. 『음식은 약이 아닙니다』(조슈아 월리치, 눌와, 2023년 8월) - 식사와 건강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은 의과대학에서 배우는 학문과 다르다. 의학과 영양의 공통분모는 생각보다 훨씬 적은데도 두 학문의 근본적인 차이를 모르는 의사들은 자신의 능력을 넘어 말도 안 되는 책을 수없이 쓰고 출판한다. - 의료는 대체로 체중 및 체중감량에 초점을 맞춰 건강과 웰빙을 정의하는‘체중 규정’접근법을 따른다. 그러면 결국에는 건강한 체중이라는 좁은 정의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을 차별하게 된다. - 건강과 영양은 본질적으로 사회경제적 문제이자 특권의 문제다. 건강은 도덕적 책임을 묻는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 체지방이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더라도 체중감량이 곧 정답이라거나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 전체 식품군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식사를 건너뛰는 방법은 건강에 결코 좋지 않다. 의도적으로 체중을 조절한다는 맥락에서도 이런 행동은 해롭다. - 알카리성 식이요법으로 암을 치료한다는 식의 영양 헛소리를 보면 몹시 화가 난다. 이런 주장은 암에 걸린 사람의 공포와 불안을 먹잇감으로 삼는다. 우리가 정면으로 비판해야 하는 헛소리다. 『단식 존엄사』(비류잉, 글항아리, 2024년 7월) - 나는 2014년에 일찌감치 나카무라 진이치의 『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하라』를 읽었다. 나카무라가 권장한 것은 의료사가 아닌 자연사다. 자연사의 실질적인 상태는 아사와 탈수다. - 단식으로 생을 마감하는 일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만큼 비참하지 않다. 병원에서 의료사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 환자는 음식은 안 먹어서 죽는 게 아니라 죽음을 목전에 두고 소화 흡수를 못 해서 안 먹는 것이다. - 고형 음식을 완전히 끊은 지 엿새째 되는 날, 어머니는 눈에 띄게 앙상하고 쇠약해졌다. 진정제를 놓기 전날 저녁, 가족들이 거실에 모여 생전 장례식을 치렀다. - 어머니는 수목장 자리가 아버지로부터 멀면 멀수록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 다음 생에 아버지를 만나지 않는 게 가장 큰 소원이라는 점은 우리 가족 모두 확실히 알고 있었다. - 미국 완화의료학회 전 이사장이자 국가존엄사센터의 이사를 맡고 있는 티머시 퀼은 『자발적 식음 중단: 죽음을 앞당기기 위한 자비롭고 광범위한 선택』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단식을 통한 존엄사는 일반 국민에게 널리 적용 가능하지만 좀처럼 공론화되지 않은 존엄사 방식이라고 언급했다. 『지방을 태우는 몸』(지미 무어, 에릭 웨스트먼, 라이팅하우스, 2025년 5월) - 케톤 상태는 극저탄수화물, 중단백, 고지방 식사를 했을 때 발생하는 대사 상태이다. 이 상태에서는 인체의 주 에너지원이 포도당에서 케톤으로 바뀐다. 케톤 상태는 몸이 지방을 태우는 상태이다. - 탄수화물의 해악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지방을 끔찍이 무서워하도록 만든 결과, 의도치 않게 비만과 만성질환이 증가했다. - 케토제닉 다이어트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케톤 상태에 도달해 유지할 수 있을 만큼 탄수화물과 단백질 섭취를 줄이는 것이다. - 금식을 하는 동안에는 몸이 굶주림에 반응해 케톤 생산을 증가시킨다. 간헐적 단식은 체중과 건강을 최적화하기 위한 강력한 전략이 될 수 있다. - 파킨슨병의 기전은 알츠하이머병의 기전과 거의 유사하므로 파킨슨병 역시 식단으로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 흥미롭게도 많은 정신 질환이 뇌가 아닌 장에서 비롯된다는 이론이 제시되고 있다. 장 건강이 나쁜 것은 탄수화물이 많은 곡물 위주의 식단, 항생제 남용, 흔히 복용하는 일반의약품, 심지어 출생 시 엄마의 장 상태 때문일 수 있다. 몇 년 전, 어딘가에 투자를 잘 해서 예상 외의 수익이 생겼다며 제자 한 명이 청담동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으로 초대한 적이 있었다. 고급진 분위기도 모자라 모든 서비스에까지 고급스러움을 제공해야 한다는 무게감을 모든 직원들이 머리에 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 그건 그런 장소에 자주 가 보지 않은 나의 타고난 촌스러움 때문일 것이다. ‘맛있다, 멋있다, 최고다?’라는 느낌보다는 ‘재밌다, 새롭다, 이거 좀 웃기는 포인트다!’라는 기분이 지속되었다. 직원교육용 메뉴판 설명 원고가 하드커버로 제작되어 식당 내 어딘가에 쌓여있을 게 분명해 보였다. “이 요리의 제목은 남도에서 불어오는 계절의 하모니입니다. 제주 청귤로 마리네이드한 흑산도 홍어 그리고 고흥 참숯으로 24시간 훈연한 해남 유기농 돼지 항정살 같이 내어드립니다. 여기에 땅속에서 3년간 저온숙성시킨 해남 묵은지와 강화도 명이나물 페스토를 곁들이셔서 한입에 드시길 권해드립니다. 저희 0식당만의 삼합의 새로운 해석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메뉴가 나올 때마다 이 설명을 다 들어줘야 하는 건가?’라는 걱정이 되었지만 코스 중반이 넘어가니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처음의 그 긴장감은 자연스럽게 느슨해졌다. 후배 덕분에 누린 이 호사스런 경험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음식이 아닌 파인다이닝이라는 문화를 맛 보았던 날!! 식(食)을 제대로 아는 한의학의 예방의학적 가치의 재평가 절식 위고비 없이도 단식이나 체중감량을 위한 식이요법을 잘 해내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비약물적 혹은 자연의학적 그 무엇이라 불리워도 결국은 먹는 방법에 대한 고전적 실천과 도전적 시도, 그리고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이론과 그 결과에 대한 비교분석이 개별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이뤄지고 있다. 약식동원(藥食同源)은 한의사들이 건강유지, 체질개선, 식이요법 지도에 강점을 가졌던 시절 나름 유행어였다. 이제는 어느 돌솥밥집 오픈주방 유리벽에 “밥이 보약이다”라는 글귀를 보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단어랄까? “음식 조절로 체질 감별이나 해 주는 게 어디 의사냐?”라는 한의사에 따라붙는 따가운 폄하의 시선을 극복하고 식(食)을 제대로 아는 한의사들이야말로 대중에게 예방의학적 가치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다는 재평가가 절실한 때이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이 식(食)을 제대로 안다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우주라는 무거운 사실이다. -
신미숙 여의도 책방-64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편집자주] 『신미숙의 여의도 책방』은 각 회마다 1개의 키워드에 5권의 도서를 추천하는 형식으로 이어갑니다. 코로나 대유행의 시기, 되돌아보면 세상에 질병은 감염병만 있는 것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감염병의 공포를 덜어준 각국의 방역 책임자들 중에는 유독 알레르기 전공자들이 많다. 파우치 박사(Dr. Anthony Fauci)도 NIH 산하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IAID)를 38년 가까이 이끌었고 82세의 나이로 2022년 연말 은퇴했다. 2024년 연방 하원의 COVID-19 청문회에 출석하여 코로나를 총괄하던 그 시절부터 퇴직을 한 이후에도 자신과 가족들에 대한 살해 협박이 지속되고 있다고 증언했다. 감염병의 진단과 백신 접종 그리고 방역 원칙 준수 등에 대한 태도가 정치 성향에 따라 확신과 불신으로 극명하게 갈렸던 미국과 국내 상황을 떠올리면 ‘세상의 모든 일 특히 질병, 보건 이슈야말로 정치의 영역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백신을 맞냐마냐, 마스크를 쓰냐마냐, 종교행사를 하냐마냐에 관하여 특정 그룹의 사람들은 과하게 민감했다. 그 불안감을 잠재우기는커녕 무조건적인 정부 비판과 근거 없는 음모 보도에 열을 올렸던 언론들 또한 무척이나 무모했다. 대부분의 큰 사건이 훑고 지나간 후 정신 차려보면 북 치고 장구 치고 병 주고 약 주고 그러고도 반성 없는 분야가 언론이다. ‘놀아나지 말자! 눈길도 맘길도 뺏기지 말자! 의미 없이 퍼부어대는 새빨간 속보 자막에 관심 주지 말자!’라고 굳게 결심하지만 자주 실패한다. 외면할 수 없는 뉴스를 접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정해진 각본 없이 전개되는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요점은 각자에게 가해지는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민감함은 최대한 덜어내고 그 공간을 단단한 무덤덤으로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둔감력이다. 알레르기 질환, 암보다도 복잡하고 어려워 이 좋은 둔감력, 누가 모르나? 민감하고 싶지 않지만 사람 자체를 예민 덩어리로 만드는 질환이 있다. 바로 알레르기 질환이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알레르기의 관리와 치료가 암보다 더 복잡하고 어렵다고도 말한다. 면역 체계의 과민 반응으로 인한 증상 자체가 다양하고 개인마다 원인 물질에 따른 반응의 경중도 제각각이라 진단과 치료는 당연히 개별적이고 여기에 환경 변화나 새로운 알레르겐까지 더해지면 환자마다의 증상 관리라고 하는 것이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진다. 환절기마다 혹은 일년 내내 약을 달고 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리가 잘 안 되어 매번 벌개진 눈와 코와 피부로 괴로워하는 가족을 단 한명이라도 둔 사람들이라면 그 모습을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같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벚꽃은 엔딩이지만 짙은 농도의 잔디류 꽃가루가 본격적으로 날리기 시작하는 5∼6월은 2차 꽃가루 시즌이다. “원장님께서 코가 뻥 뚫리는 침을 놓아주신다고 해서 왔습니다”, “양약, 한약 다 먹고 있고요. 오늘은 두통이 심해서 왔습니다”, “식염수 코세척 방법 좀 알려주세요” 등의 호소를 하며 “에취” “콜록” “킁킁” 등의 여러 사운드와 함께 진료실에 입장하실 환자분들을 당분간 계속 만날 것 같다. 40대 중반에 접어든 우리집 넷째의 비염은 그 역사가 유구하다. 비염만 아니었으면 상도동 S대가 아닌 신림동 S대에 갔을지도 모른다고 가끔 허풍이 섞인 너스레를 떤다. 중1부터 고3 아니 재수생 시절까지 동생의 책가방에는 두루마리 화장지가 두어개, 화장지 전용 쓰레기통 용도의 큼지막한 종이 쇼핑백 그리고 헐어버린 코 근처 피부에 바를 휴대용 연고통에 담긴 바세린이 들어 있었다. 아빠 제자 중에 이비인후과 의사들이 몇 분 계셨고 당시 한의대생이었던 나도 비염 동생한테 도움을 주고 싶어서 비염에 용하다는 한의사 선생님들 몇 분과 미리 친분을 쌓아 두었다. 여러 인연을 총동원하여 양약과 한약의 복합투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수포자 문과생이었던 동생의 스트레스가 너무 지독했는지 그 어떤 약도 도통 효과가 없었다. “저 코를 가지고 어떻게 고3을 보낸다냐? 공부할라고 고개를 아래로 숙이기만 하면 콧물이 흐르고 머리가 아프다는데”라시며 어느 날 엄마는 동생을 데리고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비염 전문 한약방이 있다는 목포로 떠나셨다. 콧구멍 안으로 한약가루를 뭉쳐서 무지막지하게 쑤셔넣고 10여분 있으라고 하더니 바가지에 누런 콧물을 한바가지 쏟게 만들고 뒤이어 반대쪽도 똑같이 그렇게 하더란다. 두어번 콧물을 더 쏟게 한 후, 이제 콧물 흐를 일 없을 거라고 한약업사는 장담했고 값을 치룬 후 엄마와 동생은 집으로 복귀했다. 효과는 딱 이틀 정도 갔던 것 같다. 곧바로 콧물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암튼 이 끈질긴 생명력의 비염은 재수가 끝날 때까지 동생을 따라다녔다. 그러다가 동생은 상도동 S대에 합격했고 묘하게도 이때부터 비염은 스멀스멀 그 기세가 약해지고 있었다. 부모님 곁을 떠나 ‘이제 난 자유다’라는 홀가분함 덕분이었을까? 참이슬 집중 복용의 효과였을까? 본격적인 음주가무가 가져다준 도파민 폭발의 결과였을까? 긴 비염에도 불구하고 중꺽마 정신으로 본인의 모든 상황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던 동생만의 둔감력 덕분이었을까?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 (와타나베 준이치, 다산북스, 2022년 5월) - 의사처럼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일수록 둔감한 마음이 필요하다. - 훌훌 털어버리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선물, 이것이 둔감력이다. - 둔감한 사람의 자율신경은 지나친 자극에 타격을 받는 일 없이 언제나 혈관을 열어두어 온몸에 피가 원활히 흐르도록 기능한다. - 예민한 것보다는 둔감한 편이 낫다. 둔감한 사람이 예민한 사람보다 더 오래도록 느긋하고 여유로우며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 - 수많은 둔감력 중에서도 으뜸은 잘 자는 것이다. 나는 이런 능력을 수면력이라 부른다. - 사소한 일에 흔들리지 않는 둔감함이야말로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재능이다. - 둔감력을 기르는 첫걸음은 너그러운 부모에게 칭찬받으며 자라는 데서 시작된다. 『음식 알레르기의 종말』 (카리 네이도, 슬론 바넷, 브론스테인, 2022년 9월) - 비만 세포와 IgE의 결합으로 나타나는 활성이 외부로 드러나는 알레르기 반응의 핵심이다. 특정 음식이 어떻게 면역계에서 IgE 항체를 만들어 내도록 유도하는지는 그 정확한 과정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 최근에는 중국 전통의학에 뿌리를 둔 약초 제제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음식 알레르기 약초 제제(FAHF-2;food allergy herbal formula-2)로 알려진 9가지 약초가 함유된 복합 제제의 임상시험이 진행중이다. 이는 오매환이라는 제제를 기본 재료로 삼고 여기에 여러 가지 약초를 섞은 것이다. 오매환은 천식과 위장염의 효능 연구가 진행되어 온 약이기도 하다. - 면역학자인 시우민 리Xiu-Min Li 박사는 중국 전통의학을 광범위하게 공부하고 습진, 음식 알레르기, 천식에 도움이 되는 약초 제제를 개발해 왔다. 단 이러한 방법을 이용해 보고 싶은 환자는 담당 알레르기 전문의, 소아과 전문의, 일반의에게도 반드시 알려야 한다. - 면역요법은 인체 면역계가 알레르기 반응을 촉발하는 항체인 IgE를 더 이상 만들어내지 않도록 재훈련하는 방식이다. - 음식 알레르기 환자는 모두 자신의 안전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한다는 기분으로 살아간다. 『면역 체계』 (헨드리크 슈트레크, 사람의 집, 2023년 10월) - 선진국에서는 위생 수준이 높기 때문에 사람들이 알레르기 유발 물질과 접촉할 기회가 많지 않다. 따라서 우리 인체는 다양한 알레르기 유발 물질에 적응하고 단련할 기회를 잡지 못한다. - 알레르기를 막는 최선의 방법은 알레르기 유발 항원을 피하는 것이다. 알레르기 항원에 자주 노출될수록 면역 반응이 더더욱 강해진다는 사실은 이제 모두가 안다. - 알레르기 유발 항원을 피할 수 없다면 유일한 해결책은 주로 약물이다. 그러나 약물은 항원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증상을 억제할 뿐이다. - 대부분의 알레르기 환자는 알레르기로부터 영원히 해방되고 싶어 하기에 면역 치료를 요 청할 때가 많다. 환자에게 원인 항원을 소량 투여함으로써 그것에 길들여지게 하는 요법이다. 이는 종종 수년이 걸리는 기나긴 치료다. 게다가 결과는 상이하다. 『알레르기의 시대』 (테리사 맥페일, 상상스퀘어, 2024년 4월) -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생물의학으로 심한 증상을 완화하지 못했을 때 다른 영역에서 도움을 구하는 이유를 이해한다. 치료란 과학만큼이나 희망이나 믿음과도 관련이 있다. 실제로 위약효과도 있다. - 한약이나 동종요법, 침술은 실제로 도움이 되는 방법이다. 실제로 현재 뉴욕 마운트시나이병원 같은 곳에서는 이러한 방법에 대해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내가 만난 많은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최선의 접근방식은‘통합치료’즉 알레르기 환자를 치료할 다양한 방법과 치료를 조합해 사용하는 것이다. - 인도 찬디가르의학대학원연구소에서 일하는 미누 싱은 무엇보다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가장 좋은 약이라고 주장하며 말했다.“환자들은 자신의 증상을 털어놓으면서 기분이 나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환자의 말을 제대로 들을 필요가 있어요.” - 이러한 방식은 결국 알레르기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안 치료가 될 수 있다. 시간을 내어 환자의 말을 경청하고 환자가 겪어온 생생한 질환 경험을 듣는 것이다. 애초에 보완요법 의사들과 치료사들이 사람들을 끄는 것도 이런 방식일 것이다. - 다른 모든 만성질환과 마찬가지로 알레르기는 상당히 거대한 시장이다. 역사가 마크 잭슨의 말을 인용하자면“새천년에 들어 알레르기는 곧 돈을 의미한다.” 『불완전한 인간』 (마리아 마르티논 토레스, 현암사, 2024년 7월) - 인구의 최대 25퍼센트가 알레르기로 고통을 겪는다. - 우리 몸이 어떤 물질에 대해 해롭다고 인식하지 말아야 할 것까지 해롭다고 여기는 과도한 방어의 결과다. 그래서 때로는 치료가 질병보다 위험해 보인다. - 알레르기 증상에는 눈물, 콧물, 기침, 재채기, 구토, 설사 및 반응 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긁도록 유도하는 가려움 등 다양한 배출 전략이 있다. - 공격을 완화하려다가 몸이 붕괴하는 것과 같은 아나필락시스 쇼크를 유발할 수도 있다. - 산업사회에서는 가공식품의 화합물이나 방부제가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어떤 것이 알레르기를 유발하는지 식별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우리가 아는 건 면역 체계가 교차 효과와 중복 메커니즘을 가진 매우 복잡한 장치라는 사실 뿐이다. -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 하나의 생태계다. 그리고 각각의 숲은 시골이든 도시든 자신이 처한 환경과 생물학적, 화학적, 정서적 대화를 나눈다. 5년 주기로 찾아왔던 대한민국 정치의 큰 바람이 느닷없이(?) 3년만에 다시 불기 시작한다. “정치 성향 다른 사람과 연애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스타들을 향한 인터뷰에도 등장하는 걸 보면 정치 이슈는 자주 뜨겁고 늘 민감하다. 대학교 졸업반이 된 아들녀석과 정치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이다. 어느 후보에 대해서든 개인적 사감을 서로 여과 없이 쏟아내다가 대화가 열띤 논쟁을 넘어 밤샘 수다로 이어지기도 한다. 너가 판단해서 알아서 잘 투표하겠지만 너가 기어이 그 후보에게 투표를 하고 만다면 상당히 실망할 것 같다는 식의 협박이 절반쯤 담긴 문장을 이어나가려던 바로 그 때 “어머니! 스피커를 보지 마시고 스피치를 보세요. 공약을 보시라고요!!”라고 아들이 맞받아친다. “내 말이 바로 그거야. 스피치를 읽다가 스피커에 현혹되고 마는 게 너네 세대의 한계라는 거지. 스피치에 가려진 스피커의 본질을 파악해야 해. 공약도 중요하긴 해. 그래도 그 전에 그 후보의 과거 발언, 총체적 인성 그리고 미래의 실현 가능성까지 총체적으로 따져야지” “어머니가 지지하는 그 후보도 인성 논란 많잖아요.” “그건 과장된 거고, 왜곡도 많아. 언론은 늘 기울어진 운동장이었고, 너도 알잖아. 기레기! 오죽하면 기자들을 그렇게 부르겠냐?” 귀가해서는 모든 민감함을 내려놓고 둔감함으로 평화모드를 유지했었어야 했는데 아들이라고 만만하게 보고 대화를 시작했다가 본전도 못 건졌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게임에 몰입 중인 이대남 MZ 아들의 등 뒤를 지나가며 ‘구스프라바(goosfraba)’ ‘구스프라바(goosfraba)’ 화를 삭이는 데 효험이 있다는 에스키모인들의 주문을 나지막이 중얼거려본다. 민감한 알레르기 환자들, 세심한 애정 갖고 접근해야 사람들은 동글동글한 원 안에 자기를 가두고 여러 개의 뾰족 센서를 요령껏 숨기며 살아가는 것 같다. 잘 굴어가던 튼튼한 원통이 턱에 걸려 넘어지거나 높은 곳에 오르다가 뒤로 나동그라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여지없이 원 밖으로 그 뾰족함이 뚫고 나오게 되어 있고 그동안 잘 감춰져 있던 예민함은 금세 주변 사람들에게 들통나기 마련이다. 생각해보면 정서적 민감성은 가끔 포장도 가능하지만 질환에서 오는 민감성은 위장이 불가능하다. 다양한 만성 질환으로 인하여 예민해진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해 주어야 하는데 한의사로서 임상을 해오며 가장 대하기 어려운 환자군이 바로 이 날카로움에 예리함까지 갖춘 사람들이었다. 피하려고도 했었고 선제적으로 세심한 애정을 쏟아보려고도 했지만 힘들었다. 그래서, 민감함의 끝판왕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알레르기 질환을 진료하는 의료진들은 무조건 절대적으로 리스펙! 리스펙! 나이에 따른 마음의 평수가 한없이 여유로워져서 그분들의 호소를 더 잘 경청하고 그 안에 담긴 세밀한 요청을 흔쾌히 들어줄 수 있는 날이 내게도 오길 바란다. 지난 5월 15일, 스승의 날을 그냥 넘길 수 없어서 고등학교 은사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70세 생일을 자축하러 일주일 일정으로 국내 자전거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막 복귀하셨다는 기쁜 소식을 들려주신다. 한 때 ‘마녀’라는 별명이 있으셨던 까칠 그 자체의 선생님의 지금 별명은 ‘선녀’시다. 50세에 시작하신 세계 여행과 그 여행을 통한 성찰, 다음 여행을 위한 공부는 선생님의 삶을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안내했다고 고백하셨다. 오지여행가이자 여행작가로서의 제2의 삶을 즐기고 계신 선생님을 뵈러 여행짐을 꾸려본다. 여행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 따로 있으랴?! 짐을 꾸리고 있는 바로 오늘이 그 날이다. -
신미숙 여의도 책방-63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편집자주] 『신미숙의 여의도 책방』은 각 회마다 1개의 키워드에 5권의 도서를 추천하는 형식으로 이어갑니다. 대학교 신입생이었던 열아홉의 나는 유독 볼빨간 아이였다. 볼터치를 한 듯한 이쁜 홍조가 아닌 무안함이나 당황한 상황에서의 난처함을 겪고 있을 때의 바로 그 불타오르는 듯한 홍조로 설명하면 상상이 되려나? 갑자기 추운 데에서 난방이 넉넉한 실내로 들어섰을 때, 혹은 그 반대의 온도 변화를 만나는 경우에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열감으로 얼굴이 달아오르곤 했다. 이 열감이 ‘제어불능’이라는 확신으로 넘어가면 얼굴은 그 때부터 더욱 본격적으로 새빨개지는 수순을 밟는 것이다. 선배 한 명이 “야, 신미숙! 너 오늘 니네 아부지한테 뺨맞고 왔냐?”라고 놀렸던 날도 생각난다. 이미 붉어있던 얼굴은 이번에는 정말 빨강의 정도를 묘사하기 어려워질 정도로 달아올라 화장실로 도망가서 찬물로 열을 식히려 세수를 해보았지만 소용 없었다. 그 날 나는 타오르는 얼굴을 부여잡고 조퇴 아닌 탈출을 감행했다. 안면홍조에 대해서 고민을 하던 차에 선배들을 따라 의료봉사를 가서 만난 여자한의사 개원의 선생님께 내 증상에 대해 상담을 하게 되었다. “갱년기 여자들의 흔한 증상이죠. 어린 학생에게 이런 증상이 나타났다고 해도 당연히 갱년기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요. 과격하지 않은 운동으로 꾸준히 땀 흘리면서 일단 체중을 좀 감량해 봐요. 열이 발산되면 자연스럽게 얼굴색도 돌아올 거예요.” ‘결국 살을 빼라는 말이구만’이라고 실망하는 듯한 나의 표정을 눈치채셨는지 곧이어 “학년 올라가면서 좀 뻔뻔해지면, 그러니까 제 말은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덜 쓰면 그냥 해결될 고민이예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한약분쟁으로 수업이 거의 없었던 1993∼4년 선생님 조언대로 주중에 2∼3회 등산을 다녔다. 하산길에 꾸준히 마신 막걸리 덕분인지 체중 변화는 거의 없었지만 열은 확실히 가라앉았고 안면홍조라는 고민이 앉아있던 자리에는 또 다른 고민이 피어나고 있었다. 갱년기에 대한 고민…남여 구분 없어 대학교 1∼2학년 시절의 사진첩에는 신입생 시절의 안면홍조, 새내기로 선배들의 귀여움을 받을 새도 없이 시작되었던 한약분쟁 그리고 『포레스트 검프』(1994년) 영화포스터가 끼워져 있다. 특정 시기를 추억하기에 영화나 드라마만큼 강력한 것이 또 있을까? 문화의 힘은 생각보다 질기고 강하다. 수십년 후 2025년의 봄은 어쩌면 넷플릭스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로 기억될 지도 모른다. “나쁜 년, 지 엄마 갱년기인 줄 몰라주고.. 아! 왜 이렇게 승질이 나?! 아! 호르몬인지 나발인지 진짜 잡아다 족 쳐버리고 싶네.” 친정집을 방문했다가 엄마와 한바탕 언쟁을 벌인 후 딸 금명이 사라지자 엄마 애순이 내뱉은 대사이다. 뒤이어 냉장고에는 금명의 임신을 알리는 산부인과 초음파 사진과 함께 “근데 나도 다 호르몬 때문이야. 쏘리. 고멘. 미안”이라는 쪽지가 보인다. “호르몬 대 호르몬이 붙었고 엄마는 또 졌다”라는 딸 역할을 맡은 아이유의 잔잔한 나레이션으로 이 장면은 끝이 난다. 이전 다른 드라마에서 “사빠죄아”를 외치던 불륜남 배우가 세상 물정 모르는 지고지순한 국민아빠 관식으로 변신하여 전세계 아버지들을 울리고 있다. “나도 갱년기가 온 건가?” 싶은 의심을 눌러가며 드라마를 보는 내내 눈물을 감추느라 애썼다는 중년 아저씨들의 후기가 쏟아지고 있다. 때마침 지난 4월16일 KBS 1TV 『생로병사의 비밀』에서는 “억울하고 서럽다, 남성 갱년기”를 다루기도 했다. 드라마 보고 울기 시작하면 남자 갱년기, 온 가족들에게 주야장천 잔소리 늘어놓기 시작하면 남자 갱년기, 불러주는 친구들 없어서 뒤늦게 마누라한테 티나게 잘 하기 시작하면 남자 갱년기, 꽃 사진 찍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가 진짜 남자 갱년기 등등 남자 갱년기의 경중을 진단하는 많은 설문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남자의 인생은 갱년기에 뒤바뀐다』(클로드 쇼사르, 마음서재, 2020년 5월) 저자는 남성의학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세계 최초로 La Clinique de Paris를 설립하여 남성 갱년기와 노화예방 분야를 선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나이가 들어갈수록 신체는 더 많이 산화한다. 그렇게 산화가 진행되다 보면 스트레스는 점점 쌓이고 세포의 손상이 일어나 노화가 시작된다. - 밤에 소변을 보러 2번 이상 일어나고 소변 줄기가 약해졌다면 전립선에 이상이 생겼다는 신호다. - 나이가 들어도 건강하고 젊을 때와 다를 바 없이 온전한 신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해결책은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좋은 식생활, 꾸준한 건강관리와 더 나은 소화 관리, 호르몬 요법, 건강보조식품이다. 이 해결책의 목표는 세포, 동맥, 장, 생식샘을 보호하는 것이다. - 요가나 단전호흡 같은 운동 기술을 이용해 긴장을 완화하는 방법을 배우면 좋다. 침술로도 확실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한의사와 같은 전문가의 숙련된 손길로 정수리에 위치한 혈 자리만 자극해도 긴장이 풀린다. 『불 위의 여자』(실라 드 리즈, 은행나무, 2021년 8월) 저자는 30년간의 임상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산부인과 전문의이자 여성 건강의 권위자이다. 폐경과 갱년기를 새롭게 인식하고 이 시기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라고 주문한다. - 폐경이 임박했을 때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 5가지는 열감과 안면홍조, 질 관련 질병, 수면장애, 우울증, 요실금이다. - 심신의학의 범주에는 동종요법, 침술, 동양의학이 포함된다. 이 세 의학체계는 서양 정규의학의 연구방법으로 검증하기가 상당히 힘들다. 특정 증상 하나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몸 전체를 통합적인 치료 대상으로 보는 철학 때문에라도 연구가 힘들다는 특징이 있다. - 갱년기 증상을 침술과 한약으로 개선시켰다는 연구가 있는 반면에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연구도 있다. 사람은 열이면 열 모두 다르게 생겼으므로 침이나 동양의학이 잘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 건강을 지탱해주는 4개의 기둥은 다음과 같다. 식생활, 운동, 휴식과 잠,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 - 갱년기는 이전에 없던 증상이 나타나면서 정신이 번쩍 들고 그동안 믿고 있었던 자기애라는 시스템 안에 어떤 허점이 있었는지 보이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완경선언』(제니퍼 건터, 생각의 힘, 2022년 6월) 저자는 30여년간 임상을 해온 산부인과 전문의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이 책은 2020년 북미폐경학회 미디어상을 수상했다. -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부과된 재생산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완경기 발열감은 몸 속 온도계가 일정하게 작동하지 않아 실제로는 덥지 않은데도‘덥다’는 잘못된 정보를 뇌로 전달하는 데서 일어난다. - 완경기 발열감에 침을 놓는 것 역시 위약대조군과 함께한 임상시험에서 효과가 증명되지 않았다. 침을 맞고 나아졌다고 보고한 사례가 있지만 침이 단지 바늘이 아니라 주의 깊고 세심한 시술자가 함께한다는 변수가 있으며 이러한 느낌이 환자의 기분을 나아지게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 완경이 모든 일의 주범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완경 이후 골다공증이 발생한 여성 중 거의 50%가 골다공증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질환을 갖고 있다. - 완경 치료에 권장되고 있는 중의학 치료법들은 모두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그 치료법이 나쁘다거나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기원에 대해 잘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중의학은 완경을 노화와 다르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완경과 연관이 있다고 간주하는 여러 증상에 대한 특정 치료법이 없었다. - 나는 옛 치료사들이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믿는다. 환자에게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과학적 증거를 요구하는 일이 의학이다. 우리는 여성의 몸이 너무 습하다는 히포크라테스식 사고관을 인정하지 않는다. 『갱년기 교과서』(다카오 미호, 즐거운 상상, 2022년 12월) 저자는 산부인과 전문의이자 요가 닥터이다. 유튜브 채널 ‘다카오 미호의 리얼 보이스’에서‘모든 여성에게 보다 나은 미래를’이라는 주제로 전문 지식을 전달한다. - 갱년기는 지금까지의 인생을 천천히 되돌아보면서 자신의 몸 상태와 인간관계를 확인하는 재고의 시간이다. - 난소 기능이 완전히 멈추는 완경 전후로는 심신에 다양한 불편감이 나타나며 그 종류가 200개 이상이라고 한다. 증상에는 개인차가 있는데, 다양한 증상이 완경을 즈음하며 한꺼번에 밀려든다. - 한방치료는 짜증, 어깨 결림, 피로, 어지럼증, 냉증, 불면 등 다양한 증상을 개선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나의 한방약으로 몇 가지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 이너 유닛(inner unit)은 횡격막, 복횡근, 다열근, 골반저근 등 4개 근육의 총칭으로 체간 중에서도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 일본에서는 산부인과 의사의 무려 97% 이상이 치료에 한약을 사용한다는 데이터가 있을만큼 한방 치료는 HRT(Hormone Replacement Therapy)와 견줄만한 주력 치료법이다. 『호르몬은 어떻게 나를 움직이는가』(막스 니우도르프, 어크로스, 2024년 4월) 저자는 내분비내과 전문의이자 당뇨병 연구자이다. 호르몬이 인간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으며 이 책은 그 결과물 중 하나이다. - 19세기 초에 영국왕실 주치의 헨리 헬퍼드(Henry Halford)가 처음으로 갱년기라는 ‘질병’에 주목했다. 그는 중년 환자들이 종종 한동안 몸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 일본어로는 폐경을 고넨키(更年期)라 부르는데 이것은 ‘새로워진 에너지의 해’라는 뜻이고 태국에로는 ‘토이 포 밍’이라 하는데 이는 ‘황금기’라는 뜻이다. - 장기적인 부작용 때문에 호르몬 치료는 현재 표준치료로 더는 권장되지 않는다. - 어떤 사람은 더 극심한 증상을 겪고, 어떤 사람은 가볍게 넘어 간다. 호르몬 균형이 다시 회복되면 괴로운 증상은 사라진다. 이 과정은 대략 5년이면 끝나지만 불행하게도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 불가피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던 폐경이 대중의 인식 속에서 진료가 필요한 불가피한 질병으로 바뀌었다. - 호르몬은 피부 노화에도 관여한다. 여성에게 오랫동안 남성보다 더 매끈한 젊은 피부를 선사했던 에스트로겐이 폐경 후 아주 갑자기 피부를 저버린다. 뮤지컬 <메노포즈>는 2001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뮤지컬로 갱년기 여성 네 명이 폐경과 관련된 건망증, 수면 중 식은땀, 열성 홍조, 성적 변화, 노화, 탈모, 짜증 등의 온갖 증상을 익살스럽고 코믹하게 호소하는 내용이다. 국내에서도 2005년 초연된 이래 2024년 6월까지도 꾸준히 관객을 만나고 있다. 자주 들르는 동네 사우나 입간판 “누구나 때가 있다”라는 글귀처럼 모든 여성들은 언젠가 때가 되면 폐경과 갱년기를 겪게 된다. 이 뮤지컬을 찾을 법한 연령대의 관객층은 어쩌면 영원히 확보된 셈이다. “가슴은 폴짝폴짝 뛰는가? 원래 콩닥콩닥 아닌가? 폴짝이든 덩실이든 가슴은 가끔 나풀나풀 뛰기도 하는 거 아닌가?” 가슴 뛰는 느낌에 대한 다양한 의태어로 이어가는 즐거운 대화는 드라마 『멜로가 체질』(2019년, 2화)에 나온다. 유독 봄바람에 가슴이 폴짝, 콩닥, 덩실, 나풀대는 이유는 봄이 젊음의 계절이라 그러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봄을 타는 이유도 젊음에 대한 갈증과 지나간 세월에 대한 아쉬움이 유독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봄꽃들과 대비되기 때문이다. 갱년기, 노인기의 어려움 미리 준비하는 절대절명의 기회 갱년기를 아무리 새로운 에너지가 샘솟는 황금기라고 위로해 봤자 노인기로 접어드는 징검다리일 뿐이다. 공부를 하려해도 시력이 도와주지 않고 운동을 새로 배우려고 해도 “자제분 아니시고, 어머님께서 직접 하시게요?”라고 가르치는 곳으로부터 입밴 당할까봐 막상 그 커다란 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덜컥 겁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에서 중년으로, 중년에서 노인으로, 노인에서 고인으로 이행되는 인간의 발달사에 있어서 갱년기는 어찌보면 노인이 되기 직전 마지막으로 뭔가를 시도해볼 수 있는 시기이다. 긴 노인기의 여러 어려움을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절대절명의 기회의 시간이기도 하다. 후쿠호카현의 다카키 마슈(75세) 어르신은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이라는 짧은 시를 남긴 바 있다. 봄바람에 느끼는 설레임과 가슴뜀이 사랑으로 인한 것이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 어느 시기가 되면 루틴을 벗어난 증상은 특정 질병의 전조증상일 수도 있다는 놀라운 교훈이 이 짧은 글귀에 담겨져 있다. 『폭삭 속았수다』 마지막 편에선가 아버지 관식이 대학병원 교수를 만나는 장면에서 애순이 수첩을 들여다보며 묻는다. “뜸이 그렇게 좋다는데, 뜸은 떠도 되는지” 의사는 ‘피식’까지는 아니지만 심란한 표정을 지으며 인터넷에서 떠도는 거 여기와서 다 물을 거냐고 무색을 준다. 드라마를 보면서도 중간중간에 한의학 용어가 등장하면 유독 눈과 귀가 예민해진다. ‘한의대 교수들이었더라면 보다 인간적인 대화와 함께 친절을 베풀었을텐데’라며 애초에 없었던 드라마 장면도 상상해 보았다. “요즘 그냥 다 내려놓고 싶을 정도로 힘들어서요, 아들도 남편도 감당이 안 되고, 이제 나만 위해 살려고요. 죽을 때까지” 폐경을 겪으며 유독 힘들어하는 환자들을 자주 만난다. 19세기 미국 의사 에드워드 트뤼도(Edward L.Trudeau)는 “우리는 가끔 치료하고 자주 도와주고 언제나 위로한다”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오늘도 진료실을 들어서며 “언제나 위로하고 자주 도와주며 가끔 치료한다”는 정신으로 환자분들의 아픈 곳을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나만의 방식으로 조만간 내게도 다가올 갱년기를 즐겁게 극복해보려 한다. -
신미숙 여의도 책방-62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편집자주] 『신미숙의 여의도 책방』은 각 회마다 1개의 키워드에 5권의 도서를 추천하는 형식으로 이어갑니다. 새해 결심상품으로 골프나 테니스 혹은 배드민턴을 시작한 분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초심자의 설렘은 열정 과다로 이어지고 이 초과분은 바로 의도치 않은 부상을 야기한다. 스포츠 손상을 피하며 끝까지 보람과 재미만 느낄 수는 없는 법이다. “이제 막 재미 붙였는데, 어제 경기하다가 삐끗했어요”, “코치가 잘 한다고 칭찬해서 마지막 경기는 안 뛰었어야 했었는데 다친 사람 대타로 경기하다가 제가 더 크게 다쳤지 뭡니까” 응급실로 실려갈 정도의 골절이나 근육파열은 아니지만 급성 손상이라 응급 처치가 필요한 상황을 자주 목격한다. 아이스팩과 사혈처치, 침치료 후 보호대 고정 그리고 주의사항 교육까지가 풀세트로 수행되어야 하는 중요한 시기. 운동에 열심인 사람들은 몸 관리도 잘해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치유 속도도 빠르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호전의 경과를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고 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 운동장으로 복귀하여 국회 내 동아리 팀전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을 나중에라도 전해오면 그 또한 기쁜 일이다. 스포츠한의학회 소속으로 국가대표들을 직접 치료하는 주치의 한의사들의 보람과 자부심은 남다를 것 같다. 선수가 메달을 따면 같이 메달을 딴 동료나 감독의 딱 그 심정으로 주치의도 먼 발치에서 눈물을 글썽이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부상이 잦은 라켓 운동 종사자들은 평소에 스트레칭을 하면 확실히 덜 다치는 걸 알면서도 워밍업과 쿨링다운, 말이 쉽지 그게 참 잘 안 되더라는 말을 자주 한다. 문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운동에 대한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여환 2명 중 1명은 요가, 필라테스, 발레 등의 스트레칭 위주의 운동을 필수적으로 겸하고 있는 것 같다. “필라테스를 주 2회 다니고 있어요”, “점심시간 요가 클래스가 있어서 주 5회 배우는 중입니다”, “체력단련실에 스트레칭 공간이 있어서 일주일에 두세번은 몸 풀러 가요”, “경미한 교통사고가 있었는데 해오던 운동이라 그냥 했어요. 필라테스니까 몸을 더 풀어줄 것 같아서. 그런데 더 아플 수도 있나요?” 등등. 필라테스, 최근 20여년 사이 폭발적으로 성장 2004년 모 백화점의 문화센터에 개설된 ‘요가 필라테스 스트레칭’이라는 강좌가 국내 필라테스 대중화의 첫 걸음이었다. 지난 20여년 사이 국내 필라테스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2023년 통계자료에 의하면 교습소 숫자가 1200개를 훌쩍 넘긴 것으로 알려져 있고 발레나 체육 전공자들 여기에 운동처방사, 물리치료사들까지 다양한 전공자들이 각 분야의 명예(?)를 걸고 필라테스 지도자에 합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산대 한의전 입학생 중에도 요가 지도자 출신이 있었다. 강남 모처에서 요가를 가르치다가 몸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졌고 한의사를 겸한다면 요가를 더 잘 가르칠 수 있을까 해서 입학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자소서를 본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다. 지금은 한의원을 하는지 더 규모있는 요가원을 운영하는지 그녀의 근황은 알 수 없으나 어떤 형태로든 요가 수련은 지속하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위와 같은 성장세를 확인시켜 주듯이 아파트 상가에 거의 필수적으로 서너개는 걸려 있는 간판이 바로 요가와 필라테스이다. 따박따박 월회비를 내어주는 회원 확보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최근 받아본 전단지에는 아예 필라테스 클리닉 혹은 요가 클리닉이라는 상호명에 지도하시는 분이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분으로 최상급 호텔 웰니스 센터에서 연예인들과 프로 운동선수들도 다수 지도했다는 경력도 몇 줄 포함되어 있다. 아울러 예비 회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광고 문구에는 이런 것들도 있었다. “필라테스로 자세를 바꾸면 삶이 바뀝니다”, “자세가 좋아지면 통증이 사라집니다”, “병원 대신 요가원으로 오세요” 등등. 스트레칭만 잘 하면 병원 갈 일 없다는데 이보다 더 달콤한 요가-필라테스샵 광고 문구가 또 있으랴?! 『죽기 전까지 병원 갈 일 없는 스트레칭』 (Jessica Matt hews, 동양북스, 2019년 5월/개정판 2022년 11월) 저자는 요가 지도자로 미국 유력 언론들이 가장 많이 찾는 운동학자이다. 운동법 지도에 몸담아 온 수십년의 경험을 토대로 15개 주요 관절별 동작과 일상활동, 운동, 만성질환, 특정 주제별 스트레칭 분류를 통해 각자의 몸에 맞는 프로그램 구성을 제안하고 있다. - 유연성은 관절을 움직일 수 있는 운동 범위를 말한다. -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한 단축성 수축 상태가 지속되면 유연성이 떨어지고 근육이 약화된다. - 올바른 스트레칭은 근육의 양 끝단을 서로 반대되는 방향으로 늘여 근섬유를 정렬하는 움직임을 말한다. - 누운 자세에서 허벅지 뒤쪽 늘이기는 조깅이나 하이킹을 한 후에 뭉치기 쉬운 햄스트링을 풀어주므로 요통을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다. - 벽에 양손 대고 종아리 늘이기는 하이힐을 신고 걷거나 계단을 오르내릴 때 뭉치기 쉬운 종아리 근육을 풀어주며 발목과 무릎의 통증을 완화시킨다. 『치료적 스트레칭』 (Jane C. Johnson, 대성의학사, 2020년 8월) 저자는 근골격계 질환을 전문으로 하는 공인 물리치료사이자 스포츠 마사지 치료사이다. 수년에 걸쳐 연부조직 이완법(STR;Soft Tissue Release)을 사용하고 교육해 왔으며 다양한 유형의 환자들에게 STR을 적용했고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본서와 더불어 『심부조직 마사지』(2020년 8월)와 『연부조직과 통증유발점 이완법』(2020년 11월)을 출간한 바 있다. - 치료적 스트레칭 동안 일반적으로 환자들은 통증이 없는 범위 내에 있는 운동이나 스트레칭을 수행하는 것이 권장된다. 이것은 재부상의 가능성을 감소시킨다. - 건염은 과도한 사용으로 인해 발생되는 힘줄 질환으로 심한 통증을 동반한다. - 근막의 변성으로 인한 결과로 여겨지는 일반적 질환 두 가지는 족저근막염과 장경인대증후군이다. - 근막 이완은 연부조직의 부드럽고 지속적인 견인력을 수반하며 따라서 특정한 치료 결과를 가져오는 스트레칭의 요소를 구현하기 때문에 치료적 스트레칭의 범주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 MET는 특히 짧아지기 쉬운 자세 유지 근육의 길이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진다. - STR은 부상으로 인해 관절 가동범위에 제한이 있을 때 유용한 스트레칭이다. - 일반적으로 염증으로 오해되는 족저근막염은 발바닥 근막의 미세손상으로 인한 것으로 매우 고통스럽다. - 이상근 증후군은 이상근 근육에 의한 좌골신경 압박에 따른 엉덩이와 하지의 통증에 붙여진 이름이다. 『무릎관절 트레이닝 & 스트레칭』 (TODA Yoshitaka, 랜딩북스, 2023년 6월) 저자는 정형외과 의사이자 의학박사로 개원의로 활동하면서도 수술 없이 변형성 무릎관절증을 치료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으며 방송에서는 ‘무릎평론가’로 활약하고 있다. - 계단을 내려갈 때에 무릎이 아픈 사람은 대퇴사두근과 함께 외전근과 내전근도 단련해야 한다. - 왜 오래 서 있으면 무릎이 아플까? 그것은 장요근이 약해져 있기 때문이다. - 변형성 무릎관절증 환자에게는 발끝을 안쪽으로 향하는 안짱다리 코너 스쿼트를 실시하도록 지도하고 있다. - 필자는 환자들에게 통점 스트레칭으로 아족(거위발;pes anserinus)과 내측측부인대를 눌러 늘리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아족은 무릎 안쪽에 있으며, 뒤에서 앞으로 비스듬히 부채 모양으로 펼쳐진 근육의 집합체로 무릎을 구부리는 기능을 한다. 또 측부인대는 무릎 안쪽에 세로로 뻗은 인대로, 무릎이 좌우로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 바깥쪽이 높은 쐐기 모양의 족저판은 새끼발가락 쪽을 인위적으로 들어올릴 수 있다. 이것이 무릎통증을 완화시켜주는 족저판의 원리이다. 『견고한 유연성으로 변화 스트레스 끄기』 (Brad Stulberg, 프리렉, 2024년 5월) 대학에서 문학, 과학, 예술학, 공중 보건을 공부한 저자는 《포츈》 500대 기업의 경영인, 전문직 종사자, 세계적인 아티스트와 크리에이터, 올림픽 국가 대표들을 코치했다. - 우리는 견고한 유연성(rugged flexibility), 변화를 생각하고 다루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배워야 한다. 견고한 유연성은 우리의 괴로움, 초조, 불안을 경감시키고 깊은 행복감과 지속적인 성취감을 높여준다. - 견고한 유연성의 첫 번째 핵심 자질은 삶의 흐름에 마음을 여는 것이다. - 고통은 통증과 같은 게 아니다. 고통은 통증 곱하기 저항이다. - 고통을 없애려는 모든 노력이 실패로 끝난 후, 최후의 시도로 전 세계 사람들이 미네소타주 로체스터(메이요클리닉의 세계적인 통증재활센터)로 모여든다. 프로그램의 궁극적인 목표는 환자들의 통증을 없앤다기보다는 통증을 없애려는 환자들의 불가항력적 욕구를 없애는 것이다. - 통증에 대한 기대치를 새롭게 하고 어느 정도의 고통은 괜찮다는 사실을 받아들여 저항을 줄이는 법을 배우는 것으로 끝난다. 핵심 과제는 환자가 불편함을 과대평가하길 멈추고 참여할 수 있는 활동 수를 점차 늘려가는 것이다. 『스트레칭의 과학』 (Leada Malek, 사이언스 북스, 2024년 12월) 저자는 물리치료학 박사이자 스포츠 임상 전문가이다. 스포츠와 무용 전문가를 포함한 다양한 운동 선수들과 함께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인체의 복잡성과 움직임의 의학적 가치를 실천하는 운동을 교육하는 분야에서 활약 중이다. - 스트레칭만으로는 모든 원인에 의한 부상을 예방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 - 정적 스트레칭은 운동 능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동적 스트레칭은 운동능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스트레칭을 하면 신경 변화와 구조 변화가 함께 일어난다. - 스트레칭은 뼈대근육의 신경적, 비신경적 적응을 통해 유연성과 관절 가동 범위를 향상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 스트레칭 같은 운동은 통증 지각을 줄여주며, 만성 통증 질환과 관련된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완화하고 기분을 좋게 해 정신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스트레칭을 하는 동안 근육과 물렁조직이 안정길이 이상으로 늘어나서 몸에 다양한 생리적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 관절 가동성은 골관절염 같은 관절면의 변화와 관절을 감싸는 관절주머니의 변화로 인해 제한될 수 있다. 작년 추석 때 들렀던 상하이가 너무 좋아서 3월 초에 또 비행기를 탔다. 올 연말까지 중국비자 면제 기간이니 최근의 중국을 못 가본 지인들에게 꼭 한 번은 다녀오라고 독려 중이다. 중국에 대한 지나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에도 중국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거나 무관심한 태도에 또 한 번 놀랐다. 아무튼 지난번 여행 때 못 들렀던 곳 위주로 동선을 다시 짜보았고 그렇게 윤봉길기념관이 자리한 홍커우쭈추장역의 루쉰공원에 서둘러 도착한 때는 토요일 오전 8시였다. 그 이른 시간에 공원을 가득 메운 수천명의 중국 노인들을 보게 되었다. 삼삼오오 모여서 태극권과 기체조를 하는 소규모 모임이 수십개였고 그 이른 아침부터 중국의 전통가요를 반주 삼아 사교댄스를 추는 남녀 노인들 역시 숫자를 파악하기 힘들 정도의 다수였으며 패왕별희에서나 보았던 경극공연을 벌이는 무대 아래로 또 대규모 인파가 동그랗게 둘러앉아 떼창을 하는 노인들의 건전한 단체 활동의 현장은 생기, 활기 그리고 열기의 복합체 그 자체였다. 그 모습은 동방명주 정상에서 내려다 본 상하이의 낮풍경이나 와이탄의 야경 저리가라 할 정도의 진정한 볼거리였다. 감동과 놀라움을 동시에 느끼는 순간 떠오른 생각은 ‘한국의 노인들은 어떠한가?’, ‘한국의 노인분들도 이만큼 활동적이고 행복하신가?’ 였다. 몸과 마음의 유연함 필요한 시기… 진정으로 견고한 유연성의 지혜 필요 유연함을 갖추며 나이들기란 보톡스나 필러 없이 자세히 보아야 겨우 보일 정도의 얕은 잔주름만 갖춘 채 노인이 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유연한 중년이 되는 것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10년만에 어렵게 만난 고향친구 입에서 내가 전혀 예상치 않았던 정치 성향에 대한 소회를 들었을 때 적잖이 당황했다. 크랙(crack)인 줄 알았는데 크레바스(crevasse)라는 균열이 그 친구와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음을 깨달아야 했다. 나의 생각이 내가 가진 철학이 나의 신념이 나의 종교관이 나의 정치 성향이 분명히 남들과 다른 부분이 있을 텐데, 그 다름이 남들로부터 배척당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보며 마음 속에 움튼 이 친구에 대한 거부감을 희석시키려고 온갖 다양한 다른 카테고리의 화제를 버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이어 지역과 시간과 정보와 장소의 차이가 우리 둘을 이렇게 다르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다행히 그 친구의 눈을 응시하며 대화를 마무리하고 우리는 평화롭게 헤어졌다. 다음 번 만남을 기약하지는 않았지만 또 한 번의 긴 시간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80대 이상 고령층도 전문가 지도 하에 주 3회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더니 근육량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한 신문 기사들을 자주 접한다. 그 주된 내용으로는 운동하기 적합한 나이란 없다거나 죽을 때까지 키울 수 있는 유일한 장기가 근육이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몸의 유연함을 기르는 일은 어쩌면 마음의 유연함을 유지하는 일보다 쉬울 수도 있다. 시도 자체부터가 옳다. 그리고 절대로 늦은 법이 없다. 때아닌 3월 중순에 다시 한 번 함박눈이 내렸다. 이제 웬만한 이상기후적 현상에 놀라지 않는다. 수년째 겨울같은 봄이 지나간 끝에 곧바로 여름같은 봄이 시작되곤 했으니까. 진료실 책상에 올려둔 페페로미아의 하트모양 잎사귀를 살짝 만져본다. 여리다. 연하다. 부드럽다. 향그럽다. 유연하다. 어찌보면 유연해야 오래 살아 남는다. 유연하게 변화에 잘 적응한 것들만 살아남고 있을지도 모른다. 변화와 발전만을 지속적으로 강요받는 스트레스를 이겨내야 한다. 진정으로 견고한 유연성의 지혜가 필요한 날들이다. -
신미숙 여의도 책방-61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편집자주] 『신미숙의 여의도 책방』은 각 회마다 1개의 키워드에 5권의 도서를 추천하는 형식으로 이어갑니다. 첫눈부터 폭설이더니 지난 주중 내린, 아마도 이번 겨울의 마지막이 분명한 눈까지도 함박눈이다. 셔틀버스 통근자라 눈 따위가 나의 출근에 지장을 줄 리 없다는 안도감 덕분인지 아직 철이 없는 건지 눈만 보면 그저 설렌다. 금세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더렵혀질 것이 뻔해도 목도리 위로 포개어지는 눈을 털어내며 아무도 걷지 않은 눈길을 뽀드득 소리를 내면서 평소 보폭의 반의 반으로 조심스레 걸어보는 일은 어렸을 때의 그것에서 하나도 변하지 않은 흰 아주 흰 마음이다. 그래서 그 날도 이른 아침의 눈길을 만끽하고자 국회 내 한옥이 자리한 사랑재 앞뜰을 걸어보려는 생각으로 돌계단을 막 오르려는데, 얇은 살얼음과 한 쪽 부츠의 닳은 굽의 밑창이 만나 미끄덩! 오른쪽 어깨에 걸친 에코백이 주르륵 흘러내리려는 찰라 어깨를 추켜올려 하체를 버티던 힘을 살짝 상체로 옮기는 순간 slip down! 누가 볼새라 흩어진 짐을 정신 없이 챙겨 산책은 포기, 가장 가까이 보이는 코너를 향해 냅다 뛰어 버렸다. 다행히 다친 데 없고 보행은 이상 무. ‘휴우! 낭만 찾다가 무릎 잃는다. 제발 차분차분 쫌!! 이깟 눈이 뭐라고’했다가도 ‘그래도 이쁘쟎아!’ 속으로만 외쳐본다. 한국, 대표적인 수면부족 국가…수면건강 관심↑ 주중의 피로를 주말에 몰아서 자는 것으로 해결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독 잠이 많은 사람들은 “너는 겨울잠도 자냐?”는 질문을 받아본 적 있을 것이다. 기온이 떨어져서 먹이를 구하기 힘들고 체온 조절이 힘들기 때문에 움직임을 최대한 줄여서 에너지를 아끼기 위한 생명활동이 동물들의 겨울잠이라고 할 때, 사람의 겨울잠에 가까운 긴 잠은 가족 봉사를 위한 주말 외출을 피하고자 선택한 필사적인 몸부림이 습관으로 굳어진 것일 수도 있고 그냥 잠을 좋아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잠을 좋아한다고 바로 잠들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많은 통증 환자들이 증상을 호소하며 자주 하는 대사는 “밤새 한 숨도 못 잤어요. 아파서”이다. 물론 한 숨도 못 잤다는 표현에는 과장이 섞여있겠지만 통증으로 정상적인 숙면이 불가능했다는 의미이다. 치료를 해 가면서 두 번째, 세 번째 방문을 했을 때는 “어제는 좀 더 주무셨어요?” 혹은 “통증으로 잠을 설치지는 않으셨어요?”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환자들로부터 “간만에 푹 잤어요. 진통제 안 먹고 중간에 안 깨고 아침까지 푹 잘 잔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덕분입니다”라는 반응을 들었을 때가 가장 기쁘다. 낮에는 업무로 인해 통증을 잘 모르고 넘기다가 정작 밤이 되면 몸이 통증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편하게 자야지하고 누웠는데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아프더라는 사람들이 많다. 통증 때문에 잠을 설쳤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숙면을 못 해서 통증을 더 느끼게 되기도 한다. 잘 자야 통증도 개선된다는 뜻이다. 야간통의 개선은 그래서 여러 의미를 지닌다. 수면 시장 보고서(2024년, https://www.giikorea.co.krP)에 따르면 국내 수면장애 환자 수는 2018년 86만명에서부터 2022년 110만명으로 연평균 6.5% 증가하는 추세이고, 이에 따른 수면제 시장 규모 또한 2023년부터 2032년까지 연평균 6.8% 이상의 성장세가 예상된다고 한다. 야근과 과로가 필수인 ‘피로사회’로 정의되는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수면부족 국가이다. 슬립테크(Sleep+Technology)라는 용어는 혁신기술을 바탕으로 수면 문제를 해결하는 분야로 전통적인 매트리스, 베개, 조명을 포함하여 수면상태 모니터링 제품이나 수면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다양한 웰니스 기기가 여기에 해당된다. 지금까지 안 해본 치료가 없다는 환자들은 기존의 의약을 포함하여 이제는 새로운 테크에 기꺼이 몸을 맡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면이라는 증상이 가지는 묵직한 정의는 크게 변한 게 없다. 최근 하지불안증후군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자주 접한다. 증상의 애매모호한 시작과 아주 미미한 호전 그러다가 이유없는 갑작스런 악화 그리고 그 끝에는 늘 수면장애가 있었다. 『잠 못 드는 고통에 관하여』 (Richard Murray Vaughan, 루아크, 2017년 1월) 저자 RM 본(1965년 3월∼2020년 10월)은 작가이자 예술평론가다. 40년간 불면증을 겪으며 불면 환자들이 처한 외롭고 척박한 치료 과정을 기록했다. 다분히 주관적이지만 비평가로서의 날카로움을 잃지 않은 채 불면의 문화를 파헤친다. - 의사의 진찰과 온갖 자기 치유 방법을 시도한 지 일 년이 다 되어갈 무렵 나는 아픈 사람들이 찾는 최후의 피난처, 곧 인터넷으로 관심을 돌렸다. 사이트에는 기막히게 상반되는 정보가 가득했다. -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나 하나만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이 내게는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는다. - 불면증은 사람을 들볶는다. 불면증은 부글부글 끓는다. 잠재된 분노가 치솟으며 들썩인다. 불면의 문화에는 화가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다. - 불면증 환자는 진짜 자기애에 빠질 수 없다. 왜냐하면 늘 자신과 싸우기 때문이다. - 불면의 문화에서 더욱 무서운 측면은 처방의약의 본질적 내성과 자기치료의 남용이다. 이렇게 내성이 생기면 더 강한 새로운 약을 찾거나, 이제는 효력이 떨어진 예전 약을 더 많이 먹어야 한다. - 광범위한 대중건강 문제를 중독성 있는 약물로 해결하려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해법은 그로 인한 중독을 키우고 산업화한다. 『하버드 불면증 수업』 (Gregg D. Jacobs, 도서출판 예문, 2019년 7월) 저자는 하버드 의대 및 메사추세츠 의대에서 30년 이상 종사한 수면 전문의이다. 불면증을 위한 인지행동 요법의 주요 개발자 중 한 사람이며, 수면제의 부작용과 위험에 관한 권위자이다. - 불면증은 마음과 몸, 그리고 건강 사이의 연관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연결고리이다. - 현대 의학은 아직 불면증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법을 개발하지 못했다. 수면제는 만성 불면증 치료에 안전하거나 적합한 방법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잠을 잘 수 있다는 장점보다 훨씬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 내가 불면증에 대해 가장 크게 걱정하는 것이 있다. 불면증을 정신질환이라고 간주하면 불면증과 연관된 낙인을 더욱 명확하게 만들고 환자의 자존감과 자신감을 저해할 뿐이다. - 의사들은 수면제를 가장 효과적인 불면증 치료법이라고 생각하여 처방을 남발하는 경향이 여전하다. 또한 수면제 처방 건수는 줄었지만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되는 수면 보조제의 사용은 급격하게 증가했다. - 5시간 30분의 수면, 즉 일부 수면 연구가들이 코어 수면(core sleep)이라고 부르는 수면만 취하면 주간 기능은 크게 저하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하다. 단지 부족한 수면 때문에 불안할 뿐이다. - 수면제는 실제로는 수면을 개선하지 못할 수 있다. 오히려 기억상실 효과를 일으켜서 사람들은 잠에서 깨도 이를 기억하지 못한다. 정기적으로 수면제를 복용한다면, 이는 밝혀지지 않은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불면증을 위한 마음챙김 기반 치료』 (Jason C. Ong, 학지사, 2020년 10월) 저자는 심리학 전공자로 행동수면의학 훈련 프로그램의 책임자로서 마음챙김에 기반한 불면증 치료(Mindfulness-Based Therapy for Insomnia; MBTI)에 대한 효용을 전달한다. - 침술과 마사지는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되는 가장 흔한 신체 관련 치료이다. 불면증을 위한 침술 치료에 대한 연구들은 상당한 문제가 있었고 연구의 질이 낮았다. 그러므로 불면증을 위한 침술 치료는 다소 촉망되는 치료 대안이지만 아직 효능성과 안전에 관한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 - 불면증을 위해 가장 가능성이 있는 마음-신체 개입은 명상일 것이다. 명상은 불면증과 관련이 깊은 각성 수준을 감소하는 개념적 모델에 적합하다. - 급성 수면 교란에서 만성 불면증으로 전환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면장애가 어떻게 유발되고 지속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 마음챙김은 내담자가 약물에 의존할 필요성을 없애고, 밤에 약을 먹고 잠을 자야 할지 결정해야 할 때 형성된 불안에 매우 도움이 될 수 있다. 『나의 친애하는 불면증』 (Marina Benjamin, 마시멜로, 2022년 4월) 저자는 논픽션 작가로 이 책은 잠 못 드는 시간에 찾아오는 감정과 생각을 섬세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기록한 에세이다. - 불면증은 여행처럼 자신이 뿌리내렸던 곳과 이별하는 경험이다. - 불면증에 사로잡히면 나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 죽음과 잠은 서로에 대한 은유이자 암시일 수 있다. - 불면증 환자들의 집합은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집단이지만 대부분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그 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전염병 수준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사람의 신체가 호흡이나 소화, 호르몬 생성과 같이 당연히 수행해야 할 자신의 임무를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 수면제는 눈뜬 채 지새는 시간을 기억에서 지워버려 기억상실증을 유도하고 가짜 수면을 생산한다. 수면제는 불면증을 치료하지 못한다. 다만 증상을 억제할 뿐이다. - 현대 사회가 불면증을 치료하는 방법은 수면 제한이다. 불면증 환자에게 잠을 자지 못하게 하다니, 고문이 따로 없다. 『잠이 고장난 사람들』 (Guy Leschziner, 시공사, 2023년 8월) 저자는 수면전문의이자 신경의학자이다. 그가 출연했던 BBC 라디오 시리즈물 <Mysteries of Sleep>을 토대로 탄생한 책이다. - 잠자다 생기는 일련의 행동은 깬 동안에 나타나는 인간 행동의 스펙트럼을 반영한다. - 누구나 경험하듯 잠은 생물학적, 사회적, 환경적, 심리적 요인이 모이는 절대적 합류점이다. - 누군가의 잠을 정확히 평가하기 위해서는 삶 속 요소를 모두 이해해야 한다. - 실제로 불면증을 겪는 이 중 절반은 정신질환 진단을 받는다. - 불면증과 심리적, 정신과적 문제 간의 관계는 엄청나게 복잡하다. - 우리의 과학은 이 방면에선 아직 유아기 단계다. 즉, 잠과 정신 건강 사이의 복잡한 관계, 그 밑바탕에 깔린 원리를 아직 완벽히 설명하지 못한다. - 불면증 약물요법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수면제, 특히 벤조디아제핀과 그 관련 약물이 훗날 치매를 일으킬 위험을 높인다는 증거가 점점 쌓인가는 것이다. - 불면증은 알츠하이머의 원인이 아니라 극초기 단계 알츠하이머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 수면인지행동요법은 불면증의 최우선적 치료법으로 추천되며, 약물요법은 단기 혹은 중기로 병행되는 수준이다. 오래 먹은 수면제를 끊을 때도 수면인지행동요법이 유용하다. 12·3 이후 ‘내란성 불면증’이라는 용어가 유행 중이다. 일반적인 알람 문자에도 또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싶어서 시간을 가리지 않고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다시 잠들기가 어렵다는 게 공통적인 증상이다. 불면과 불안은 동전의 앞뒤처럼 한몸으로 움직인다. 불면증의 약물치료 부작용이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한의학은 많은 선택지 중에 한두 번 시도해 볼만한 정도의 딱 그 정도의 대안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한의학연 “침 치료, 수면장애 완화 원리 밝혀”, 2022.11.23.). 생약 성분이라 안전하다는 각종 수면 유도제 광고를 여기저기에서 자연스럽게 자주 접하게 된다. 한방신경정신과 전문의 그룹임을 강조하는 프랜차이즈 한의원 홈페이지에서 그들이 제시하는 불면에 대한 한의학적 치료 매뉴얼을 읽어본다. 현대의학적 치료 대비 경쟁력과 건강보험 안에서의 보장성은 다소 부족해도 환자들이 느끼는 안락감과 만족도는 높아 보여서 다행이다. 한의약적 수면장애 접근, 환자들의 안락감·만족도 높아 하루 두세갑 담배를 피우시고도 본인은 팔십 평생 감기 한 번 걸린 적 없다고 하시며 당신 건강에 자신감이 대단하신 전직 국회의원이자 현직 모 정당 고문이신 분이 요통으로 가끔 내원하신다. 원래도 짱짱하던 어르신이셨는데 지난 가을부터 댁 근처 공원에 조성된 황톳길에서 하루 삼십여분 맨발걷기를 하시면서 이젠 선잠도 물러가고 대신 숙면을 취하신다는 말씀을 건네신다. 숲길의 진정 효과인지 맨발의 지압 효과인지 황토의 성분 효과인지는 몰라도 결국에는 다 도움이 되었으니 이렇게 잘 자는 것 아니겠냐며, 전국 지자체가 이런 공원 많이 만들어 놓아서 결국에는 병원비를 아껴주는 셈이니 이런 게 진짜 복지라는 말씀도 보태신다. 21년간 폐선이었던 대곡역에서 의정부역(대곡-원릉-일영-장흥-송추-의정부)을 잇는 교외선이 2025년 1월11일 다시 개통되었다. BTS가 『봄날』 뮤비를 촬영한 곳으로 알려진 일영역이 바로 이 노선에 자리한다. 멈췄던 기차가 달리고 얼었던 마음이 훈훈해지는 봄날이 지척이다. 생각해보니 이번 겨울, 내란성 불면과 그로 인한 장기적 불안으로 어깨는 잔뜩 웅크린 채로 심장은 자꾸 먹먹해지는 상태로 힘들게 버텼다. 네 번째 함박눈이 서서히 그쳐가던 지난주부터 얼굴을 때리던 겨울바람도 이내 잦아들고 있다. 잠 못 드는 밤 창 밖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낭만적이다. 그 낭만을 다시 맛보려면 일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계절이 바뀌면 대기도 변하고 그에 따라 우리 몸도 변신을 꿈꿀 것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이 길목이 그래서 가장 극적이다. 특히 2025년의 봄은 그 어느 해보다도 드라마틱한 장면을 많이 목격하게 될 것 같다. 과연 그 드라마의 장르는?
많이본뉴스
많이 본 뉴스
- 1 “강우규 의사의 정신과 사상, 온 국민에게 전달되길”
- 2 지자체 통합돌봄 성과 확인…우수 사례 전국 확산 본격화
- 3 “한의사 공보의 덕택에 초기 뇌졸중 진단받았어요∼”
- 4 경북한의사회, ‘해독’ 특강으로 임상역량 강화
- 5 가천대 길한방병원, ‘전인 케어·통합암치료 결합 호스피스’ 본격 시동
- 6 “학회의 새로운 도약위해 3대 비전 실현에 최선”
- 7 의료에서의 AI 기술 적용…현 상황과 앞으로의 과제 논의
- 8 대한민국 청소년, 아침 거르고 스마트폰 사용 늘어
- 9 광주광역시한의사회, ‘2025년도 제5회 임시이사회’ 개최
- 10 약물임상·검진·정신건강까지 성별 특성 반영한 ‘여성건강 4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