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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you know K-medi?김은혜 가천대 한의과대학 조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지난 10월 27일, 미국 보스턴에서 대한암한의학회가 국제통합암학회(Society for Integrative Oncology, SIO) 역사상 최초로 한의학을 주제로 단독 워크샵을 진행했다. 하버드 의과대학과 Dana-Farber Cancer Institure가 공동 주최한 이번 학회는 하버드 의과대학 캠퍼스의 Joseph B. Martin Conference Center에서 열렸으며, 대한암한의학회 학회장이신 유화승 교수님(대전대 한의대)을 포함해 7인의 학회 임원이 발표했다. 발표 주제는 ‘Evidence-Based Guidelines for Korean Medicine in Cancer-related Symptom Management’로, 「암관련 증상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내용에 기반해 증상 1개씩을 담당하여 암 관련 증상에 한의치료의 역할 및 유효성을 발표하는 형식이었다. 그 중에 나는 식욕부진 및 항암화학요법 유발 오심구토 증상에 대한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의 내용과 한의치료의 유효성에 대해 강의했다. TCM과 TKM은 분명히 다르다 워크샵이 성황리에 마무리되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준비하는 동안 긴장을 정말 많이 했다. 15시간 동안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졸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영어 대본을 중얼중얼 외워볼 정도로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간만에 많이 받았다. ‘역사상 최초’, ‘한의학’을 주제로, ‘단독’ 워크샵을, 대한암한의학회가 ‘유일’하게 주관한다는 사실이, 지나고 나서는 감격스럽지만, 그전까지는 어깨를 참 무겁게 만들었다. 매번 하던 발표고, 영어야 외우면 되는 건데 무엇이 그렇게 중압감을 느끼게 만들었나 돌이켜 보면, 결국 한 가지였다. ‘미국 사람에게 한의학의 정체성을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가.’ 실제로 워크샵의 말미에 시행했던 질의응답 시간에도 오가는 대화 끝에 이런 멘트가 나오기도 했다. “오늘 발표 내용이 국제통합암학회에 몸담고 계신 분들에게는 TCM(traditional Chinese medicine, 중의학)과 유사하다고 받아들이실 것 같다. 하지만 TCM과 TKM(traditional Korean medicine, 한의학)은 분명히 다르다.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TKM에 맞춤화된 내용을 준비해보겠다.” 암환자 관리의 mainstream으로 충분히 사용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TCM과 TKM의 차이는 사상체질의학의 유무에 기반된다고 배웠었다. 하지만 임상을 해보고, 체계적 문헌고찰 논문을 작성하기 위해 수만 편의 TCM 논문을 읽어보며 느낀 것은 오로지 체질만이 두 의학을 구분하는 기점은 아니라는 점이다. 치료 도구도 동일하고,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TKM 뿌리의 일부가 TCM의 한 편에 발을 걸치고 있는 것은 맞겠으나, 치료 도구를 실제 환자에게 적용하기까지 진료적 서사성은 다르다는 사실을 느꼈다. 하지만 문제는 나조차도 그래서 정확하게 무엇이 다르냐고 물어보면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금도 TCM 논문을 읽다 보면 TKM과 같은 치료 도구로 내게 익숙한 환자를 치료함에도, 정작 논문의 내용을 읽다 보면 머릿속에서 느낌표와 물음표를 마구 떠올리게 하는 흐름들이 많다. 단순히 ‘학문의 변화 과정에서 문화적·환경적 요인이 다르기 때문에 성질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라는 모호한 내용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차별점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워크샵을 마치고 나서야 이 고민을 하게 된 계기는 아마 SIO에서 우리 세션에 참석한 분들이 물어보신 질문의 수준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한약과 양약의 상호 작용(drug interaction)을 어느 정도까지 생각하고 처방하시나요? 특히 암 환자가 항암치료를 하고 있다면요.”, “stomach 36번 혈자리(족삼리)를 위장관계의 제반 증상에 사용하신다는 건 저희랑 같네요. 다만 한국에서는 ST36에 침을 놓을 때 편측을 쓰는 지, 양측을 쓰는 지, 편측을 쓴다면 건측/환측 중에 어디를, 양측이라면 왜 양측을 쓰시나요?”, “방사선치료를 받는 암 환자에게 TKM을 할 때, 방사선 조사 부위에 대해서 별도로 신경을 쓰시며 치료를 하시나요? 아니면 TKM 이론에 따라 systemic(전신적)하게 접근하시나요?”. 그리고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었다. “왜 supportive care(보조적 치료) 위주로만 발표를 준비하셨나요? 이 정도 근거 창출이 되어 있다면, 상황에 따라 암 환자 관리에 있어서 mainstream으로 충분히 사용할 수 있어 보이는데요.” TKM을 한 단계 도약해서 바라봐야 할 때 암 환자를 오래 보신 교수님들 사이에서도 논의가 이뤄질 법한 상상을 초월한 수준의 질문을 받고 있으니, 새삼 이제는 우리 또한 TKM을 한 단계 도약해서 바라봐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TKM에 이렇게 많은 근거가 있다고는 생각도 못 했고 임상에서도 그 근거를 고려하며 환자를 진료하시는 것에 굉장히 놀랐습니다. 아, 그리고 K-pop 데몬 헌터스 잘 봤습니다.”라고 웃으며 말하는 프랑스인 의사에게 ‘K-medi가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도록, 우리의 진료와 연구 방향성을 다 같이 정립해야 할 때가 곧 도래할 것이라 생각한다. “Do you know K-pop?”라는 질문에 “Yes. I know Demon Hunters/BTS/Blackpink.”라는 대답이 당연히 돌아오듯, “Do you know K-medi?”라는 질문에도 언젠가는 당연한 대답이 돌아올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
호스피스·완화의료는 cure인가 care인가?김은혜 가천대 한의과대학 조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내용에 앞서 ‘의료는 cure와 care로 나뉜다고 생각한다.’의 문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며 시작하고 싶다. 두 번째 질문도 있다. ‘cure와 care 모두 치료이다.’의 문장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 드는가? cure와 care에 대한 각자의 상이한 정의가 대답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cure는 완치 또는 질병의 소실일 것이고, care는 질병의 관리로 해석될 것이다. 오랜 시간 임상 현장에 몸을 담고 있다 보면 이 두 문장에 의문이 들 수 있다. ‘관리를, 의료 행위라고 생각한다고?’ 더 나아가면 보다 근본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의료인이라면 질병의 소실을 목표로 치료를 행해야 진정한 의료 행위지.’ 의미 없는 치료라고 말할 수 없는 것 이야기를 잠시 미뤄두고, 몇 가지의 예시 상황을 말해보려고 한다.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으나 한국에서 췌장암이 확인된 약 2만 명의 환자 중 80%가 수술이 불가능한 3기 또는 4기로 진단된다. 통계에 따르면 항암치료를 받지 않는 3기 췌장암 환자의 중앙 생존기간은 약 1년이며, 4기 췌장암 환자의 생존기간은 약 6개월이다. 항암치료를 받게 되면 3기 췌장암 환자는 2년으로, 4기 췌장암 환자는 1년으로 생존기간이 늘어나게 된다. 다르게 말하자면, 항암치료를 받은 4기 췌장암 환자의 50%가 1년 내로 임종하신다는 뜻이며, 다시 한 번 바꿔 말하면, 4기 췌장암 환자에게 항암제를 처방하는 의사 역시 이 사실을 알고서도 치료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의사들을 비판할 수 없으며, 이들이 처방하는 항암제를 ‘치료’로 정의하는 것에 반기를 들 수 없다. 같은 맥락으로 이 환자들의 항암치료를 ‘의미 없는 치료’라고 말할 수 없으며, 감히 말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의료인이 감당해야 하는 역할은? 췌장암은 워낙 힘든 암으로 알려져 있음을 감안하고, 다른 암종을 조사해 봐도 비슷한 맥락이다. 표준암치료를 받는 4기 폐암 환자의 중앙 생존기간은 약 1.5년으로 알려져 있다. 4기라고 하면 전신에 이미 암이 다 퍼져있는 중환자의 이미지가 떠올라 1.5년이라는 기간이 크게 이질적으로 안 느껴질 수 있지만, 폐암에서는 그저 폐 양쪽 모두에 암이 확인만 되면 자동적으로 4기로 진단되게 됨을 고려했을 때 4기 폐암 환자의 외형은 건강해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말할 수 있을까? 이들에게 처방되는 항암치료는 ‘진정한’ 의료 행위가 아니라고. 그렇다면 마지막 상황을 살펴보자.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말기 선고와 동시에 6개월 정도의 여명을 들은 4기 췌장암, 4기 폐암 환자가 있다. 환자 스스로 6개월이라는 시간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당연하며, 그 와중에 점점 빠지는 체중과 점점 가빠오는 숨 때문에 좌절감, 두려움, 걱정 등등이 오만가지로 섞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몸도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졌다. 하지만 대학병원에서는 더 이상 표준암치료를 받지 않으니 이전처럼 적극적인 추적관찰은 어려우며 컨디션을 보면서 일단 6개월 뒤에 예약은 잡고 가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환자는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게 될 것이다. “그래, 6개월 남았다 치자. 그럼, 이 6개월 동안은 누가 나를 돌봐주는 거지? 내가 점점 더 밥을 못 먹게 되면? 언젠가 내가 집에 있다가 갑자기 숨이 턱 막히게 되면? 아니, 집에만 있어도 되는 상황이기는 하나? 집에 있는 게 무서워지면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환자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더라도 그것이 의료인이 감당해야 하는 역할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의료인의 책임은 환자가 건강할 수 있도록 의료 행위를 제공하는 것에 있으며, 건강이란 신체적·정신적·사회적 안녕으로 정의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정신적·사회적 안녕에 대한 의료는 누가 담당하게 되는 것일까. “진정한 의료 행위가 아니라면” 말기 암을 포함해서 임종을 앞둔 환자까지 모시는 의료 행위를 호스피스·완화의료라고 정의한다.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이들이 소위 웰다잉(well-dying)을 맞이하실 수 있도록, 직역해서 좋은 죽음을 맞이하실 수 있도록, 잘 돌아가실 수 있도록 행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이 좋고 싫음은 개개인의 사유와 철학에 달려 있기 때문에 감히 그것을 의료인이 의료 행위를 통해 쥐어주겠다고 단언할 수 없다.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신체적·정신적·사회적 안녕감이 이전 대비 나아지도록, 그것이 조금이라도 완화되는 것을 목표로 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을 던지며 글을 마치려 한다. 호스피스·완화의료는 cure인가 care인가. care라면, 이것은 진정한 의료 행위인가 아닌가. 진정한 의료 행위가 아니라면, 임종을 앞둔 환자의 건강은 누가 책임져 줄 것인가. -
“이걸 내가 왜 알아야 하지?”김은혜 가천대 한의과대학 조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본과 학생들 강의를 준비하면서, 내가 졸업한 이후로 많은 것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졸업한 지 수십 년이 지난 것도 아닌데 표준적으로 권고되고 있는 교육의 질과 방향성이 꽤 바뀐 것 같다. 우선 제일 크게 체감되는 것은 단연 진단기기에 대한 관심도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해도 혈액검사에 대한 관심은 가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문제였겠지만…. 그나마 정식 강의가 있었던 엑스레이(방사선과) 수업에서는 재미를 느끼면서도 ‘내가 이걸 알아서 뭐하나. 어차피 쓰지도 못하는데. 이 시간에 변증시치(辨證施治) 공부를 더 해야 국가고시 성적 잘 나오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막을 순 없었다. 물론 당시 방사선과 강의의 성적은 잘 받았지만,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조차 못 느꼈던 과목이라 그런지 기말고사 시험장에서 문 열고 나오는 길에 모든 내용들이 머릿속에서 다 저절로 휘발되었다. 교과서 위주의 이론 강의만 진행한다면? 하지만 요즘은 어떠한가. 본과 첫 강의 때, POCT( point of care testing; 임상현장즉시검사)를 활용한 혈액검사가 한의사에게 수행 권한이 풀린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정식 교육과정에서는 아직 반영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고 “혹시 혈액검사 결과 분석할 줄 알아요? 다른 교수님들이 강의 해주셨나요?”라고 학생들에게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이것이었다. “후배들은 지금 배운다고 하는데 저희는 못 배우고 올라와서요, OOO(학생이름)이 공부해서 저희한테 스터디 해주고 있어요.”, “몇 명에서 공부하고 있는데요?”, “음, 한 10명?” 첫 강의를 앞두고 선배 교수님들로부터 들었던 팁 중 하나가 ‘전체 학생 중 10%만 수업에 집중해 줘도 끌고 나가기 충분하고, 30%가 집중해 주면 그건 대박 난 강의다’라는 웃픈 이야기였는데, 이미 30%를 웃도는 인원이 어떻게든 본인들끼리 모여서 공부하려는 모습에 얼마나 기특했는지 모른다. 본인들끼리 스터디를 한다는 학생들이 한 학기가 지난 지금은, 흡인성폐렴·기흉·심비대 흉부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진단명을 턱턱 맞추고 있다. ‘각 질환에 한의사는 어떤 검사를 할 수 있는가?’라고 물으면, ‘CRP요! 산소포화도 측정! 심근표지자!’라고 대답까지 척척 하는 친구들을 보면 괜스레 감격에 젖곤 한다(추신: 한의사가 흉부 엑스레이 및 혈액검사를 통해 상기 질환을 추정하는 행위는, 추정진단 및 응급 상황 판단에 주목적이 있음). 뿐만 아니라 교육과정 자체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교수의 입장에서 크게 느껴지는 건 CPX(clinical performance examination; 간략하게 풀이하자면, 환자-의사 역할극)과 OSCE(objective structured clinical examination; 간략하게 풀이하자면 술기 능력 평가)이다. 교과서 위주의 이론 강의만 진행하게 되면, 강의라는 지식 전달 체계 특성 상 질환명 중심의 수업이 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만성피로증후군 환자가 비기허(脾氣虛)로 변증되면 육군자탕 처방’과 같은 흐름이다. 의료인 양성에 걸맞은 대학교육의 변화 하지만 막상 임상에 나오게 되면 환자는 “안녕하세요. 저는 만성피로증후군 환자입니다.”하고 오지 않는다. “요즘 너무 피곤해요. 왜 이런 걸까요?”라고 말하며, 질환 명을 말하는 것이 아닌 증상을 말하며 걸어 들어온다. 또한 수년 전까지만 해도 피로(증상)를 말하며 한의의료기관을 찾아온 환자는 “피곤해요. 보약 좀 주세요.”라며 ‘치료’를 물었겠지만, 요즘 환자들은 “왜 이러는 걸까요?”라고 물으며 ‘원인’을 묻고 의사 본인이 말한 원인에 적합한 치료를 전문적으로 끌고 가주길 원한다. 개인적으로 그들이 묻는 원인이 “당신 피로의 원인은 비기허입니다.”라는 대답을 바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한 예로 만약 그 환자의 기저질환에 당뇨가 있는데 최근에 혈당 조절이 안 되고 있어 식후 혈당 수치가 450 가까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것에 ‘비기허’라는 원인을 씌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혹은 만약 그 환자의 혈압이 80/46이 나왔다면, 체온이 38.5가 나왔다면 이 역시도 변증시치라는 철저히 한의학적인 원인을 기반으로 환자에게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론과 임상의 괴리가 있는 상황이 임상 현장에 처음 내던져졌을 때 가장 막막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 수많은 고군분투와 희생의 결과물이자 큰 흐름의 과정으로써, 의학계 대학의 궁극적인 목표인 ‘학교 교육만으로도 임상 현장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의료인을 양성해 내는 것’에 걸맞은 변화가 정착된 것 같다. CPX를 통해 학생들은 내가 환자에게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무엇을 검사하자고 해야 하는지, 또한 나의 물음과 검사가 어떤 책임이 있는지에 대한 인지가 생길 것이다.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교육받는 과정에서 한의학의 ‘망문문절(望聞問切)’ 개념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고, 무엇을 검사하자고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신체진찰의 ‘시진-촉진-타진-청진’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습득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칠판에다가 ‘한의사는 망문문절을 해야 한다. 절진 중 하나인 맥은 많이 짚어봐야 안다.’라는 문장을 적는 교육과는 같은 목적임에도 조금 다른 방향과 결과를 가진다. OSCE를 통해서는 학생들이 면허의 종류를 떠나서 의료인이라면 기본적으로 응당 할 줄 알아야 하는 술기에 대한 인지는 생길 것이다. 더 나은 교육 현장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왕년에 내가 가졌던 ‘이걸 내가 왜 알아야 하지?’라 순수 무지의 궁금증을 가지는 비율이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이 많은 변화들은 결국 현장에서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해온 선배님들의 노고 덕이며, 이제 나는 중간 세대로서 더 잘 만개된 현실을 후배들에게 전달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고작 한 명이 움직여서 뭐를 할 수 있겠냐만, 모든 변화의 시작은 한 명의 움직임에서부터 난다. 좀 더 나은 진료 현장, 좀 더 나은 교육 현장을 만들기 위해, 다른 말로 환자에게 정확한 정보와 신뢰를 줄 수 있는 진료 현장과 교육을 만들어 내기 위해 개인의 노력을 붓고 계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
‘호스피스에서의 희망’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김은혜 가천대 한의과대학 조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현 의료체계가 말기 암 환자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기사에도 공공연하게 보도되고 있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호스피스·완화의료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 단 2개의 의료 직군 중에 한의사가 포함돼 있으나 한의사들을 대상으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은 부재하다. 그렇기에 한의계 내부에서도 수요에 대한 인지가 부족하고, 말한다 한들 막연한 두려움을 먼저 앞세우게 될 뿐이며, 설사 임상 현장에 일단 뛰어든다 한들 한의치료를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은 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방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수가 신설 ‘우리라서 이런 건가? 한의사만이 홀로 감당해야 하는 과제인가?’라는 의문을 붙들고 있던 순간, 교육을 진행하시던 의과대학 교수님께서 연자 소개를 위해 마이크를 잡으셨다. “어때요? 원래 하시던 일과는 좀 다르죠. 다학제 팀 회의도 그렇고, 치료 과정도 그렇고…”. 잠시 말을 멈춘 교수님은 쉽게 읽히지 않는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빛으로 우리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차분히 말씀을 이어갔다. “제가 같은 의사들한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뭔지 알아요? 너 네가 하고 있는 게 ‘치료’ 맞냐, 사람을 살리는 게 치료지. 그건 돌봄일 뿐이라고. 심지어 옛날에는 이 돌봄이라는 행위들을 봉사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봉사하면서 왜 돈을 받으려고 하냐고 공격도 많이 받았고요. 하지만 이 돌봄이야말로 분명한 치료 행위이고, 여기에 대한 수가가 만들어진 것도 사실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 수가 신설하려고 고생하던 시절 생각하면 지금도 아득합니다.” 지난 5월, 동국대 분당한방병원이 입원형 호스피스 전문기관으로 신규 지정됐다. 모든 한방병원 중에서 최초로 보건복지부의 승인을 받은 사례이며, 한·양방을 통틀어 총 103곳의 입원형 호스피스 전문기관 중 단 1개의, 최초의 한의의료기관이 마침내 나온 것이기도 했다.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두 달 뒤, 한방병원의 호스피스·완화의료 수가 체계가 신설됐다. 호스피스 전문기관은 포괄수가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수가의 유무와 수준은 곧 기관의 존속과 직결된다. 더욱 의미 있는 점은 이 수가가 의과 병원급과 동일한 수준으로 책정되었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이렇게 되어야지’라고 생각하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았으며, 이 과정에서 고군분투하셨던 교수님들의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 참으로 감개무량했던 소식이었다. 살 수 있다는 확신만이 희망일까? 그러던 중, 그 수가를 최초로 만드셨다는 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순간 더 깊이 이입될 수밖에 없었다. 이어진 교수님의 말씀 자체 또한 말기 암 환자를 한 번이라도 본 적 있는 의료인이라면 가슴이 뭉클해질 수밖에 없는 내용이기도 했다. “그때부터, 지금도 여전히 저한테 ‘살리는 치료를 하러 와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제가 질문을 하나 드려볼게요. 호스피스는 희망이 없는 곳인가요? 호스피스에 오신 분들은 희망을 버려야만 하나요? 희망이 뭘까요? 반드시 살 수 있다는 확신만이 희망일까요?” 이어진 말들은 환자들의 이야기였다. 3개월 선고는 받았지만, 아들의 결혼식은 꼭 참석하고 싶어 하는 환자의 소원을 끝내 들어주고, 몇몇 의료진들은 결혼식에까지 참석해서 다 같이 눈물을 흘렸던 일. 10대 여자아이가 말기 선고를 받고 왔기에 소원이 뭐냐고 물었더니(미성년자가 호스피스로 오게 되면 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이벤트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었다고 한다) “교황님과 함께 세상이 사랑으로 충만해지길 함께 기도하고 생을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하기에 모두가 합심하여 소원을 들어줬던 일. 죽음만큼은 외롭지 않게 맞고 싶다는 환자의 부탁에, 오랫동안 끊겼던 가족과의 연을 어렵사리 다시 이어주어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한 일. 임종의 끝에 의료진들을 바라보며 ‘그간 고마웠다’라고 인사하고 웃으며 눈을 감으신 많은 분들의 이야기. 의학적으로는 모두 같은 ‘종결’ 상태에 이르렀지만, 그 과정은 결코 사소하거나 의미 없다고 치부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살리는 치료’가 무슨 의미인지는 저도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분들의 치료 과정이나 남은 생의 시간에 희망이 없었다고, 저는 감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꼭 한 번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호스피스에서의 희망’을 무엇이라고 생각할 것인지.” “한의계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존재” 교육이 끝난 뒤, 한 교수님이 조용히 나를 따로 부르셨다. “곧 소식 들릴 거로 알고 있습니다(당시는 동국대 기사가 공식적으로 나기 전이었다). 한의사분이 교육에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강의에 참여하는 걸 처음 보는데, 본인도 어떤 뜻이 있어서 그렇게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한의계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신에, 잘~~해주세요. 잘 해봅시다.” 호스피스·완화의료에서 한의계가 맡을 몫은 이제 시작 단계에 있다. 제도적, 임상적, 이론적, 체계적 모든 면모에서 이제 겨우 걸음을 뗀 수준이다. 그러나 분명히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으며, 반드시 해야만 하는 과제가 있고, 무엇보다도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이 있다. 그 길 위에서, 우리가 우리만의 희망의 정의를 새롭게 써 내려갈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
“말기 암 환자분들이 아프다고 하시면 침 놔주시는 거예요?”김은혜 가천대 한의과대학 조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한의사분들은 말기 암 환자분들이 아프다고 하시면 침 놔주시는 거예요? 마약 못 쓰시지 않으세요?”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시작한 교육에서 처음 들은 인사가 이 질문이었다는 사실이, 이제는 화도 나지 않고 그저 참 슬프게만 다가왔다. 그 슬픔의 첫 번째 이유는, 그 질문을 던진 간호사 선생님의 눈빛이 정말로 순수한 궁금증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육의 최종 마무리에서, 어쩌다보니 내가 주도하게 된 토론 시간에 가장 큰 호응을 보내주신 분이 그 간호사 선생님임을 돌이켜 보면, 처음의 질문은 정말 궁금해서 물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믿고 싶다. “기회의 장 열어줄 제도는 이미 존재” 그러나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든 것은, 그 질문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아직도 우리 세계의 어딘가에서는 마치 침만 맞으면 암으로 인한 통증이 다 사라질 것처럼, 한약 한 제면 암이 다 사라질 것처럼 공연히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 존재하고 있다. 그런 말들이 우리 의료직군 전체를 설명하는 듯 퍼져나갔고, 결국 그것이 한의사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형성해 버리기도 했다. 설사 누군가는 최선을 다해 정확한 진료를 보더라도, 우리가 우리의 면허 안에서 제공할 수 있는 치료 도구는 한약, 침, 뜸 등의 것이다. 결국, “아프다”고 하면 ‘침을 놓는 것’이 우리 고유의 치료 방식이며, 그 말은 아주 꼬아서 보면, 암 때문에 아파서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앙상한 말기 암 환자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침을 놔주는 것뿐인 현실이기도 하다. 역설적이게 우리가 호스피스·완화의료를 개설할 수 있는 단 2개의 의료 직군 중 1개에 해당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생각이 이쯤까지 흐르자, 끝내 나를 제일 슬프게 만든 것은 결국 ‘교육의 부재’였다. 기회의 장을 열어줄 제도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그 제도와 다소 답답한 현실을 연결해 줄 한의사 맞춤형 교육만 있다면 큰 변화가 생길텐데, 왜 아직 우리는 그런 교육을 갖지 못하고 있는가. 국가가 보장하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인력 표준교육조차도 간단하게 인터넷으로 신청만 하면 올 수 있는데, 왜 우리는 드물게 열려있는 제도의 문 앞에서조차 머뭇거리고 있는 걸까. “암 환자에게 침놓는 것 결코 쉽지 않아” 항암치료를 받는 암 환자의 20%가 말기로 진행된다는 점을 생각하면(공식적으로 발표된 수치는 아니며 선행 보고들을 참고함), 암 환자를 진료하는 한의사에게 말기 암 환자를 대면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필연이다. 그리고 임상에서는 그 필연을 꽤 자주 현실 속에서 마주한다. 의과와 협진을 이루며 모르핀, 수액, 영양제 조절부터 시작해서 관(catheter) 관리부터 임종 돌봄, 사망 선고까지, 이 모든 과정에 자연스럽게, 그리고 반드시 관여하게 된다. 특히 관 관리나 사망 선고는 한의사가 법적으로 수행할 수 있으며 일부는 수가 청구도 가능한 영역이다. 365일 24시간 내내 의과가 환자 옆을 지키며 당직을 설 수 없는 현실적인 구조에서, 결국 일부의 역할은 우리에게도 흘러들어온다. 그와 동시에 어쩔 수 없이, 그리고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의과의 처치를 습득하게 된다. 아니, 우리가 습득해야만 너도 살고 나도 살며, 환자도 사는 현실임을 모두가 체감하는 것이 임상 현장이다. 누군가는 ‘어차피 우리가 처방도 못 내는 거. 알아서 뭐 하나’라고 말하겠지만, 그 상황이 닥치면 해내야 하는 게 암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인의 숙명이다. 그 와중에 한의사는 우리 고유의 치료 도구들을 환자에게 안전하면서도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제공할 수 있는 능력 또한 갖추고 있어야 한다. 아무리 NCCN 가이드라인에 “마약성 진통제를 적극적으로 쓰기 어렵거나, 고령의 환자이거나, 약물 반응이 잘 나타나지 않는 암 환자에게는, 침 치료를 고려한다.”라고 전 세계적으로 권유하고 있더라도, 국내의 의료 현장에서 특히나 말기 암 환자에게 침을 놓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한의사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 아무리 해외 저널에서 “마약성 진통제만 투여하는 것보다, 마약성 진통제와 침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진통의 효과와 마약성 진통제의 부작용(주간 졸음)에 더 긍정적인 유효성을 가진다.”고 발표하더라도, 현장은 여전히 간단하지 않다. 그렇기에 “어렵다, 쉽지 않다,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다, 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다”로만 끝낼 것이 아니라 한의사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필요한 이유는 단 하나이다. 한의사의 의료 권한에 포함되어 있는 의료기관이자 환자군이기 때문이다. ※본 원고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인력 표준교육-실무교육에 대한 후기 2번째 편으로, 총 3편에 걸쳐서 연재 예정입니다. -
말기 암 환자의 의학 외적인 돌봄과 실무김은혜 가천대 한의과대학 조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지난 달,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인력 표준교육을 받기 위해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에 다녀왔다. 이 교육은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 의료기관 개설을 위해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법정 필수교육이며, 해당 기관의 개설이 가능한 의료인에게 기본 자격 요건으로 부과된다. 법적으로 한의사가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 의료기관을 개설 가능한 의료인에도 불구하고(한의사 전문의에 한함), 나는 이 교육을 최초로 신청했던 날로부터 약 2년이 흘러서야 마침내 실제로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한의’라는 선택지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진료실에서 한의사라는 직종으로 다양한 증상군의 환자를 마주하다 보면, 법적으로 허용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접근하지 못하는 영역이 꽤나 많다는 걸 종종 체감하곤 한다. 이러한 현상들이 무엇부터 잘못되었으며, 누가 이렇게 내버려 두었나 등의 따위를 이제 와서 운운하기에는 큰 의미가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요즘의 시기는 이례적으로 한의계 내부의 실무적 의견이 이전보다는 잘 합치되고 있으며, 지금은 지향점이 같은 의료인들이 합심해야 하는 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앞서 언급했듯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 의료기관을 법적으로 한의사가 개설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 2년 전에는 필수 법정 교육을 신청하는 화면에 ‘한의’라는 단어는 선택지의 그 어디에도 없었다. 교육을 듣기 위해서는 ‘일반의-의사’로 등록해야만 했다. 이론교육은 온라인으로 진행되니 어찌어찌 들었다만, 토론 중심의 대면 교육으로 진행되는 실무교육은 현실적으로 어찌어찌하기가 어려웠다. ‘일반의-의사’로 신청한 30대 여성의 면허번호가 ‘2’로 시작하는 다섯 자리 숫자라면, 내가 그 당시의 실무자였어도 등록 허가를 선뜻 내주지 않았을 것 같다. ‘이미 대기자도 많고 교육이 급한 사람이 차고 넘치는데’. 참고로 직전의 문장은 관련 사업에 종사하고 계시는 어떤 분의 말을 그대로 빌린 것이다. 당시에 실무교육의 거듭된 비선정으로 하소연하는 나에게 해주셨던 답이었다. 관련 내부인으로부터 그런 말을 듣자 참 간만에 억울한 감정이 올라왔던 것 같다. ‘왜 우리는 대기자에도 속하지 않고, 교육이 급한 사람에도 속하지 않는가’. ‘왜 우리는 우리에게 개설 권한이 있는 의료기관에 대해, 정작 교육 이수의 기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가.’ 2년이 흐른 현재 ‘한의’라는 선택지 생겨나 다행인 건 2년이 흐른 지금에 이르러서는, 적어도 ‘한의’라는 단어의 선택지가 생겼다는 점이다. 이 또한 누군가께서 보이지 않는 분투를 통해 만들어 낸 한 칸이라고 생각한다. 한의계의 지난 모든 판도를 바꿨던 지금까지의 변화는, 결국 누군가의 한 칸에서 시작되었음을 익히 들었기에 분투하신 그 분께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이 한 칸이 실제로 나의 앞선 억울함의 8할을 해소해 주기도 했다. 2년을 기다린 교육이었다. 꽉 막히는 아침 출근길, 송도에서 구로까지 이동하는 그 시간조차 괜히 설렜다. ‘말기 암 환자와 그 보호자의 관리’라는 분야에서 정부가 공인한 표준적인 내용을 듣는 건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이 오갔다. ‘소모적인 일이라는 이미지가 있는 분야인데, 실제로 전업으로 종사하고 계신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실까? 본인의 생각을 떠나서 그런 이미지가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까?’라는 학생 같은 궁금증부터 시작해서,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기관에 계시는 분들에게 ’희망‘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의미일까?’라는 철학적인 질문까지. 그리고 그 중에 내가 가장 확인받고 싶었던 부분은 이것이었다. 내가 지난 시간 동안 어깨 너머로, 때로는 싹싹 빌다시피 하며 의과·한의과 교수님들과 의료진으로부터 배워온 ‘말기 암 환자의 의학 외적인 돌봄과 실무들’-그 구체적인 행동들이 과연 맞는 방향이었는가를 정말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널찍한 교육실에 들어서니 약 서른 명 남짓의 수강생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 중 ‘의사 직종’에 속하는 수강생은 4명뿐이었고, 당연하게 느껴진 게 슬프게도, 한의사는 나 혼자였다. 모든 수강생들은 8명씩 4개의 조에 나뉘어 배정되었고, 의사 직종에 속하는 사람들은 각 조에 1명씩 배정되었다. 명찰을 받아 들고 내가 속한 조 테이블에 가서 자리에 앉자, 이미 대부분이 조원들이 모여 있었다. 오! 한의사 선생님이시다!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네자, 이미 서로 안면을 튼 듯한 몇몇 분들이 나와 내 명찰을 보았고, 그 중 한 분이 인사를 받아주심과 동시에 하나의 질문을 건넸다. “오! 안녕하세요? 오! 한의사 선생님이시다! 우와! 한의사분들은 말기 암 환자분들이 아프다고 하시면 침 놔주시는 거예요? 마약 못 쓰시지 않으세요?” 이 말이, ‘한의사’라는 태그를 달고, 억울함과 설렘이 뒤섞인 감정을 품은 채, 내 면허로 개설할 수 있는 의료기관의 필수교육을 겨우겨우 승인받아 들으러 간 전문의인 내가 들은, 첫 인사였다(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인력 표준교육-실무교육에 대한 후기는 총 3편에 걸쳐서 연재 예정입니다). -
“잘 죽기 위해 제발 좀 살려 달라”김은혜 가천대 한의과대학 조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6개월 남았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치료는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치료를 받던 암 환자의 5명 중 1명은 듣게 될 말이다. 실제로 나를 포함한 표준 암치료의 보조적 관리에 종사하고 있던 많은 의료인들도, 환자분들로부터 꽤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한 명의 보호자로서 들어본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문장은, ‘말기’라는 단어의 임상적 정의로 사용되기도 한다. “나는 이렇게 멀쩡한데 왜?” 대한의학회에서 발표한 말기의 이론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적극적인 암 치료에도 불구하고 암으로 인하여 수개월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태’, 또는 ‘암의 진행으로 인하여 일상생활의 수행 능력이 심각히 저하되고 신체 장기의 기능이 악화되어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 정의에서 언급된 수개월이 일반적으로 6개월 정도의 기간임을 생각해 보면, 터무니없이 짧기도 하고 하염없이 길기도 하다. 연구에 따르면 말기로 소견을 들은 암 환자의 80%가 ‘육체적으로 힘든 활동은 제한되나 거동(보행)과 가벼운 일 또는 앉아서 하는 일은 가능하다. 예를 들어, 가벼운 집안일, 사무’(ECOG 일상생활수행능력 평가 지표 1점)의 상태라고 한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환자들이 “나는 이렇게 멀쩡한데 왜 6개월 밖에 못 산다고 말하는 거냐”라고 말하는 게 백번 천 번 이해된다. 그와 동시에 한편으로, 침상에서 한 발짝도 못 벗어나고 계신 환자분들의 보호자는 “저 상태로 6개월을 버티라는 거냐”라고 가슴을 치며 말하는 것도 감히 이해한다 말하기 어려울 정도의 심정일 것이다. 말기로 진단 받은 암 환자는 몇 가지의 절차를 거쳐서 호스피스·완화의료 의료기관(이하 호스피스)을 이용하게 된다. 해당 기관 관련 종사자의 말을 빌리자면, 호스피스는 죽음의 질로 이어지는 삶의 질을 관리 받는 곳이며 존엄한 임종을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가족 간의 관계를 포함한), 영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의학적으로 말하면 통증과 섬망 증상을 조절하면서 임종 준비를 절차적으로 하는 곳이며,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고 생각하는 일부의 환자들은 ‘죽으러 가는 곳’이라고 비약적으로 말하는 곳이기도 하다. 환자분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하지만 적극적인 치료(cure)에서 내몰린 채 6개월을 준비해야 하는 또 어떤 사람의 입장에서는, 내 몸의 고통만이라도 관리(care)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의료기관이라는 점에서 너무 고맙다고 표현하시는 분들도 꽤 자주 있다. 어쩌면 환자분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치료가 끝나는 순간이 아니라 ‘돌봄’이 끝났다고 느껴지는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생명을 유지하는 기술은 한계가 있을지라도, 삶을 지탱하는 태도는 끝까지 유지할 수 있도록 의료진이 마지막까지 동행하는 것. 그 자체가 그들에게는 고마움과 동시에 호스피스에서의 희망이라고 느끼는 걸까? 이미 수 년 전부터 호스피스에 들어가려면 최소 2개월은 대기해야 한다는 말들이 공공연하게 들렸으며, 실질적 수요는 최근 들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지금까지의 내용들을 내가 여기에 적은 이유는, 호스피스를 개원할 수 있는 의료인에 한의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의사와는 다르게 우리는 현실적으로 단독 개원을 할 수는 없다. 잠깐이라도 ‘말기 암 환자의 통증에 침을 놔주면 되지 않을까?’, ‘말기 암 환자의 섬망에 시호가용골모려탕을 쓰면 되지 않을까?’라 생각한 독자는 없길 바란다. 마약성 진통제를 몇 백 mg씩 써도, 신경안정제를 몇 날 며칠을 써도 조절되지 않는 게 말기의 증상이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한의사도, 죽음의 문턱에 선 사람 곁에 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법적으로 이미 설 수 있다는데, 준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를 위해 우리에겐 처방권이 없는 각종 약물들을 달달 외워야 되고, 때로는 타 직종에게 협업인지 읍소인지 모를 모양새로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럼에도, 우리의 역량과 아량을 키워야 한다. 앞으로의 또 다른 변화를 기대 기술보다 태도, 치료보다 돌봄이 그 중요한 순간에, “잘 죽기 위해 제발 좀 살려 달라”고 외치는 단 1명의 사람이 있는 이상, 그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한의사가 1명이라도 더 생겨야 한다. 삶의 끝에서 누군가의 손을 꼭 붙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건 결코 선택이 아니라, 의료인으로서 감당해 내야 할 몫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누군가의 삶을 덜 아프게 해 줄 수 있다면, 그건 결국 모든 의료인의 사명이기도 하다. 지난 몇 년 동안 한의계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의 또 다른 변화에 오늘의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오늘의 글을 통해, 누군가의 곁에 머무는 법을 조금씩 배워나가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늘기를 바란다. -
‘해보면 되겠지’, ‘하다 보면 되겠지’김은혜 가천대 한의과대학 조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초음파에 대한 최종 판결이 난 지 벌써 1년을 향해 가고 있다. 마침, 이 기간에 한의의료기관이 수십 개가 몰려있는 지역에서 근무했다. 눈만 돌렸다 하면 최소 10개가 넘는 한의원, 한방병원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하루가 지나게 “어디도 초음파를 쓴대.”, “어느 원장님도 자격증 따셨대.”라는 소식이 업데이트되는 곳에 있으면서 괜히 뒤처지는 마음도 들던 1년이었다. 그와 동시에, 정말 감사한 1년이기도 했다. 새내기의 콩닥거리는 마음을 수줍게 감추며 처음 회기동에 발을 들이던 날부터 십 수 년이 흐른 지금까지, ‘너도나도 공부를 하겠다’며 달려들었던 해는, 내가 겪은 날들 중에서는 2024년이 최초였기 때문이다. “초음파 활용, 기대하는 바가 적지 않아” 덕분에 간만에 옛날 생각도 났다. 본과 어느 해 무렵, 재활의학과 교수님이 유독 싱글벙글 웃으면서 수업에 들어오셨던 날이 떠올랐다. “너네는 이제 나가면 추나라는 걸 열심히 해야 할 거야.”라며 씨-익 입 꼬리를 올리시고 허리에서 우두둑 소리를 내는 모습이, 무슨 말인지도 어떤 행동인지도 전혀 몰랐던 시절이었다. 그러고서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2019년에 ‘추나 치료의 건강보험 급여화’ 기사가 나더니, 어느새 하루에 20명 가까이 추나 치료를 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20명에게 10분씩만 추나를 해도, 진료 시간 중 3시간을 내리 환자 옆에 딱 붙어 있으면서 다른 환자들 치료는 아예 못 하는 구조였다. 의료기기, 운용하는 자의 전문성에 큰 영향 그래서 그때도 2가지의 큰 의견 대립이 있었다. ‘국민에게 제공되는 의료 행위에서 한의치료가 확장 개입된 아주 긍정적 신호다.’, ‘임상 현장에서 한 환자에게 배분할 수 있는 진료 시간이 줄어들어 의료의 질이 떨어진다.’. 2025년이 된 지금, 그 대립으로부터 6년이 흘렀다. 결국 추나 치료는 우리의 치료 행위에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환자들의 수요와 의료기관 매출의 양쪽 모두에 긍정적인 결과를 주었다. 추나 치료의 흐름을 경험한 우리는, 초음파에도 기대하는 바가 적지 않은 것 같다. ‘쓰다 보면 잘 쓸 수 있겠지.’, ‘쓰다 보면 돈이 되겠지.’ 개인적으로 필자는 이 생각들이, 지금 이 시기에 가장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엑스레이, 미용기기, 혈액검사 등의 흐름을 타면서 방방 뜨는 분위기에 ‘일단 쓰고 보자’의 마인드를, 진단의료기기를 다룰 때에는 매우 조심스럽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치료 행위/기기에 속하는 추나 치료와 미용기기, 그리고 제한된 항목만 허용된 엑스레이 및 혈액검사와 비교했을 때, 초음파는 차원이 다른 책임감을 가져야만 한다. ‘진단’의료기기의 중압감에 익숙지 않은 우리가, 진단이라는 권한이 주어지기 전의 분위기처럼 ‘괜찮겠지’라고 넘기는 습관에서 빨리 벗어나야만 한다. 진단의료기기의 개발부터 출시까지 과정을 요약하자면, 이 의료기기가 진단을 얼마나 1) 안전하게, 2) 정확하게, 3) 빠르게 해내는가를 입증할 수 있는 증빙서류 제출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초음파는 그 어떤 진단의료기기보다도 비침습적이며 빠르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남은 맥락에서 진단의 정확도에 대한 신뢰도는, 이토록 높은 가치를 가진 기기를 운용하는 자의 전문성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는 점이, 우리의 책임감과 연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책임감이 내 업장, 내 환자에게서 나아가 내 후배, 내 학생, 내 연구에까지 이어져서, 한의치료의 진료 알고리즘에서 초음파라는 진단의료기기가 어떤 부분에서 더 안전하고, 더 정확하며, 더 빠르게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입증해 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20년 전 만해도 시골 동네의 작은 의원에 가면 초음파만으로 암을 조기 발견해 주는 의사가 있었다. 그 선생님께 어떻게 그렇게 잘 찾느냐고 묻자, ‘쓸 게 이거밖에 없으면 이거로 알아내는 게 내 직업이지.’라고 말씀하셨다. 그땐 그 말이 참 멋있게 들렸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약간의 자조적인 뉘앙스도 들어있었지 않나 싶다. 2025년, 현대 한의학 변화의 한 획 기대 그럼에도 작은 프로브(probe) 하나로 사람 수백을 살려낸 열정이 안광에 가득했고, 한편으로는 하루 종일 수그리고 있는 자세로 생긴 말린 어깨는 참 무거워 보였다. 고작 의료기기 하나의 중압감이 그렇게 까지나 된다고 꼭 말하고 싶다. ‘해보면 되겠지.’ ‘하다 보면 되겠지.’ 라는 말, 당연히 맞긴 하다. 의료기기인 이상 술기의 숙련도가 매우 중요하며, 그 술기라는 것은 반복 말고는 왕도가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마음가짐만큼은 수백을 살려보겠다는 각오로, 그리고 이 기기로 정말 수백을 살려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2025년도 현대 한의학의 변화에 한 획을 긋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
“환자를 좀 더 잘 보고 싶다”김은혜 가천대 한의과대학 조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며칠 전, 국제 의료기기 및 병원설비 전시회인 KIMES 2025에 다녀왔다. 1년 전만 해도, 나도 그들에게, 그들은 나에게 더욱, 관심이 없을 사업이었다. 하지만 올해만큼은, 나뿐만 아니라 지인들까지도 ‘가서 견적 좀 들어보려고’라고 말하며 의료기기 박람회에 관심을 가지는 지금의 현실이 새삼 감개무량한 기분을 들게 했다. 가장 놀라웠던 기술은 AI 차트 강남 코엑스 전시회장 전체를 빌려 진행되는 박람회는 듣던 대로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몇 년 전, 미용 시장이 개방된 이후에 같은 장소에서 열렸던 한의학회도 한의사로서 참석했던 그 어떤 학회보다 규모로나 스폰서 수로나 비교 불가하다고 감탄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그것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원장님, 이것 좀 보고 가세요”, “과장님, 지금 업체를 5군데 돌았는데, 좀 더 싸게 해 줘봐요”라는 상호 간의 말이 쉴 새 없이 오가는 현장의 한복판에 있으니, 언젠가 사석에서 만났던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의사는 돈을 좇지 않아야 한다는 말, 이제는 고리타분해. AI가 1분 만에 논문 100개를 읽어서 요약해주는 시대에, 의사야말로 더 적극적으로 투자를 해야 환자에게 더 안전한 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거야. 대신, 환자를 돈으로 보면 안 된다는 말은 진리이지.” 경제적 가치가 있는 의학 이론 또는 의료 기술이 정상적으로 사업화되었을 때는, 의료인에게든 환자에게든, 무조건 둘 중 하나의 집단에는 편리성을 줄 수밖에 없는 구조임이, 그 넓은 전시장의 압도감을 통해 느껴졌다. 그 중 가장 놀라웠던 기술은 AI 차트였다. 진료실에서 환자와 의사 간에 나눈 대화를 실시간으로 스크립트화하고, 그 내용을 기본으로 SOAP에 맞춰서 입력하며, SO에 근거해서 가장 적합한 진단명을 찾아내 입력하고, 마지막으로 이 환자에게 처방해야 할 경구약 조합까지 자동으로 입력되는 시스템이었다. 나아가서는 처방 관련 병용 금기 사항, 건강보험 청구 대상, 삭감 조건 등까지 조회가 되고, 환자에게 뽑아 줄 일상 관리 방법 안내문까지 자동으로 만들어내는, 고작 클릭 2번이면 껐다 켜졌다 할 수 있는 작은 아이콘의 퍼포먼스를 보고 있자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물론 개인정보 보호법 등과 관련된 법적 조항이나 재현성, 정확도와 같은 신뢰도 부분의 개선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시연 증례에서는 화면 뒤에 완벽한 진료실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참 부러웠다. AI 시대, 한의학이 갈 길은? 2025년 3월에 출간된, 「AI와 한의학」 책에 따르면, 한의사가 평가한 한의학 분야에 AI를 도입했을 때 유용도를 최대 100점을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 한약 연구 및 개발(74.60)과 사회 정책 수립(73.68) 분야에서는 높은 유용도를 예상했으나, 변증 및 진단(68.47), 처방(64.02), 경혈 및 선혈(63.96)에서는 비교적 낮은 유용도를 예상했다고 한다. 의사 대상으로 수행된 유사한 연구에서, 질병 진단(83.4%), 치료 결정(53.8%), 약제 연구 및 개발(12.6%)로 조사된 결과와 대조되는 수치이다. 의료인의 3대 분야가 크게 진료·연구·교육으로 구분됨을 고려했을 때, 두 의료계의 결과가 완전히 상반된다고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업의 가치는, 얼마나 많이, 그리고 얼마나 빨리 투자금 대비 n배를 회수할 수 있는가가 매우 높은 부분을 차지함을 고려했을 때, 긴 전통성 대비 한의약의 사업화 속도가,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나 느린 것 같다는 인식이 느껴지는 수치이다. 한의사라는 타이틀로 KIMES에 참석해서 의료기기의 가격 대비 효용성을 따질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막상 한의사라고 직업을 밝히면 열성적으로 설명해주던 직원의 눈빛에서 기대가 팍 식어버리는 현실이 속상했다. 부러웠고, 속상했고, 하지만 그래서, 전시관을 다 돌았을 때쯤에는 간만에 투지가 불타오르는 게 느껴졌다. 레지던트 시절, 지도교수님께 몇 가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교수님, 한약재 자체가 유효성분이 여러 개다 보니, 한약재 1개만 분석해도 질환별로 multi-targeting(다중 표적)을 한다고 연구되어 있는데, 탕약 1개에 한약재가 최소 4개가 들어가면 이게 현실적으로 evidence-based(근거 기반)의 진료 구축이 가능한가요?”, “multi-targeting이 사실이라 치면, 어쩔 수 없이 사람에게 적용할 경우 controversial(상반된)한 결과가 공존할 텐데. 여기서 약과 독의 차이는 용량 차이일 뿐이라는 사실을 적용하면, 저울의 0점을 찾을 수 있기는 한 거에요?”, “(빅데이터 연구가 처음 시작되던 시절) 한의약은 건강보험 급여에 포함된 게 적을뿐더러, 막상 이론을 다 포함하자면 또 지나치게 방대해지는데. 언젠가라도 한의약으로 빅데이터 연구가 가능한 데이터베이스가 생길 수 있을까요?” 모든 질문에 대한 교수님의 대답은, “일단 AI가 나오고 현실에 녹아들면 가능해질 거다. 그리고 결국은 그 방대한 데이터가 우리의 강점이 될 것이다.”였다. 참고로, 그때에도 암암리에 돌아다니던 chat-gpt 유사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영어 논문 번역 수준이 당시의 네이버 파파고만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누군가의 변화에 대한 진심을 지지 그리고 그로부터 수 해가 흘렀다. 약물 상호작용(drug interaction), 네트워크 분석(network analysis), 연관 규칙 분석(association rule analysis)은 코딩 몇 줄이면 구글에서 검색되는 모든 문헌을 자동으로 조합해 그림 1개로 요약해주게 되었다. 한의약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한 연구에 역대 대규모의 R&D가 투자되었으며, 지금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의 한의약 비율은 체감상 5배 이상은 증가한 것 같다(필자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아직 빅데이터 연구를 수행하기에는 자료의 양이나 질이 모자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한의계 내부의 분위기도 바꾸었고, 국가 고시 시험과 한의과대학 교육 과정을 바꾸었으며, 법원의 판결을 바꿔냈다. 추나요법이 처음 급여화되었을 때 다 같이 박수치던 그 시절에서, 불과 10년 정도가 흘렀는데, 지금은 너도나도 프로브를 잡고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이 변화가 각자의 자리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움직임이 만들어낸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분명, ‘환자를 좀 더 잘 보고 싶다’라는 그 마음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니 지금도, 앞으로도 누군가의 변화에 대한 진심을 읽고 지지해주는 분위기가 유지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
저속 노화 그리고 치미병(治未病)김은혜 가천대 한의과대학 조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원장의 글을 소개한다. 저속 노화의 대열풍이 불고 있다. 자세한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미 지금까지 방대하게 부유되어 있던 정보들이 대부분이다. 통곡물 먹기, 되도록 원재료의 형태 그대로 먹기, 단백질은 붉은 고기보다 다른 고기·생선·콩·유제품류로, 식사 직후 가벼운 산책하기, 아침에 과당 섭취 절제하기, 갈거나 착즙해서 먹지 않기 등. 누가 저속 노화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가? 안티에이징(anti-aging) 혹은 다이어트식단이라는 단어로 묶이던 내용들이, 훨씬 직관적으로, 그리고 당장 실천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건 ‘저속’ 노화라는 네이밍(naming)이 핵심이라는 생각도 든다. 노화를 막는다, 혹은 거부한다라는 단어는 돈도 많이 들 것 같고, 당장 내일부터 시도해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은 이미지가 들지만, 노화의 속도를 ‘늦춘다’라는 단어는 한 걸음만 늦어져도 해낸 듯한 성취감을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건강에 좋은 건 모두 귀찮고 힘든 것들. 그리고 힘든 것 중 가장 힘든 것은 첫 걸음을 떼는 것”이라는 말이 있고,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로 채찍질하며 살아온 현대인에게 저속 노화는 참 고마운 힘듦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지금의 열풍에 지대한 공을 세우신 분도 있다. 요즘 미디어를 틀었다하면 나오시는 노년내과 교수님이다. 개인적으로 분야를 떠나서 굉장히 존경하는 분인데, 이 분의 등장으로 저속 노화의 카테고리가 명확하게 정립되었다고 생각한다. 방대하게 부유되고 있던 지식들이, 전문가의 등장으로 인해 생활 밀접형 정보로 치환된 것이다. 그 분께서 말씀하신 노년내과가 필요한 이유에 대한 내용도 기억에 남는다. “노년내과라고 해서 어르신들만 진료하는 내과인 것이 아니라, 노화로 발생하는 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과 치료를 제공하는 과이다.” 예방적 치료로 제시하는 방법이 조기 검진과 영양제만 권유하지 않는 점이 저속 노화의 트렌드인 것 또한, 이 분이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양생(養生) 지침, 우리가 가장 많이 알아” 부러 앞선 이야기들을 한 이유는, 아쉬움 반, 기대감 반으로 인함이다. 예방적 치료라는 개념의 시초가 한의학의 가장 기본 이론인 ‘치미병(治未病)’이기 때문이다. 진단기기를 쓰지 못 한다는 이유로, 설사 기기를 써서 진단을 한다 한들 병(已病)에 대한 응급 처치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표준 치료제(治已病)에 대한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 내부에까지 균열이 일어나는 게 지난 수 년 간의 일이었다. 당연히 필요한 일이고, 유의미했다. 그러나 우리도 모르는 새, 세상에는 병은 발생하기 전에 관리해야 한다는(未病) 인식에 열광하기 시작했고, 우리가 비집고 들어가기도 전에, 우리의 근간을 인식시킬 기회는 지나간 듯 한 점에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든다. 지나치게 방대한 지식 때문이었을까? 네이밍과 카테고리화에 대한 노력의 부족 때문이었을까? 전문가의 부재 때문이었을까? 혹 결국은 고질적인 마케팅적인 부분 때문이었을까? 저속 노화에 대한 관심이 내과 질환에서부터 피부미용에까지 넓은 영역으로 퍼지고 있는 지금, 치미병에 대한 내용으로 우리가 세상에 전할 지식은 너무나도 많다. 한의약의 치료 도구를 제시하기 전에, 의·식·주의 양생(養生)에 대한 지침은 단언컨대 모든 전문 의료인을 합쳐서 우리가 가장 많은 이론을 배웠을 것이다. “한의학 근간, 카테고리화할 필요 있어” 심지어 그 양생에 대한 내용이 장기별로, 시와 때별로, 계절별로 구분되어 있기까지 하다. 조금이라도 더 간단한 방법으로, 당장 오늘 저녁부터 노화의 속도를 늦출 수 있기를 원하는 현대인에게 가장 맞춤화되어 있는 정보일지도 모른다. 얼굴의 노화를 막기 위해 두피 마사지는 기본에, 측두근에까지 리프팅을 받는 세상에서, 해부학과 동시에 두피의 위치별 장부 배속까지 알려주는 것이 한의학의 근간이다. 많은 것이 변하고 있는 지금, 이 시류를 탔을 때가 바로 우리의 근간을 다져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근간이라 함은, 한약, 침, 뜸과 같은 치료 도구가 아닌, 학문 그 자체를 말한다. 마침내 현대 한의학이라는 이름에 맞게 진료 현장이 구축될 희망이 보이는 지금, 그 근간도 지금의 분위기에 맞게 카테고리화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허준 선생의 말을 그대로 빌려, ‘방대한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집대성’ 했을 뿐인데 유네스코에 등록된 동의보감처럼, 21세기 현대 한의학의 동의보감을 간행해 줄 전문가가 나타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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