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 한의대 경혈학교실 손 인 철 교수>
정성 다해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진료
한의학에 대한 깊은 신뢰와 높은 호응
인연 닿은 모든 분들의 건강과 행복 기원
근대의 몽골은 역사적으로 중국에게 300여년, 러시아에게 70여년의 지배를 받아왔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몽골인들 사이에 몽골글을 아는 사람이 드물게 되었다. 근래에는 일부 계층에서 노력한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관공서와 일반 국민사이에서 러시아글을 사용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일제 36년을 겪으면서 우리말·우리글을 지켜온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를 새삼 생각하게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몽골은 자기의 조상을 잘 모르고 살아왔다. 곧 자기의 성씨가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을 아들의 성(姓)으로 삼고 이어져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한 민족에게 성씨를 없애는 것보다 더 심한 민족말살정책이 또 있을까. 그 옛날 아시아를 지배하고 유럽까지 넘보았던 몽골민족에 대한 철저한 분해정책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1992년에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한 10여년 전부터 성씨 찾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으나 이미 뿔뿔이 흩어진 종족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어서 새로 성씨는 만든다는 것이고, 오랫동안 한 지역에 살고 있던 종족에게는 지난 과거를 추적하여 찾아간다는 것인데 그것도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일제 36년간 우리말·우리글 쓰기가 어려웠던 것은 물론 창씨개명까지 강요당했던 그때를 생각하니 동병상련의 아픔으로 다가왔다.
의료봉사 2일째. 진료시간에 맞추어 병원에 도착하니 벌써 환자들이 길게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첫날 진료를 받은 재진환자와 예약환자가 겹쳐서 진료실과 약재실이 바삐 움직인다.
나는 오전에 두 분 교수님을 모시고 ‘아르길 약수요양원’ 고문이신 ‘남벌’ 현 몽골 대통령의 아버지를 만났다. 전에 와서 만난 적이 있으니 이번에는 구면인 셈이다. 한국과 몽골간의 돈독한 협력관계를 원하고 이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하였다. 건강의 비결을 묻는 말에 한국의 홍삼을 먹으니 좋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올가을 10월경에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하여 그때 원광대학교를 방문하기 바란다고 구두로 초청을 하였다.
진료 후 우리 봉사단 주최로 만찬이 열렸다. 병원측에서는 병원장과 남벌 대통령 부친 그리고 진료에 도움을 준 병원 간호사와 통역들이 참석하였다. 그곳에서 우리 봉사단원에게 병원장으로부터 감사장 수여가 있었고, 우리도 홍삼, 전자혈압기, 화장품, USB 등 만찬 참석자들에게 준비한 마음의 선물을 전달했다. 진료팀장 송문영 원장은 만찬에서 사용하기 위해 한국에서부터 복분자주를 준비하여 왔다면서 그 자리에 내놓기도 했다.
의료봉사 마지막 날. 진료시간보다 앞당겨 병원에 도착했는데 환자들이 벌써 와서 장사진을 이루었다. 뜨거운 태양볕이 내리 쬐는 밖에서 대기하여 접수 후 순번을 기다리는 모습이 해외의료봉사에서 더러 보는 형상이지만 몽골지역이 더욱 그러한 것 같았다.
이는 한국 및 한의학에 대한 깊은 신뢰와 치료 후 효과에 대한 반응이라고 보면서 더욱 큰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 중에는 몽골의사와 명사, 지도층도 있었고, 더러 한국 교민들도 찾아왔다. 진료 환자들이 계속 이어져서 진료실은 물론 준비한 한약 엑기스를 투약하던 약재실은 더욱 바빠졌다. 진료의 마지막 날이므로 재진 환자는 더욱 늘어나고 한약의 투약 분량도 더 늘렸기 때문이다.
양범식 박사와 김영태 박사가 준비해온 어린이 학용품(연필, 볼펜, 노트, 형광펜, 필통)은 진료를 받거나 부모님을 따라온 몽골의 어린이들에게 나누어주며 공부 열심히 하라고 격려를 했다.
오후까지 우리를 찾아온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정성 다하여 진료를 하고 가슴 뿌듯한 마음으로 의료봉사 폐소식을 하니 오후 5시경. 마지막 날에만 750여명 진료, 3일간 2000여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진료를 통해 인연한 모든 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진료를 마친 후 뭉근머리트에 가서 승마체험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 타는 사람은 마부를 대동한 보조승마를 타고, 이미 승마의 경험 있는 사람은 자유승마를 하였다. 마부의 역할은 주로 10대 소년들의 몫이다. 그들은 어리지만 달리는 말위에서 움직이는 모습이 평지에서와 크게 다를 바 없게 보인다.
몽골인들은 ‘세살 때부터 말에 오르기 시작한다’고도 하고, ‘걸음마를 시작하기 전부터 말 등위에 올라 승마를 배운다’고도 한다. 그들은 말 위를 어머님의 품처럼 편안하게 느끼고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오는 길에 울란바타르 근교에 이르니 지역의 새마을 운동을 알리는 한글 플래카드가 군데군데 펄럭인다. 몽골지역에도 한국의 새마을운동이 수출되어 진행되는 모양이다. 몽골의 새마을운동은 몽골새마을회가 주축이 되어 전개하고 있다.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던 새마을운동이 이제 몽골에서도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 같이 보여 몽골의 내일에 대한 기대가 들었다.
밖에 나가보면 다시 느낀다. 우리가 자랑스러운 한국인임을. 우리가 진정 국가와 세계인류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