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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28일 (수)

증상을 배우며,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묻다

증상을 배우며,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묻다

- 환자의 ‘주요 관심사’와 ‘서사적 겸손함’으로 살펴본 서사의학 -
김현중 학생
가천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예과 1학년

김현중 학생.png

 

‘심한 피로감, 3년 전 발생.’

 

환자가 병원을 찾은 이유가 한 줄로 정리된다. 그러나 환자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피로 때문에 일을 자주 쉬면서 직장을 잃을까 걱정한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어 일을 그만둘 수도 없다. 병원을 찾아도 뚜렷한 답을 얻지 못했고, 추가 검사를 받으려니 비용도 부담스럽다. 이 환자가 바라는 것은 피로가 나아져 이전처럼 일하며 생활하는 것이다.

 

위 사례는 2026년 하반기 ‘가천대학교 한의학과 성과교류 세미나’에서 진행된 황임경 교수님(제주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인문학교실)의 ‘의료인문학과 서사의학’ 강연 자료에 제시되어 있다. 강연에서는 같은 환자의 이야기를 ‘주요 호소 증상(Chief Complaint)’과 ‘주요 관심사(Chief Concern)’로 나누어 보여준다. 전자에는 심한 피로감과 발생 시점이, 후자에는 직장과 가족에 대한 걱정, 진료 과정에서의 답답함, 회복하고 싶은 일상이 담겨 있다.

 

한의학 공부를 시작한 예과 1학년생으로서 이 구분이 인상 깊었다. 환자의 증상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은 익숙했지만, 환자가 그 증상을 두고 무엇을 가장 걱정하는지 별도로 묻는다는 점은 새롭게 다가왔다.

 

두 항목을 나란히 놓으니 증상을 이해하는 것과 그 증상을 겪는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였다. 주요 호소 증상이 ‘어떤 증상 때문에 왔는가’에 대한 답이라면, 주요 관심사는 ‘그 증상 때문에 무엇이 걱정되고, 어떤 도움을 바라는가’에 대한 답이다.

 

같은 피로감이라도 환자마다 어려움을 겪는 상황과 회복하고 싶은 일상은 다를 수 있다. 증상의 이름과 기간이 같다고 해서 환자가 진료에 거는 기대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환자는 왜 검사를 망설이는 것일까

 

물론 환자의 말을 의학적 언어로 정리하는 일은 필요하다. 복잡한 이야기를 증상과 경과로 구조화해야 임상적으로 판단하고 기록하며 다른 의료인과 소통할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어떤 내용이 남고 어떤 내용이 빠지는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3년간의 피로감’이라는 기록은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지만, 그 시간이 환자에게 어떤 의미였는지까지 보여주지는 못한다.

 

‘서사의학’은 이러한 이야기를 이해하고 그에 응답하는 역량에 주목한다. 강연에서는 질병 이야기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며 해석하고, 그 이야기에 감응해 행동하는 역량을 바탕으로 수행되는 의학으로 소개됐다. 이를 앞선 사례에 대입하면 의미가 선명해진다. 환자가 검사를 망설일 때, 그 이유에는 비용 부담이나 이전 진료에서 느꼈던 실망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을 알아야 환자가 무엇을 궁금해하고 어떤 설명을 필요로 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김현중 학생2.png

<AI 생성 이미지>   

 

이와 함께 강연에서 기억에 남은 또 다른 개념은 ‘서사적 겸손함’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모두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태도를 뜻한다. 환자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다고 해도, 그 해석에는 듣는 사람의 경험과 선입견이 개입할 수 있다. 공감했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내가 이해한 내용이 환자의 뜻과 같은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말을 망설이는 환자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할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순서대로 정리해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말하고 싶지 않은 사정이 있거나, 말로 풀어내기 어려운 경험도 있을 것이다.

 

환자는 무엇을 걱정하고 어떤 일상을 되찾고 싶을까

 

이 대목에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문장이 떠올랐다. 언어의 한계를 다룬 이 말을 생각하며,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게도 자신의 이해가 닿지 않는 부분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겠다고 느꼈다. 환자가 말하지 않은 부분을 성급한 추측으로 채우기보다, 모르는 채로 기다릴 줄 아는 것. 그것도 강연에서 배운 ‘서사적 겸손함’의 한 모습일 것이다.

 

강연을 돌아보며 다시 처음의 한 줄을 읽는다. ‘심한 피로감, 3년 전 발생.’ 이제 그 옆에는 ‘계속 일하며 가족을 돌볼 수 있기를 바람’이라는 문장이 함께 떠오른다. 증상의 경과와 환자가 되찾고 싶은 일상이 나란히 놓이자, 이 사람이 왜 진료실을 찾았는지가 더 분명해졌다.

 

앞으로 한의학을 공부하며 많은 증상과 진단, 치료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증상이 환자의 삶에 어떤 어려움을 가져오는지, 환자가 무엇을 걱정하고 어떤 일상을 되찾고 싶어 하는지도 함께 살피는 법을 배우고 싶다.

 

그리고 이야기를 충분히 들었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내가 이해한 것이 전부는 아닐 수 있음을 기억하고자 한다. 환자의 말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아직 알지 못하는 부분을 인정하는 겸손함을 함께 익혀 가는 것. 이번 강연은 앞으로의 배움에 그 두 가지를 함께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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