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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19일 (화)

“현상 뒤에 숨은 기전(機轉)을 읽다: 온병의 시각으로 다시 보는 본질과 변증”

“현상 뒤에 숨은 기전(機轉)을 읽다: 온병의 시각으로 다시 보는 본질과 변증”

대한동의방약학회, ‘온병의 날’ 주제로 정기학술대회 개최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는 한의사 되고 싶어…”
김도현 학생(세명대 한의과대학 본과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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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신문] 대한동의방약학회는 10일 명동 은행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온병(溫病)의 날: 두 거장 薛生白, 趙紹琴을 주제로 정기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총 2개의 파트로 진행됐으며, 오전에는 설생백의 습열조변을 통한 임상 응용(이원행 회장)’, 오후에는 조소금 온병학술사상을 통한 임상 응용(정규석 원장)’을 주제로 각각 강연됐다.

 

텍스트를 넘어 임상의 이미지로

본과 생활을 하며 나름대로 치열하게 학문에 매진해왔지만, 지식이 쌓일수록 오히려 실전 응용에 대한 막막함은 커져만 갔다. 책 속의 문장들은 파편화되어 떠돌았고, 복잡한 병기를 마주할 때면 어디서부터 사고를 시작해야 할지 몰라 답답함을 느끼곤 했다.

 

그러던 중 지난 겨울, 대한동의방약학회의 학생 대상 강의를 통해 모호했던 지식들이 머릿 속에서 이미지화되어 비로소 체계적으로 정합되는 경험을 했다. 학회 원장님들께서 임상 현장에서 쌓아오신 경험의 결과물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시는 모습에 깊은 감명과 흥미를 느꼈고, 기회가 닿는 대로 그 값진 가르침을 직접 듣고 식견을 넓히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다. 감사하게도 이번 정기학술대회에 학생 스태프로 참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고, 오늘은 또 어떤 새로운 깨달음이 나를 설레게 할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펜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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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향한 통찰: 습열의 층을 뚫어야 병이 낫는다

첫 강의를 맡으신 이원행 회장님께서는 태양, 온병, 습열이라는 세 가지 축에 대한 설명으로 강의를 시작하셨다. 가장 먼저 나의 고정관념을 깨뜨린 것은 눈에 보이는 열()과 독()에 매몰되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흔히 불긋불긋한 아토피 환자를 보면 황금이나 황련과 같은 청열약을 떠올리지만, 그것이 온열(溫熱)이 아닌 습열(濕熱)일 경우 청열약의 남용은 오히려 습을 응체시켜 기기 소통을 방해하고 병태를 악화시킬 수 있음을 지적하셨다. 특히 입은 마르나 물을 많이 마시지 않는 것(口渴不欲飮)’흉비(胸痞)’가 단순한 열증이 아닌 습의 결정적인 지표라는 설명은 변증의 정교함을 일깨워주었다. 겉으로 드러난 증상과 처방을 1:1로 매칭하는 단편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환자 내면의 습을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예비 한의사로서 가져야 할 매우 중요한 태도였다.

 

이어 습열증의 병기가 ()()()()()’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은 복잡한 질병의 전개 과정을 한 줄의 실로 꿰어주었다. 환자가 한의원을 찾을 때는 이미 열()이나 독()의 양상이 드러난 상태인 경우가 많지만, 그 출발점은 결국 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치료의 핵심은 단순히 열을 끄는 것이 아니라, 습을 열어 울체를 소통시키는 기기소통(氣機疏通)’에 있다.

 

습열을 풀면 여러 병이 한 번에 풀리고, 한 병을 풀려고 해도 습열의 층을 뚫지 못하면 낫지 않는다라는 회장님의 말씀은 강의 내내 내 머릿 속을 맴돌았다. ()이 습인 상황에서 섣불리 쓴 고한(苦寒)한 약들이 오히려 기기 소통을 방해할 수 있다는 점은 임상의 엄중함을 다시금 일깨워주었으며, 결국 눈앞의 증상이라는 함정 뒤에 숨은 습열의 층을 정확히 읽어내고 뚫어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치유의 시작임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습열 치료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진액 보존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하셨다. 습을 말리고 열을 내리는 과정에서도 위진(胃津) 살리기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은 습열 치료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핵심이었다. 진액이 버텨주지 못하면 환자는 약력을 감당할 수 없기에 산약, 맥문동, 오미자, 계내금 등의 약재는 단순한 보조가 아니라, 치료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주요한 지점임을 깨달았다.

 

회장님께서는 습열 치료는 요리와 같다는 비유를 들어주셨다. 김치찌개에 필수 재료가 있듯, 습열 처방에도 개상(開上)-창중(暢中)-삼하(滲下)’라는 뼈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다시 바라본 곽향정기산은 새로웠다. 주로 위장 관계 질환이나 외감 증상에 다용하는 처방으로만 이해했던 곽향정기산이 상초의 습을 치료하는 데 집중하고 하초의 힘을 뺀, 삼초 변증의 전략적 산물임을 이해하게 되자 처방이 입체적인 이미지로 다가왔다. 삼인탕과 엮어 삼초의 균형을 조절하는 치법의 원리를 배우며, 약을 이미지화하여 떠올릴 수 있게 되었고, 이를 응용한 처방들에 대해서도 사고를 확장해나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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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폐(宣肺), 기화를 위한 필연적인 선택

이어진 정규석 원장님의 강의는 온열병과 습열병의 체계에 대한 분석으로 포문을 열었다. 그중 특히 습열 치료의 출발점은 선폐(宣肺)에 있다는 명제가 가슴 깊이 와닿았다.

 

()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몸 안의 기화(氣化) 작용이 원활해야 하고, 그 기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폐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당연하면서도 간과하기 쉬운 핵심이었다. 기의 흐름이 막힌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정체될 뿐이다. 결국 기기선창을 목표로 폐기를 먼저 열어주는 것이 습열 치료의 첫 단추임을 깨달았다.

 

나아가 이번 강의를 통해 온열과 습열이라는 두 변증 체계의 공통 분모가 결국 기기의 소통에 있음을 함께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치료의 궁극적 목표는 막힌 기기를 소통시키는 것이기에, ‘기기선창이라는 핵심 키워드 아래 풍약(風藥)과 량혈약(凉血藥)을 조화롭게 배합하는 기전은 임상의 묘미를 보여주었다. 열증에 풍약만 쓰면 화기(火氣)를 부채질할 위험이 있고, 반대로 량혈약만 쓰면 기기가 응체되어 어혈이 악화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둘을 배합함으로써 풍약이 기기 소통을 유지시켜 한응(寒凝)을 방지하고, 량혈약이 풍약의 조열을 억제하여 통달 속의 청량을 구현해낸다는 설명을 통해 처방의 구조를 명확하고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원장님께서 제시해주신 의안들은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교훈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특히 1년 넘게 만성 설사를 하며 안색이 황색이고 기운이 없는 언뜻 보기에 비허(脾虛)’인 환자에 대한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겉모습만 보면 보약을 써야 할 전형적인 허증 같지만, 맥을 짚어보니 활삭유력(滑數有力)하고 설태는 황니(黃膩)습열 울결의 실증이었다.

 

이 환자에게 섣불리 보약을 썼다면 오히려 실사(實邪)를 도와 병을 키웠을 것이다. 오히려 풍약으로 기의 문을 활짝 열어 약이 작용할 환경을 만든 후 량혈화어(凉血化瘀)하는 처방이 정답이었다. 만성 설사조차 허증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은, 예비 한의사로서 맥과 설을 통해 병기를 끝까지 추적하는 집요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하게 했다.

 

강의를 듣는 내내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아토피를 앓고 있는 동생의 모습이었다. 그동안 나는 피부가 매우 건조하고 가려움이 심하니 당연히 혈허풍조(血虛風燥)’일 것이라 생각해왔다. 하지만 강의를 통해 배운 내용을 대입해보니 새로운 사실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 얼음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식습관, 왕성한 식욕, 그리고 평소 틈날 때마다 보았던 붉고 건조한 혀와 힘 있는 맥은 혈허가 아닌 혈열(血熱)이 치성하여 진액을 손상시키고 풍사가 날뛰는 상태를 가리키고 있었다. 건조함이라는 결과값에만 매몰되어 혈허로 피부를 영양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나를 되돌아보며 이렇게 또 한 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에 감사한 순간이었다.

 

장막을 걷어내고 치유의 본질을 향하여

이번 학술대회는 단순히 효과적인 처방을 배우는 자리를 넘어, 환자의 삶과 증상 이면에 숨겨진 병기의 실상을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살피는 한의사의 진중한 태도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아직은 배움의 초입에 서 있는 학생이지만, 선배님들께서 전해주신 통찰은 앞으로 내가 어떤 방향으로 공부를 이어가야 할지 알려주는 든든한 기준점이 되어주었다. 강의실 문을 나서며, 단편적인 정보에 안주하지 않고 환자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정진하겠노라 다짐해 본다.

 

이날 마음에 새긴 치료의 원칙들과 임상의 엄중함을 소중한 자양분 삼아, 언젠가 환자에게 실질적인 도움과 따스한 위로를 전할 수 있는 결실을 맺고 싶다. 귀한 임상의 정수를 아낌없이 나눠주신 이원행 회장님과 정규석 원장님, 그리고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이 특별한 장을 마련해 주신 대한동의방약학회에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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