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만기 박사(황만기키본한의원 대표원장·서강대학교 겸임교수)
[한의신문] 최근 KBS TV ‘추적 60분(1419회)’에서 방송된 ‘키 크는 주사 열풍–누구를 위한 주사인가?’ 편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방송 이후 소아청소년을 자녀로 둔 많은 부모, 특히 어린이의 성장과 발달에 민감한 엄마들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성장 호르몬 주사 부작용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번 방송에서는 성장 호르몬 주사의 과도한 사용과 그에 따른 부작용 위험성을 집중 조명했다.
특히 해외 소아 내분비 전문의들이 밝힌 성장 호르몬 주사의 부작용 가능성과 장기적 위험성에 대한 경고가 학술적 자료와 함께 매우 객관적으로 제시되며 시청자들의 경각심을 일깨웠다.

이날 방송에서 아다 그림버그 교수(美 펜실베이니아대 의대/필라델피아 어린이병원 소아 내분비 전문의)는 “어린 시절 성장 호르몬 주사를 맞았을 때 어떤 장기적인 악영향이 있을지에 대해 2025년 현재로선 아직 아무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콘스탄틴 폴리크로나코스 교수(캐나다 맥길대 의대)는 “만약 주사를 맞는 것이 부모의 일방적 선택이라면, 저는 이건 심리적 아동 학대라고 본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미 의료계에서는 성장 호르몬 주사의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당뇨병, 갑상선 기능 저하증, 신경계 이상, 말단비대증, 척추측만증, 고관절 탈구, 두드러기, 두통, 부종, 관절통, 근육통, 이상 감각 등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신경학적 증상이나 내분비계 질환 등 일부는 아이의 삶의 질에 장기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들이다.
실제로 성장 호르몬 주사에 따른 부작용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공식 자료에 따르면, 관련 부작용 보고 건수는 2019년 436건에서 2023년 1626건으로 3.7배 증가했다.
특히 2023년 한 해 동안에는 사망이나 영구장애로 이어진 중증 부작용 사례가 113건이나 보고되며 사회적 충격을 안겼다.
성장 호르몬은 뇌하수체 전엽에서 분비되는 단백질 호르몬으로, 성장 호르몬 결핍증이나 뇌하수체 기능 저하증 등 명백한 질환이 있을 때에만 치료 목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임상적으로 성장 호르몬 결핍증은 약 4천 명 중 1명 수준으로 발생 빈도가 낮은 희귀 질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키 성장을 목적으로 한 주사 사용이 지나치게 확산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성장 호르몬이 정상적으로 잘 분비되고 있는 아이들에게까지도 성장 호르몬 주사가 무분별하게 처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단기적으로 성장 속도는 일시적으로 증가할 수 있으나, 최종 성인 키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오히려 장기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이러한 치료는 『맹자(孟子)』‘공손추’ 편에 나오는 ‘알묘조장(揠苗助長)’과 같은 현대판 자해적 접근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키를 빨리 키우겠다는 조급한 심리가 결과적으로는 아이의 건강을 크게 해치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스포츠를 하는 소아청소년의 경우는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성장 호르몬은 1989년부터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며, 세계반도핑기구(WADA)와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에서도 도핑 약물로 지정되어 있다.
단 1cm라도 더 키우고 싶다는 단순한 목표로 도핑에 해당하는 약물을 장기 투여할 경우, 해당 아동이 장차 스포츠 선수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도핑 적발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부모와 일부 지도자들이 성장 호르몬 주사를 ‘키 크는 주사’로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계와 보건당국은 성장 호르몬 주사는 성장 호르몬 결핍 어린이에 대한 ‘호르몬 치료제’이지 ‘성장 촉진제’가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성장 호르몬 주사 치료의 효과는 성장 호르몬이 명확히 결핍된 환자군에서만 입증되었으며, 일반적인 저신장이나 유전적 요인에 의한 키 문제에는 뚜렷한 효과가 없다는 연구 결과들이 다수 존재한다.
이처럼 성장 호르몬 주사는 오로지 의학적으로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해당 적응증의 경우에만, 철저한 진단과 의료진의 판단 하에 엄격히 제한적으로 사용돼야 한다.
부모의 조급함이나 과도한 기대심리가 아이의 장기적인 건강을 위협하지 않도록 무엇보다 정확한 정보와 객관적 현실 인식이 중요하다.
우리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모라면 아이의 키 보다 건강한 삶을 우선시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부작용이나 후유증 걱정 없이 성장기를 안전하고 튼튼하게 보내는 것이다. 그래야 오히려 새싹이 거목으로 무럭무럭 쑥쑥 건강하게 잘 성장하게 된다.
부모의 성급한 결정 하나가 아이의 평생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