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성열 대한한의학회 재무이사 (가천대 한의과대학 교수)
지난달 6일부터 8일까지 일본 도쿄 게이오플라자호텔에서 개최된 ‘제75회 일본동양의학회 학술총회’는 한의학이 국내뿐만 아니라 적어도 동아시아 의료 담론을 형성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 자리였다. 전통의학을 둘러싼 과학적 연구와 임상적 성과들이 한·일 양국간의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 어떻게 조응하며 진화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중심에는 대한한의학회의 적극적인 국제 교류 노력이 있었다.
한국(대한한의학회)과 일본(일본동양의학회)은 2009년 정식 협약을 맺은 이후 꾸준히 학술 교류를 이어오고 있으며, 이번 총회에서도 공동 심포지엄이 개최돼 양국의 학문적 성과가 교차하는 귀중한 기회를 제공했다. 대한한의학회는 단순한 발표 참여를 넘어 심포지엄의 공동 주최자로서 학술적 중심축의 역할을 담당했고, 이는 곧 한의학의 국제화를 위한 리더십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인삼양영탕의 한·일간 각기 다른 임상적 해석·응용 ‘확인’
특히 이번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인삼양영탕 관련 연구는 한국과 일본의 전통의학이 공통된 한약제제임에도 각기 다른 임상적 해석과 응용을 보여주는지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있었다.
경희대학교 권승원 교수는 인삼양영탕을 기반으로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및 한의 문헌 등을 기반으로 다양한 임상 적용 사례를 발표하며, 표준임상진료지침을 바탕으로 한 과학적 근거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인삼양영탕이 한의 변증 의미를 넘어 다양한 질환에서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근거 기반 치료제로서의 수많은 가능성을 부각시킨 발표였다.
또한 동신대학교 양승정 교수는 같은 제제를 갱년기장애 환자에 대한 임상 사례 중심으로 접근했다. 증례별 환자 특성과 변증 패턴에 따른 맞춤형 처방 전략을 소개함으로써, 실제 임상현장에서의 활용 가능성과 치료 효과의 다양성을 제시한 발표였다.
이에 대해 일본 참가자들은 일본과 다소 다른 처방에 대한 접근법에 대해 관심을 갖고 수많은 질의가 오간 학술적인 분위기가 형성됐다. 두 연구 모두 동일한 한약제제를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학적 길이 열릴 수 있음을 시사하며, 이에 대한 국제적 비교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데 있어서 의미가 컸다. 실제로 많은 일본 학자들은 “한국과 일본이 같은 처방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점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처방 체계 및 임상 접근 방식의 비교 연구가 향후 전통의학 발전의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음을 공감했다.
전통의학이 국제의학으로 나아갈 방향성 제시
또한 이번 총회에서는 부산광역시와 동의대학교가 공동 수행한 치매 예방사업 사례도 발표돼 국제적 관심을 끌었다. 한의 치료가 MCI(경도인지장애) 환자군에서 기억력 및 우울 증상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결과는, 한의학이 지역사회 건강관리모델로서도 충분한 효과성과 실현 가능성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는 일본 측 의료진과 연구자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통합의학의 한 축으로서 한의학의 가치를 실증하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됐다.
결국 이번 학술총회는 한의학이 단지 전통의학이라는 정체성에 머무르지 않고, 표준화된 근거 기반의 국제의학으로 나아갈 수 있는 구체적 방법론과 방향성을 공유한 자리였다. 특히 국제 공동 임상연구 및 처방 데이터의 표준화, 한약제제의 다국적 적용 비교 분석 및 적응증 범위 확대, WHO 등 국제기구와의 협력 확대를 통한 정책 반영 등과 같은 후속 아젠다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이와 함께 양국간 교류 협력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대한한의학회는 그간의 축적된 학문적 자산과 실무적 역량을 바탕으로, 이러한 방향성에 전략적으로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고, 이를 지속해야 할 책임 또한 느낀다. 한의학의 국제화는 단지 한의학을 외국에 알리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건강 위기에 대한 해법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며, 이에 대한 주도권은 깊은 학문적 성찰과 진정성 있는 교류를 통해 확보될 수 있다.
이번 일본동양의학회 학술총회 참여는 한의학이 어디까지 와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세계와 소통하는 한의학, 그리고 과학과 융합하는 한의학의 미래는 이미 시작됐으며, 그 길 위에서 대한한의학회의 역할은 더욱 빛날 것을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