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신문] 최근 일본 고치현 출신의 식물학자인 마키노 토미타로 박사(牧野富太郎, 1862∼1957)를 기리기 위해 만든 ‘고치현립 마키노식물원’을 찾았다. 고치현은 시고쿠 섬의 남부에 위치한다. 그는 초등학교 중퇴 학력으로 도쿄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인물로, 독학으로 식물을 연구해 일본 최고의 식물학자에 올랐다.
식물학명 중 명명자 부분에 자주 나오는 ‘Makino’가 바로 위의 마키노 박사를 가리킨다. 황련(Coptis japonica(Thunb.) Makino), 천궁(Cnidium officinaleMakino) 그리고 당약의 기원식물인 쓴풀(Swertia japonica (Schult.) Makino) 등의 학명을 명명한 학자다.
정문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식물원으로 들어서니 일본의 삼(參)으로 불리는 죽절삼이 대여섯 그루가 숲 속에서 자라고 있다. 죽절삼은 뿌리 모습이 대나무 줄기와 비슷해 이런 이름[竹節參]이 붙여졌으며, 고려 인삼과 다른 종이다. 중국에서 죽절삼 재배지를 간 적이 있지만 일본에서 죽절삼을 만난 것은 처음이다. 아직 꽃이 피지 않았지만 식물원에서 제일 먼저 필자를 반겨준 죽절삼 모습을 사진으로 많이 남겨뒀다.

식물원 제일 안쪽에 자리잡은 약용식물 구역에서 중요한 약초를 발견했다. 바로 카기카즈라(カギカズラ)의 일본이름을 가진 구등(鉤藤, Uncaria rhynchophylla)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화구등(華鉤藤, Uncaria sinensis)이라는 식물에 가시가 달린 어린가지를 약재 조구등(釣鉤藤)이라고 하며 식약처 공정서인 ‘대한민국약전외한약(생약)규격집’에 수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중국에서는 위의 식물인 ‘구등’ 그리고 일본에서는 ‘카기카즈라’라 부르는 같은 식물의 가시를 약재로 쓴다. 이 약재는 한국·중국·일본에서 사용하는 기원식물이 좀 복잡한 편이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범의귀과의 약초 상산(常山)도 이곳서 만났다. ‘대한민국약전외한약(생약)규격집’에서 약재 상산은 약초 상산(Dichroa febrifuga)의 뿌리를 가리킨다. 상산은 용토약(涌吐藥)으로 분류하지만 말라리아 치료, 해열 작용도 가지고 있다. 상산은 한국에서 볼 수 없으므로 열심히 이 식물의 여러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제주도에도 상산이 자란다. 제주도의 상산은 과명이 운향과이고 학명은 Orixa japonica이다. 위에서 약재로 쓰는 범의귀과의 상산(常山)과 다른 식물이니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구등 위쪽에는 초마황(草麻黃, Ephedra sinica)이 나무 울타리 안에서 재배되고 있다. 초마황의 초질경은 약재 마황(麻黃)이다. 초질경에는 ephedrine이 주성분으로 포함되어 있고 발한, 해열, 진해, 진통약으로 사용한다. 마황 뿌리에는 초질경과 반대 효능인 지한 작용과 혈압강하작용이 있는 ephedradine 성분이 있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속썩은풀, 황정, 하수오, 오수유, 지모, 황금, 용담, 산사나무, 치자나무, 배초향, 사철쑥, 잔대, 박하도 약용식물구역에서 잘 자라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개느삼과 인삼을 만난 일은 이번 식물원 탐방의 성과였다.
약용식물 구역을 둘러본 후 레스토랑 쪽으로 내려가는데 희귀한 식물이 보인다. 눈이 부실 정도로 수많은 보라색 꽃이 피어 있는 Mucuna sempervirens이다. 이 식물의 황홀한 모습에 이끌려 동영상도 찍어본다. 우리나라 이름은 없지만 monkey tamarind, velvet bean 등으로 불리는 식물이다. 구글 자료를 찾아보니 아프리카와 열대 아시아가 원산지인 열대 콩과 식물이며 접촉 시 발생하는 극심한 가려움증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 식물을 지나니 왼쪽에 양귀비를 재배하고 있다. 관상용 꽃양귀비가 아닌 약으로 쓰는 진짜 양귀비다. 관람객들이 양귀비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언덕 아래에 포장을 마련하여 방문객들은 위에서 식물을 내려다본다. 양귀비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울타리 안에서 잘 자라고 있었지만 아직 꽃이나 열매는 보이지 않는다.
필자는 식물원 정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마키노 도미타로 기념관의 전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여기서 만난 마키노 박사의 1949년도 서재가 인상적이다. 5만여 권의 서적에 둘러싸여 밤낮으로 책상에서 연구에 몰두하는 그의 모습이 질 복원되어 있다. 서재 오른쪽에는 식물 표본 제작에 사용했던 엄청난 양의 폐(廢)신문이 쌓여 있다. 마키노 박사가 평소 얼마나 많은 식물 표본을 만들었는지 전시된 신문 분량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마키노 박사가 사용했던 흡습지인 폐(廢)신문은 중요한 역사적 자료로도 인정받았다고 한다. 이 신문을 버리지 않고 보관하여 훌륭한 자료로 남긴 그들의 기록 수집 정신도 읽을 수 있다. 필자는 전시관 입구에 세워진 마키노 박사의 흉상 바로 옆에서 박사의 숨결을 느끼며 기념사진을 함께 찍어 본다.

한편 마키노식물원 내 도서실에 필자가 발간한 약초도감인 ‘동의보감 우리 약초와 약재’(박종철 저, 푸른행복, 2022) 한 권을 기증했다. 800페이지의 무거운 책자를 한국서 가져가고 식물원서 오전 내내 가방에 넣고서 식물 사진을 찍은 후 오후에 도서실 담당자를 만나 도서를 기증했다.
이같은 일이 쉽지 않았지만 존경하는 마키노 박사의 도서실에 필자의 도서가 진열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뿌뜻하다. 한국에 도착한 지 6일 만에 도서실 담당자와 ‘공익재단법인 고치현 마키노기념재단’ 이사장으로부터 도서실에 책자를 소장한다는 감사 편지를 받았다. 마키노식물원에서 함께 수고해 주신 강영숙‧나도선‧박정일‧신승원‧오기완 교수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