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혜 치휴한방병원 진료원장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원장의 글을 소개한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인간 사회에서 서로 간의 스킨십이 꽤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최근의 분위기는 스킨십을 자중하는 게 더 올바른 방향인 쪽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안다.
그럼에도 성적인(sexual) 부분이 아닌, 마음의 교류가 어느 정도 오고 간 관계라는 가정하에, 손 한 번 꼭 잡아주는 것, 상대방의 눈물을 내가 접은 휴지로 톡톡 닦아주는 것, 시선을 올곧이 마주하며 무형의 위로를 건네주는 것, 이런 사소한 사람 간의 접촉(contact)이 날 선 사회를 한 차례 융화시켜 줄, 하나의 방법임은 확실한 것 같다.
환자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언젠가 암센터에 계시던 한 교수님이, “어차피 매일 돌아야 되는 회진, 기왕이면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환자분들 손 한번 꽉 잡아 드려라”고 말씀하셨듯, 말기 암을 보는 한 유명 의사가 어떤 인터뷰에서 ‘나는 평생토록 누군가의 끝을 말해야 하는 직업이지만, 그래도 보호자의 어깨 한번 토닥일 수 있는 여력은 남겨놓으려 애쓰고 있다’라고 말했듯, 사람 간의 접촉 한 번은, 때로는 주사 한 개보다도 더 큰 위로를 줄 때가 있는 것 같다.
새벽 3시에 불러 가서 침을 빼기까지….
한창 중증 암 환자를 많이 봤던 시절에, 병원을 돌고 돌아 쓸 수 있는 마약이란 마약은 다 섞어서 진통제를 줄줄이 달고 왔던 한 환자가 있었다.
붙이고 있는 펜타닐 패치도 용량이 몇 백이었고, 이전 병원에서 들고 온 의무기록지에는 패치와는 별도로 수십씩의 모르핀이 주사로 또 계속 들어감에도, 밤에는 통증이 잡히지 않는 양상이 보인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당연히 우리 병원으로 옮긴 이후에도 마찬가지 양상이었다. 혈액종양내과, 마취통증의학과, 영상의학과는 물론 정형외과, 신경외과, 정신건강의학과까지 통증을 다루는 거의 모든 과와 협진을 하며 신경차단술과 안정제까지 시도했지만 밤만 되었다 하면 환자는 아파서 엉엉 울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김없이 통증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는 콜을 받은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뭐라도 해보자 싶은 마음에 침 뭉텅이를 챙겨서 병실을 찾아갔다.
새벽이라는 항상 같은 시간대에, 항상 같은 자리를, 뭘 해도 아주 조금 나아질 뿐 잠을 못 잘 정도로 아프다고 우는 환자에게, 당시의 나는 있는 지식 없는 지식을 다 끌어다 모아 마주했다.
‘암성 통증’과 관련되어서 침 치료가 효과가 있었다는 논문에서 사용한 팔다리의 혈(血)자리를 최대한 긁어모았고, 환자 팔다리에서 논문들과 같은 자리를 꾹꾹 눌러준 뒤, 침 수십 개를 꽂았다. 새벽 3시에 불러 가서 침을 빼기까지, 그 병실에 족히 1시간은 있었던 것 같다.
작은 손짓 하나에 전해진 무언가….
그리고 다음 날, 이른 아침에 ‘보호자가 급하게 주치의를 찾는다’는 말에 달려갔더니, 병실 밖에서 조용히 울고 있던 보호자가 나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아내가 최근 두 달 중 제일 잘 잤던 것 같아요. 침 빼고 나서도 아프다 아프다곤 했는데 곧 스르륵 잠들더니 아직도 잘 자고 있어요.”
그 날 이후로 나는 매일 하루 세 번, 1시간씩 침을 놓았고, 당직을 서는 동료들도 다 같이 새벽을 뜬 눈으로 지새우며 돌아가면서 몇 십 개의 침을 놨다. 당연한 소리지만, 그때도 지금도 나는 이 현상이 침의 효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도움은 되었을 것이고, 통증을 잡기 위해 시행했던 여러 가지들이 겹치면서 우연히 타이밍이 맞은 것도 있겠지만, 결국 나중에는 당직의들이 가슴 한 번 토닥여 주는 것만으로도 잠에 스르륵 빠지셨던 걸 보면, 작은 손짓 하나에 전해진 무언가가 그녀를 잠들게 해줬던 것 같다.
사소한 접촉으로 시작된 변화들….
이후로도 종종 사소한 접촉으로 시작된 변화가, 우리를 뭉클하게 만든 순간들이 나타나곤 했다. 눈의 초점을 못 맞추던 환자가, 아들이 손을 꼭 잡으며 ‘엄마’하고 부르자 꽈~악 마주 잡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던 순간.
끝을 앞두고 의식이 불분명하던 환자가, ‘그간 고생했어!’라고 말하며 가슴에 손을 올리는 아내의 팔을 힘겹게 한 번 꽈~악 잡고 임종했던 순간. 이렇게 치료만 반복할 바에야 차라리 죽겠다고 말하는 환자의 등을 토닥이자, 엉엉 눈물을 한껏 쏟아내고는 또다시 살아보겠다며 의지를 다지던 순간들.
사소하기도 하고, 이미 의학적으로 다 명명되어 있는 현상이라 말한다 한들, 작은 접촉과 그로부터 전달되는 무언가가 누군가에게는 아주 큰 정서적 지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앞서 말한 교수님과 의사의 말과도 상동한 사실이다.
배려와 존중도 중요하고, 관심과 표현도 절실히 필요한 지금의 사회에서, 감각적 접촉이 적재적소에 잘 사용되고 잘 전달되어서, 점점 추워질 겨울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만들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